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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 김혜수, 염정아 하는구나!” <밀수> 류승완 감독
2023년 8월 16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감독 중 한 명으로 업계 베테랑인 류승완 감독이지만, 이번 <밀수>는 여러모로 처음이자 각별한 현장이었다. 단 한 줄의 기사에서 출발한 시나리오로 영화 <짝패> 이후 오랜만에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삼은 데다, 처음으로 수중 액션 촬영을 시도했다. 무엇보다 촬영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편안하고 즐거운 현장이기도 했다. 그 어떤 기 싸움이나 경쟁구도 없이 한 마음 한뜻으로 오직 목표 장면을 향해 긴장감 있게 나아간 덕분이다. 현장의 든든한 코어였던 김혜수, 염정아 두 배우의 힘을 여실히 느꼈다는 감독을 만났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모가디슈>는 그 자체로 너무 드라마틱한 이야기라 무언가를 더하기보다 빼는 것이 관건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에는 해양범죄활극이라 영화적 상상력을 불어넣기에 좋은 컨디션이 아니었을까 한다.

정말 그렇다. 이번 ‘군천’처럼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한 건 영화 <짝패>(2006) 이후 처음이다. 어린시절부터 매혹되어 온 요소들, 그러니까 음악이나 패션 같은 70년대 대중문화의 기억을 장르 영화 안에서 익스트림하게 다룰 수 있겠더라. 현실 고증과 영화적 상상력 사이에 밸런스를 맞추는 데 있어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고, 덕분에 만드는 과정이 편하고 참 재미있었다.

‘70년대 밀수에 가담한 해녀가 있었다’는 한 줄의 기사로부터 영화가 시작됐다고.

조성민 부사장(<밀수> 제작사인 외유내강의 부사장)이 영화 <시동> 촬영 당시 군산의 지역 박물관을 방문했었고, 이때 이런 사료가 있다는 걸 알려줬었다. 그 이전으로 거슬러 가면 ‘미스테리아’ 잡지에서 다룬 70년대 부산 지역에 살았던 여성 밀수범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봤던 차에 이 두 가지 이야기를 결합해 보면 괜찮겠다 싶었다. 사실 이때만 해도 직접 연출할 생각은 없었고, 회사에서 개발하는 걸 지켜보던 중에 지금까지 ‘안 해본’ 이야기라 하게 됐다. 해상 밀수는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빈번하지만, 해녀가 관여한 여성 해양 활극은 이전에는 못 봤던 그림이라 새로운 시도가 되겠더라.

‘새로움’이 선택의 중요 포인트인 것 같다. 올 여름 한국 텐트폴 영화 빅4 중 가장 화려한 라인업이다.

매번 장르영화를 연출하니 (보는 입장에서는) 비슷해 보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재탕’을 두려워하고 지양하는 편이다. 내 딴에는 매번 새로운 영화를 하는 셈이다. (웃음) 이번에는 특히 함께한 배우들로 인해 두려움보다는 흥분이 컸던 것 같다. 김혜수, 염정아라는 코어를 지탱하는 두 커다란 봉우리와 조인성, 박정민, 고민시 그리고 김종수 선배까지 남녀, 신구의 조합이라는 면에서 선물 같은 캐스트였다. 여성 투톱 영화로 소개되지만, 그보다는 진숙이라는 중력을 중심으로 그 주변부가 변하는 이야기로 ‘군천 활극’이라 하겠다. 영화를 보면 다들 아실 거다.

김혜수와 염정아 배우를 한 스크린에서 만난다는 건 관객에게도 큰 선물이겠다. 두 배우를 어떻게 떠올렸을까! (웃음)

그렇지! 20여 년 전에 만든 <피도 눈물도 없이>(2002)에서 이혜영 선배와 전도연 배우 두 여성 주인공이 활약했는데 이때도 배우와 배우를 따로 고려하지 않고 그 조합을 고려해서 캐스팅했었다. 버디 영화는 무엇보다 조화가 중요한데 두 친구 관계라고 할 때 본능적으로 김혜수, 염정아 배우가 떠오르더라. 두 분의 오랜 팬이기도 하고 의외로 두 분이 함께 작업한 작품이 없는 거다, ‘그럼, 내가 해야지!’ 이런 생각이었다. 두 분은 정반대의 에너지를 뿜는데 그 조화가 기가 막혔다. 김혜수 선배가 불이라면, 정아 씨는 물과 같다. ‘춘자’(김혜수)의 온도가 널뛰기할 수 있는 건 ‘진숙’(염정아)이 쿨하게 그 온도를 유지해 주는 덕분이다. 두 분의 연기력은 내가 뭐라고 얘기할 단계가 아니고, 두 분의 작업 태도는 정말 존경스러웠다.

어땠길래!

한마디로 “이래서 김혜수 김혜수, 이래서 염정아 염정아 하는구나!” 싶었다. 정아 씨는 자기 촬영이 끝났어도 남아서 계속 지켜보고 있고, 김혜수 선배는 스탭들이 뒷정리하는 걸 보면서 막 울 정도였다. “감독님, 저것 좀 보라고, 저렇게 열심히 한다”며 눈물을 보이는 거다. 한 번은 추석인가 김혜수 선배가 스탭들 전원에게 신발을 선물한 적도 있다. 또 <소년심판>으로 (김혜수) 선배가 조금 늦게 촬영에 합류했는데 이때 정아 씨가 마치 극 중 진숙이 하듯이 해녀 역의 배우들을 이끌고 코로나를 뚫고 영화(<발신제한>)를 보고 오기도 하는 등 후배들을 너무 잘 챙겼었다. 현장은 마치 김혜수·염정아의 주부가요교실 같다고 할지, 하여튼 분위기를 이끄는 두 오락부장이었다.

수중 액션 연출도 처음인데 해보니 어떻든가.

해녀들이 물속에서 아주 자유롭고 아름답게 움직이지만, 사실 김재화 배우만 수영에 능한 분이었다. 정아 씨는 수영을 처음 하고, 김혜수 선배는 물에 대한 공황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모두가 노력해서 이와 같은 결과물을 내주셨다. 촬영 시 어려웠던 건 배우가 입수하는 순간 물속의 카메라가 따라 움직이게 되니, 어렵게 잡아 놓은 앵글이 틀어지기 일쑤였다. 각도를 다시 맞춰서 찍으려고 하면 배우들이 물 밖으로 나가야 했고, 또 배우가 포즈를 취하면 반대로 촬영팀의 산소가 부족하게 되는 등 이런 식의 엇박자가 반복되는 걸 보면서 순간 ‘내가 이걸 왜 했을까’ 싶기도! (웃음) 그런데 이런 모든 방해 요소를 제거하고 촬영에 성공하는 그 순간의 감동은 정말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무리 힘들어도 스탭들과 배우진 모두가 한마음으로 헌신해줘서 끝까지 갈 수 있었다.

지상에서 연출하는 것과 차이점이 있다면.

수중은 지상보다 중력의 작용이 작으니 움직임이나 동작, 카메라 워킹이 자유롭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다. 해보니 남성과 여성의 대결에 있어 물리적, 그러니까 힘의 차이보다 물에 익숙한 정도에 따라 그 상황과 우위가 달라지기 때문에 현실적이면서도 어떤 판타지한 그림이 나올 수 있겠다 싶었다. 수중 액션 연출은 이 그림을 구체적으로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김희진 코치를 중심으로 한 싱크로나이즈 팀과 무술 감독님이 머리를 맞대고 할 수 있는 것, 할 수 없는 것, 해볼 수 있는 것 등을 제안해 주셨었다. 극 중 진숙과 춘자가 서로 손을 맞잡고 올려주는 씬도 원래는 하이파이브 하는 거였는데, 싱크로나이즈 팀의 테스트를 거쳐 바뀐 부분이다.

‘권 상사’(조인성)와 장도리 패거리의 떼거리 호텔 액션 씬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다. 산울림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의 서정적인 BGM, 권 상사와 장도리의 대조적인 비주얼, 그리고 기대 이상의 카타르시스와 잔인함까지 여러모로 인상적인 시퀀스다.

기억에 남는 액션으로 자리매김하려면, 매력 있고 강력하고 멋있는 걸 넘어서는 어떤 감정적인 효과가 더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스티븐 시걸과 리암 니슨을 볼 때, 전자의 액션 테크닉이 훨씬 훌륭하지만 후자에 훨씬 크게 감흥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디테일의 차이에 따라 액션의 절정에 도달할지 그렇지 못할지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호텔 액션씬의 경우 극 중 장르성을 극한으로 끌어 올릴 수 있겠다 싶었고, 여기서 중요한 건 멋과 의외성 그리고 한 스푼의 유머라 고 생각했다. 또 예상치 못한 관계에서 오는 제3요소를 활용해서 서스펜스를 발생시키는 것도 중요했다.

의외성이라 하면, 권 상사와 춘자 사이의 핑크빛 기류 같은?

그 점도 있고, 일단 춘자가 같이 싸운다는 점이 매우 중요했다. 춘자가 단순하게 권 상사가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간다면 장면의 의도가 무너졌을 거다. 춘자가 직접 액션하지 않아도 끝까지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야 우리 액션의 기조가 유지된다고 생각했다. 춘자가 가방 등을 던지는데 김혜수 선배의 힘이 좋아서, 찍으면서 우리끼리 ‘깡패들이 밀리겠는데’ 하며 농담하기도 했었다. (웃음) 두 사람 사이의 감정선은 시나리오상에도 약간은 있었지만, 배우의 연기에 따라 좀 더 선명해졌고, 여기에는 음악도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그간 많은 액션 씬을 찍었지만, 개인적으로도 만족도가 높은 장면이다.

<모가디슈>에 이어 조인성 배우와 다시 작업했는데, 호텔 액션씬으로 인해 다시 한번 멋짐을 되새겼다. 또 박정민 배우는 이번 영화의 최대 수혜자라고 할 정도로 연기력에 대해 호평 받는 중이다.

<모가디슈> 하며 너무 사람을 망가뜨린 것 같아서… (하하하) 이번에는 부채를 갚다가 액션 장면에 이르러서는 한 번에 원금까지 상환하는 느낌으로 가져갔다! <모가디슈>의 스탭들이 이번에도 거의 다 참여해서 조인성 배우의 합류를 정말 기뻐했었다. 처음 등장하는 장면인 춘자와 마주보는 씬에서는 마침 흰색 바지를 입고 와서 김혜수 선배의 인간 반사판 역할을 해줘서 특히 조명팀이 환호했었다. 말과 행동이 정말 예쁜 사람이다. 자기 관리에 철저하고, 사람 고마운 줄 알고, 자기를 사랑해주는 대중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가진 배우라 더욱더 스타가 될 거로 본다.

박정민 배우는 영화 <파수꾼>(2010)을 워낙 좋아하기도 했고, 그 이후에도 계속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던 참이었다. 예전에 한국영화아카데미 3D 단편 옴니버스 제작 프로젝트에서 함께한 적이 있었는데 짧은 작업 기간에도 ‘참 깊은 사람, 허투루 하지 않는 사람’ 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프로듀싱한 <사바하>와 <시동>을 보면서 좀 더 길게 작업해 보고 싶은 마음에 장도리를 제안했고, 역시나 놀랍게 소화해줬다.

이번 <밀수>는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작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유가 뭘까.

촬영이 너무 재미있었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현장에서 기 싸움이 정말 1도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어떤 경쟁 구도도 없었다. 통상 어쩔 수 없는 배우 간의 경쟁구도가 있고 심지어는 카메라 간의 경쟁구도도 있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그런 경쟁이 전혀 없었다. 그만큼 참여한 배우들의 품성이 훌륭했고, 김혜수·염정아 두 코어가 워낙 잘 이끌다 보니 서로서로 독려하는 분위기였다. 이렇게 편안한 분위기가 조성됐기에 연출자로서 편안하게 이렇게 저렇게 제안할 수 있었고, 배우들 역시 자기들이 준비해 온 걸 편안하게 펼쳤다고 생각한다.

배우진은 이구동성으로 <밀수>에 참여한 이유로 ‘류승완 감독’을 꼽는데, 셀프 칭찬 한마디 한다면. (웃음)

거듭 말하지만, <밀수>는 참 특이한 현장 경험이었다. 촬영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정말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솔직히 촬영하면서 뭔가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수면장애에 시달리기도 하는데 말이다. 워낙 즐거우니 ‘내가 관객보다 즐거우면 안 되는데’ 할 정도였다. (웃음) 현장에서 개인적으로 노력하는 부분은 ‘항상 실수할 수 있고, 항상 틀린 선택을 할 수 있으니 준비를 최대한 철저히 하자’이다. 기본적으로 이런 마음으로 현장에 나가고, 그 후에는 가능한 한 잘 웃고, 크게 반응하려 한다. 무슨 말이냐면 노력하는 부분에 대해 인정과 고마움을 꼭 표현하려고 한다. 가령 어려운 장면을 끝낸 후에는 잊지 않고 다 같이 박수를 친다든지 하는 식이다. 현장의 업무 강도 자체가 워낙 세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보상받는 기분을 느끼게끔 하려고 노력한다.

마지막 질문! 동생인 류승범 배우는 <밀수>에 대해 뭐라고 했는지, 문득 궁금하다. 마침 조인성 배우도 출연한 디즈니+ <무빙>이 9일 공개되지 않나.

그날은 마침 동생 생일이기도 하다. 친한 친구인 강풀 작가가 처음으로 각본을 쓴 작품이라 개인적으로도 기대가 크다. 처음에 <무빙> 대본을 보고는 ‘이걸 한다고?’ 했었는데, 예고편을 보고는 ‘이걸 했다고?’ 하는 감탄의 연속이다. 오랜만에 드라마에 나올 동생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하다. 동생은 아침에 전화해서 <밀수>를 재미있게 봤다고, 긴장하지 말라고 하면서, ‘장도리’ 헤어스타일이 탐난다고 자기도 하고 싶다는 거다! 평소 질투심 제로에 누구를 부러워하지 않는 동생인데 그 스타일이 마음에 든다고 해서 정말 의외였다. (웃음)


사진제공. ㈜외유내강/ NEW

2023년 8월 16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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