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조가 인터뷰 룸에 들어왔다. 놀랐다. 놀랄 수밖에 없는 점이, 그가 진정 72년생이라고? 그러니까 그가 처음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얼굴을 알렸던 <아메리칸 파이>의 고등학생 역할을 맡았을 때가 27살이었다는 얘기다. 동양인들의 '동안' 파워는 말끔한 수트 차림의 존조에게도 어김없이 적용됐다. 더욱이 수차례의 이어진 인터뷰의 여파인지 모를 일이지만 존 조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진지함을 보여줬다. <해롤드와 쿠마>의 그 슬랙스틱 코미디의 기운은 도무지 찾아 볼 수 없었다. 존 조는 게다가 아시안 아메리칸의 자의식이 누구보다 강해 보였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배우로서의 고충은 그의 길지 않은 답변에 고스란히 전달됐다. 서울에서 출생해 LA에서 자란 이민 1.5세대인 존 조는 그 누구보다 할리우드 속 아시아인들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듯 보였다.

<스타트랙 더 비기닝>에서 존 조가 연기한 술루는 주인공 3인방 커크 선장과 스팍, 네로를 제외한다면 가장 괄목할 만한 활약을 보여준다. 엔터프라이즈호의 첫 번째 항해의 출발 직전, 귀여운 실수로 관객들의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술루는 불칸 행성에 커크와 함께 투입, 장쾌한 검술 실력으로 커크의 목숨을 살려낸다. 또한 시종일관 귀여운 개그로 일관하는 체코프나 스팍에게 구애하는 우후라, 그리고 후반부에 카메오처럼 등장하는 사이몬 페그의 스카티와 비교하면 존 조의 술루는 더더욱 돋보인다. 존 조는 이를 위해 이미 촬영 전에 몸 만들기 훈련에 돌입했고, 최초나 다름없는 액션 연기를 위해 태권도 등 각종 무술도 섭렵했다.

하지만 그 동안 존 조를 각인시켜줬던 장르는 바로 코미디다. 많은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그의 첫 주연작은 코미디 <해롤드와 쿠마>. 아시아인 해롤드와 중동인 쿠마가 마리화나를 찾기 위해 벌이는 이 좌충우돌 대소동극은 2004년 7월 개봉 당시 박스오피스 1위로 데뷔하는 이변을 연출했다. 그리고 지난해 개봉한 속편 <해롤드와 쿠마 관타나모 베이 탈출> 역시 2위로 데뷔하는 좋은 성적을 올렸다.

존 조는 하루아침에 스타덤에 오른 배우가 아니다. 버클리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엔터테이너 산업에 뛰어 든 뒤, 오랫동안 무명의 길을 걸어야 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연기력과는 무관한 일이었다. 할리우드에서 아시안 남자배우가 따낼 수 있는 역할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존 조는 이제 <스타트랙 더 비기닝>으로 미국과 한국은 물론 전세계에 얼굴을 알렸고 술루는 그의 또다른 도약의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코미디 외에도 존 조는 <웨스트 32번가>에서 확인했던 것처럼 진지한 드라마에 더 잘 어울리는 외모와 연기력을 갖추고 있다. 1등 항해사에 머물렀던 <스타트랙 더 기비닝>과 달리 아마도 그가 바라마지 않는 할리우드 속 아시안 연기자들의 커뮤니티의 리더는 그의 자리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J.J. 에이브람스 감독이 왜 당신을 술루 역에 캐스팅 한 것 같나.
오디션을 잘 봤고 꼽히기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오디션 이후 몇 달 동안 연락이 없었다. 그 후에 연락이 와서 술루를 연기할 수 있었는데, 사실 왜 뽑혔는지에 대해서는 아마도 감독님한테 직접 물어 봐야 될 것 같은데(?)

J.J. 에이브람스 감독은 앞으로 할리우드에서 가장 촉망받는 감독 중 한 명이다. 그와의 관계는 돈독하게 맺어뒀나?
(웃음)개인적으로 꼭 그랬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스타트랙>의 2편이 개봉할 때 꼭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해롤드와 쿠마>의 코미디로 친근하다. 코미디 장르도 원래 좋아하나? 그런데 지금은 굉장히 진지해 보인다.
(웃음) 개인적으로 코미디 연기를 굉장히 좋아하고 즐기는 편이다. 재미있는 모순을 하나 얘기하자면, 코미디는 촬영할 때 세트 위에서 매우 심각하게 연기를 해야 한다. 웃기는 장면을 촬영하기 전에 말의 어순도 바꿔보고,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거의 수학 문제를 푸는 것처럼 심각하게 고민한다. 그런데 오히려 <스타트랙 더 비기닝>은 심각한 영화인데 촬영할 당시 세트 위에서 배우들 모두가 농담을 주고받는 즐겁고 가벼운 분위기로 촬영에 임했다.

<해럴드와 쿠마>로 미국에서 얼굴을 알렸지만, <스타트랙 더 비기닝>의 세계적인 히트로 좀 더 유명세를 타게 됐다.
내 개인의 커리어가 성공을 거두는 개인적인 행복도 기대하고 희망하는 것 중 하나다. 하지만 그보다는 아시안 출신 연기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내 진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만약 <스타트랙 더 비기닝>이란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그 목표에 할 발자국 다가섰다면 정말 대만족이다.

당신이 최고로 뽑은 산드라 오나 <엑스맨 탄생: 울버린>에 출연한 다니엘 헤니 등 한국계의 할리우드 진출이 속속 이뤄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대환영이다. 다양한 배우들의 진출은 연기자들의 커뮤니티를 훨씬 풍성하게 할 테니까. 다양한 매력을 가진 연기자들이 활동하는 것도 모두에게 좋은 일이고. 개인적으론 이들 모두가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도 그렇고 다들 많은 경험을 쌓아왔기 때문이다. 코리안 아메리칸이 할리우드에서 배역을 따고자 할때 실제적으로 동양인 배역을 얼마 되지 않는다. 다양한 배역을 소화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지만 경험이 많은 한국 배우들은 그 배경르 따낼 역량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해롤드와 쿠마(2004)>

혹시 한국이나 아시아 선배 배우들 중 롤모델이 있나?
개인적으로 한국배우들을 볼 때 할리우드에서도 성공하지 않을까 싶은 배우들이 여럿 있다. 일단 그들은 잘 생겼으니까. 물론 그것만 가지고 성공하긴 어렵겠지만 분명 잠재력이 있는 것 같다. 롤모델은 어렸을 때 접한 영화나 문화를 통해 결정될텐데, 솔직히 안타깝게도 미국에서는 한국영화를 쉽게 접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미국 영화의 백인 주인공을 보면서 그들을 롤모델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요즘도 아시아 배우로부터 어떤 영감을 받기엔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나 싶다. 그 중 <올드 보이>는 강한 인상을 받고 즐겁게 봤다. 그래도 그 영화를 가지고 어떤 연기를 공부하기에는 언어적인 장벽이 가로막고 있어서 롤모델로 받아들이기 까지 배우고 숙지하기엔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평소 아시아 영화들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연기보다는 아시아의 영화 제작자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미국 제작자들은 대사에 의존해 스토리를 전개하려는 반면 아시아인들은 시각적인 면에 집중하지 않나 싶다. 비주얼에 집중해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이 훨씬 더 효과적인 것 같다.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
특별히 배우로써가 아니라 모든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겪는 편견이나 오해와 비슷하지 않나 싶다. 다만 배우들이 좀 더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이슈화 되는 것뿐이고.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우리 아시아인들에 대한 오해나 편견이 분명히 있지만 그걸 극복하기 위해서는 온전히 역할을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밖에 없을 서 같다.

한국에서 활동하고 싶은 생각은 없나?
한국에서 누가 대본을 가지고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개인적으론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 몇 달을 한국에 체류하면서 한국어를 더 배워야 겠다는 생각도 든다. 외국을 방문했을 때마다 그 나라를 진짜 알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없어 항상 아쉬웠다. 한국에서도 그럴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10년 후가 된다면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커리어를 10년 후까지도 탄탄하게 만들어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폭넓은 배역을 맡아 내 커리어를 확장 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고. 또 아시아인이 맡을 수 있는 역할은 이 정도라고 인식하는 한계를 타파하고 싶다. 부연하자면, 아시아인으로 미국에서 성장하면 어릴 적의 영웅은 부모님이고 그들보다 대단한 사람이 없다. 하지만 사회를 경험하게 되면 동양인의 피부를 가진 사람은 절대 영웅이 될 수 없다. 또 그런 생각을 계속적으로 주입받게 된다. 개인적으로 엔터테인먼트가 문화를 형성하고, 문화가 다시 엔터테인먼트를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 아시안 어린이들이 내가 경험했던 상처를 받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으면 한다.

2009년 5월 15일 금요일 | 글_하성태(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