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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연애행각] 벌칸인 혹은 공대생과 연애하기 <스타트렉 다크니스>
2013년 7월 1일 월요일 | 앨리스 이메일


운 좋게도 극장에서 내려가기 직전에 몇 남지 않은 상영관을 찾아내어 <스타트렉 다크니스>를 관람할 수 있었다. 영화는 예상대로 즐거웠고 <스타트렉> 시리즈를 처음 본다던 일행도 재미있어 했다. 그는 영화 속 이런 저런 장면들에 대해 이야기하더니,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언니, 그런데 벌칸족이 딱 공대생 스타일이죠?”

그러니까 <스타트렉>이 TV시리즈로 첫선을 보인게 무려 1966년이고 영화로 처음 제작된 것은 1979년인데, 2013년 <스타트렉 다크니스>까지 포함하면 40여 년에 걸쳐 총 11편이나 꾸준히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다. 이렇듯 장구한 역사를 보면 굳이 <스타트렉> 시리즈의 매니아가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이 영화에 대해 들어 봤을 것이고 딱히 디자인이랄 것이 없는 빨갛고 파랗고 노란 체육복을 입은 인간 혹은 외계인들이 커다란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항해하며 모험을 펼치는 가운데 유독 튀는 외모를 한 캐릭터도 눈에 익을 것이다. 앞머리를 자로 댄 듯 자르고 눈썹 또한 일자로 뻗은 모양을 하고서 요상한 손동작으로 인사를 하는, 뾰족 귀의 벌칸인 말이다.

벌칸인의 정의를 찾아보면 이렇다. 원칙주의자. 논리적이면서 이성적인 종족으로 감정을 철저하게 다스리며 매사에 진중하다. 원리원칙에 너무 매달리다 못해 결벽증 기질도 좀 있고, 융통성 없는 이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사교성 또한 꽝이다. 이쯤 듣다 보니 어떠신지. 역시나 공대생이 떠오른다고? 솔직히 말해서 인터넷에 떠도는 ‘공대생 유머’라는 것을 보면, 그리고 저 유명한 미드 ‘빅뱅이론’에서 <스타트렉>에 열광하는 천재 공대생들만 봐도, 확실히 그들을 떠올리게 하는 어떠한 특징들이 있긴 하다. 이런 방식으로 일반화의 대상이 되는 이들에겐 다소의 억울함이 있겠지만, 애초에 그런 유머가 생겨나고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는 것은 앞서 언급한 특징이 아예 없는 벌칸인 아니 공대생은 흔치가 않다는 반증일 수도 있으니 어쩔 수가 없고 말이다.

문제는 이런 특징을 가진 이들이 그렇지 않은 보통의 우리들 사이에서 매번 같은 패턴의 갈등을 일으킨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융통성 없음. 결국엔 ‘너 정말 말이 안통한다’고 대화를 종료하게 만드는 공감 결여의 징글징글한 논리적 화법. 이런 것들로 인해 영화 초반에 벌칸인 ‘스팍’이 중심이 되는 에피소드를 보면 스팍이 주위 인물들과 어떤 방식으로 갈등을 일으키는지가 확실히 보인다. 살다보면 예외 상황이라는 것이 발생하기 마련이건만, 융통성이라곤 쥐뿔도 없고 오직 매뉴얼대로만 살아온 스팍은 자신의 목숨이 걸린 문제에도 원칙을 고수하다가 펄펄 끓는 용암탕에 빠져 죽기 직전까지 상황을 몰고 가 친구와 연인의 가슴도 새카맣게 태워버린다.

맞다. 스팍은 심지어 사내 연애 중이다. 연애야말로 인간관계 중에서도 숱한 감정 표현과 딱히 정답이 없는 공감의 제스처를 필요로 하는 관계라는 관점에서 스팍에겐 가장 난이도 높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일하지 말라고 속상해하며 화내는 여자친구에게 ‘그래 앞으로 조심할게’ 한마디 말과 함께 다정한 포옹이면 간단히 넘어갈 수 있을 텐데, 자신의 임무와 우주 질서의 규칙을 설명하고 있으니 울화통이 터지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직장 상사 커크마저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는 다혈질의 인간이니, 스팍 입장에서는 인간이란 왜 이리도 대책 없는 생물인가 싶을지도 모를 일이다.

앞서 말했듯 스팍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 외계 행성 어딘가 이런 막연한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지구상에서 한번쯤은 만나봤을 남자. 내가 아니더라도 친구의 남친 정도로 익히 들어봄직한 남자. 일명 공대생 남친들. 모든 시시콜콜한 사건까지도 회로도를 그려서 YES와 NO로 사고를 진행시켜 결론을 도출하여 스스로 납득시키기 전까진 두루뭉술 넘어가는 법이 없는 남자 말이다.

그래도 나는 옆에서 보고 있으면 웃음이 터지기도 하지만, 직접 겪게 되면 속 터지게 하는 이런 벌칸인 아니 공대스타일의 면면들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남자들의 장점은, 잘 가르쳐주고 납득이 가능한 방식으로 설명했을 때 누구보다 빨리 받아들인다. 꽁하지도 않고 유치한 감정소모도 하지 않는다. 울컥해서 떼를 쓰지도 않고 애처럼 우기지도 않는다. 보통의 우리 남자들처럼 말이다. 머리로 이해하고 받아들였으면 그걸로 클리어! 얼마나 담백하고 멋진가!

이런 남자들은 화려한 수사로 말하지는 않지만 되려 상대를 살피고 이해하려는 감정의 깊이가 있다. 영화를 봤다면 알겠지만, 스팍은 좋은 캐릭터다.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세계와 어떻게 소통하고 스스로 성장하며 남에게 도움이 될 지를 계속 고민하는 인물이다. 뾰족 귀와 뭉툭 코 그리고 과감한 헤어스타일링에도 불구하고 잔잔히 빛나는 그의 얼굴과 우월한 기럭지도 한 몫 한 건 사실이지만, 확실히 시간을 두고 볼수록 애정가는 스탈일인 것이다. 여심을 사로잡는 달콤한 말들을 익숙하게 구사하는 남자들은 그만큼 상대의 마음을 속이는 것에도 능통하지 않은가. 벌칸인과의 연애에선 그런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거짓을 말하지 않는 남자. 그의 말이라면 곧이 곧대로 믿어도 좋을. 그렇다 진정성이라고 하자. 그가 우후라에게 남긴 화려하지 않은 한마디 평범한 말이 지닌 진정성. 그 대사를 듣는 순간 쌓였던 불만과 속터지는 걱정과 모든 복잡한 감정들이 눈녹듯 사라져 버리고 마음 속에는 속 깊은 남자의 매력만 남았으니 말이다.


“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널 걱정하지 않는 건 아니야. 사실 널 누구보다도 걱정해.”


2013년 7월 1일 월요일 | 글_앨리스(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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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oro2331
연애행각 글을 자주 보는 편입니다. 특히 이번 편 너무나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공대상과 벌칸인...생각해보니 정말 겹쳐지는 측면이 많은 사내들인 거 같습니다...ㅎㅎ 그걸 또 긍정적으로 해석하신 것도 재밌고요...앞으로도 신선하고 참신한 소재와 글 마니마니 부탁드립니다.   
2013-07-0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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