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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계가 빛나는 이유 <라디오스타> 안성기! 박중훈!
2006년 9월 27일 수요일 | 이희승 기자 이메일


안성기와 박중훈을 한꺼번에 인터뷰 한다는 건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기념비적인 두 배우를 직접 만난다는 영광과 더불어 10년 안에 나올까 말까 한 행운을 거머쥐었단 사실과 일맥상통한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이후 7년 만에 뭉친 이들의 전작은 자그마치 1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이 처음 만난 건 88올림픽이 올렸던 해다. 사심이 들어간 인터뷰의 서문을 쓰는 것 자체가 괴로운지라 피차 툭 까놓고 시작하리라 마음먹고 솔직히 밝히자면, 요즘 내가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니는 위험 발언 중 하나는 “<라디오스타>가 흥행되지 않으면, 기자 때려 친다!”라는 말이다. 거기다 더 예민한 부연설명까지 하고 덧붙이고 다니는데 그 도도함이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정도다. 이를테면 “이런 영화를 외면한 관객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고 싶지도, 영화바닥에 있고 싶지 않다!”라는 것.

기자의 까칠함과 내지르는 성격을 아는 몇몇 지인들은 은근 흥행저조를 바라는(?) 눈치이긴 하지만 진심을 담은 나의 이 발언을 철회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이렇게 기사에까지 당당히 밝혔으니 빼도 박도 못하겠지만 안성기, 박중훈이라는 두 배우가 한국영화계를 어떻게 일궈나갔는지,그로인해 어떤 눈부신 발전을 했는지를 직접 만나서 듣고 보고 느꼈기에 한치의 후회도 없다. 개봉이 27일이니 이 기사를 미리 읽으시는 분들은 기사에 나와있는 장면들은 꼭 신경 써서 봐주시길 부탁 드린다.

두 분의 존재만으로 한국 영화계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작금의 현실과 대한민국 영화기자로 이 시대를 산다는 자긍심까지 느끼게 만들었음을 수줍게 고백하며, 말 한마디 한마디가 금쪽 같은 인터뷰 내용을 공개한다. 100번을 곱씹어봐도 구구절절 옳은 말에 배시시 웃음이 배어 나온다. 어쩜 이리도 영화 속 인물들과 꼭 닮은 대답들인지, 여태껏 스크린으로 봐왔던 박중훈 안성기의 실제 모습이 궁금하다면 어쩔 수 없다. <라디오스타>를 봐야 할 것이다. 그 어떤 영화보다도 그들의 내면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으니까. 이왕이면 영화를 보신 후 읽어보길 강력 추천한다.

이: 두분이 처음 만난 영화가 <칠수와 만수>그러니까 88년도부터 <투캅스>,<인정사정 볼 것 없다>까지 안성기와 박중훈이 만난 영화들은 감히 말하건 데, 충무로의 역사를 새로 쓴 작품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이번 <라디오 스타>는 어떨 것 같은지, 각 배우 분들의 솔직한 답변 부탁 드릴게요.
박: 난 심지어 이런 생각도 해봐. 형님이야 워낙 좋은 작품이 많으신데 내 인생에서 ‘좋다’라고 평가 받은 작품들은 다 안 선배님하고 찍은 그 4편이란 말 이예요. 그래서 심지어 난 안성기란 배우 없으면 절대로 못한다. 이러고선. 아~ 나 혼자 뜨기에는 틀렸구나.(웃음) 뭐 그럴 정도로 잘 만들었어요. 영화에는 다 이런 파트너가 있어요. 엄밀히 말하면 대부분의 영화가 버디영화예요. 남남파트너인 경우에 버디영화라고 많이 쓰잖아요? 근데 남녀도 사실은 버디영화예요. 호흡이라는 게 참 재미있는 게 영화 속에서 호흡이 안 맞기도 힘든 거 아세요? 웬만하면 다 맞아요.
안: 하하하.

이: 아, 그런가요?
박: 생각해 보세요. 시나리오를 좀 호흡 맞게 써놨겠어요. 그 다음에 카트로 분할해주고 효과가 있고. 그러니까 호흡이 영화에서 안 맞잖아요? 그러면 진짜 호흡을 안 맞게 연기 한 거예요. 안 맞을 수가 없어요. 화학작용 한다는 표현도, 물리와 물리가 만나서 화학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호흡이 안 맞기도 힘든데 호흡이 잘 맞았다는 얘기 듣기는 더 힘든 거예요. 호흡이 정말 잘 맞았다는 거는 호흡이 안 맞았다는 거보다 훨씬 더 힘이 드는 거죠. 그런 면에서 안성기 선배님하고, 저하고는 후자에 해당이 돼요. 재미있는 얘기 하나 더하면 영화에서 주요배우가 연기를 못하기도 참 힘이 들어요. 왜냐면 역할이 매력 있죠. 그 다음에 감독이 연출을 하죠. 그 다음에 NG라는 보완장치가 있고, 편집이라는 보완 장치가 있죠. 음악에 클로즈업이 있잖아요. 연기를 못하기가 힘들다는 거죠. 그 영화에서 주요배우가 연기를 못 한다는 것은 정말 연기를 못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호흡이 진짜 잘 맞는 제 입장에서는 최고의 파트너죠.

이: 본격적인 질문은 안 선배님부터 드릴게요. 사실 많이 알려졌다시피……
박: 그럼 난 쯔끼다시로 대답한 거야 지금? 본격적인 질문하니까. 나부터 깔아놓고 메인 디쉬로 들어가는 거야?
(좌중폭소)

이: 요 근래 들어서야 매니저를 두신 걸로 알고 있는데, 박민수란 역할은 80년대 매니저란 말이죠. 특히 영화 속에서 가방을 옆에 끼고 ‘최곤’ 옆에 붙어있는 모습은 매니저 없이 활동하셨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사실적이었어요. 특별히 준비하신 거라도..
안: 준비한 건 하나도 없지.(웃음) 예전에 이 일을 했던 매니저들 모습을 보면 옷차림도 좀 그렇고 뭐라고 얘기해야 되나....너무 격하 시킬 수도 없고..음.. 그러니까 분위기 나게.. 멋으로 굉장히 나름대로 입었다고 하는데.. 촌스러운 그런 부분들이 많이 있고, 그냥 몇 가지가 있었는데 그 중에 백(bag)같은 건 꼭 들었어요. 그건 결정적인 소품이었고, 요즘에 매니지먼트 사업이 굉장히 커져가지고, 상당히 비즈니스화 되어있고, 그렇지만은.. 예전에는 전부 일대일 이었잖아요. 매니저하고 인제 본인하고의 관계. 그런 걸 많이 봐 왔거든요? 그런 게 나한테 녹아있다고 그럴까? 일부러 다른 데를 안 봐도, 다른 것을 펼쳐보지 않아도, 다 눈에 익어있었지. 그리고 또 덕을 본 거는 어떤 그 세월을 어떻게 쭉 살아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인물로 동화가 되기 쉬웠고.

이: 기자시사 끝나고 나서 혹시 ‘실제 박중훈씨가 저렇게 행동하는 거 아냐?’ 그럴 정도로 영화 속 모습이 사실적으로 와 닿았어요. 언론시사 이후 ‘최곤 이야 말고 박중훈이다!’라는 평가가 쏟아지는데 그 말이 맞는다면 어디까지가 맞고 어디까지 다른 걸까요?
박: 언론에서 같다고 하는 건 둘 사이의 친밀감, 친숙함이겠죠. 실제 안성기 선배님하고 저하고 그렇잖아요. 최곤의 경우엔 박민수와 친하고 좋아하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겉으로 나타나는 매너는 굉장히 무례하잖아요. 저는 전혀 그렇지가 않아요. 한번도, 아니 한번 도가 아니라 20년 동안 그렇게 무례한 적이 한번도 없어요.
안: 지금 막 박민수의 관계가 아니라 최곤 자체를 물어본 거 같은데? 최곤과 박중훈.

박: 아, 그러니까 최곤이 박민수를 대하는 것 같은 모습은 한번도 그런 적이 없고 그 반대가 많았죠. (웃음) 요즘 뭐 자주 드리고 있는 말씀인데, 제가 아무래도 이 동네, 그러니까 배우생활을 20년 했고…
안 : 이 동네! (좌중웃음) 20년 넘으니까 이젠 이 동네야.^^

박: 그래도 이 바닥이라고는 안 하잖아요.(웃음) 영화 속 최곤도 비슷한 동네에 한 20년 있었다는 거~ 그게 가장 큰 공통점이고,또 다른 것도 많아요. 제가 88년도에 아이돌 스타였거든요.
안:<미미와 청춘 스케치>!.

박: (웃음)그런데 최곤도 영화에서 그래요. 첫 신 찍을 때 약간 착시가 온 게 똑 같은 그 당시 복장을 하고 팬들이 실제로 제가 움직일 때마다 ‘와~~~~’하고 소리지르고 그랬거든요. 근데 이게 박중훈한테 보내는 환호인지 최곤한테 보내는 건지, 그 분들도 다 조감독한테 훈련 받고 하는 연기지만 실제로 그 분들도 그냥 영화배우 박중훈한테 환호를 보내는 것도 있을 거란 말이에요 그런 착시들이 대표적인 예죠. 그 다음에 요즘 들어 자주 드리는 말씀인데 20대 때 제가 청춘 스타로 있으면서 그 펄펄 끓는 피로 별로 인내한 기억이 안나요. 지금 제가 이렇게 웃고 있는 거 보면 상상이 안되실 거예요. 굉장히 까칠했거든요? 또 그랬던 모습이라든가. 또 인기 부침 같은 것도 최곤 처럼 나락으로는 안 떨어졌지만 개인적으로도 밀물썰물을 많이 겪어왔고, 그런 것들이 굉장히 저하고 비슷하죠. 그리고 영화에선 제가 굉장히 조용하고 과묵하잖아요?

이: 네, 말없고 눈빛으로 다 말하시죠. 행동으로 싫다고 해버리고.(웃음)
박: 제가 상당히 그런 면이 많거든요. 관객들에게 보여지는 부분은 저의 재미있고 경쾌한 부분이 기형적으로 많이 소개 됐어요. 물론 그것도 제 모습이지만 보는 사람입장에서 그것만 보여주면 그것이 전부인양 생각이 들 거 아니에요. 하지만 최곤의 그런 조용한 모습이 제 평소 모습하고 되게 비슷하다고 보시면 돼요.

이: 이 역할 맡고 미사리 카페에 활동하는 가수 분들도 만났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연기가 될 수 없는 게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박중훈 자신의 20년 전 모습으로 돌아갔을 것 같아요. 그런 기억들이 어떤 식으로 <라디오 스타>와 융합되셨는지 궁금해요.
박: 질문 속에 답이 있으신데, 그 시간과 그 느낌을 모르는 사람이 미사리가서 앉아있는다고 되진 않을 거 아녜요. 그 곳에 가서 앉아있고, 가수 분을 만나면서 그 느낌이 되살아 났죠. 없는 게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있던 것을 꺼내 온 거죠. 보통 미뤄 짐작하는 ‘유추’에 연기를 많이 해요. 배우들이. 그니까 살인을 하는 역할을 맡아 연기할 때 실제 사람을 죽인 느낌을 유추해서 연기하듯이 말이죠. 그런데 <라디오 스타>같은 경우에는 있는 감정을 끌어내는 ‘발췌’의 감정을 연기했달까? 어떻게 보면 꺼내는 감정은 어려웠는데, 이미 꺼낸 다음에는 좀 편했어요.

이: 그래서 모 영화잡지 인터뷰에 “대사 안 외웠다”란 얘기가 나왔나 봐요.
박: 선배님은 대사를 안 외워 오시고, 현장느낌으로 하시는 캐릭터였고, 저 같은 케이스는 기본적으로 대사를 많이 외워야 돼요. 대사가 많아. 라디오 DJ니까. 제가 다른 영화에서 대사를 안 외웠다면 이번에는 전날 많이 외워왔어요. 좀 베리에이션(variation:변화) 이 많이 없는 역할이잖아요.비교적 시나리오에 충실한 편이고, 안 선배님은 현장 감을 좀 많이 익히시는 편이고.
안: 기존의 이미지하고는 좀 많이 바뀐 감이 있죠.

이: 자칫 불쾌한 얘기로 들리실 수도 있지만 몇 년 전에 ‘배우 안성기가 맡을 수 있는 캐릭터가 충무로에서 새롭게 형성되기는 어렵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그건 반대로 그만큼 다양한 연기 경험과 변신을 거듭했다는 얘기일수도 있고 영화계의 최 고참으로 보는 시선들이 박민수란 역할을 맡는데 이번 영화에 참여하게 된 어떤 영향을 끼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거든요?
안: 광고를 의식을 하고 한 건 하나도 없고, 처음에 박중훈씨가 정대표한테 시놉시스 한 장 받은 거 가지고 얘기하더라고.내가 했으면 좋겠다고. 영월에 내려가고 한다고. 근데 얘기만 들어도 재미있는 거야.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내가 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한 거지. 아무 의식 없이 ‘그래. 오랜만에 같이 영화 해서 즐겁겠구나.’그런 생각으로 참여한 거지 뭘 의식하고 한 건 없어요.(웃음)

이: 사실 무대 인사 하실 때 박 선배님이 대한민국 국민배우와 (영월)군민배우 라고 소개하셨잖아요. 정말이지 언어유희를 제대로 하신다면서 한참을 웃었어요. 사실 국민배우라는 호칭에 대해선 배우로써 굉장한 장단점이 있을 것 같은데..
안: 음..그렇죠. 그런 표현은‘꼼작 말고 여기 있어야 돼.’ 라고 얘기하는 거죠. 그런 이미지를 영화 속에서나 사생활에서까지 다 “꼼작 마라. 실망시키지 마라.’ 라는 암묵적인 강요가 있는 것, 그런 압박이 좀 있는데 좋은 점은 그만큼 믿음과 신뢰를 가져다 준다는 걸 생각할 수 있어요. 사실 그 자꾸 이렇게 불리는 거 보다는 늘 하는 얘긴데, 그냥 ‘영화 배우’라는 어떤 단순한 호칭이 제일 좋은 게 아닌가 싶어요. 앞에 어떤 수식이 붙는다는 거 자체가 좋은 거 같지는 않아요.

이: 불편하시군요.
안: 음... 단정 지으니까. “꼼작 말아라! 그리로 가지 말아라.”라는 식. 좀 더 넓게 살고 싶으니까 그런 식의 호칭은 없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이: 솔직하게 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자료 서치 하다 보니까 박 선배님이 한 매체에다만 말해준 얘기가 있으시던데, 소싯적에 그 담배 얘기를..
박: 아~ 맞아요. 유치장에서.

이: 이런 질문을 많이 들으셨겠지만 <라디오 스타>의 최곤도 대마초로 구속되지만 끝까지 옆에 있어주는 박민수가 있잖아요. 박 선배님의 힘든 시절에 그렇게 힘이 돼주신 분이 있으신가요?
박: 그 당시에 일만? 국한해서? 아님 힘들 때 선배님이 얼마나 힘이 되셨느냐 그런 질문이에요?

이: 둘 다 포함해서 대답해 주신다면요.(웃음)
박: 아! 당연한 얘기기도 한데 우선 가족이 가장 큰 힘이 되겠죠. 사실 가족이라는 존재는 선배, 후배, 친구를 앞서는 존재잖아요. 가족이라는 거는 당연히 그렇고, 그 다음에 안 선배님이 저한테 힘이 되어 준 거는 사실 일일이 지적하시고 상황 별로 충고하시는 스타일이 아니세요. 그러니까 귀감이 되시는 거죠. 그 행동을 후배들이 보고, 저도 후배중의 한 명이니까 그런 면에서 든든하고 힘이 되는 거구요. 그 다음에 배우생활로 돌아 봤을 때는 역시 관객이에요. 이 영화의 카피가‘언제나 최고라고 말해주는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인데 관객은 ‘언제나 최고야.’라고 말을 안 해줘요. 최고가 아닐 때는 냉정하게 돌려요. 하지만 최고일 때는 최고라고 ‘확인’을 시켜주니까 사실 관객은 굉장히 큰 자극이 되고, 힘도 되죠.

이: 사실 <라디오 스타>란 영화 자체가 경험하고 관록이 얼마만큼 영화에 시너지 효과를 주는지를 정말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하거든요.
박: (안 선배님을 바라보며)그러고 보면 우리가 무수히 시상식 같이 다니고 체육관에서 운동같이 하면서 경조사 다니면서 말 맞춰오고, 생각 맞춰오고. 이런 게..
안: (웃으며)녹아 든 거야. 이제 아는 거지.
박: (감동하면서)참 그러게. 허투루 산 시간들이 없는 거야.

이: 안 선배님 같은 경우에는 인터뷰 내용을 보면 상대배우와 감독님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시거든요. 영화현장에서만 50년이나 계셨고, 공로상도 받으셨죠. 게다가 박 선배님도 20년 이상 계셨고요. 두 분께 ‘감독’이라는 존재, 특히 이준익 감독님은 어떠셨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안: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는 정도였고. 이번에 처음 작업한 거죠. 밥을 먹은 적은 있어도 술을 마신 적도 없었고. 그냥 감독으로써 아는 정도였는데 많이 열려있더라고. 금방 몇 십 년 지기처럼 편안하게 허물없이 알게 된 거지. 그리고 사람이 같이 지내다 보니까 마음이 굉장히 넓고 배우는 어떤 감독을 만나느냐에 따라서 그 어떤 역량이 잘 나오느냐 못 나오느냐가 있거든요. 이준익 감독 같은 경우에는 배우들을 빛나게 해주는 그런 감독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한판 잘 놀게 끔 그렇게 놀이터를 잘 만들어줘요. 그런 게 굉장히 중요한 연출력이죠. 본인이 산전수전 다 겪는 느낌이라 특히 이번 <라디오 스타>하고 잘 맞는 거 같아요. 우리 둘하고 완벽한 삼각형을 딱 이루는 그런 느낌이죠
박: 저는 두 번짼데

이: <황산벌>에서 같이 작업 하 셨었죠.
박: 그렇죠. 한마디로 좋은 사람이에요. 옛날에 제가 이런 말을 했어요. ‘양질의 인간’이라고 좋은 사람이니까 역시 따뜻한 영화가 나오겠구나 싶었죠. 우리 예전에 선배님들이 말을 격하게 해서 이런 말들이 있었거든요.“영화는 감독 꼬락서니대로 나온다.”라고. 말은 좀 격하게 했지만 그 말속에 철학이 있는 게 “감독 생긴 대로 나온다.”, “감독이 가지고 있는 품성들을 그릇대로 나온다.”근데 정확한 얘기 같거든요? 근데 이준익감독은 좋은 사람이니까 영화가 따뜻해요. 그런 면에서 저한테는 다시 한번 그 당연한 진리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줬죠. 마찬가지로 배우 또한 배우의 얼굴이나 표정, 느낌은 배우가 실제 생각하고 있는 깊이와 생각과 어떻게 살아가는 모습이 나오는 것이거든요. 마찬가지로 감독은 영화로 나오는 거고.

안: 그러니까 이준익감독은 박중훈씨한테는 매년 병상에 누워있으면서 제대로 한번 꽃 갔다 주는 식으로 문병 온 거야. 그러다 열심히 요번에는 나가자! 튀어나가자 그런 거겠네.
박: 맞아요. 정말 그래요.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한번씩 이렇게 사람을 만나요. 적재적소에 귀한 사람들을 만나는데, 제가 축복 받은 거는 항상 사람이 필요할 때 그 사람이 나타나 주는 거.

이: 며칠 전에 <타짜>봤는데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아요. 김혜수씨랑 같이 <깜보>로 데뷔하셨는데 지금은 섹시스타로 군림하는 모습을 보면.
박: (다급히) 어떻게 봤어요? 혜수가 아주 괜찮은 배운데 연기파로 각인된 작품이 없었잖아요.
안: 그렇지 않아. 그리고 영화가 사실은 좀 어려운 영화였어요. 일반적이지 않은 감성의 영화였거든 <얼굴 없는 미녀>나 <분홍신>도 그렇고.

이:사실 <라디오 스타>랑 가장 박빙으로 붙을 영화가 <타짜>잖아요. 저는 화투 패를 못 읽어서 잘 모르겠지만 연기 정말 잘하시더라구요.
박: 근데 사실 김혜수씨를 보면..친정 여동생을 보는 거 같아요. 굉장히 가슴이 아려.
안: 우리, 이건 좀 다른 얘기인데, 내가 배우협회 이사장이고, 박중훈씨가 부 이사장이야.
김혜수, 박중훈, 최민식 이렇게.
박: 근데 김혜수도 나를 보면 그렇데요.오빠를 보면 가슴이 아리다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오래 봐와서 막 잘 됐으면 좋겠어. 나는 이번 <타짜>에서 김혜수 잘 됐다는 말 듣고 정말 너무 기뻤어요. 자질에 비해서 그간 잘되지 못됐다는 게 아니라 약간 아쉬웠는데 <타짜> 잘 나왔다고 하니까 정말 기분이 좋더라고요.

이: 연기 얘기가 나와서 드리는 말인데 박 선배님이 뽑으신 명 장면 중에 영화의 라스트에 안성기 선배님이 우산 들고 오는 장면을 뽑으셨더라구요. ‘누구나 할 수 있는 역할이지만 그 필은 안 나온다. 안성기 선배님이 굉장히 잘 찍었다.’ 고. 그렇다면 안성기 선배님은 이 영화에서 박중훈 선배님 최고의 장면을 추천해주신다면요?
안 : 많아요. 상당히. 그 중에서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건 마지막 장면에서 코가 벌렁벌렁하는 거. 좋아가지고 코가 커지는 건 실제로 박중훈이 기분 좋을 때 그렇게 하는 거거든. 그 표현은 박중훈 아니면 못하지.

박: 지금 우리가 알 만한 배우들은 일정한 연기수준이 다 되어있잖아요? 기본수준 이상 되는 배우들에게 가장 쉬운 연기가 우는 거, 소리치는 거, 분노한 거, 그러니까 희로애락이 정확하게 있는 연기는 굉장히 쉬워요. 에너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거니까. 권투로 예를 들자면 스트레이트, 훅, 어퍼컷은 연습만 하면 되는데 잽(jab)이 제일 어렵다는 거예요.

몸 속에 붙어서 평상시 하는 거. 펀치, 스트레이트, 어퍼, 훅은 어떤 각도에 어떻게 해서 어떻게 처리해서 가격할 수 있는 거거든요. 마찬가지로 배우에게 있어서 제일 어려운 길은 묻어있는 연기, 즉 묻어있는 반응연기예요. 일단 희로애락은 관객들의 감정을 일단 자극 시킬 수가 있잖아요. 근데 묻어있는 연기는 자극시키기가 어려워요. 묻어있는 연기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거야말로 정말로 난이도가 높은 연기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건 몇 가지 조건이 있어요. 하나는 영화자체가 그래야 되요. 그 상황이 만들어 져야 되는 거고, 안성기 선배님이 우산 들고 오고, 김밥 씹으시는데 영화가 앞으로 안 달려오면 그렇게 감동적이지 않았을 거예요. 두 번째는 배우가 삶을 잘 살아야 되여. 잘 살아 왔을 때만 나올 수 있는 훈장 같은 거죠. 그렇지 않겠어요?

이: 그렇죠.
박: 나이가 든다는 게 저는 사실은 제 나이가 40대 후반이니까 뭐 20대를 어린 나이라고 생각하고, 60대 이상을 나이가 든 나이라고 가정할 때 전 중간쯤에 있잖아요. 보니까 세상이 공평한 게, 나이가 들면서 그 싱싱함과 신선함을 앗아가는데 배우에게 있어서 그 세월을 산 그런 절절한 느낌을 준다는 거죠. 하늘에서. 20대 나이 때 절절한 느낌은 받을 수가 없거든요. 그런 면에서 안성기 선배님이 김밥을 씹는 장면이나 우산을 들고 허밍을 하면서 걸어오는 모습은 후배 된 입장에서 인생까지 나오는 거지. 이런 연기는 정말 인생을 잘 살아 온 선배 배우만이 할 수 있는 연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이: 지금 이렇게 자세한 설명을 해 주셨기 때문에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나중에 그 장면을 볼 때 주의 입게 보실 거 같아요. 알고. 솔직히 저도 이렇게 벌렁 벌렁거리는 것을 그냥 스쳐 지나갔거든요?
안: 아…그거 좋아서 코가 막 벌렁거리는 거야.(웃음)

이: <라디오스타>란 영화자체가 일관성으로 쏟아지는 것들만 보고 정말 진실로 보여지지 않는 부분을 다룬 영화라고 봤거든요. 스타시스템에 대한 폐해도 건드리고. 그 부분에 대한 솔직한 두 분의 견해를 듣고 싶어요.
안 : 그건 사실 어떤 부분적인 이야기고, 우리 <라디오스타>는 사랑에 대한 근본적인 배려, 이해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를 찍으면서도 조금은 변화한 건 있지만 우리 가요계를 꼬집는 다거나 하는 가벼움을 다룬 것 같지는 않아요. 그냥 그건 이야기를 흘러가면서 어떤 장치로 다룬 거지. 그걸 짚고 넘어가야 되겠다. 이런 건 아닌 거 같아요.
박: 일반적으로 얘기하라면 하겠는데 영화와 연관시켜서는 저도 비슷한 생각이에요. 지금 제가 놀란 거는 ‘아!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의도는 안 했지만.’이정도? 이 영화와 연관돼서는 딱히 없는 거 같고, 일반으로 말하라면 뭐 할 얘기가 있겠지만.(웃음)

이: 두 분에 대한 시대적인 정의를 찾아보니 안성기 선배님은 70년대를 지닌 젊은 이의 초상이었으면 박중훈 선배님은 80년대를 지닌 젊은이의 상징 이라고 나와있던데요.
박: 기자들이 그걸 잘 모르더라고. 다들 그렇게 알고 있어.

이: 예.. (웃음)확실히 알려주세요.
박: 내가 정확히 알려주는데요, 전혀 겸손의 차원이 아니고 안성기 선배님이 70년대 말에 시행착오를 겪으시다가 다시 성인으로서의 배우로 주목 받기 시작하신 게 1980년도에 <바람불어 좋은 날> 그래서 198자가 붙는 연도는 통으로 ‘안성기의 시대다.’라고 할 수가 있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 90년대 중반까지도 주연, 조연 나누는 게 이상하지만 왕성하게 활동하셨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85년에 데뷔했는데 87년도부터 청춘 스타, 아이돌 스타로 정확하게 구분이 됐었어요, 안성기 선배님은 흔히 표현해서 ‘톱스타’였다면 난. ‘청춘 스타’인 거죠. 저 같은 경우 20대가 80년대 중반서부터 90년대 중반까지 걸쳐지잖아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안성기 선배님의 에이지가 올라가고 나는 거기서부터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온 거 예요. 그리고 80년대는 순전히! 안 선배님의 시대죠. 80년대를 통 틀은 가요계의 스타는 조용필씨거든요? 그래서 당시 <스크린? 지에서 그 당시 찾아보면 재미있는 게 있어요. 두 분이 중학교 동창인데 ‘80년대를 준비하는 두 스타 안 스타 VS조 스타’ 해가지고 두 분이 특집으로 나갈 그런 정도였으니까. 80년대를 완벽하게 대표하는 건 안성기 선배님이죠. 저는 중 고등학교 애들한테 인기 있었던 거고.

이: 꼭 그렇게 쓰겠습니다.
안: (웃음)
박: 굳이 요즘으로 비유를 하자면80년대의 형님은 장동건이고, 제가 강동원이나 이준기 인 거죠.

이: 안성기 선배님이 지금이 준기씨랑 영화 찍고 있잖아요.^^
박: 내가 그런 느낌이었어요. 이제 딱 아시겠죠. 장동건이 나이가 40, 50 넘어가면서 배우생활 잘 해 나가면서 이준기, 강동원은 또 장동건처럼 좋은 배우가 되고 이렇게 되는 그런 식인 거예요. 근데 형님도 그랬는지도 몰라도. 사람들이 제가 배우 생활 오래 할 거 라는 생각을 많이 안 했나 봐요. 허허허.
안: 그래?
박: 네. 캐릭터도 좀 경쾌하고 까분다는 느낌이 드니까 ‘저러다가 말겠지’ 라고. 제가 그 마음을 알겠는 게, 장동건이 처음 나왔을 때 <우리들의 천국>할 때에’ 쟤는 잘생겼는데, 저러다가 말겠지.’그랬거든요. <인정사정…>할 때도 ‘배우로써 잘생겼는데 오래 갈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뭐.그런 거예요.

이: 우문현답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박: 안성기 선배님 필모그라피를 보세요. 연도를 보면 <남부군>이 92년도 구요. 아니, 90년도.
안: <하얀 전쟁>이 91년, <투갑스> 94년.
박: 맞아. <투갑스> 94년. 그렇잖아요. 그리고 아마 흥행리스트를 보면 80년대 흥행 리스트에 매해 1등에서 5등까지 있으면 1등부터 5등을 다했어요. 무비스트정도 되는 전문채널이면 이거 하난 바로 잡았으면 좋겠는데요, 이건 우리가 볼 때 굉장히 무식한 얘기인 게 “백만 때 환호하던 우리가 벌써 천만 관객시대가 왔다.” 그러잖아요? 사실 정확한 얘기는 뭐냐 면, 100만은 그 당시에는 카운트 할 수 있는 극장이 서울에서 단관 만 카운트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피카디리 극장 ‘만’ 100만인 거죠. 그래서 그 당시에 어떻게 됐냐 면 지금 1000만은 전국을 카운트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확하게 숫자만 따지면 그때 얼마가 아니라 그때 단 관이 100만이면 거기에 두 배를 서울 변두리 2번, 3번가라고 친 거죠. 그럼 300만이죠.

안: 그 당시에는 재개봉 관이라고.
박: 300만이죠. 그래서 저는 “그때 1000원이면 지금은 20000원이야.” 이게 아니라, 그냥 실 단위로만 따져서. 서울에 300만이잖아요? 그러면 서울 대 지방비율이 평균 1대3! 적은 건 1대1, 많은 건 1대4! 그러면 1대3으로 볼 때 3의 세 개 더하면 9죠? 한마디로 옛날 서울단위 관객 곱하기10이 정확하게 관객이에요. 전국관객. 그러니까 <투캅스>가 87만 명 왔으면 870만 명~! 그 다음에 예를 들어서 <고래사냥>이 50만 나왔거든요? “ 지금50만은 숫자도 아니잖아~!”가 아니라500만 명이 극장에서 본 거죠. 그니까 우리가 지금 기가 막힌 것은 “100만에 만족하던 우리영화가 10배 성장했다” 이런 게 이 아니라니까!! 그 다음에 이거는 인제 선배들 옹호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거 외에 어떤 것이 있냐 면 극장수가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거지.

이: 그렇죠.
박: 그 다음에 영화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게 늘어났고, 그러니까 느낌상으로는 옛날에 6, 70만이 지금 천만이라고 보면 돼.실제로 증명되는 것이 <겨울여자>가 63만가지고 흥행기록을 십 몇 년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 와~
박: <장군의 아들>이 68만으로 깼고, <투캅스>가 87만으로 깨고..이런 식이거든? 그러니까 한 마디로 천만 넘는 게 그 당시에 7,80만 이라고 보면 되요. 영화전문지 보면 최근 20년 동안 흥행 랭킹 뽑는 기사 쓰잖아. 거기 보면 안성기 선배님 영화가 하나도 안 들어있는 거예요.(웃음) 그러는 너무 말도 안 되는 거지. 요즘 수치로 따져야 되는 거죠. 그러니깐“박중훈씨! 예전엔 50만 봐도 히트했잖아요? 야~한국영화 많이 발전했어.”이게 아니라는 거지.

이: 저도 이제 그런 무식을 안 들어 낼게요.
박: 그거를 지금 우리한테 팁으로 받았으니까, 그걸 한번 특집으로 좀 더 조사를 해서 써봐요.

이: 아~ 재미있겠네요. 그런 식으로 뽑아서 기사를 한번 쓰겠습니다.
안 : 미국에서는 그걸 대비해서 한번 나왔었지?
박: 미국 박스오피스는 물가대비, 인플레대비 해서 나왔어요. 그래서 1등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였죠. <타이타닉>이 아니고. 지금은 숫자도 인구대비도 해야 하고, 그때보다 영화 보는 인구가 더 많아졌다는 건 지금 영화인들의 공이거든요. 더 많게 만든 거니까.

단순히 숫자만 그렇게 비교 하는 건 안 되는 거지.그렇다고 이런 얘기를 평상시 때 선배님하고 하면 뭐 그렇게 나서냐고 하시는데 이런 건 나서서 해야 되겠다 할 필요가 있더라고. 가만있으면 알아서 하겠지 하기에는 너무나 모르는 거야. 불과 1,20년 전 얘긴데, 안성기 선배님이 80년대 중반까지는 전성기였고, 더 히트는 박중훈은 80년대 말에서 90년도 초에 하다가 그 후론 내리막길이었다 그러는 거야. 그러면 안 선배님 같은 경우엔 85년부터 내리막길인 거예요. 그러면 <남부군> <칠수와 만수> <성공시대> <하얀 전쟁>, <투캅스> 다 내리막길에 찍은 거 아니에요. 그럼 저도 90년대 초에 내리막길이면 <투캅스>, <게임의 법칙>,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다 내리막에 찍은 거고. 그걸 보면서 나이를 좀 먹은 기자가 하는 말이 이 정도면 20대 기자들은 더 모르겠구나 싶어서. 지나간 세대에 대한 절규가 아니고(웃음) 이건 내가 말을 한번 해야겠다 싶은 거지. 그러니까 무비스트가 영화전문사이트니까 이걸 꼭 쓰도록 해.

이: 꼭 비교해서 쓰겠습니다.
안: 그것도 재미있겠다. 리스트를 쫙 뽑아서.

이: 네.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추려보겠습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 들어가야 될 거 같은데요, <라디오 스타>는 과거를 추억을 건드리는 영화잖아요? 그렇다면 두 배우 분들이 배우의 길을 걷기로 결정했을 때의 그 결심이 20년, 5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그 당시의 계획했던 대로 가고 있는지, 현재 위치에서 추억해보신다면 어떠신가요?
박: 질문이‘처음에 배우 되기로 했을 때의 결심이 그대로 가느냐?’라면 결론만 듣고자 하는 질문은 아니었을 테지만 우선 결론부터 얘기 한다면 ‘그렇습니다’ 인데, 저는 지금도 촬영버스만 봐도 가슴이 설레요. 그리고 시사를 앞둔 전날도 그렇고. 근데 이렇게 설레는 마음이 사라지는 순간 영화가 하기는 힘들겠다. 영화를 잘 해내긴 힘들겠다 라는 생각도 들거든요? 처음 가진 마음을 계속해서 채찍질을 하는 게 아니라 지금도 자연스럽게 그래요. 열정이 식지를 않았어요. 더 깊어진 거. 저는 그렇습니다.
안 : 글쎄. 나는 운명이라고 봐.(웃음)

박: 그게 전혀 웃음으로 안 와 닿아요. 형은 웃지만 형은 웃지만 저희는 숙연해져요. 형이 운명이라고 하시면.(웃음)
안: 나도 내가 뜻한 건가 뭐. 음 부모의 뜻이었는지는 몰라도 5살 때부터 하게 된 후로 대학 졸업하고 전공인 베트남어를 살려서 뭔가를 하려고 했는데 그 해 베트남 망했고, 그래서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운명이었던 거고. 이건 어떤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닌가 싶은 거지. 아마 다른 뭔가를 했어도 이런 쪽으로 오려고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

2006년 9월 27일 수요일 | 글_이희승 기자
사진_권영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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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DIO
영화대박나야겠네요! 희승기자님도 계속해서 일할려면요 ㅎㅎ 영화대박날거 같아요!!! 완존히 감동입니다 기리고 두분 진짜 멋지십니다/// 형님들이랑 술한잔 하고픈 생각이 간절입니다!   
2006-09-28 18:29
molbang
두분의 사람냄새?나는 인터뷰네요~~ 영화 꼭 대박나세요~~~~~~!!!   
2006-09-28 18:26
sexyori84
안성기씨 너무 멋있어요 어떠한 연기든 소화해내실 연기력!! 박중훈씨도 연기는 어딜가나 빠지지않으시죠~   
2006-09-28 13:54
kopc2
박중훈도 박중훈이지만 안성기씨의 인품이 고스란히 묻어난 연기가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2006-09-28 12:03
jaraja70
너무나 잘 어울리는 두사람 친구같기도하고...화이팅   
2006-09-27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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