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언론시사회 때가 처음이었나?
CG까지 완성된 걸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나저나 영화는 어떻게 봤나?
남자들은 재미있게 봤을 거다. 군인들이 주인공이고, 고공 액션 장면도 나오니까.
여자 관객들도 재미있게 봐야 하는데.
언론시사회 후 감독과 배우들은 뭐라 하던가?
생각보다 좋다고 했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되는 소재라서 모두들 기대치를 낮게 잡았다고 하더라.(웃음)
개인적으로는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영화의 완성도를 떠나서 우리 팀이 땀 흘리며 노력했던 게 보였다. 공중 액션 장면이나 CG 장면을 보니, 촬영장에서 어떻게 연출해야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고심하던 감독님 얼굴이 떠오르더라. 평가는 관객들의 몫이지만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다.
극중 혼자 정비사다. 조종사 역할도 탐났을 것 같은데.
정비사 역할이 좋았다. 만약 조종사 역할을 맡았다면 몸이 안 따라 줬을 거다. 사실 몸이 고된 장면을 찍어야 하는 배우들과 그 고통을 함께 나누지 못해서 미안함이 많았다. 나만 편하게 찍는 것 같은 느낌. 특히 태훈 역으로 나오는 (정)지훈 오빠에게 가장 미안했다.
뭐가?
입대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하필 군인 역할을 맡았잖나. 촬영을 하면서 마음이 착잡했을 거다. 거기에 나를 비롯해서 다른 배우들의 놀림감이 되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나. 당시에는 웃었지만 아마 스트레스 많이 받았을 거다.
언론시사회에 맞춰 자리에 참석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러면 영창 가니까 안 된다.(웃음) 함께 했으면 좋았겠지만 이제 민간인이 아니고 군인이니까. 다들 이해하실 거다. 간혹 휴가 나오면 연락하는데, 얘기를 들어보면 군대 가기 전 보다 안정이 된 것처럼 느껴지더라.
그런가.(웃음)
촬영장소가 군부대다 보니 신기한 것도 많았겠다.
가장 신기했던 건 PX(Post Exchange, 충성클럽). 말로 만 듣던 PX에 갔는데 과자와 컵라면이 너무 싸서 쌓아놓고 먹었다. 너무 행복했지.
얘기를 들어보니 촬영할 때 제약이 많아서 힘들었다고 하던데.
촬영 스케줄대로 전투기가 이·착륙하는 게 아니라서 그 시간에 맞춰 촬영을 시작하고 끝을 내야 했다. 전투기의 굉음 때문에 촬영이 불가능할 때가 많았고, 훈련 중 촬영을 할 때도 있어서 시간과의 전쟁을 치렀다.
실제 촬영장소인 대구 비행장을 갔더니 활주로 지사열이 대단하더라. 연기하기 수월하지 않았을 것 같다.
정말 뜨거웠다. 여름에 촬영했는데 그늘 하나 없으니까 쉴 곳도 마땅치 않고, 정말 찜질방 숯가마 안에 들어온 듯 했지. 그나마 나는 활주로가 아닌 정비 격납고 장면이 많아서 다른 배우들보다는 편하게 촬영했던 편이다.
이번 영화에서 정지훈과의 멜로 라인이 있다. 전작과 다르다면 삼각관계가 아닌 해바라기처럼 한 남자만 바라보는 역할이다.
두 남자가 아닌 한 남자만 사랑하는 거라서 마음이 편했다. 갈등이나 고민 없이 그냥 재미있게 알콩달콩한 모습을 보여주면 되니까. 매번 멜로라인이 이랬으면 좋겠는데.
<지붕 뚫고 하이킥>이나 <뿌리깊은 나무> <패션왕> 같은 작품에서는 결국 사랑이 이뤄지지 않았는데.
항상 애달픈 가슴앓이를 해서 언제 사랑을 이뤄보나 했는데, 이번 작품에서 그 바람이 실현됐다. 그래도 아쉬운 건 있다.
아쉬움?
지훈 오빠와 키스 장면을 찍었는데, 아쉽게도 편집됐다. 정말이지 다음 작품에서는 찐한 멜로, 거센 멜로 하고 싶다.(웃음)
음. 그런 상대는 없고(웃음). 개인적으로 멋있다고 생각하는 캐릭터는 조성하 선배님. 촬영장에서 처음 뵀는데, 멋있으시더라. 개인적으로 목소리나 말투가 좋으면 꽂히는 편이거든.
<푸른소금>에서는 킬러 역을 맡아 사격을 배웠고, <패션왕>에서는 디자이너 역으로 출연하기 위해 실제 디자이너 수업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번 정비사 역을 맡으면서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
역할을 위해 실제 정비사분들에게 얘기도 많이 듣고, 실제 전투기 정비 체험도 해봤다. 보통 정비사들을 하늘을 나는 조종사보다 덜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건 오산이다. 정비사는 조종사의 생과 사를 결정짓는 마지막 점검자다. 사소한 결함 하나로 큰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신경이 곤두서있다. 얘기를 들어보니 생명을 손끝으로 좌지우지 하는 분들이라 작업할 때는 숨조차 편안히 못 쉰다고 하더라. 극중 세영(신세경)이의 깐깐하고 철두철미한 성향은 실제 정비사들의 모습을 반영해 연기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초반에 카리스마가 엿보이더라. 하지만 중반을 가면서 갑자기 눈 녹는 것처럼 강함 느낌이 없어져서 당황한 것도 있다.
영화에서 보여주려 했던 건 직업에 관련된 에피소드보다 마음의 문을 닫고 산 아이가 사랑을 하면서 점점 그 문을 열어가는 모습이었다. 갑작스럽게 카리스마가 없어진 건 편집이 돼서. 전체적으로 봤을 때 세영이가 주인공인 영화는 아니기 때문에 매끄럽지 못한 감정 변화는 감내해야 했다.
편집된 것 중 아쉬운 장면이 또 있다면?
극중 세영이 태훈에게 “너 혼자 잘나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널 날게 해주는 거야”라는 대사를 하는 장면이 있다. 둘의 기싸움을 보여주는 동시에 정비사의 직업정신을 확실하게 드러내는 부분인데, 결국 편집됐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라면 세영의 아픔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원래 세영은 조종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고 시험에도 합격했는데, 갑작스런 사고로 한 쪽 청력을 잃은 아이다. 이후 방황하다가 마음을 다 잡고 조종사가 아닌 정비사로 일하게 된 거다. 이런 세영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나보다 전투기가 주인공이다 보니 극중 상사로 나오는 (오)달수 선배님의 말로 전해졌다.
그러고 보니 <푸른소금>에 이어 또 한 번 오달수와 공연했다.
그러게. <푸른소금>이나 이번 영화는 선배님의 도움이 컸다. <지붕 뚫고 하이킥>을 찍고 나서 곧바로 <푸른소금>촬영에 들어가고, 휴식 없이 <알투비 : 리턴투베이스>에 참여했는데, 빠른 시간 안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기가 어려웠다. 작품이 끝나면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스타일인데, 연달아 세 작품을 하니 정신이 없었다. 그 때 달수 선배님이 조언도 해주시고, 중심을 잘 잡아주셨다. 너무 보고 싶다.
이상형은 다른 거니까.(웃음)
작년 <비상 : 태양가까이>에서 <알투비 : 리턴투베이스>로 제목이 바뀌었다. 제목 자체가 낯설기는 하다.
개인적으로 지금 제목보다는 <비상 : 태양가까이>가 더 좋다. 그렇다고 제목을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서. 일반적으로 제목을 새롭게 정할 때는 배우나 스텝들의 투표에 의해서 선택된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과정 없이 바뀌었다.
군대를 다녀 온 사람 입장에서도 생소한 제목이다.
약간 장난감 같은 느낌이다. 뭔가 젤리 같기도 하고.(웃음)
영화에서 군인 역할을 했다. 간접적으로 체험해 봤는데, 해볼 만하던가.
어휴. 엄두가 안날 정도로 힘들다. 몸이 힘든 것 보다는 군인이란 직업을 통해서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고 살아갈 자신이 없다고나 할까. 목숨을 담보로 나라를 지키는 분들이 위대해 보인다. 나는 연기나 더 열심히 해야지.
초반에 사병들에게 기합 주는 모습은 카리스마 넘치던데, 진짜 군인 같았다.
어색했다. 말도 입에 안 붙고. 완벽한 군인보다는 그 나이 또래 여자아이 같았다. 영화를 찍으면서 애처럼 나올까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감독님이 잘 커버해줬다.
<어린신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6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혹시 작품 선택의 기준이 있나?
직접 선택하는 건 아니다. 내 의사가 반영되기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주변의 의견을 많이 수렴하는 편이다.
작품의 만족도에 대한 개인적인 기준은?
음. 흥행 성적이나 대중들의 사랑보다는 촬영 현장에서 느꼈던 기분에서 만족감을 얻는 편이다. 얼마나 힘들고, 즐거웠는지. 배우 스텝들과의 호흡은 어땠는지를 기준삼아 되돌아본다.
연기보다 못하는 게 노래인데.(웃음)
<어쿠스틱>에서 한희정의 ‘브로콜리의 마지막 고백’이란 노래를 했다. 예전 한희정씨 인터뷰 때 영화에서 그 노래를 너무 잘 불렀다고 칭찬을 했던 기억이 난다.
우와! 한희정씨 인터뷰 했나? 정말? 좋겠다. 너무 부럽다. 너무 팬이다. 노래는 민망한데. 그래도 칭찬해주셨다고 하니 감사할 뿐이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그 작품을 봤는데, 지금 보다 더 풋풋한 느낌이 들더라.
<지붕 뚫고 하이킥> 이전에 찍은 작품이라서 그런가? 학교 선배 졸업 작품 이다보니 홍대 주변에서 기타 메고 돌아다니다가 찍고, 집에 가고 그랬거든. 그 때로 돌아가고 싶다.
그나저나 학교는?
휴학 중이다.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하지 못하는 스타일이라 휴학하고 연기에 매진하고 있다. 지훈 오빠는 하루를 잘게 쪼개서 잘 쓰던데. 나는 그게 안 된다. 스케줄이 하나 있으면 다른 일은 엄두를 못 낸다. 성격도 좀 감정적이고, 덜렁거리는 편이다.
요즘 영화 홍보에 여념이 없을 텐데, 홍보 일정 외의 일상은 어떤가?
날이 너무 더워서 집에만 있다. 그래서인지 집에서 요리만 한다.
요리? <푸른소금>의 영향을 받은 건가?
전혀. 그냥 최근 요리에 흥미가 생겼다.
가장 잘하는 요리는?
베이킹이 가장 자신 있다.(웃음) 최근에는 치즈 케이크를 만들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요리를 하다 보니 잡념도 사라지고 스트레스도 풀리고. 좋은 취미가 생겼다.
그동안 연속적으로 작품을 하다보니까 휴식이 없었고,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던 것 같다.
휴식이 없어도 너무 없었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나보다. 개인적인 시간이 없다보니 문득 ‘내가 왜 살고 있지’라는 생각도 들더라. 요즘은 쉬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홍보활동 끝나고 아무것도 안하고 나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연기를 후회한 적은 없다. 대신 연기 외적인 것들 때문에 힘들다. 이걸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으니까. 연기 외적인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주변분들의 말이 다 다르고, 어느 쪽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야 하는지 모를 때가 많다. 연기를 해야 하는 상태에서 부수적인 것들까지 신경을 써야 하니 몸과 마음이 지치더라. 그러다보니 연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부족한 것만 보이고. 지금은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기자간담회 때 이번 영화에서 세영이란 캐릭터를 확실하게 표현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고 토로했는데, 현재 연기의 동력이 다 떨어진 상태인가?
완전 파김치 상태다. <패션왕>이 끝나고 갑자기 몸이 말을 안 들었다. 정신적으로도 힘들고. 그전까지 남들에게 피곤해도 피곤하다고 말해 본적이 없다. 항상 괜찮다고 했었는데, 그게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힘들면 힘들다고 해야 다른 사람들도 나의 상태를 체크하는 건데, 내 스스로 나를 방치한 거다. 앞으로는 힘들면 힘들다고 하려고.
<지붕 뚫고 하이킥>이 고마운 작품이지만, 이런 힘듦도 같이 줬네.
세상이 모든 게 그렇다. 다 양날의 검이다.
해탈의 경지에 오른 사람처럼 말한다.
아니다. 그 근방에도 못 갔다.
다시 태어나도 배우를 할 생각인가?
다시 태어나면 배우, 아니 한국에서 여자 연예인은 안 할 거다. 내 딸도 안 시킬 거다.(웃음) 그래도 연기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릴 것 같다. 하면 할수록 어렵지만 재미있다. 그리고 연기를 하는 순간만큼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라는 말처럼 여행을 가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가고 싶지. 낯선 걸 두려워서 큰맘 먹고 가야 한다. 꼼꼼한 편이 아니다 보니 여행 계획을 잘 못 세운다. 엄마처럼 든든한 사람이 동반해야 할 것 같다.
그럼 지금 가장 필요한 건 뭐?
아내. 뭐든지 잘 챙겨주는 아내가 필요하다.(웃음)
2012년 8월 14일 화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2012년 8월 14일 화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