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풋하다, 싱그럽다는 말을 사람에게 붙여줘도 좋다면, 아마도 그 단어의 주인은 이소연이 아닐까. 영화 홍보 일정 때문에 파김치가 다 됐다는 그녀의 말과는 달리, 생글생글 웃는 얼굴 어디에서도 피로의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몸살기운까지 느껴진다면서도 여전히 생기발랄한 열굴. 이제 갓 신인딱지를 떼기 시작한 그녀는, 연기했던 모든 캐릭터가 자신의 일부이기도 하다며 싹싹한 미소를 지었다. 생기 넘치는 그녀의 표정은 언뜻 <깃>에서 보았던 삼수생 모텔지기 소녀 같기도 했고, 똑 떨어지는 어법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모습에서는, 얼핏 <스캔들>의 앙큼한 처자 소옥의 얼굴이 비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모든 얼굴을 갈음하고 착하디 착한 시골처녀이자 노래 못 하는 가수지망생으로 돌아온 이소연. 그녀가 이야기하는 영화 <복면달호>와 배우 이소연을 둘러싼 몇 가지 이야기들.
개봉준비 때문에 바쁘겠다.
너무 피곤해요. 어제 홍보 때문에 진도까지 다녀왔거든요. 정말 오랜만에 피로를 느끼고 있어요.
영화는 봤나? 어땠는지?
그냥 재밌구, 저는 되게 좋았어요. 혹시 보셨어요? 어떠셨어요? 내가 물어보고 있어. (웃음)
인터뷰를 하기로 했던 탓에 소연씨 캐릭터 위주로 봤다. 노래 못하는 가수 지망생이라는 설정이 아주 재미있더라. 워낙에 예쁘게 나오기도 하고. 주변 반응은 좀 들어봤나?
나쁘진 않은 거 같아요. 사실 제 영화를 제가 보니까 어떤지 진짜 모르겠는 거예요. 영화 볼 때 재미있다 재미없다, 이 캐릭터 좋다 안 좋다 이런 게 딱 나오는데 제가 제 영화를 보니까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구요. 주변 반응은 나쁘지 않은 거 같아서 다행이에요.
<복면달호>에 출연을 하게 된 이유?
일단은 이 영화를 하게 된 거는, 드라마에서 쭉 얄미운 악역을 하다가 착한 역을 하고 싶을 때였어요, 그 때가. 마침 그 시나리오가 들어왔고, 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작품도 되게 대본상으로 봤을 때는 구성도 나쁘지 않았고, 차태현씨가 한다니까 같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게 됐어요.
서연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일단 착하고 순수하고 꿈에 대한 열정도 있고 열심히 하는 여자라서 좋았어요.
노래하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고음에서 제대로 ‘삑사리’를 내더라.
사람들이 그러는데, 그 장면이 되게 조마조마 하더래요. ‘어떡해, 어떡해’ 이러면서 봤다고들 하더라구요. 그런 게 아주 좋은 거 같아요. 사람들에게 그런 심리를 느끼게 해 주는 게.
원래 노래를 못 하나?
잘 부르진 않는데 그 정도는 아니에요. (웃음)
특별히 더 못하기 위해서 연습한 게 있나?
고음이 안 올라가는 것도 그렇고, 음 자체가 떨리고 불안정하잖아요. 떨리는 감정으로 부르려고 노력을 했죠. 그런데, 너무 억지스러운 건 싫었거든요. 그래서 더 크게 ‘삑사리’를 낼 수도 있었는데, 오바하는 게 싫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사실 서연은 좀 비극적인 캐릭터다. 노래 못 하는 가수지망생에,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어머니도 병중이고. 그런데 영화 속에서는 꽤 밝게 묘사 돼 있다.
대본을 받았을 때 서연이가 불쌍하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게 불쌍하고 축 처지게만 가면 너무 재미없고 지루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좀 밝게 가려고 했어요. 우울하거나 불쌍한 상황에서 밝게 가면 그 모습이 더 예뻐 보이고 서연이의 캐릭터가 잘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요. 근데 질문이 이거였나? 어우, 제가 지금 눈을 뜨고 있어도 뜨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정말 오랜만에 살짝 몸살기가 오는 것 같아요. 사실 체력은 좋은 편인데요. 그날 VIP시사부터 계속 긴장을 하고 끝나자 마자 바로 뒤풀이 갔다가 진도로 간 거거든요. 그날 또 날씨가 안 좋아서 거의 한 7시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게다가 잠도 제대로 못 자니까. 저 지금 눈 뜨고 있죠? (웃음)
너무 예쁘게 잘 뜨고 있다. (웃음) 워낙에 예쁜 얼굴이지 않나. 밝아 보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지 서연이가 그렇게 불쌍해 보이진 않더라. 원래 가진 외모에 예쁘고 밝은 이미지가 있어서 연기에 제약이 되진 않을까.
사실 저의 의도는 불쌍한데 밝게 가려고 한 건 외적으로가 아니라 내적으로 더 예뻐 보이고 또 한 편으로 안쓰럽다 그런 걸 표현하고 싶었던 거거든요. 외모 때문에 제약을 받거나 힘든 건 없어요. 그냥 편안하게 하려고 했어요.
원래 트로트를 좋아했었나?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저희 아빠가 가끔씩 부르는 나훈아씨 노래밖에 잘 모르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이 영화를 하면서 트로트가 재미있는 음악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특히나 저희 영화에서는 6, 70년대 트로트 보다는 요즘 사람들이 접하기 쉬운 음악으로 만들어져 있고, 그래서 요즘 관객 분들에게도 듣기 좋은 음악일 거예요.
하긴 영화를 본 사람들마다 음악이 좋다는 이야기를 한다.
네. 음악 너무 좋죠? 이차선 다리. 특히 락으로 바뀔 때. 특이한 장르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촬영하면서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
현장 분위기는 너무 좋았어요. 실제로 다들 성격들이 너무 좋으시고 저희 팀이 누구 하나 신경질적이거나 이상한 사람이 없었어요. 너무 좋은 분들이었죠. 제가 또 한참 후배잖아요. 편안하게 해 주셔서 행복하게 촬영했던 것 같아요.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나, 이 장면 정말 재미있었다 하는 게 있는지?
극중에서 서연이가 노래를 부를 때마다 비가 오잖아요. 그런데 제가 단란주점 같은 곳에서 노래하는 장면이 있었잖아요. 그날 촬영할 때 위에서 스프링클러가 터지는 거예요. 실제로 야외에서 노래할 때도 비가 오거나 한 적도 있었거든요. 실내에서 찍을 때도 스프링클러가 터지니까…, 그래서 우리끼리는 ‘이게 대박 조짐 아닌가’ 우스개 소리하고 그랬어요. 그리고 (제가 보기에) 재미있고, 감동적인 장면은, 마지막에 차태현씨가 노래 부르면서 노래가 락으로 바뀌잖아요. 그 부분이 제일 기억에 남고 좋았어요. 그 부분이 제일 신나고 기분 좋지 않아요?
영화로 데뷔해서 드라마도 하고 최근에는 쇼프로에도 출연하고 아주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배우고 느끼는 게 다 다를 것 같다.
네, 맞아요. 저는 영화도 상업영화, 저예산영화, 단편영화 다 해봤는데요. 배우는 것도 많고 그때마다의 느낌도 달라요. 특히 단편이나 저예산 영화에서 배우는 점이 많아요. 돈이 없고 환경이 안 좋을수록 사람이 열정적으로 열심히 일을 하고 그 작품이 소중하게 나중에 남는 것 같더라구요. 드라마나 영화도 굉장한 차이가 있기는 한데 저는 둘 다 너무 좋아요. 나름대로 장단점도 있고. 쇼프로는 대중들한테 좀더 가깝게 다가가고 싶어서 하고 있어요.
사실 개인적으로 여걸식스를 즐겨 보는 편인데, 소연씨 나온다고 했을 때 이전의 영화 속 이미지랑 쇼프로랑은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서 깜짝 놀랐다.
모든 사람이 다 의아해 했죠. 그 만큼 대중들한테 가까이 있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그런데제 직업상 그런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사실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이 “쟤 왜나오는 거야” 할 만큼 존재감도 없었는데 지금은 저도 많이 적응했고 즐기면서 하는 편이에요. 보시는 분들은 어떨 지 모르겠지만, 저는 좋아요. (웃음)
지금 보니까 밝고 말도 똑 떨어지게 잘하는 편인 것 같은데, 워낙 개성강한 분들하고 하는 거라 그런지, 쇼프로에서는 반대로 아주 조용한 캐릭터다.
그게 일부러 설정한 건 아니에요. 사실 제가 말은 많은데 유머는 없어요. 말 한 마디 해서 분위기 썰렁하게 하면 안 좋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말도 아끼게 되고. 이 말 하고 재미없으면 어떻게 하지, 저 말 해서 재미없으면 어떻게 하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말이 잘 안 나와요. (웃음) 그리고 제가 그 언니들에 비해서는 말도 유머있게 잘 못 하고…. 그래서 그 분위기를 즐기는 쪽으로 가게 됐죠.
존재감 없다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했는데,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싶다는 욕심 같은 건 안 들었나?
그런 건 없었어요. 그 프로는 제가 설정을 해서 하면 더 좋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편하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존재감이 생길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당시에는 적응도 못 하고, 오락프로 처음이다 보니까 어떤 건지도 모르고, 분위기도 좀 보고 배워가면서 하자, 그렇게 된 거죠.
<스캔들>에서 신인답지 않게 자연스러운 연기로 데뷔를 했는데, 알고 보니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이더라. 빡빡하다고 소문난 학교를 다녔다.
맞아요. 저 이번에 짤릴 지도 몰라요. 이미 휴학기간은 다 썼구, 3학년까지 다녔는데 1년이 남았거든요. 그런데 공연을 세 작품을 해야 되고… 학교를 다니려면 1년에서 1년 반 동안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이번 학기가 저한테는 시기적으로도 중요할 거 같아서 고민하고 있어요.
학교에 대한 욕심도 있을 텐데.
사실 욕심은 있는데, 솔직히 지금 저한테는 졸업장이 있으면 좋지만, 그걸 떠나서 더 큰 게 있어요. 학교를 다니는 건, 연기자가 되기 위해서 기초적인 거나 기본적인 거를 다지기 위한 거잖아요. 그런데 사회활동을 하면서 밖에서 배우는 것도 많은 것 같아요.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를 떠나서 더 크게 봤을 때는 이미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경험을 통해서 배우는 게 더 많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들고. 실제로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밖에서 배우는 것도 많고 하니까. 고민이 되죠.
어쨌거나 그 빡빡하다는 학교 생활을 3년이나 했는데, 그 생활이 연기활동에 어떤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지?
그냥 기본적인 것 기초적인 건 도움이 많이 되는데요. 저희 학교가 3학년부터 활동을 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2학년 끝나고 3학년 되는 해에 <스캔들>을 했는데, 2년이나 배우고, 고등학교까지 합하면 거의 4년을 배우고 나와서 배우로서 하려고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겠는 거에요. 학교에서 배우는 거랑 밖에서 일하는 거랑 굉장히 많이 다르다는 걸 그때 처음 느꼈어요.
앞으로 이런 캐릭터 꼭 해보고 싶다.
지금 어떤 캐릭터를 꼭 하고 싶다 이런 건 없어요. 제가 욕심이 많다 보니까 어떤 캐릭터가 들어와도 너무너무 하고 싶을 것 같아요. 뭐하나 정해 놓고 하는 것 보다는 작품이 좋고 작품에 있어서 캐릭터가 하는 역할이 좋으면 하겠죠. <복면달호>를 할 때만해도, 항상 남의 남자 뺏고, 중간에서 시기와 질투하는 역할만 하다 보니까 ‘이제는 나도 사랑도 좀 받고 착한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는데, 이미 했잖아요. 그러니까 이제는 어떤 역할이든 상관없을 것 같아요.
영화 속에서 서연이의 경우에 달호에게 애정이나 사랑으로 변화를 주는 캐릭터인데, 반대로 현실의 애정관계나 사랑으로 인해 연기나 생활에서 영향을 받기도 하나. 최근 소연씨의 경우엔 애정관계에 대한 보도도 쏟아지고 있고.
그게, 지금의 애정관계에 대해서…,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런 의도는 아닌데 그런 쪽으로 자꾸 나니까. 그날도 영화홍보 때문에 한 인터뷰였는데, 너무너무 깜짝 놀랐어요. 기자 분한테 너무너무 실망을 했어요. 나는 사람도 좋으시고 해서 즐겁게 인터뷰를 했는데 뒤통수 맞은 것 같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제 아무 말도 못하겠어요. 말하면 불려서 나오고 오바해서 나오니까.
데뷔작 <스캔들>도 그렇고, <눈부신 하루>나 <깃>도 그렇고, 지금까지 출연작들을 보면, 작품을 고르는 눈이 좋은 편인 것 같다.
골라서 한 거보다는 저한테 오디션 제의가 오거나 감독님 만나 뵐 때마다 좋은 작품이었어요. 운이 좋았던 거죠. 특별히 고르거나 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 <복면달호>부터는 작품을 볼 때 신중해지는 것 같아요. 이제부턴 신중하게 작품을 골라야죠. 계속 운이 따라올 수는 없잖아요.
다음 작품이나 활동 계획은?
지금은 홍보하고 여걸식스랑 뮤직뱅크 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바쁘고, 이제 홍보 끝나고 개봉 되고 하면 다른 좋은 작품 해야죠. 계속 보고 있어요. 신중히 보고 결정해야죠. 따로 정해진 건 없어요. 좋은 작품 있으면 하려구요.
관객들에게 <복면달호>의 매력에 대해 한 마디 한다면?
일단은, 친구들끼리 와서 봐도 좋구요, 가족들하고 보기에도 좋아요. 욕 한 마디가 없어요, 저희 영화에는. 그러면서 재미있으니까 편안하게 와서 보시고 가실 수 있는 영화예요.
글: 이지선
사진: 권영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