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5일) 영화가 개봉한다. 개봉 날 인터뷰 하는 기분은 어떤가?
스타트 선에 서 있는 기분이랄까. 결과가 어떻든 최선을 다해 뛰어야 한다는 마음뿐이다.
영화 관련 기사는 봤나?
(한 숨 쉬며)호평보다 혹평이 많더라. 마음이 아프다. 영화는 ‘편지’ 같다는 걸 새삼 느꼈다.
편지 같다는 게 뭔가?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정성을 담아 적지만 그걸 보는 사람은 쉽게 읽어버리는 편지처럼 영화도 마찬가지다. 오랜 시간 밤새고 고생해서 찍어 놓으면, 사람들은 그걸 한 두 시간에 쓱 봐버리니까. 기자분들이 영화에 대해 쓴 소리 하는 건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내 살을 깎을 수는 없지 않나. 보듬어줘야지. 그래야 고생했던 스탭들에게 미안함이 없을 것 같다.
일단 킬러와 아이돌의 조합이 이색적이다. 묘하게 얽히고설킨 느낌이랄까.
소재 자체가 특이했다. 여자 킬러와 아이돌 그리고 형사가 한데 엉켜 시끄러운 소동극을 벌인다는 자체가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봉민정(송지효)과 최현(김재중)이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관계가 흥미롭더라.
시나리오를 보고 봉민정과 최현이 신분을 위장해 엮어나가는 드라마가 잘 나와야 한다고 봤다. 극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니까. (김)재중씨와의 연기 호흡에 중점을 뒀다.
최현이 봉민정에게 ‘자기는 진짜가 아닌 짝퉁 가수’라고 거짓말 하며 노래를 못 부르는 척 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그 장면은 둘의 호흡보다 재중씨의 애드리브가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김재중의 거침없는 애드리브 연기에 놀랐다고.
정말 애드리브가 많았다. 극중 노래를 일부러 이상하게 부르는 장면도 그렇다. 리허설 때 세 가지 버전만 보여줬다. 그런데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열 가지가 넘는 버전을 부르더라. 다양하게 준비 한 줄은 몰랐다. 덕분에 촬영장이 웃음바다가 됐다.
그것 때문에 애 많이 먹었다. 재중씨의 장점 중 하나는 현장 분위기를 고스란히 온 몸으로 받아들여 표현한다는 거다. 애드리브는 그런 표현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나왔다고 본다. 문제는 리액션을 해줄 수 없을 정도로 애드리브가 너무 많았다는 거다. “그만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웃음)
여타 인터뷰를 보니 연기보다 어려운 게 상대배우와 친해지기라고. 이번에는 같은 소속사인 김재중과 호흡을 맞췄으니 낯설음이 덜했겠다.
작품을 통해 만난 사람과 친해지는 과정이 남들보다 오래 걸린다. 상대 배우가 누구이든 마찬가지다. 크랭크업 하고 본격적인 홍보가 시작될 때 즈음 돼야 친분이 쌓인다. 재중씨는 예전부터 친했기 때문에 편했다. 촬영장에서 얘기도 많이 하고 장난도 많이 쳤다. 예전 같으면 엄두도 못 냈을 일이다.
선배 연기자로서 후배를 많이 이끌어줬겠다. 연기에 대한 조언도 해주고.
많은 분들이 그렇게 알고 계시는데, 현실은 달랐다. 재중씨가 나를 끌어줬다고 하는 게 맞다. 오히려 내가 많이 헤맸다. 문제의 근원은 봉민정을 매력 있게 보여주지 못한 내 연기 탓이다. 분명 민정이와 같은 밝은 성격이 내 안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 끌어내 캐릭터화 시키는 작업이 만만치 않더라. 기존에 맡았던 인물들을 보면 감정을 내지르는 것 보다 절제하는 스타일이 많았다. 그런 연기에 익숙해진 나머지 밝고 명랑한 연기가 어색했다. 나도 모르게 자신감이 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
캐릭터 구축에 어려움을 겪은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그동안 만났던 감독님들은 인물에 대한 성격이나 행동 하나하나를 디테일하게 잡아주면서 디렉션을 줬었다. 배형준 감독님은 달랐다. 디테일한 디렉션을 주기보다는 배우들에게 맡기는 부분이 많았다. 감독님은 매일 숙제를 줬다. “만약 민정이가 A가 아닌 B를 선택한다면 어떤 행동을 할까?” 모든 걸 나에게 맡기니까 부담이 컸다. 노는 쥐었지만 휘젓는 방법을 몰라 나아가지 못하는 배처럼 막막했다. 영화의 초반부 봉민정 연기를 보면 아쉽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감독님이 원망도 됐겠다.
원망까지는 아니지만 당시에는 힘들었다. 숙제 때문에 숨 막힐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오히려 감사하다. 계속되는 질문에 답을 찾다보니 나름대로 캐릭터가 구축됐거든. 틀에 갇혀 있는 연기가 아닌 생각하면서 자유롭게 연기 할 수 있는 법도 알게 됐다. 어찌 보면 감독님은 자유롭게 연기하는 재중씨의 모습을 나에게서도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결과적으로 감독의 작전이 잘 먹힌 것 같다.
(웃음)그러니까.
원래 구성은 지금보다 더 과장된 퍼포먼스였다. 막상 현장에 가니 동선이나 소품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준비되지 못했다. 너무 약하게 간 게 아쉽다. 민정이의 4차원 성격이 더 돋보일 수 있었는데.
봉민정과 최현의 러브라인을 기대했다. 아예 없을 줄은 몰랐다.
러브 라인이 없어서 좋았는데.(웃음) 사랑, 이별, 아픔 없이 이야기가 구성된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이런 영화를 찍고 싶었다. 영화를 보면 민정과 현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두 형사와 톱스타 스폰서 이야기도 삽입된다. 후반부 이들이 한 장소에 만나 큰 사건을 벌인다는 설정도 구미를 당겼다.
최현 같은 남자는 어떤가?
아는 동생으로 두면 재미있을 것 같다. 내 사람으로는 싫다. 뺀질거리는 사람은 싫거든(웃음).
킬러라는 직업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은 후반부 액션 씬이다. 본격 액션을 소화한 기분은 어떤가?
원래 몸 쓰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 <런닝맨>에서 보여주듯 달리는 건 자신 있다.(웃음) 요가나 필라테스는 못하겠다. 막힌 공간에서 운동하는 것 자체를 답답해한다. 와이어 액션을 처음 경험한 건 아니지만 체계적으로 액션 장면을 준비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3분 액션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두 달 동안 연습했다. 주먹 쥐는 모습이나, 맞을 때의 리액션, 칼을 잡는 방법 등 무술 감독님에게 많은 걸 배웠다. 킬러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자세 교정도 받았다. 하지만 열의와 노력만으로 좋은 액션이 나오기는 어렵더라. 다행히 대역의 힘을 빌릴 수 있어서 부담은 덜했다.
나중에 액션 영화를 한다면 자신 있나?
내 몸이 뻣뻣해서 그렇지 꾸준히 연습하면 될 거다.
그래도 안 된다면.
될 거다. 안 되면 중국 소림사로 가야 하나.(웃음)
예전 인터뷰를 보니 영화 촬영 현장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라면 먹는 재미 때문이라고 말했더라.
그 재미 빼놓을 수 없지.(웃음)
이번 영화에서도 라면 먹는 걸 즐겼나.
집에서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현장에서 끓여 먹는 라면이 최고다. 밥도 마찬가지다. 밥차에서 주는 밥은 왜 그리 맛있는지.
10번 중 7번은 스탭들과 먹는다. 스탭들을 챙겨야 마음이 놓인다. 영화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고생하는 그들의 모습이 안쓰러울 때가 많다. 각 분야의 최고가 되기 위해 땀 흘리는 그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잘 챙겨주려 노력한다. 하지만 너무 적극적이었나 보다.
왜?
<자칼이 온다> 스탭 중에 누군가가 인터넷에 나와 재중씨에 대한 이야기를 썼더라. 김재중은 너무 잘 생겨서 다가가기 두렵고, 송지효는 너무 다가오려 해서 두려웠다고.(좌중폭소)
갑자기 <미저리>가 생각나는데.
스탭들이 내 마음을 몰라준거지.(웃음) 소통하려고 했던 시도 자체에 의의를 둔다.
드라마는 스케줄이 빡빡해서 영화처럼 정을 나눌 시간이 없지 않나?
영화만큼은 아니지만 드라마도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은 있다. 주로 쉬는 시간에 수다를 나누며 친해진다.
<색즉시공 2> 개봉당시 당신이 출연한 토크쇼를 본 기억이 있다. 그때 숫기도 없고, 말도 느린 편이었다. 하지만 오늘 본 송지효는 다르다. 말도 빠르고.
원래 내가 말이 좀 느리다. 지금처럼 수다 떨면서 얘기할 때만 빼고.(웃음) 토크쇼에서 내 얘기를 한다는 게 아직도 두렵다. 아마 내 얘기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 매번 조리 있게 말하려고 마음먹지만 언제나 횡설수설로 끝난다. 생각이 많아도 너무 많다.
토크쇼와 <런닝맨>은 다른가보다.
말이 아닌 몸으로 해서 그런가.
<런닝맨>에 출연하면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실감하나?
현장 가면 느껴진다. 날이 갈수록 사람들의 환호성이 커진다. 특히 초등학생들이 너무 좋아한다.
예능 출연 결정을 잘 했다고 느낀 적은 언제인가?
안티 팬이 줄어들었을 때. 예능에서 털털하고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다 보니, 싸가지 없을 것 같다거나, 새침할 것 같다는 선입견이 많이 지워졌다. 또 다양한 연령층을 만날 수 있어서 좋다. 언제 초등학생들에게 이런 인기를 받아보겠나.
예능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많다. 특히 여배우들은 예능에서 친근하고 털털한 모습을 보여주며 이미지 쇄신도 꾀한다. 하지만 장점만 있는 건 아니다. 예능에서 굳어진 이미지가 연기 생활에 지장을 줄 수도 있다.
지인들도 그런 충고를 한다. 하지만 난 생각이 다르다. 장르에 따라 보여줄 수 있는 연기도 한정되어 있다. 그동안 왕후 역을 많이 맡아서인지 어둡고 진중한 이미지가 굳혀졌다.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게 쉽지 않더라. 그때 <런닝맨> 섭외가 들어왔다. 처음에는 스탭과 멤버들간의 친분으로 하게 됐다. 회를 거듭할수록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이 프로그램을 통해 서서히 드러났다. 이제는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이미지의 한계를 넘어선 것 같다. <런닝맨>은 나에게 실보다 득이 된 프로그램이다.
2년 넘었지.
2년 동안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 있나? 만약 그런 순간이 오면 어떻게 할 건가?
생각을 전혀 안 했던 건 아니다. 드라마 <계백> <강력반> 촬영과 예능을 병행할 때 그만두고 싶었다. 몸도 힘들었지만 나로 인해 다른 멤버가 피해를 받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라. 피로누적으로 의욕 없이 움직이는 나 때문에 다른 멤버도 편집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 그만 두고 싶었다. 하지만 동료 멤버들이 힘내라고 많이 도와줬다. 그들과의 의리를 저버릴 수 없었다. 지금은 열심히 하고 싶을 뿐이다. 그만두더라도 내 의지로 그만두고 싶지는 않다.
출연한 영화 중 대표작을 꼽으라면 <쌍화점>이 아닐까 싶다. <쌍화점>은 배우 송지효에게 하나의 큰 산이었다. 당시 영화를 본 후 그 산을 잘 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후 <쌍화점>때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이어가지 못했다. 배우로서 한 단계 올라설 수 있는 시기였음에도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기회가 돼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았을 텐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당시 소속사와의 문제가 있었다. 나 스스로 재정비할 시간도 필요했던 시기고.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했다라고 한다면 <쌍화점>을 하고 나서 모든 에너지가 소비됐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다. 그 작품을 통해 배우로서 얻은 게 많다. <쌍화점>을 하고 나서 작품을 보는 눈이 깊어졌다. 작품에 대한 욕심이 커지다보니 부족한 연기 실력이 자꾸 눈에 밟혔다. 순간 스스로 재정비를 하고 싶은 생각인 든 거다. 아마 <쌍화점> 이후 좋은 작품을 만났어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을 거다. 준비가 안 된 상태였으니까. 물론 조바심이 났었다. 그때마다 필요한 건 채찍질이 아닌 여유라고 믿었다. 나를 돌아보며 연기를 곱씹은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다.
이제 연기한지 10년이다. 배우로서 어느 정도 성장했다고 생각하나?
성장은 무슨.(웃음) 그동안 해왔던 연기는 주로 상대 배우의 감정을 받아서 표출하는 방식이었다. 봉민정처럼 상대 배우에게 내 감정을 먼저 전달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직 배워야 할 게 많다. 이런 나에게 성장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배우로서도 ‘에이스’가 되기 위해 지금 필요한 건 뭔가?
열심히 달리는 것 말고는 없다.(웃음)
2012년 11월 20일 화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2012년 11월 20일 화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