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렬의 영화칼럼
"여곡성(女哭聲)"이 그립습니다 | 2001년 8월 23일 목요일 | 정성렬 이메일

젠(zen)스타일이란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채우는 것에서 비우는 것으로, 화려한 장식에서 의도된 빈곤으로 새로운 미를 찾아가는 스타일. 우리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었던 선(禪)의 철학이 서양인들의 미니멀리즘과 결합하여 그들만의 방식으로 변한 것이 바로 젠이다.

단순하고 간결하면서 무언가 명상을 이끌어낼 것만 같은 젠의 이미지는 실상 아시아에서 시작되어 유럽을 거쳐 미국에서 일본을 통해 다시금 아시아로 수입된 우리에겐 익숙한 생활패턴의 일종이다. 혹자는 젠의 원조 격이 되는 나라가 한국이란 말을 하기도 하는데, 미국에서 역수입된 이 문화는 한때 압구정동을 중심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정사>같은 영화에 그 이미지를 투영하기도 했다.

서구는 물질중심의 문화가 극도로 발전하면서 모든 세상의 중심을 '인간'에게 두곤 했다. 하지만 지나친 사회의 풍요로움으로 인해 물(物)의 중요함이 퇴색하게되자 정신세계를 탐닉하는 '동양'의 이미지가 마치 무슨 유행처럼 그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중국어로 제작된 <와호장룡>같은 무협영화가 미국 시장에서 1억 3천만불이 넘는 수익을 올렸다든가, 성룡, 주윤 발, 장쯔이 같은 아시아 배우가 인기를 얻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실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할리우드는 유행에 가장 민감하고 또한 돈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문화이건 자연스레 차용해 자기들 식으로 소화하는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아시아 스타들이 세계시장에 안착하고 그 스타일이 그대로 인기를 얻고 있는 가운데, 다양한 영화들 속에서 동양적인 냄새를 풍기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나 최근 소개되고 있는 할리우드 호러영화들을 보면 굉장히 '영(靈)'에 집착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할리우드식 호러를 생각한다면 <스크림> <할로윈>등 사지가 절단된다거나 화면 전체가 피바다가 되는 '슬래쉬(slash) 호러'나 '스플래터(splatter) 호러'를 생각하기 쉬운데, <식스 센스>를 필두로 갑자기 인간세계와 그 속에 숨어 있는 영적인 공포를 다루는 영화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스터 오브 에코> <왓 라이즈 비니스> <기프트>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로,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납량특선 "전설의 고향"에 종종 등장했던 억울하게 죽은 여인네의 한풀이를 그 내용의 중심으로 두고 있으며 결론은 전부 권선징악으로 마무리한다.

그럼 작년에 한국에 소개되었던 한국 호러영화들을 생각해 보자. 하나같이 기존 할리우드의 그것들을 어설픈 모양으로 옮긴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하피> <해변으로 가다> <찍히면 죽는다> 같은 영화들은 거의가 할리우드식 틴(teen)호러를 그대로 모방한 작품들이었다. 그나마 <가위>에서 엉성하게 귀신이 등장했지만 눈알을 뽑고 목에 칼을 드리우는 모습은 확실히 할리우드 영화에 가까웠다. 이들의 흥행성적은 어땠을까? 할리우드에서 수입된 <왓 라이즈 비니스> <식스 센스>등이 소위 대박을 터뜨렸던 반면 한국산 호러영화들은 한마디로 참패의 연속이었다. <하피>에서부터 실망한 관객들은 <가위>에 조금 몰리는가 싶더니 <찍히면 죽는다> <해변으로 가다>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외면을 하고 말았다.

한국 사람들에게 공포란 이처럼 시체들이 실려나가고 화면을 붉게 물들이며 피를 튀기는 '할리우드식 호러'가 아니다. 인간세계와 영의 세계가 교묘히 얽힌, 악행은 벌을 받고 원한에 대해 그 한 맺힘을 풀어주는 것이 '한국형 공포'다. 좋은 예로 <링>을 생각해 보자. 필시 '비디오 테입'이라는 서구 문명을 차용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심에는 하얀 속옷을 입은 원한 많은 여인의 한(限)이 서려있다. 사람이 죽어나가고 그 속에 두려움이란 것이 존재하지만 어디에서도 칼부림이 일어나고 유혈이 낭자한 '할리우드식 호러'는 볼 수가 없었다.

어렸을 적 텔레비전에서 납량특선영화로 방영되었던 <여곡성>이란 한국영화가 생각난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온 가족이 손을 꼭 잡고 흘러내리는 땀을 참으면서까지 영화에 집중했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그 '공포'가 많이 퇴색했지만 귀신 씌인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대결구도는 지금생각해도 굉장히 매력적이다. 지금 우리가 만들어야 할 영화는 할리우드가 보여준 것들을 답습하는 수준이 아닌 우리 정서에 부합하는 '공포'이다. 최근 개봉된 <세이 예스>처럼 이유 없이 여배우들이나 벗겨 대는 국적불명의 '호러영화'는 지양해야 한다. 목이 잘려 나가고, 삽으로 머리를 내리치는 혐오스러움보다는 은근하게 다가와 긴 여운을 남기는 진짜 한국영화를 보고싶은 것이다.

젠 스타일 문화처럼 미국에서 요란을 떨어대면 그때서야 "아차!" 하려는 것일까? 막판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요즘 같은 여름밤에는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으스스했던 <여곡성>이나 다시 봤으면 좋겠다.

(총 7명 참여)
ahrung87
잘읽었어요   
2010-02-15 22:08
soaring2
여곡성 지금 보면 유치하지 않나요?   
2005-02-13 21:25
moomsh
무튼 함보고싶네 ㅋㅋ   
2005-02-07 23:41
moomsh
그리고 젠스타일이란 또머야;;   
2005-02-07 23:41
moomsh
여자의 곡소리라는 건가;;   
2005-02-07 23:41
moomsh
여곡성.. ㅋㅋ 뭔말이지;;   
2005-02-07 23:41
cko27
ㅎㅎ여곡성. 생소한 제목인데. 봐보고싶다..ㅜㅜ   
2005-02-07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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