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마디
원작을 읽지는 못했으나, 꽤나 흡입력 있는 소설로 알고 있다. 애석하게도 영상으로 옮겨진 문자들은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우왕좌왕한다. 설명해줘야 할 부분은 건너뛰고 정작 건너뛰어도 될 부분에선 과도한 친절을 베푼다. 사랑을 담보로 투쟁의 현장에 던져진 주진모와 김소연의 화학작용도 절정에 오르지 못하고 식어버린다. 그렇다고 김소연-주진모-박희순 삼각구도가 팽팽한 긴장을 낳는 것도 아니다. 창백한 서사의 필연성, 쉽사리 극적 흐름을 타지 못하는 분위기, 여기에 몇몇 조연들의 의도치 않은 웃기는(?) 연기가 빚어지면서 맛도 향도 탁한 <가비>가 돼 버렸다. 전국 커피 매장 사장님들의 기대가 특히나 큰 <가비>일텐데, 아쉽겠다. 커피 매상증진에는 그리 큰 도움이 못될듯하여.
(무비스트 정시우 기자)
<가비>는 아관파천 직후의 이야기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운명의 장난처럼 악역이 돼야 했던 주인공들, 가비(커피)라는 소품을 이용한 디테일, 쇠락한 마지막 왕조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암살극이란 얼마나 풍부한 이야기를 품어내는가. 영화화하기에 좋은 김탁환 소설을 끓여낸 연출자 장윤현의 커피는 즐거이 마시기에 썼다. 고종 암살극에 사력을 건 영화는 너무 진하게 끓인 커피처럼 무겁고 쓴 맛이 난다. 원작의 풍부한 캐릭터의 결을 걷어내고 영화가 선택한 애국주의적 신파는 떨떠름한 맛도 난다. 배우 주진모의 눈물과 박희순의 조용한 페르소나도 소모적으로 기능해 버렸다. 각색의 손길에서 리듬감을 잃은 영화는 격정멜로와 시대극 사이에서 애매하게 서 있다. <접속> <텔 미 썸딩>의 장윤현은 어디로 간 걸까.
(프리랜서 양현주)
2012년 3월 6일 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