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규 기자(이하 ‘김’) <밀크> 어떻게 봤나?
홀릭(이하 ‘홀’) 정말 재미있었다. 특히 몇 장면에서는 눈물도 흘렸다.(웃음)
박기호(이하 ‘박’) 난 눈물까지는 아니었는데……(웃음) 다큐멘터리에서 집중적으로 다루지 않았던 하비 밀크의 연애담과 카스트로 사진관에서 일어났던 일을 다뤄서 흥미 있게 봤다. 하지만 그가 시 의원에 당선되고 나서는 다큐멘터리가 더 매력 있어 보인다. 어찌 보면 이 부분이 하비 밀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 생각하는데, 영화가 잘 다뤄주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홀 눈물을 흘리지 않아도 되는 장면에서 왜 나는 눈물을 흘렸을까 하는 생각이 아직도 머리 속을 맴돈다.(웃음) 어쩔 수 없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많이 비교하게 되면서 눈물을 흘린 것 같다. 이와 반대로 하비 밀크의 연애담은 참 부럽더라.(웃음)
박 초반부에 하비 밀크와 스콧이 지하도에서 만나는 장면이 너무 사랑스러웠다.(웃음) 특히 스콧을 보면 잘 생겼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웃음)
홀 그들이 헤어졌을 때 ‘왜 헤어졌을까? 다시 만나라!’ 할 정도였다.
김 개인적으로 스콧 역을 맡은 제임스 프랑코를 좋아하는데 극 중 숀 펜이 반할만 하더라.(웃음) 하지만 영화가 말랑한 연애 얘기만 나오지 않는다. 숀 펜의 녹음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뭔가 의미심장하다.
박 그렇다. 시 의원에 당선되고 나서 한 행동으로 알고 있다. 아마도 하비 밀크는 자신이 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장면을 보고 있자니 우리나라말고도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성소수자로 살아가기란 참 어려운 일이구나 하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정말 매일 불안 속에 살아야 했을 거다.
홀 그 불안감과 복잡한 심정을 숀 펜의 얼굴에서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런 면에 있어서 숀 펜의 감정 연기는 대단하다.
박 웬만한 연기자들이 게이 역할을 맡으면 왠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확 든다. 하지만 숀 펜은 달랐다. 특히 공원에서 사람들에게 연설하는 장면이 가장 잘 나타나 있다. 실제 다큐멘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정말 하비 밀크를 보는 것 같았다.
박 그렇다. 연설할 때나 말을 할 때 숀 펜의 손 동작은 놀라웠다. 영화를 보면서 실제 게이들이 하는 제스처나 손동작들을 표현해 낼 때마다 감탄했다.(웃음) 숀 펜은 옆 친구의 행동을 흉내 내듯이 자연스럽게 게이 연기를 펼쳤다. 이런 그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임팩트 있게 다가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홀 숀 펜은 게이 그 자체였다. 이 영화를 위해 구스 반 산트 감독과 숀 펜은 하비 밀크의 연설 장면을 수없이 봤다고 알고 있다. 그 관찰력이 좋은 영화를 만들고 흡입력 있는 연기를 보여준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의 연기에 매료 당해서 일까? 앤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실제 하비 밀크의 모습이 나오는데, 숀 펜과 너무 흡사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숀 펜보다 하비 밀크가 더 잘생기긴 했다.(웃음)
박 모르겠는데.(웃음) 그도 내 스타일이 아니라서 영화 볼 때 무감각했었나 보다.
김 그럼 영화 속 다른 게이들 중 이상형이 있었나?
박 전혀.(웃음) 내 스타일은 없었지만 다른 조연배우들도 흡입력 있는 연기를 보여줬다. 후반부에 스콧이 떠나고 나서 새로 여자 사무국장이 출연하는데, 실제 다큐멘터리와 외모나 연기가 너무 흡사했다. 다큐멘터리에서 “머리를 휘날리며 오토바이를 타고 있었다.”라고 이 사람의 첫 모습을 설명하는 대사가 있는데, 영화에서 똑같이 나온다. 그리고 선거 참모부에서 일하는 그 중국인은 실제 인물이 아닐까라는 착각까지 했다.
홀 혹시 아들 아닌가?(웃음) 댄 화이트로 나온 조쉬 블로린의 연기도 참 좋았다. 수많은 갈등을 하다가 하비 밀크를 죽이지 않나! 악역으로서는 괜찮았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동안 그도 동성애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그의 주변 환경 때문에 끝까지 숨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검증된 것 없지만 댄 화이트에 의심이 간다.(웃음)
김 또 한 명 있다. 하비 밀크의 두 번째 애인. 아! 그 징징거림.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웃음)
홀 정말 징징대는 건 짜증나더라.(웃음) 그가 계속해서 하비 밀크를 괴롭히고 아픔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비 밀크는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죄책감을 갖는다. 개인적으로는 하비 밀크가 그를 끝까지 지켜줬다고 본다. 끊임없이 징징대는 걸 한 없이 받아주는 모습을 봐도 알 수 있지 않는가!(웃음) 이런 점으로 미루어 많은 성소수자들을 챙겨주고 싶은 하비 밀크의 성격도 엿볼 수 있었다.
박 민폐를 끼치는 인물이지만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삶을 의지할 데라곤 하비 밀크 밖에 없는데, 시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일이 바빠져서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자기 스스로도 짐이 된다고 생각했을 거다. 자기가 성소수자로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준 사람인데 떠날 수도 없고, 마지막으로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실직적으로 상담일을 하고 있지만 이 일 때문에 개인적인 시간이 별로 없다. 모든 신경이 상담에 맞춰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인지 하비 밀크의 모습이 저절로 이해가 가더라.
홀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정말 연애하기 힘들다.
박 그렇다. 근데 지금 연애하잖아!
홀 하하하!
박 1984년도 작품인 <하비 밀크의 시간들>이란 다큐멘터리다. 이 작품은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고 국내에서도 TV로 방영됐었다. 이 작품에서는 그의 삶과 카스트로 사진관 시절 이야기는 훑어 보는 식으로 지나가고 시 의원 당선 후부터 자세하게 다뤄진다. 특히 극중 하비 밀크가 살해 당하고 나서 스콧과 여자 사무국장이 촛불 행렬과 마주하는 장면이 있는데, 영화보다 다큐멘터리가 더 감동적이다.
홀 오늘 이 자리를 위해 다큐멘터리를 급히 봤다.(웃음) 그런데 하필이면 사무실에 있는 자막이 없는 것을 보느라 고난의 시간이었다.(웃음) <밀크>를 먼저 봐서 그나마 다행이다.
김 자막이 없는 건가? 오늘 다큐멘터리를 빌려볼까도 생각했는데 아쉽다. 그놈의 영어가 뭔지….
박 자막이 있어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사람들의 인터뷰가 워낙 많은 작품이라 자막이 위 아래로 쉴 세 없이 나온다.(웃음)
홀 그래도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다큐멘터리다. 무조건 자막판으로 봐야겠지만 말이다.
김 <밀크>는 숀 펜의 탁월한 연기에 빛을 발하지만 역시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연출력도 한 몫을 한다.
박 <밀크>가 다큐멘터리보다 하비 밀크의 삶을 집중적으로 보여주지 않았지만 그동안 몰랐던 하비 밀크의 연애담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또한 아무래도 <아이다호>를 만들었던 구스 반 산트가 감독이라서 마음이 놓였다. <밀크>가 퀴어 영화이지만, 그가 만들었기에 주인공이 게이인데도 불구하고 일반인들도 쉽게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나온 것 같다.
홀 특히 성 소수자들이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일상의 어디에서라도 있는 볼 수 있는 친구처럼 차별성을 내세우지 않고 잘 표현했다. 또한 반대로 실제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좋지 않은 시선이나 이미지를 부각시켜 현실성을 보여준 감독의 연출력도 마음에 들었다.
1970년대 샌프란시스코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나?
김 영화를 보니까 실제 1970년대 샌프란시스코가 궁금해지더라.
박 1969년 미국 게이 운동의 혁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스톤 월 항쟁’이 있은 후, 샌프란시스코에서 게이들이 모여 살았다. 게이 문화가 점점 생겨나고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커밍 아웃도 했던 시기다. 하지만 동시에 커밍 아웃은 두려움의 단어였다. 그 당시 커밍 아웃은 일반 게이들은 엄두도 못냈고, 특별한 일을 하거나 독특한 이력을 가진 사람들이나 했다. 영화에서 하비 밀크가 선거 참모들에게 커밍아웃을 하라고 강요하는 장면이 있다. 충분히 논쟁이 될 수 있는 장면이다. 하지만 커밍아웃은 그 상황에서 하비 밀크가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전략이었다. 이처럼 커밍아웃은 성소수자들이 내세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커밍아웃은 성 소수자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는 가장 큰 방법이다. 또한 사회적인 측면으로 보면 성소수자들을 가장 잘 알릴 수 있는 표현 수단이기도 하다.
홀 하비 밀크가 커밍 아웃하라고 강요하는 그 장면은 정말 거부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잘못하면 아웃팅(자신의 동성애 사실을 자의가 아닌 타인의 고의에 의하여 밝히게 되는 것)을 당하기 충분하다. 그럼에도 위험한 방법을 하나의 운동으로 변환했다는 것에 대해 놀랍다. 게다가 그 시대의 게이 네트워킹이 정말 부러웠다.
김 휴대폰, 인터넷도 없는 시절에 그런 결속력을 보였다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박 그 중 반은 언니들이었어.(웃음)
홀 그런가?(웃음)
김 숀 펜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런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니타 브라이언트 때문이었다.
홍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경찰에게 구타당하고 잡혀가는 게이들의 모습은 1970년대 시대상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또한 밤에 길을 걸어갈 때 죽음의 두려움에 사로잡힌 숀 펜의 연기가 가슴을 아프게 했다. 수많은 동성애자들이 그 거리를 지나가면서 얼마나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을까? 충분히 이해가 간다.
박 맞다. 커밍 아웃을 하고 항상 죽음을 두려워했던 그가 그 밤거리에, 총기 자유화인 미국에서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까를 생각하면 바로 한숨이 나온다. ‘친구사이’ 사무실이 종로에 있는데, 이 건물 안에 들어오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불안해 하시는 분들이 많다. 동성애자들을 만날까봐 말이다. 이 거리에 우리 사무실만 있는 것이 아닌데도 그런 반응을 보게 되면 참 마음이 아프다. 한국사회가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1970년대 미국처럼 아직도 성소수자에 대한 좋지 않은 시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김 예전 보다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나만의 생각이었나 보다.
홀 그건 아니다. 조금씩 변화하고는 있다. 하지만 아직도 문제는 많다. 지금 상담일을 하고 있는데, 피부로 와 닿는다. 그래서 인지 휠체어 탄 소년이 하비 밀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박 정말 그런 상담이 나에게 온다면 버티라고 말할 꺼다. 집 나오지 말라고
홀 그렇다. 집 나오면 안 된다. 기다리는 건 고생뿐이다.(웃음)
김 그럼 우리가 지금 담론을 나누고 있는 이 장소에서 상담이 이루어지고 있나?
박 그렇다.(웃음) 지금 ‘친구사이’에는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회원들이 있다. 고민이 있는 친구들에게 직접 상담도 하지만, 자연스럽게 40대 회원들이 나서서 조언을 해주거나 고민을 들어주기도 한다. 한국사회에서는 40대인 성소수자들이 거의 1세대라 볼 수 있기 때문에 책임감을 갖고 있다. 영화에서 카스트로 사진관이 그들의 공동체적인 장소인 것처럼 ‘친구사이’가 그런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홀 게이들에게 ‘친구사이’가 있다면 레즈비언들에게는 ‘퀴어락’이 있다. 역사는 짧지만 한국 퀴어 역사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기에 동성애자뿐만 아니라 이성애자들도 많이 온다. 논문이나 책 비디오도 열람할 수 있어서 좋은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싶다.
한국에서 성소수자로 살아가기
김 <밀크>를 보면 자연스럽게 다큐멘터리 <레즈비언 정치도전기>가 생각난다.
박 전반적으로 한국 성소수자 커뮤니티는 이제 시작이라 볼 수 있다. <밀크>에서 하비 밀크가 시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성소수자의 힘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한국은 그 시기를 지나가고 있다. 그런 면에서 <밀크>와 <레즈비언 정치도전기>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작년에 최현숙씨가 종로에서 국회의원에 도전했지만 낙선했다. 하지만 5%의 지지율을 얻었다. 하비 밀크도 3번이나 떨어졌으니 아직 기회는 많다(웃음)
홀 직접 최현숙씨 선거 활동을 한 건 아니지만, 나중에 수십 통의 문자로 격려와 위로, 그리고 지지를 보냈다고 들었다. 성소수자라는 위치 때문에 직접 나서서 지지를 하지는 못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회적으로 발언권을 갖는 정치인이 나오기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5%의 지지율은 우리에겐 희망의 작은 촛불이다.
박 일상적으로 어울리는 기회나 공간이 없다 보니까 서로에 대해 잘 모른다. 하긴 <밀크>에서도 게이와 레즈비언들이 함께 놀기 보다는 따로 놀았으니까…. 지금도 ‘친구사이’ 사무실에 레즈비언들이 쉽게 놀러 오지 못한다. 오늘은 예외이지만.(웃음)
김 그러고 보니 오늘은 정말 예외다. 이성애자인 나도 왔으니 말이다.(웃음)
홀 그래도 박기호씨의 친분으로 자주왔다.(웃음) 평소에 자주 만날 기회는 없다. 하지만 차별 금지법 이후로 ‘무지개 행동’이란 성적 소수자 단체가 만들어지면서 성 정체성 관련 없이 많이 모이고 있다. 그 기점으로 많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아직까지 친목 단체는 없다.
박 솔직히 개인적으로 만나는 것 보다는 일로 만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그렇다. 게이가 레즈비언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무서워할 뿐이다.(웃음)
김 오호 홀릭씨는 무서워 보이지 않는데….(웃음) 어찌보면 성소수자에게 무서움의 대상은 이성애자가 아닐까 생각된다.
박 따지고 보면 그렇다. 하지만 <밀크>에서 본 것 처럼 한국사회에서 직접적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일은 없다. 다만 불쾌감을 표시한다. 성소수자들로서는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일상적으로 이성애자들은 게이라는 것을 몰랐을 때는 잘해주다가 성 정체성을 밝히면 거리감을 둔다. 또한 악수를 안 한다거나 대화를 회피한다거나 하는 은연중에 불쾌감을 드러낸다. 아직까지도 신체접촉을 피하는 사람들이 있다.
홀 그렇다. 나도 매번 어떤 폭력을 받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 성소수자에게 가장 큰 폭력은 무관심이다. 아무리 내가 레즈비언이라고 말해도 이야기를 들은 상대방은 순간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다음에 “왜 결혼 안 했니?”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가족 안에서 가장 많은 폭력이 이뤄진다.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밝혔을 때 부모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아웃팅 하거나 요양원을 보내거나 심지어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
김 정신병원에 입원을 시키다니 그건 너무 심한 처사 아닌가?
홀 어느날은 정신병원에 입원한 동성애자 상담을 받아본 적이 있다. 잠깐 면회 나와서 전화를 걸어왔는데, 다음에 또 끌려가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더라. 지방 정신병원이라서 직접 가서 도와줄 수도 없고… 그럴 때 마다 참 힘들다. 부모님을 바꿔달라고 해서 통화를 하더라도 우리의 말 보다는 의사의 의견을 더 믿기 때문에 어려움이 많다.
박 나도 그런 전화를 많이 받는다. 전에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워 했지만 지금은 확고하기 때문에 오히려 주변에서 연락하는 경우가 많다. 얘기를 들어보면 부모님들은 커밍아웃을 한 아들이 앞으로 힘든 삶을 살 거라고 생각한다. 그 때마다 “어머니 지금 같은 생각만 안 하신다면 잘 살 겁니다.”라고 답한다.(웃음)
김 상담가는 아니지만 그거 좋은 방법인 것 같다.(웃음)
홀 요즘 상담을 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예전보다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점점 성소수자인 당사자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 특히 가족들의 문제로 넘어간다. 가족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이기 힘들겠지만, 이 문제에 대해 서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 자체는 좋은 현상인 것 같다.
김 듣고 보니 그렇다. 커밍아웃을 한 게이는 홍석천씨밖에 없고, 레즈비언은….(곰곰이 생각해보고)
홀 없다. 게이와 레즈비언을 떠나서 이성애자들이 갖고 있는 편견, 무지 그리고 더러운 이미지는 하루 빨리 없어져야 한다. 일반적으로 성소수자를 보지 않고도 더럽고, 불쾌하고, 역겹다라는 말을 쉽게 내뱉는다. 사실 드라마나 영화 등 미디어에 성소수자들이 출연하고 이야기가 다뤄지면서 변화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언제나 미디어에 노출되는 성소수자들은 게이를 여성적인 남자로만 보여주거나 레즈비언은 거의 나오지도 않는다.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나라에서 게이는 홍석천씨만 있는 줄 알고 있다. 대외적으로 커밍아웃의 롤 모델이 없다는 것도 힘든 점이다.
김 더불어 종교적 압박도 무시 못할 것 같다. <밀크>에서 가장 큰 벽으로 작용하는 부분이 기독교 윤리 아닌가? 하비 밀크가 성소수자에게 커밍아웃을 강요한 근원적인 문제는 바로 종교 때문이다.
홀 그렇다. 아이러니 하게도 종교가 기독교다. 실제 종교와 성 정체성을 문제로 받아들이는 성소수자들이 많다. 사실 그럴 수 밖에 없다. 주일마다 교회에 가면 항상 성소수자들은 동성애에 대한 혐오적인 말을 듣게 된다. 저절로 눈물이 나는 이 상황에 누가 교회에 나가고 싶겠나! 차별 금지법을 할 때도 반대의 앞장선 사람이 정치인, 기업가, 그리고 종교인이었다. 그들은 동성애자들을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은 여기에서 무너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우리와 계속해서 싸워나갈 태세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 파장은 일겠지만 ‘목사님들이 들려주는 동성애 이야기’라는 책을 출간될 예정이다. 이를 발판으로 위험을 감수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얻을 거라고 생각한다.
박 차별 금지법 토론에 나온 어느 종교인은 성소수자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건 괜찮은데, 동성애 대해서 이야기하면 안되다고 하더라. 자신의 신념이라고. 한국사회에서 종교는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너무나 큰 힘이 작용한다. 믿음에 의해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있어서도 안 된다. 성소수자에 대해 토론을 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 이전에 명확한 기준점을 제시하고 논리성을 잃고 믿음만 강조한다면 점점 간극이 커져갈 수 밖에 없다.
김 앞으로는 공중파 토론방송처럼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박 그러기 위해서는 성소수자를 위한 단체에 후원을 좀 많이 해주는 것이다.(웃음) 정부 지원금도 많이 못 받는 현실에서 만남의 장을 마련하기 위한 행사나 토론회를 열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관심도 필요하지만 실질적인 후원이 더 필요하다.
홀 맞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에서도 십대 이반 지원을 위한 후원 행사를 한다. 당연히 거리감은 있겠지만 마음의 벽을 허물고 한 발짝 내디뎠으면 좋겠다.
박 그건 아니다. 하지만 후원은 꼭 필요하다.
홀 후원 많이 해주세요!(웃음)
김 <친구사이?> 김조광수 감독 인터뷰 때 했던 마지막 질문이었는데, 두 사람에게도 묻고 싶다. 과연 이성애자와 동성애자가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홀 난 믿는다. 언젠간 동성애자와 이성애자가 차별 없이 지낼 수 있다고 믿는다. 동성애자들이 이성애자들을 싫어할꺼라고 생각하는데 실제 그렇지 않다. 우선 부모님과 가족들이 이성애자다. 당연히 집 나오면 고생인데, 난 가족을 사랑한다.(웃음) 이성애자들이 동성애자들을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잇지만 동성애자들은 그들을 언제나 생각하고 있다. 이성애자들이 “너 남자(여자)친구 있니?” 보다는 “너 애인 있니?”라는 말을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김 그거 참 묘한 질문이다. 애인이라는 단어로 인해 차별적인 질문이 친근한 질문으로 바뀌다니 앞으로 그렇게 질문을 해야겠다.
박 다 서먹해서 그런 거다.(웃음) 알고 나면 다 친해진다. 대부분 만나는 사람들이 이성애자이지만 잘 지낸다. 좀 더 마음을 나누면 더 친해지겠지만 말이다. 얼마 전 ‘친구사이’에서 회원을 모집했는데, 이성애자들이 더 많이 왔다. 어찌 보면 성 정체성보다 이야기를 나눌 때 공통적인 화제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거의 남자들은 군대, 축구, 직장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당연히 게이들과 공통 관심사가 다르다.
홀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결혼한 사람과 안 한 사람의 관심사가 다르듯이 공통 관심사는 중요하다. 이성애자 여성들이 왜 게이 친구들을 갖고 싶어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이제는 하나의 트랜드다.
박 아니다. 그 트랜드는 벌써 지나갔다.(웃음) 하긴 이성애자 여성들과 게이 친구들의 만남이 자연스러운 것은 말이 통하고, 감정을 쉽게 토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이성애자 남자인데도 말이 잘 통하는 사람들도 있다.
홀 정말?
박 그럼! 편견은 제쳐두고, 일단 우리 모두 만나!(웃음)
2010년 3월 15일 월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2010년 3월 15일 월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