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푸른 산호초 섬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남은 평생을 휴양처럼 살고 싶어라. 전직수영국가대표 출신인 천수(김강우)의 꿈은 팔라우섬으로 가는 직행 티켓을 끊는 것이다. 이에 필요한 건 돈이다. 많은 돈이 필요하다. 짧은 시일 안에 많은 돈을 만질 수 있는 곳은 도박판이다. 도박판에서 인생 한방을 노리는 천수의 꿈은 야무지다. 하지만 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패 한번 잘못 봤다가 패가망신의 지름길로 들어선다. 팔라우섬은 커녕 장기를 팔게 생겼다. 그런 천수 앞에 강사장(조재현)이 나타나 ‘마린보이’가 될 것을 명령한다.
<마린보이>는 바다의 왕자가 아니다. 반대로 제물이 되기 좋은 운명이다. 마약밀매조직을 운영하는 강사장은 일본으로부터 마약을 밀수하기 위해 천수를, 정확히 말하자면 천수의 몸을 이용하려 한다. 신체를 마약을 숨겨오는 생체보관함으로 삼고자 한다. 수영실력이 좋은 천수는 도박으로 발목이 잡혔다. 좋은 먹잇감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벼랑이 멀지 않았음을 알면서도 직진해야 한다.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방향은 명확하다. 단순해지기 쉬운 구조다. 하지만 캐릭터를 통해 변수를 두고 다양한 경우의 수를 늘려나간다. 속셈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으며 정체를 확실히 밝히지 않는 캐릭터를 포진시키며 진행될 상황에 대한 흥미를 더한다.
빠르게 전환되는 영상엔 다양한 정보가 담겨있다. 그 정보엔 진짜 패와 뻥카가 뒤섞여 날린다. 그 사이로 본심을 감춘 이야기가 여유롭게 떠다닌다. 이야기가 완벽한 것은 아니다. 때때로 빈틈이 엿보인다. 하지만 맥락의 큰 전환 지점마다 적절한 방향 표지판을 제시한다. 철저하게 잘 그려진 지도는 아니지만 길을 찾아갈 수 있을 정도의 기능성은 갖추고 있다. 최소한의 역할을 하는 플롯의 뼈대에 두툼한 살집을 붙이는 건 캐릭터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 성격의 캐릭터를 통해서 평이한 이야기에 은밀한 호기심을 장착시킨다. 속셈을 알 수 없는 캐릭터들은 사연의 뒤편으로 갈수록 관계의 복마전을 거듭하며 거듭 상황을 전복시킨다. 다만 그 모든 상황이 정리되는 결말부의 파괴력이 부족한 감은 있다. 서스펜스 구조가 신파 모드로 돌변하는 상황은 어딘가 작위적인 인상을 준다.
하지만 <마린보이>는 적절한 기본기를 갖춘 오락영화다. 새로운 발견이라 불리긴 어렵지만 적절한 선방이 이뤄진다. 한편으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코미디가 구사되곤 하는데 이는 천수를 연기한 김강우의 대사나 행동에서 기인한다. 진지한 상황에서 돌발적인 멘트를 날리거나 행동을 하는데 이게 엇박자에 가까운 개그를 발생시키며 궁극적으로 이는 다소 따분하게 내려앉을 수 있는 상황을 윤활유처럼 무마시키는 역할을 한다. 의도한 결과물처럼 보이진 않는다. 다만 배우 본연에게서 비롯된 정제되지 않은 태도가 우연스럽게 캐릭터에 부합된 결과처럼 여겨진다. 마치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처럼 돌발적이나 그것이 캐릭터에 잘 부합되는 인상이다. 반대로 나머지 배우들은 캐릭터 역할에 충실하다. <마린보이>에서 가장 큰 장점은 그 캐릭터들이 자기 역할에 충실한 덕분에 단순한 플롯 위로 다양한 눈속임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이를 가능케 한 건 바로 그 캐릭터적 연기다. 배우 본래의 성격이 반영된 느낌도 있지만 캐릭터에 몰입하고 있다는 감상을 준다.
어딘가 허전함도 남는다. <마린보이>에서 가장 큰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마린보이가 어떻게 마약을 몸에 내장(?)하고 바다를 거쳐 육지로 올라오는가라는 문제다. 아이러니하게도 <마린보이>는 가장 큰 호기심을 간단하게 묵살한다. 결정적인 순간이 가장 쉽게 무마된다. 덕분에 다소 맥이 풀리는 경향이 있다. 가장 기대했던 패가 알고 보니 뻥카에 가깝다. 바다를 무대로 한 액션이 주가 되리라 기대했건만 대부분의 사건은 육지에서 이뤄진다. 기대를 배반하는 측면이 존재한다. 액션보단 스릴러가 주가 되고, 때때로 유머가 발생하며 멜로까지 발을 걸친다. 기대를 배반하는 면모가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재미를 거둔다. 이것이 장점이 될지, 단점이 될지는 가늠할 수 없다. 버라이어티한 재미는 있지만 분명 원하던 재미가 아닐 공산을 배제할 수 없다.
영화를 관통할만한 지점은 아니지만 <마린보이>를 통해 읽혀지는 단상들이 존재한다. 천수와 마리(박시연)는 한국을 떠나고 싶다고 한다. 물론 그 이유는 피상적이다. 하지만 보편적인 현상이 읽힌다. “한국을 떠나고 싶다니, 이 나라 국민이 맞군.” 김반장(이원종)이 천수에게 던지는 대사는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대한민국을 뜨고 싶어하는 청년의 욕망에 묘하게도 마음이 동한다. 깊은 사유를 끌어낼만한 이야기 수준에 이르는 건 아니지만 몇몇 대사와 설정들은 현실적인 고민을 강력하게 이끌어내기도 한다. 가볍게 찰랑거리지만 빠져들만한 매력이 존재한다.
2009년 1월 23일 금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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