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잘못한 일이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누명을 뒤집어썼다. 검찰과 경찰은 당신에게 저지르지도 않은 죄에 대한 자백을 강요하고 당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진술은 들으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러한 사법기관의 불공정한 처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 질문들은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제시하는 영상 질문들이다.
수오 마사유키 감독이 그간 만든 영화들의 필모그래피를 보고 이 영화를 접한다면 상당히 이질감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으랏차차 스모부><쉘 위 댄스>같은 재치발랄한 코미디 영화가 주특기였던 수오 감독이 96년 <쉘 위 댄스>이후 장고의 공백을 깨고 만든 이번 영화가 그동안의 작품들과는 연장선을 찾아볼 수 없기에 말이다. 일본 법조계의 현실에 대해 날카롭게 꼬집은 이 법정 드라마는, 물 건너 온 일본영화라곤 하지만 우리의 사법체계 현실과 맞아떨어지는 씁쓸한 부분도 상당수 된다. 참고로 수오 감독은 이 영화를 준비하기 위해 2년 동안 철저한 취재를 했다.
<어 퓨 굿맨><히어로>와 같은 그간의 법정영화들은 불의 혹은 거대 권력에 맞서 진실을 파헤치고 이를 사법시스템의 힘을 빌려 단죄하는 구조를 가지고 관객의 카타르시스를 집약시키는 영화들이었다. 쉽게 도식화하자면 정의↔불의의 구조화를 가진다고 보면 된다. 하나 이 영화는 만원 전철 안에서 여중생을 더듬은 지하철 치한으로 오해 받고 억울하게 기소당한 프리터(Freeter) 카네코 텟페이(카세 료)가 일본 사법시스템의 모순에 맞선다는 영상 결백기로 기존의 법정 영화들이 선사했던 거대 권력의 숨겨진 비리를 파헤치는 부조리 전복(顚覆)의 쾌감과는 거리가 멀다.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를 했노라고 허위로 자백하고 일정 수위의 법적 처벌과 타협하라는, 사법시스템의 법적 부조리에 맞서야 하는 한 청년의 외로운 독야청청(獨也靑靑) 투쟁기다. 정의↔사법시스템으로 간략하게 도식화한다면 이 영화의 본질을 쉽게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여느 법정영화들이 그렇듯 이 영화에서 힘을 실어주는 구조는 대비(對比) 구조다. 저지르지도 않은 치한범죄를 텟페이가 시인한다면 벌금형으로 끝난다. 하지만 이러한 사법시스템의 타협안에 동의하지 않고 계속 결백을 주장한다 해도 그가 무죄로 풀려날 확률은 0.1% 밖에 안 되기에 사법시스템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라는 변호사의 권면은 주인공의 결백과 대립되는 구조를 가진다.
두 번째 대비 구조를 보자. 텟페이가 치한이 아니라고 역무실까지 찾아온 여승객의 변론을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승무원과, 치한의 지문을 가려내기 위해 여중생의 팬티 속 지문조사라는 상식적인 조사조차 하지 않고 텟페이를 범인으로 몰아 윽박질러대는 취조실 형사는 텟페이의 결백을 믿는 텟페이의 변호사와 어머니 토요코, 텟페이의 친구와 지인들과는 상반되는 캐릭터들이다. 영화 속 사법시스템과 캐릭터의 상반된 대비구조는 이 영화의 긴장감을 한껏 고조시켜줌과 동시에 텟페이의 무죄 입증을 효과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흑백대비효과도 가져다준다.
일본의 사법제도를 피고인의 관점으로 조망하고 비판하는 이 영화에서 카세 료는 텟페이라는 억울한 주인공을 연기함에 있어 한껏 울분을 폭발시키는 격렬함 대신에 그 울분을 속으로 곰삭히고 내면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연기를 한다. 그와 더불어 <라쇼몽>과 <12명의 노한 사람들>을 관람한 경험이 있다면 이 영화에 대한 이해 및 공감도는 더욱 업그레이드 될 것이다. 같은 사건을 목격함에도 불구하고 목격자들이 각기 다른 목격담을 이야기한다는 <라쇼몽>의 시퀀스를 통해서는 이 영화 속에서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것만 보고 마는 고루한 시선을 가진 역무원과 형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와 더불어 기소된 피고인이 무죄임을 확신하는 한 명의 배심원이 나머지 11명의 배심원을 치밀하게 설득해 간다는 설정의 <12명의 노한 사람들>은 이 영화의 큰 틀과 맞아떨어진다.
2008년 12월 1일 월요일 | 글_박정환 객원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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