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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하반기 한국영화의 트랜드! 팩션의 창으로 본 역사
2008년 9월 5일 금요일 | 유지이 기자 이메일


객관적인 ‘사실(fact)’과 허구적인 ‘구라(fiction)’의 결합. 유행어 ‘팩션(faction)’은 이런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다. 이미 메가히트 소설이자 영화로 만들어진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이후 대한민국 문화계에서도 익숙한 단어가 된 ‘팩션’이 이제 본격적으로 영화관에 나타난다. 올 후반기 한국영화의 트렌드, 팩션이다.

비슷한 시기에 우연 혹은 의도의 개입으로 비슷한 스타일의 영화가 개봉하는 때가 있다. 유행이라는 말로 설명하는 그런 현상이 올 후반기 한국영화판에 나타났다. 역사적인 사건과 실존 인물 사이에 가상의 인물과 사건을 교묘하게 이어 붙이고, 이미 벌어진 사건의 과정을 재구성하는 팩션 영화가 잇다라 개봉하는 것이다.

소설에서 출발한 대체 역사의 재구성

원래 ‘팩션’이라는 단어가 소설에서 출발했기도 하고 수많은 객관적 사실을 소설적인 방법으로 재해석하고 구성해야 하는 특성상 소설이 ‘팩션’에 적절한 화법을 가지고 있다보니 한국 안팎에서 팩션의 시작은 소설이었다. 빼어난 연기로 주연배우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카포티〉나, 한국에서는 정식 개봉하지 않았지만 역시 같은 사건과 인물에 대해 극화한 영화 〈인페이머스〉에서 소개된 (역시 ‘팩션’처럼 다뤄진) 실존 극작가 트루먼 카포티 역시 자신의 대표작 〈In Cold Blood〉를 ‘논픽션 소설’이라고 소개했다.
 진실은 뭔가요? 몰라, 아직 각본 안봤어!
진실은 뭔가요? 몰라, 아직 각본 안봤어!

실존인물과 사건을 자신 만의 해석으로 소화한 그의 ‘논픽션 소설’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팩션’과 흡사하다고 볼 수 있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팩션’을 유행시킨 일등공신은 소설가 댄 브라운과 소설 〈다빈치 코드〉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음모이론가 사이에서 상당한 수준의 증빙 자료와 함께 널리 알려진 ‘메로빙거 왕조의 예수 후손설’을 스릴러 소설로 꾸민 〈다빈치 코드〉는 엄청난 인기와 함께 대체 역사를 소재로 한 일대의 ‘팩션’ 유행을 불러왔고, 한동안 한국 대형서점에는 번역 ‘팩션’ 소설이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는 한국 소설가에 의해 한국 역사를 재구성한 ‘팩션’ 소설도 있었고 많은 양이 쏟아져 나오는 틈바구니에서 종종 그렇듯 아주 수준 높은 작품 또한 심심치 않게 나타났다.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소설가 중에 한국 팩션의 관점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작가는 단연 김탁환. 신작 〈혜초〉같은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정통 역사소설가에 가까운 작가이며 (일반적인 팩션 작가와는 다르게) 주류 문학계에 속한 소설가지만 픽션과 사실을 교묘하게 섞고 재해석하는 솜씨와 대중적인 재미를 놓치지 않는 구성은 단연 빼어난 팩션 소설가임을 증명한다. 이미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원작자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작품 중 하나인 〈부여현감 귀신체포기〉는 이미 영화화 소문이 들려오는 상태. 관심을 가진 독자에게는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이나 〈방각본 살인사건〉같은 작품의 일독을 권한다. 스포츠신문 연재로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는 야설록의 〈불꽃처럼 나비처럼〉 역시 실존인물 명성황후와 그를 사랑한 호위무사 가상인물 무명 사이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팩션의 영역에 놓을 수 있을 것이다. 하드보일드하며 끝 간데 없이 마초한 이현세의 액션 만화 〈남벌〉의 스토리를 썼던 야설록은 솜씨 좋은 무협 작가이기도 하다.

영화, 한국의 역사를 재단하다
 미인의 조건은 과감함
미인의 조건은 과감함

입대를 앞둔 조승우를 호위무사 무명으로 기용하고 명성황후 역에 수애를 캐스팅한 영화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조승우의 입대 전 마지막 영화로 한창 촬영을 진행 중이다. 물론 그보다 앞서 한 창 홍보를 진행 중인 〈신기전〉이 먼저 관객에서 선보인다. 실제 조선 세종 때 만들어진 화포 〈신기전〉을 소재로 조선의 신무기 개발을 명나라가 견제했다는 가상 이야기를 꾸민다. 세종대왕으로 안성기를 캐스팅하여 비중있는 역사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가상의 스파이 전으로 진행될 이야기를 이끄는 것은 역시 가공인물인 설주(정재영)와 홍리(한은정)다. 일반적인 사극에서 선호하는 스타일이 아닌 두 주연배우로 미루어 볼 때 〈신기전〉은 근래 유행하는 현대적인 사극 형식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앞서 소개한 두 영화 사이에는 〈식객〉 영화판을 성공시키며 새 프로젝트로 팩션을 고른 전윤수 감독의 신작 〈미인도〉가 위치하고 있다. 조선 후기 풍속화가로 유명한 김홍도와 신윤복을 다루는 사극인 듯 하지만, 신윤복이 실은 (남장)여자였고 김홍도와 애정을 나누었다는 픽션을 통해 팩션으로 발전하는 이야기. 아무리 (남장)여자라고 우겨도 신윤복 역을 맡은 김민선 정도의 미인이 남자 복장을 하고 다닌다고 다들 속아 넘어간다는 설정은 안경 쓰고 다닌다는 이유로 동료조차 그 사람이 〈슈퍼맨〉인 것을 못 알아본다는 이야기만큼이나 설득력이 없지만, 김민선이 뒷태를 시원하게 드러낸 포스터와 함께 영화 〈미인도〉는 개봉일을 향해 순항을 거듭하는 중이다.

이미 시도되었던 한국영화의 팩션

근래 유행이긴 하나, 한국영화에서 팩션이 처음은 아니다. 대유행을 불러온 〈다빈치 코드〉류의 소설에 강력한 영향을 준 지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유희 〈장미의 이름〉이 1980년에 처음 출판된 이후로 이 매력적인 소설을 흉내낸 사례는 국내외 어디에나 많았다. 헐리웃에서도 숀 코너리를 기용해 〈장미의 이름〉을 스릴러 영화로 만들어 흥행을 거두기도 했지만, 한국 역시 〈장미의 이름〉에서 영향 받은 한 소설이 성공한 후 영화로 만들어 개봉했다. 조선 정조가 반대파의 독살에 의해 죽었다는 가설을 팩션 형식으로 꾸미고, 역사적 지식과 해석을 움베르토 에코식 화법으로 소화한 소설가 이인화의 작품 〈영원한 제국〉이 그것이다. 지금이야 2000년 〈시인의 별〉이 이상문학상을 탄 이후 빼어난 소설가로도, 박정희에 대한 소설 〈인간의 길〉로 보수 우익의 대표로도 극단적인 평가를 받는 사람이지만 한국적인 상황에 움베르토 에코식 소설을 도입한 〈영원한 제국〉은 탁월한 부분이 있다.

강력한 임금 정조 역에 안성기를 캐스팅하고, 조재현과 김혜수를 주역으로 기용한 1995년 영화 〈영원한 제국〉은, 지적인 움베르토 에코식 스릴러인 소설을 묵직한 정치극으로 뽑아낸다. 다소 모호한 전개덕분에 성공적인 흥행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단순한 추리극으로 각색한 헐리웃의 〈장미의 이름〉 경우보다는 훨씬 성공적인 영화화였다는 것이 중평.

올해 유행처럼 이어지는 팩션이 얼마나 좋은 결과로 마무리될 지는 이번주 개봉한 <신기전>의 흥행부터 점쳐볼 수 있다. 다른 스타일로 팩션을 소화하는 일련의 작품이 한국영화의 다채로움에 한 축으로 작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_유지이 기자 (무비스트)

21 )
kisemo
기대되네요   
2010-05-15 13:41
mckkw
신기전..   
2009-07-01 18:15
sasimi167
기대보단...   
2008-12-30 14:19
ldk209
그나마 신기전보다는 미인도가 낫드라...   
2008-11-15 12:52
mira1
미인도 기대됩니다. 신기전보다 재밌기를!!!   
2008-09-16 22:54
hydra1
신기전...미인도 궁금 유발   
2008-09-16 22:49
ksh53711
미인도 기대! 기대!   
2008-09-16 22:32
joynwe
신기전 괜찮은 듯   
2008-09-15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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