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니 다이어리>는 된장녀들이 꿈꾼다는 스타벅스 커피의 본토이자 동대문산 짝퉁이 아니라 명품들을 몸에 주렁주렁 두른 진퉁 뉴요커들이 존재하는 세계다. 하지만 뉴욕에 산다고 해서 모두가 다 뉴요커는 아니다. 만약 그대가 꿈꾸는 뉴요커가 단지 뉴욕에 사는 거주민에 불과했다면 상관없겠지만 뉴욕에 거주하며 명품으로 몸을 도배한 럭셔리의 표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니 다이어리>는 뉴욕, 그 중에서도 좀 있다는 갑부들이 즐비한 맨하튼에 입성한 인류학 전공 석사의 현지 조사 보고서다. 물론 이 철부지 처녀는 단지 애 하나 봐주는 대가로 고급 아파트에서 잠자리 해결하고 목돈까지 버는 럭셔리한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구했다는 심산으로 맨하튼에 입성했으니 그녀의 본래 목적은 그런 비범한 의도와 애초에 무관했다. 결국 <내니 다이어리>는 간단히 정리하자면 한 여성이 고백하는 어리석은 과거 청산기에 가깝다.
<내니 다이어리>가 동명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촌뜨기의 뉴요커 생활 수기란 점은 작년 이맘때쯤 개봉했던 한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마찬가지로 동명 원작 소설의 영화화로 성공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먼 친척 뻘 되는 듯한 <내니 다이어리>는 그 세기나 깊이면에서는 그에 모자라다. 그건 아무래도 무표정 속에 악마적인 카리스마와 인간적인 배려를 동반했던 미란다(메릴 스트립)만한 캐릭터가 부재한 탓일지도 모르지만 그보다도 안이한 설정이 확연히 눈에 띠는 탓이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애니(스칼렛 요한슨)가 부모의 치맛바람에서 도망치듯 맨하튼의 유모, 내니가 된다는 도입부의 설정은 너무나 뻣뻣해서 기름칠이 필요할 지경이다. 더구나 그런 과정조차도 캐릭터의 어리석음으로 치장하며 눈 가리듯 본론으로 넘어가는 태도는 석연찮게 거슬린다.
하지만 철없는 여자의 성장담이란 도식적인 집착과 무관하게 뉴욕 상류층 사회의 양육 시스템에 얽힌 소재적 활용은 참신하다. <내니 다이어리>가 어리석은 발상과 무관하게 재미를 느끼게 하는 구석은 물질적으로 풍성하나 정신적 여유가 없는 부자들의 삶을 바라보는 아이의 외로운 시선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에서다. 또한 소년과 애니가 교감하면서 서로에 대한 연대감을 형성하는 과정은 그 나름대로의 흡족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하지만 <내니 다이어리>가 고용자와 피고용자 관계에 놓인 맨하튼 안방마님과 내니의 관계 속에서 애니의 일장연설을 감동으로 섣불리 치환시키려는 의도는 얄팍해 보인다. 또한 내니의 경험을 통해 맨하튼의 럭셔리한 뉴욕 안방의 삭막한 현실을 보고 인생 나침반을 다시 찾은 애니의 모습은 공감대를 형성하기엔 너무 막연하며 단상적이다. 차라리 유아 양육적인 소재에 치중하며 재미의 폭을 넓혔거나 좀 더 세심하게 캐릭터를 다듬고 그에 사려 깊은 성찰을 담았어야 했다. 물론 맨하튼 파크 애브뉴의 호화로운 단상을 간접 체험하거나 진부할지라도 단순한 여성의 성공 드라마를 즐기고자 했음이라면 <내니 다이어리>는 그에 충분한 킬링 타임용 도구가 될만한 자질은 있다. 하지만 겉만 번지르르하나 속은 만신창이 같은 영화 속 뉴욕 상류층 부인의 삶처럼 <내니 다이어리>는 그럴 듯한 포장 뒤에 알맹이 없는 이야기를 전시한다. 마치 도입부와 결말부에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인류학 박물관처럼, <내니 다이어리>의 현지 탐사 보고서는 본론은 없고 서두와 결말만이 존재한다.
2007년 9월 28일 금요일 | 글: 민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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