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싶었기에 밟아보고 싶었기에, 왜 고향을 버리고 굳이 여기로 오고 싶어 했는지 같은 언어로 말해주고 싶은, 한 남자가 한반도를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태풍이 되어 돌아왔다.
‘곽경택’ 감독이 말하려는 의도는 영화 초반 쉽게 노출된다. 두 남자의 이념과 신념의 대립을 통해 어렵지 않게 이야기의 맥을 찾고 관객의 호흡을 자기 페이스로 조절해 나간다. 한국영화사상 가장 강력한 이름, <태풍>은 주제를 간소화해 스케일을 부풀린 거대 영화임은 분명하다.
도끼눈을 뜨고 사람 머리를 도끼질 할 때부터 ‘씬’(장동건)은 버림받은 자의 분노가 이젠 독기와 광기로 뭉쳐 있음을 단박에 보여준다. 그를 막는 건 목숨 내놓고 달려드는 무모한 일임을 알고 있는 ‘강세종’(이정재)은 그 사이 이념과 신념의 차이를 깨달아가며 새로운 선택을 향해 달려간다. 사실, 주인공 두 남성의 대립은 가족(한민족)이란 테두리 안에서 처음부터 동질감을 찾아나서는 화해가 전제가 된 싸움이다.
20년 전 고향 땅을 버리고 탈북을 시도한 최명신(씬/장동건)의 가족은 그리도 바란 남한행을 시도한다. 정치적 문제로 이들의 남한행은 좌절됐고 부모와 형제는 어린 명신 앞에서 총살당한다. 살아남은 피붙이는 오직 누이 명주(이미연)뿐이다. 누이는 고향을 등진 죄, 남한에게 버린 받은 죄로 인해 가장 혹독한 삶을 살았으며 그녀의 육체는 그 형벌의 장소가 된다.
씬의 누이이자, 세종의 새로운 신념을 싹트게 만든 ‘최명주’는 질곡의 한국 근대사를 다룬 매머드급 한국영화들이 좋아하는 화해와 신념의 지표로 <태풍>에서 등장한다. 여성은 언제나 한반도의 역사 속에서 짓밟히고 인내하며 결국엔 그 모든 것을 용서하는 상징적인 존재로 영화 속에 곧잘 그려졌다. 그들의 육신이 더럽혀질수록 분단국의 현실은 비장미 안에 애절함을 끌어낸다. 썩어 들어가는 몸뚱이로 씬과 세종을 감싸는 누이 명주는 복받치는 울음을 폭발시켜 감동의 거대 태풍으로 모든 것을 진정 감싸 안는다.
이 정도까지 보는 이의 눈시울을 적셨을 땐, 태풍의 스케일은 더 이상 영화를 판가름하는 기준점이 될 수 없다. 감독은 씬의 살기어린 눈망울에 이념이 탄생시킨 ‘사생아’의 절절함을 담아내고, 세종은 국가가 버린 그를 향해 ‘총’을 겨누지 못한다. 전체분량의 90%이상, 카메라는 인물에게 밀착해 그들의 감정을 스크린 밖에서 흘러넘치게 만든다. 모든 갈등이 ‘국가’로 환원될수록 스크린은 현실을 압도하며 모두를 피해자로 위치시켜 거대한 동일시를 이뤄낸다.
재미보다 감동을! 주제보다 스케일을! 선택한 한국영화사상 최고의 블록버스터 <태풍>은, ‘천만시대’를 다시 한 번 재현하고픈 감독과 배우의 욕망이 뭉쳐 관객을 코너 끝까지 몰아붙인다. 그 힘에 반항하다보면 콧방귀만 나오겠지만 반대로 순응하다보면 입장료 아깝지 않은 감정의 후폭풍을 맛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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