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 박은영 기자]
[목요수다회]는 무비스트 기자들이 같은 영화(시리즈)를 보고 한자리에 모여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이번 편은 2022년 영화와 시리즈 등 영상 콘텐츠와 업계의 변화 흐름을 짚고 추천작을 뽑아 봤으니, 참고하시길요!
붕괴된 경계!
재하 엔데믹과 더불어 그간 미뤄뒀던 영화가 줄줄이 개봉하면서 많은 양의 콘텐츠가 쏟아졌고 그만큼 질적으로도 충분히 즐길 만한 작품이 풍성했던 한 해가 아닌가 해요. 올해의 특징을 꼽는다면 무엇보다 영상 콘텐츠 내에서의 구분이 무의미해졌다는 거예요. 예전처럼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아요. 배우, 작가와 감독 등 제작진이 영역을 넘나드는 건 당연하고요,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의 오리지널 시리즈 등은 사전 제작되면서 작업 환경에서도 그 차이가 좁혀졌어요. 극장 개봉 영화, OTT 시리즈, 지상파 드라마, 그리고 틱톡 영화 등 형식적인 분류는 있지만요. 더불어 유튜브 영상(드라마)이 낫다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개인 크리에이터의 역량이 높아졌어요. 영상 시장에 있어 콘텐츠는 물론이고 플랫폼과 전문가의 경계 또한 허물어졌다고 봅니다.
금용 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가속화된 부분이 있지만 사실은 숏폼 콘텐츠가 등장하면서 꾸준히 제기돼 온 이야기예요.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 극장용 영화와 OTT 영화의 경계가 모호한 건 물론이고, 이러한 구분 자체가 무의미한 시도가 아닌가 해요. 제작하는 입장에서는 구분할지 모르겠지만, 시청자는 그런 걸 따지지 않고 선택하니까요.
될 놈만 된다!
은영 팬데믹의 정점이었던 2020~21년에 다양성 영화가 틈새 이익을 조금이나마 봤다면 올해는 정말 작은 영화의 무덤 같은 한 해라 할 수 있어요. 관람료 상승에 따라 영화 선택 기준이 까다로워졌고 이에 직격탄을 맞은 게 중간 규모 영화 소위 ‘허리급’ 영화예요. <정직한 후보2>, <인생은 아름다워>, <자백> 등은 평가 대비 흥행이 부진했어요. 100만 내외니까요.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의 구분이 명백해진 거죠. 여기엔 짧아진 홀드백 기간도 한몫해요. 3~4주만 지나면 극장 동시 개봉이라는 이름으로 신작 VOD가 풀리니 굳이 극장에 가기보다 이를 기다리는 거예요.
금용 맞아요. 제가 매주 KT 지니 TV 신작 소개 코너에 참여 중인데 진행하다 보면 ‘이 영화가 벌써?’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정말 개봉 2~3주 만에 신작 VOD가 들어온답니다. 제작한 입장에서는 동시 개봉 타이틀을 걸어야 좀 더 비싼 가격에 팔 수 있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코로나가 터지기 전만 해도 홀드백 기간 연장 움직임에 있었는데, 극장 경영난이 심화되면서 더 이상 이슈화되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큰 스크린과 빵빵한 음향 시설을 갖춘 극장에서 볼만한 영화, 그러니까 영화적 체험을 극대화할 기술적 성취를 지닌 영화가 흥행하고 있어요. 통쾌함이 큰 <범죄도시2>나 <탑건: 매버릭>, 얼마 전 개봉해 흥행몰이 중인 <아바타: 물의 길>만 봐도 알 수 있죠.
안전지향적!
금용 최근 영화감독들이 국내외 플랫폼에서 시리즈를 연출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넷플릭스 <지금 우리학교는> 이재규 감독, < D. P. > 한준희 감독, <썸바디> 정지우 감독이나 디즈니+ <카지노> 강윤성 감독이 대표적인데요. 결과적으로 영화와 드라마는 점점 닮아가고 그 간극은 더욱더 좁아질 거예요. OTT 플랫폼이 제작하는 오리지널 작품이 많아지면서 주제와 소재 면에서는 한층 다양해졌지만, 공통적으로 안전지향적이라는 생각이에요. 차별화된 시선이 담긴 장르성이 기를 못 피고 있어요. 영화 <외계+인 1부>만해도 예전 같으면 이렇게까지 혹평을 받았을까 싶거든요. 요즘이 확실히 장르물에 덜 우호적인 흐름인 듯해요. 그 결과 안전하게 뻔한 스토리로 가되 공백을 볼거리로 채우려는 시도가 잦아지지 않았나 합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너무너무 고마울 정도로 개성 강한 장르영화를 만나는 게 쉽지 않은 요즘이에요.(웃음)
은영 안전성 추구와 더불어 영화의 밀도가 낮아졌다고 봐요. 올 한 해는 특히 밀도 높은 한국 영화가 드물지 않았나 싶어요. 2시간짜리 영화가 그냥 좀 길어진 TV 단막극 같은 거죠. 그렇다면 영화와 단막극의 차이가 뭐냐는 질문이 따르겠지만, 이의 구분이 단지 극장에서의 상영 여부는 아니라고 보거든요. 영화라면, 잘 만든 영화라는 전제하에서 자체로 완결성을 지니고 실험정신도 있고 또 문제의식을 자기만의 화법으로 풀어낸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러한 여러 요소를 엮어서 촘촘하게 흥미로운 이야기로 직조하는 거죠. 올해만의 특징은 아니겠지만, 대체로 콘텐츠 자체가 가벼워지고 있어요. 트렌드겠죠.
재하 완전히 안전빵으로 가든지 그렇지 않으면 마치 로또 같이 모험하든지 극과 극인 것 같아요. 요즘 시청자를 보면 자기가 알고 있는 테두리 안에서의 가벼운 변칙을 원하지, 완전히 새로운 변화는 선호하지 않는 것 같아요. 게다가 유튜브로 된 요약본만 보고도 영화 한 편을 다 봤다고 하는 시대니… 배우와 서사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해요. 한편으론 과거 아날로그 세대가 텍스트가 아닌 영상 소비문화를 보고 한탄(?)했을 걸 생각하면, (웃음) 앞으로 10년 후의 콘텐츠 소비 행태가 어떻게 변모했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넷플릭스↓ 여타 OTT ↑
은영 지난해 <오징어 게임>부터 올해 초 <지금 우리 학교는>까지는 넷플릭스가 정말 승승장구했는데요. 넷플릭스라는 이름표는 곧 글로벌 히트라는 인식도 있었고요. 한데 좀 과장하자면 화무십일홍이라고 영원한 권좌는 없나 봅니다! (웃음) 야심차게 준비한 대작 시리즈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을 시작으로 영화 <서울대작전>, 시리즈 <글리치>나 <썸바디>, 얼마전 공개한 <더 패뷸러스>까지 연속해서 미지근한 반응을 얻었어요. 디즈니+라는 대체재가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공개라는 메리트가 이전만큼 유효할지도 의문이고요. 제작비에 약간의 이익을 얹는 보상 체계 아래 국내 제작사가 언제까지 환호하며 협업할지 모르겠네요. 역으로 ENA가 제작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IP 확보를 위해 넷플릭스와 계약하지 않았다죠.) 더불어 티빙 오리지널 <돼지의 왕>이나 웨이브 오리지널 <약한영웅 Class1> 등 같은 토종 OTT의 오리지널이 화제성은 물론이고 작품성 면에서도 퀄리티가 많이 올라왔어요. 또 애플 TV+ <파친코>는 그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글로벌 화제작으로 떠올랐고, 현재 공개 중인 디즈니+ <카지노>는 오랜만에 시리즈로 복귀한 최민식과 손석구의 만남으로 인해 일찍이 화제가 되는 등 플랫폼의 인지도를 크게 높였죠. 아무튼 국내외를 막론하고 창작자에게 보다 많은 결과물을 쉐어할 시스템과 제작 환경이 조성되길 바랍니다.
금용 사실 디즈니 계열의 영화들이 대거 빠지면서 넷플릭스에 볼 만한 콘텐츠가 많이 줄었어요.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주로 시청하지 않는 한 매력도가 떨어지는 면이 있어요. 지금도 한국 탑10 작품을 보면 JTBC나 tvN 등의 드라마가 대다수거든요. 반대로 디즈니+는 콘텐츠 명가답게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천문학적 자금과 보유한 IP 면에서 어마어마한 잠재력을 지녔기도 하고요. 이번 싱가포르에서 열린 디즈니+ 정킷 행사에 갔었는데 그 엄청난 규모에 깜짝 놀랐어요. 그들의 주요한 테마가 지역화 콘텐츠, 즉 로컬리제이션인데 앞으로 어떤 작품을 선보일지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강추!
재하 좋은 작품이 많았지만, 단연코 최고는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에요. 로맨스 혹은 서스펜스 스릴러라고 콕 집어 장르를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깊은 사유가 녹아 있는 대사들이 오고 가는 가운데 유머를 놓치지 않고 있어요. 마치 균형이 잘 맞는 맥시멀리스트의 집을 훔쳐보는 느낌이랄까요. 개인적으로 미니멀리스트에 가깝지만, 이 정도의 발란스면 0(제로)의 상태와 다르지 않다고 봐요. 또 한 작품은 홍상수 감독의 <탑>이요. 홍 감독은 ‘사람’이라는 존재가 영화의 구조 속에서 분해되고 합치되는 모습을 보여왔는데요, 지금까지는 구조만으로 표현해왔다면 <탑>은 아예 시각적으로 보여줘요. 지하 1층부터 4층까지의 탑은 한 인간이기도 하고 영화 그 자체이기도 해요.
금용 저는 한국영화는 <헤어질 결심>, 외국영화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예요.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으로 ‘박찬욱’이라는 이름표를 떼고 봐도 충분히 재밌고 웃긴 영화인데 극장에서 크게 흥행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요. 볼 때마다 느낌도 다르고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아시안과 여성을 내세워 이민자와 가족이라는 주제의식을 더욱더 공감도 높게 그려낸 것은 물론이고 단순한 이야기를 장르적으로 독보적으로 풀어냈어요. 국내에선 감히 시도되기 어려운 스타일이죠. 더불어 큰 스크린으로 봐야 감독이 추구한 세계의 정수를 만끽할 작품이 아닌가 해요.
은영 <헤어질 결심>과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둘 다 너무 좋죠! 올해의 영화라 할 만해요. 두 분이 이미 소개했으니 저는 좀 가볍게 가볼게요. 웨이브 오리지널 세 편, 시트콤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 권상우의 미친 연기에 놀라게 되는 시리즈 < 위기의 X > 그리고 최근에 공개한 학원액션물 <약한영웅 Class1>을 추천합니다. 작품성이 대단히 높다기보다는 한 푼의 재미와 반 푼의 공감을 확보한, 가볍게 볼 수 있는 작품들이니 시간 여유 될 때 정주행 어떨지요!
2022년 12월 29일 목요일 | 글 박은영 기자(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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