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얻은 마블은 박차를 가했다. 만화책에 잠들어있던 영웅들을 쉬지않고 스크린으로 빨아들였다. 그 결과 <아이언맨2>가 지난 4월 컴백 무대를 가졌다. 2차 대전 당시 나치와 맞선 ‘캡틴 아메리카’를 내세운 <퍼스트 어벤저: 캡틴 아메리카>가 2011년 찾아온다. 망치를 주 무기로 사용하는 또 다른 히어로 <토르> 역시 2011년 도착할 예정이다. 그리고 또 하나. 애시 당초, 마블의 꿈은 원대했다. 그들은 따로 노는 영웅을 외롭다 여겼다. 영웅들이 같은 무대에서 뒤엉켜 놀기를 원했다. 더불어 그들 각자의 세계관이 한 영화에서 구현되길 희망했다. 그렇게 해서 추진 중인 꿈의 프로젝트가 바로, ‘헐크’, ‘토르’,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등 마블의 스타들이 모인 <어벤져스>다. <어벤져스>를 향한 마블의 계획은 치밀했다. 그들은 <어벤져스> 제작의 사전 포석을 위해 작품 간의 크로스오버를 일찍부터 시도한다.
마블의 야심이 눈에 띄게 가시화 된 건, <아이언맨2>에 이르러서다. 이 영화에는 <어벤져스>와 연관된 인물과 물건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먼저 토니 스타크가 Mark6의 새로운 원천기술을 제작하는 장면. 이 장면에서 토니가 장비들의 수평을 맞추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는 방패는 ‘캡틴 아메리카’ 필살의 무기다. ‘토르’의 비밀 병기도 등장 한다. 뉴멕시코에 도착한 ‘쉴드’의 콜손 요원이 무언가를 찾아냈다며 닉 퓨리에게 전화를 건다. 이후 콜손이 발견했다는 그 무엇이 클로즈업되는데, 바로 ‘토르’의 망치다. 어벤져스의 협력자로 활약할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가 왕림하는 것도 <아이언맨2>를 통해서다. 심지어 영화는 마지막 ‘어벤져스 이니셔티브’라는 보고서를 보이며 <어벤져스>를 직접 광고 해 대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문제적 장면이 있다. 아래 <인크레더블 헐크>의 한 장면을 살펴보길 바란다. 퀴즈 하나. 이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은 몇 명일까? 헐크뿐이라고? 이 동영상을 올린 유저의 생각은 다르다. 유저는 천둥 속에 반짝하고 의문의 검은 점이 천둥의 신 ‘토르’라고 주장한다. 이 동영상은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퍼졌다. ‘천안함 파란색 매직’과 같은 진위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일었다. ‘토르가 맞다’와 ‘헛소리’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하지만 ‘마블이라면 저럴 수 있을 거다’는 것에는 대부분이 공감했다. 그리고 흥미로워 했다. 그러나 마블의 이러한 암시들이 항상 환호 받은 건 아니다. 산만하고, 영화에 대한 몰입감을 떨어뜨린다는 게 이유다. 실제로 <어벤져스>관련 암시가 넘쳐나는 <아이언맨2>는 ‘<어벤져스>를 위한 2시간짜리 예고편’이라 폄하되기도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가 진리인 마블의 세계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는 국내 팬들의 불만도 매우 거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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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마블의 히어로들은 대다수가 콤플렉스 덩어리들이다.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토비 맥과이어)는 영웅이기 이전에 밀린 집세 앞에서 부들부들 떠는 배고픈 청춘이다. 정체성 고민에 휩싸여 ‘난 대체 누구인가, 여긴 또 어디인가’를 대뇌이는 ‘엑스맨’ 울버린(휴 잭맨)은 또 어떤가. ‘데어데블’은 자신 때문에 살해당한 애인 생각에 오늘도 분노하고, 조금만 흥분해도 녹색괴물로 변하는 ‘헐크’는 사랑하는 여자를 안지도 못하고, 긴 밤 홀로 지새운다. 이처럼 마블의 히어로들은 작은 문제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갈등하고, 외부의 적은 물론 자기 안의 나약함과도 투쟁해야 하는 안쓰러운 초인들이다.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는 점 외에는 공통점이 전무한 히어로들이 만났으니, 싸울 일도 많다. 결국 그들 간의 문제는 사회문제로까지 불거지게 되고, 시민들의 불안과 불신은 커진다. 이에 국가에서는 초인들을 국가에 등록하는 법안인 ‘초인등록법’을 시행해 그들을 관리하려 한다. 그 결과 마블의 히어로들은 등록제에 찬성하는 ‘아이언맨 파’와 반대하는 ‘캡틴 아메리카 파’로 나뉘어 내전을 벌인다. 영웅과 영웅의 싸움. 마블로서는 결코 놓칠 수 없는 엄청난 아이템이자 신세계인 셈이다.
마블과 달리 관객은 이 세계에서 갈등해야 한다. 믿고 지지해 왔던 영웅들이 편을 갈라 싸우는 상황. 도대체 누구를 응원해야 하는 것인가. 이는 태극마크 달고 함께 달리다가 프리미어리그에서 경쟁자로 만나는 박지성과 이청용을 보는 것과는 다르다. 여기에서 마블은 또 한 번의 사상적 진화를 노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정의란 무엇인가. 선과 악을 나누는 기준은 뭔가. 우리가 믿었던 히어로들의 선택은 모두 옳았던 것일까. 그렇다면, 옳은 것은 무엇이고 그른 것은 또 무엇인가. <어벤져스>에서 시작될 이러한 세계관들의 난립과 충돌은 마블의 세계관을 재정립·발전시키는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더불어 <다크나이트> 이후 DC의 ‘배트맨’으로 돌아선 기존 마블팬을 되찾는 기회이기도 하다. 지금, 마블이 춘추전국시대를 꿈꾸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0년 6월 25일 금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