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마디
한 땀 한 땀 트레이닝복을 수놓았다는 이태리 장인도 울고 갈 한지 장인들의 향연이다. 하지만 영화는 지지와 회의가 갈릴 것이 분명해 보인다. 길게찍기를 인장처럼 사용해 왔던 거장 감독이 무척이나 친절하게 한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구구절절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중간 중간 삽입한 다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해서 말이다. ‘한지’ 프로젝트에 투자한 전주시에 대한 예우와 그 출발에서 비롯한 선택일지 모르지만, 또 이것이 미학적 선택이었다면 바로 그 지점에서 호불호가 갈릴 거란 얘기다. 그럼에도 의외로 지루하지도, 무턱대고 계몽적이지도 않다. 그건 공무원 필용의 일상과 한지 프로젝트가 어찌됐건 맞물려 돌아가기 때문이다. 또 전통문화에 관심이 없더라도, <달빛 길어올리기>는 장인의 숨결과 한지의 우수성과 달빛의 정취를 한데 녹여내는 임권택 감독, 그 스스로가 장인인 이 노장의 솜씨가 녹슬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전작 <천년학>의 유려함과 절창은 잠시 잊어도 좋다. 장인에 대한 존경심만으로도 <달빛 길어올리기>는 어떤 가치를 증명해낸다.
(무비스트 하성태 기자)
<달빛 길어올리기>는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라는 말만으로도 어떤 경외감이 생기는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섣불리 의견을 표명하기 어려운 이유다. “한지를 소재로 했지만 결국에는 한지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임권택 감독과 배우들의 말처럼 영화는 인간적인 정취로 가득하다. 판소리와 동양화 등을 통해 한국 전통문화의 가치를 영화에 담아냈던 임권택 감독의 정서 또한 한지라는 소재를 만나 새롭게 빛을 발하고 있다. 게다가 의외의 유머까지 녹아들어 웃음까지 자아내고 있다. 천년을 간다는 한지 위에 힘을 빼고 마음껏 붓을 놀리듯, 거장의 가벼우면서도 거침없는 손길이 만들어낸 영화다.
(조이씨네 장병호 기자)
기존의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좋아했던 사람이든 아니든, <달빛 길어올리기>는 여러 면에서 혼란과 충격과 당혹감을 줄 만한 영화다. 주요 인물들이나 ‘한지’라는 소재가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질 운명의 ‘마지막 과거의 잔재’로 그려지지 않았다는 점은 놀랍고도 흥미로운 변화에 속한다. 반면 아무리 ‘한지 홍보’라는 목적성에서 출발한 영화라고는 해도 한지에 대한 직설적 설명이 극 중 지원(강수연)이 만든 방송용 다큐멘터리에 담겨 지나치게 길게 등장하는 건 당혹스럽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 이 영화가 같은 인물이 등장하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연이어 붙어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시간상의 인과관계로 연결돼 있음에도 마치 두 개의 평행 우주상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기묘한 단절, 혹은 영화 중반에 영화가 ‘다시 시작하는’ 느낌. 그러나 이런 낯선 점들이 거장의 실패인지 새로운 실험인지는 아직 함부로 단언하기 힘들 것 같다.
(네오이마주 김숙현 에디터)
2011년 3월 8일 화요일 | 글_하성태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