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스펜스의 천재 히치콕은 완고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엄격한 가톨릭계 학교에서 교육받았다. 런던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여 광고 대리점에서 일했지만, 영국 런던에 지사를 둔 파라마운트 스튜디오에 취직하여 무성영화의 자막을 쓰는 일로서 영화계에 들어갔다. 거기서 그는 소도구, 편집, 각본 등의 일을 하며 차근차근 승진했다. 1922년부터 영화 감독일을 시작하여 1925년에 [프리주어 가든]이라는 장편영화로 첫 데뷔를 한 이래, 화면과 화면을 결합하는 편집 기교면에서 다른 사람이 흉내낼 수 없는 실험을 끊임없이 시도하였다. 히치콕 최초의 유성영화이자 영국 최초의 유성영화였던 [협박](1929) 이후 히치콕은 멜로드라마와 코미디, 뮤지컬을 오가며 다양한 장르를 찍었으며 34년부터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에 집중해서 영화를 찍었다. 이때부터 원죄 의식, 성에 대한 강박감, 위협받는 무고한 개인 등의 주제를 서스펜스 스릴러 장르의 틀에서 추구하는 히치콕의 명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34), [사보타지](36), [39 계단](35), [비밀 첩보원](36), [반드리카 초특급](38) 등의 영화는 절묘한 카메라 테크닉, 간결한 편집, 생생한 인물묘사, 재치넘치는 대사, 긴장을 늦추지 않는 플롯의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히치콕의 영국 영화에 주목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제작자 데이비드 O. 셀즈닉이 그를 헐리우드로 불렀고, 로렌스 올리비에와 조앤 폰테인이 출연한 1940년작 [레베카](1940)로 히치콕은 할리우드에 무사히 입성했다. 그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았다. [의심의 그림자](43), [오명](46), [올가미](48), [이창](54), [현기증](58), [싸이코](60), [새](63) 등은 히치콕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의 대표작이고 현대 영화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카이에 뒤 시네마', 영국의 '무비'를 중심으로 서스펜스 스릴러라는 대중적인 화술에 심오한 발언을 심는 히치콕 영화에 대한 재평가 바람이 막 일어나고 있던 50년대 후반 이후 히치콕은 [현기증], [사이코], [새]로 이어지는 걸작을 발표하면서 감독으로서의 전성기를 맞았다. [패밀리 플롯](1975) 이후 은둔 상태에 있던 히치콕은 78년 이후에 공식석상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