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가씨>는 한국의 대표 감독 중 한 명인 박찬욱의 국내 복귀작이다. 깐느 박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이번 작품도 깐느 경쟁 부문에 진출에 류성희 미술감독이 상을 받기도 했다. 영화는 영국의 소설가 사라 워터스의 <핑거 스미스>를 각색했다. 이 전에 이미 원작을 훌륭하게 각색해 만든 <올드보이>와 <박쥐>에 있었기 때문에 이번 작품도 원작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기대감이 컸다. 이야기는 고아 출신인 소매치기 숙희(김태리)가 사기꾼 백작(하정우)의 소개로 이모부(조진웅)과 함께 살고 있는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의 저택에 하녀로 들어가서 하루 종일 붙어 다니며 백작을 사랑하게 만드는 도우미 역할을 하고 결국 두 사람이 결혼하게 되면 아가씨를 정신병원으로 보내고 아가씨의 재산을 숙희와 백작이 나눈다는 설정이다. 여기까진 이야기의 절반도 안 되고 그야말로 설정일 뿐 총 3부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1부까지의 내용이다. 2,3부에서 반전과 충격적인 연출이 박찬욱의 영화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 이 작품은의 1부는 숙희의 시점에서 진행되고 초반의 설정을 튼실히 만들고, 캐릭터 간의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내는데, 이 작품의 장르가 스릴러의 외피를 두룬 멜로드라마라는 것을 상기시켜준다. 2부에선 히데코의 시점에서 1부에서 보여준 상황을 보여준다. 여기서 숙희가 몰랐던 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대부분의 관객은 기존의 다른 영화에서 봤음직한 반전이 전개된다. 3부로 들어가게 되면 2부에서 보여줬던 반전에서 한 번 더 비틀고 결국 악으로 설정된 인물들은 최악의 결말을 받게 된다. 3장 구성은 이야기의 기본인데, 박찬욱은 굳이 자막으로 1,2,3부 라는 것을 관객에게 알려줬다. 베리히만의 <페르소나>의 오프닝에서 이 작품은 ‘영화’라는 매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관객에게 상기시키는 설정이나 <가을소나타>에서 내레이션을 하는 인물이 프레임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설정처럼, <아가씨>도 문학적인 느낌을 주려고 했는지 아니면 좀 더 관객에게 친절하게 이야기와 설명하기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이전의 불편함을 줬던 박찬욱과는 조금 달랐다. 하지만 본성은 어쩔 수 없어서 그런지 3부에선 어김없이 그의 스타일을 보여주긴 했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을 보고 떠오른 것이 7,80년대 일본의 핑크무비(로망포르노)였다. 당시에 실력 있는 연출가 중 데뷔를 핑크 무비로 한 감독이 많았다. 제작자의 요구(베드신 3,4회)를 들어주면 다른 장면의 편집권은 연출가에게 있어 창작의 자유를 맘껏 누렸다. 대표적인 거장 중 한 명인 구로사와 기요시도 핑크 무비로 데뷔했다. 물론 이 작품이 이런 시스템에서 만들어진 건 아니지만 포스터와 촬영 등이 핑크 무비의 많은 작품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역시 시네키드답게 유럽 고전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가 몇 장면 보였다. 대표적으론 아가씨와 숙희가 코르셋을 입고 벗는 작품이었는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루이스 브뉘엘의 <욕망의 모호한 대상>이 떠올랐다. 이 영화에선 남자 주인공이 여자의 속옷을 풀어주는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은 남자 입장에선 조금 불쌍한 느낌을 줘서 조금 짠한 느낌이었지만 <아가씨>에선 시작하는 연인의 묘한 긴장감을 주었다. 반전이 있는 영화라 많은 정보를 알고 보면 흥미가 조금 떨어질 수는 있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아가씨>의 포스터를 보니 이야기와 캐릭터를 잘 설명해주는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론 <박쥐>의 포스터가 좋았는데, 이번 작품의 포스터 꽤 괜찮은 느낌을 줬다. 특히 네 명의 인물의 손만 봐도 많은 정보를 준다. 특히나 장갑을 끼고 있는 손이 그러했다. <아가씨>는 이야기와 캐릭터 주는 재미와 박찬욱의 유니크한 코미디도 흥미롭고, 기존 스타들인 김민희, 하정우, 조진웅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신인 배우 ‘김태리’를 만나게 된 것이 가장 즐거웠다. 순수하게 생긴 얼굴과는 상반되는 캐릭터를 만나 극단의 연기를 보여줬고, 베이비 페이스와는 다른 발성을 갖고 있어서 더욱 더 캐릭터의 입체감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하정우와 만드는 코미디는 영화의 톤을 다양하게 만들어 지루할 틈을 메워주었고, 김민희와의 아슬아슬하게 긴장감이 도는 멜로라인 또한 훌륭하게 해냈다. 최근 20대 여배우의 기근 현상이 있다가 김고은, 이유영, 박소담이 등장하면서 숨통이 트였는데 김태리는 이 배우들과는 또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었고, 벌써부터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여배우였다. 그리고 김민희는 이젠 30대 여배우 중 배두나와 함께 탑이 아닌가하다. 특히 최근엔 작가주의 감독들이 많이 찾고 있어 더욱 더 주목이 된다. 얼마 전 칸에서 홍상수의 차기작을 이자벨 위페르와 함께 찍었다고 들었는데 어떤 작품일지 벌써 기대된다. 또한 하정우는 <비스티 보이즈>와 <멋진 하루>에서 보여줬던 능글맞은 캐릭터를 다시 한 번 보여줬는데 전혀 식상한 느낌 없이 잘 소화해냈고, 조진웅은 많은 배우들이 꺼릴만한 역할을 맡아 연기를 했는데 특히나 엔딩에서 보여주는 그의 연기는 정말 압권이다. <아가씨>는 감독의 이름과 파격적인 설정 때문에 수많은 기대를 받고 개봉된 작품이다. 분명 호불호가 가릴 작품이지만 새로운 여배우의 탄생,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소재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번에도 증명되었지만 박찬욱은 언제나 차기작을 기대를 충족시키는 연출가이고 공산품 같은 영화가 즐비한 한국 영화계에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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