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범수가 지금 이 영화 개봉을 어떻게 생각할 지 참 궁금합니다. 우리나라 코미디 영화의 독보적 위치에 계신 분으로 얼마 전 개봉한 <킹콩을 들다>에서의 진지한 연기까지 폭을 넓히신 그가 생각하는 <정승필 실종사건>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영화일까요? 주연하는 모든 영화가 작품성과 흥행성을 갖춘 영화일 순 없겠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 대해선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정승필...>은 어찌보면 한국 영화의 미개척 분야인 '화장실 개그' 수준의 코미디와 가벼운 스릴러를 접목한 실험정신 가득한 영화이긴 합니다. 촉망받는 남자가 하루 아침에 사라진 초유의 사건 발생 후 주변 인물을 통한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과 실종자 이범수가 갇혀 있는 건물에서 탈출을 감행하는 눈물겨운 고군분투 코미디를 절묘히 섞어 새로운 창조물을 꾀한 작품이지요.
이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들의 면면을 보면 자타 공인 코믹 전문 배우인 이범수와 우리나라 코미디 영화에 나름 비중 있는 조연인 손창민, 이한위 김광규 그리고 김민선의 출연으로 상당히 좋은 라인업을 자랑할만 합니다. 그럼에도 광고처럼 대박 웃음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은 우리 정서와 맞지 않은 '화장실 개그'의 연출이 공감대를 엊지 못하고 있고 배우들의 다소 과장된 연기는 가뜩이나 웃어야할 장면을 찾지 못해 지루해하는 관객들의 참을성의 폭발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현실성 떨어지는 어설픈 코믹 설정 스토리를 살리려는 이범수의 고군분투는 역부족의 한계를 실감하며 비참한 최후를 맞네요. <...홍반장>, <해바라기>의 감동과 재미를 기억한 관객들은 이범수와 막강 조연들의 출연에 선뜻 지갑을 여실 수 있겠습니다만 이 영화를 본 뒤에도 지갑처럼 열린 마음일지...
1년의 세월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입니다. 이 영화를 보시고 눈치 빠른 관객들은 출연 배우들의 라인업이나 외모에서 뭔가를 느끼셨을 분도 계실텐데요... 조연 배우들 중 몇 분들은 요즘 잘나가시는 분들이라기 보다는 몇년 전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인기를 얻으셨던 분들이시고 이범수도 지금 모습보다 얼굴은 더 탱탱하고 근육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다듬어지고 있는 모양새를 보실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작품은 2008년 7월 23일 압구정 CGV에서 가칭 <그놈이 온다>라는 제목으로 완성되지 않은 시연을 한 작품입니다. 따라서 크랭크 인부터 촬영은 그 이전에 했다는 것이고, 그 이후 완성과 개봉까지 1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된 영화입니다. 최초 시연 후 상당기간 개봉하지 못해 기억에서 지웠다가 이번 개봉으로 당시의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고 정말 지워버리고 싶은 장면까지도 또렷이 기억나며 다시 구역질을 참게 합니다. 문제의 장면은 화장실에 갇혀 물을 먹고 싶은 이범수가 자신이 신고 있던 양말을 비내리는 창문 밖으로 내걸었다가 짜서 마시는데... 정말 당시의 정신적 충격은 아직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저를 괴롭힙니다.
실험정신 가득한 한국형 화장실 코미디의 진취적인 모험심은 가상하지만 지나치게 선구자적 이야기와 배우들의 웃음을 위한 과도한 의욕이 이런 결말을 초래했습니다. 호화 배역과 최고의 코미디 배우를 쓰고도 이 정도의 재미를 준다면 스토리나 연출에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고 봐야죠. 지금 개봉작품을 보면 뚜렷한 독주 작품도 경쟁 코미디 작품도 없는 이때가 그나마 이 영화가 선전할 수 있는 하늘이 준 기회가 아닐까 싶은데... 평점을 보면 이런 생각은 저만 느끼는 것은 아니것 같아 걱정이 앞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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