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사랑의 진맛을 조내관을 통해 느끼고 울어야만 했나.
나는 왜 조내관이 자꾸만 생각이 날까..
드라마를 봐도 친구들은 남녀 주인공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 감동을 받고 감정 이입을 시키는데,
난 왜 혼자서만 그들에게 버림받고 상처받는 인물들에게 내 감정을 다 바쳐대며 울어 대는 걸까.
사랑하는 여자를 이용해서 글을 쓰는 윤서.
사랑하는 남자를 숨겨둔 채 몰래 만나려고 했던 정빈.
두 사람이 사랑의 모습인가?
사랑은 이용하는 것이 아니며, 사랑하는 사람을 숨겨둔채 만나는 것은 가장 비겁한 짓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두사람의 경우는 다르다.
윤서와 정빈이 사랑의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표면적으론 그렇게 보였지만 결국엔 사랑을 해 내었으므로. 그 과정에선 이루어 냈으므로.
예술을 행하는 사람에게 사랑이란 없어선 안될 필요조건이다.
사랑받지 못함을 사랑하는 것 또한 말이다.
예술가에게 아니 모든 인간들에게 뮤즈는 중요한 존재이다.
사랑하니 만나고 싶고, 손 잡고 싶고 모든 행위의 시작이 사랑으로 시작된다.
거기에 예술가는 창작을 더 할 뿐이다.
사랑하니까 만나고 싶고 손잡고 싶은 것에 더 해, 그리고 싶고 노래하고 싶고 만들고 싶고 쓰고 싶다. 윤서처럼.
사랑하는 여인이 아니었다면 윤서가 과연 그토록 글쓰는 일에 행복해 하며 집중할 수 있었을까?
사랑을 나누는 행위에 못지 않게 알리는 행위 또한 행복에 겹다.
정빈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사랑임을.
그가 할 수 있었떤 사랑의 표현이었음을.
윤서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있게 된 정빈이 부러웠다.
비록 평생을 궁에 갇힌 채 늙어간다고 해도 단하나의 사랑을 이뤘으니 행복했을 거라고.
사랑이 어떤 모습이든 진정이라면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조내관의 이야기는 왠지 스포일러성이있어 말 안할게요.
영화 보신 분들은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아실 듯...ㅠㅠ..)
또 이런식이다. 항상 비극이라도 좋으니 진정으로 느끼기만을 바란다.
항상 비관적으로 빠진다. 나는 왜... 행복도 사랑도 슬프기만 할까.
아니 슬프기만한 것이 결국 내겐 진정으로 행복할까.
그래서 행복한 영화 음란서생이었다.
조내관 때문에 또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그가 부럽다. 진정으로...
.
.
.
두서없이 쓴 글이지만 조내관이 부럽다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