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가 아무리 많이 보장이 되고 예술작품의 선정성, 폭력성 등에 대한 검열규제가 아무리 완화가 되었다고 한들 음란물,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야설", "야동"과 같은 매체는 여전히 양지로 나오기 굉장히 힘든 것들이다. 이전엔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을 영화들이 가뿐하게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는다고 한들, 이렇게 대놓고 낯뜨거운 음란물이 12세 관람가, 15세 관람가를 받는 일은 현재로서 아무리 생각해도 힘들 것이라는 얘기다. 심지어 18세 관람가의 수준을 뛰어넘는 것들도 있는 마당에 뭐...;;;
그런 점에서 이런 "음란물"이라는 것이 겉으로는 얌전하고 모범적인 척하더라도 많은 일반인들의 속에 숨겨진 말초적인 욕망을 건드리는 데 탁월한 재주를 가진 놈들이다. 이 영화 <음란서생> 역시, 그러한 음란물의 강렬한 유혹에 이끌려 주체할 수 없는 음란본능을 발산한 양반들의 이야기이다. 물길이 좁을 수록 물의 기세가 거세듯, 그동안 그저 얌전만 떨었던 이 양반님들, 상상력이 제대로 대장이시다.
3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명문가 자제이자 손꼽히는 문장력을 소유한 윤서(한석규)는 선비로서의 행실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반면, 그 때문에 너무 몸을 사린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는 다소 소심한 선비이다. 그러던 중 왕(안내상)의 여자인 정빈(김민정)의 의뢰로 값비싼 그림을 베낀 범인을 찾는 일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림에 꽤 조예가 깊은 의금부의 고문기술자 광헌(이범수)을 만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이 들이닥친 곳은 웬 그릇가게. 그런데 그곳에서 왠 책을 베껴쓰고 있는 필사장이를 만나게 되는데, 그 책이 알고보니 그리도 난잡한 책이 아니었던가. 윤서는 이게 사람으로서 마땅히 볼 수 있는 것이냐면서 으름장을 놓지만, 그도 사람인 것이 책 속 단어 하나하나가 끊임없이 머릿 속을 맴돌지 않는가. 이리하여 그저 장난삼아 자신도 특유의 문장력으로 그런 난잡한 글을 쓰게 되는데, 아니나다를까 그가 쓴 글이 그런 책 유통계에서 꽤 잔뼈가 굵은 황가(오달수)로부터 "역작"이라는 찬사를 받지 않는가. 이에 삘받은 윤서는 본격적으로 "추월색(가을 달빛)"이라는 필명 아래 작품 연재를 시작하고, 나아가 광헌에게 삽화를 부탁하기까지 한다. 한편, 사건을 해결한 뒤 의뢰인인 정빈과 윤서의 관계는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하고, 둘 사이에는 비밀스런 애정전선이 형성하지만, 이들 사이에까지 그 난잡한 책이 끼어들게 되면서 분위기는 심상치 않게 변하는데.
최근 개봉한 사극 영화들 중에서 못만들었다는 소리를 들은 영화는 거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시각적인 면에서만큼은 하나같이 "명품" 소리를 들었고. 이 영화 역시 그렇다. 제목에 "음란"자가 들어가서 그저 섹스 코미디의 조선시대 버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언제 음란하다고 그랬냐는 듯 영화는 역시나 사극답게 때깔부터 달리 한다. <형사>, <장화, 홍련> 등의 미술, 촬영 팀이 촬영한 영화답게 영화는 웃음이나 재미는 둘째치고 화면을 통한 시각적 즐거움이 상당하다. 특히나 <음란서생>은 이전 사극 영화들이 갖춰 온 원색적인 아름다움에다가 빛과 그림자의 조화를 더해 보다 은은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강조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영화 속 사람들이 음지에서 남몰래 난잡한 책을 보는 듯한 그 은밀하면서도 화려한 이면을 나타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비주얼에 공을 많이 들여도 연기가 안되면 영화가 급격히 헐거워지기 쉬운데, 이 영화는 배우들의 연기까지 어느 한 사람 부족한 것 없이 만족스럽다. 주연 배우인 한석규, 이범수, 김민정을 비롯해 조역인 오달수, 안내상, 김뢰하 등의 연기까지 화면을 장악하는 힘이 대단한 배우들이 맘껏 연기력을 펼쳐주었다.
윤서 역의 한석규와 광헌 역의 이범수는 겉으로는 양반이라 얌전한 척 하면서 진지하게 웃기는 쉽지 않은 연기를 특유의 내공으로 잘 보여주었다. 한석규는 평소의 차분하고 조용한 이미지에서 살짝 오버스럽게, 이범수는 평소의 활달하고 밝은 분위기에서 약간 자제함으로써 적절한 앙상블을 보여주었다. 그래도 명색이 양반이라 체통을 지켜야지 줄곧 그러면서도 막상 작품(?)에 임할 때에는 상상력의 나래를 몸소 직접 보여주시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자세 시범에다가 신음소리 시범에 이르기까지, 암튼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정빈 역의 김민정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어린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그 포스가 전혀 밀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아일랜드>, <패션 70"s>에서 아역배우 출신다운 포스 그득한 연기를 선보여 온 바, 이번 영화에서도 때론 그 큰 눈망울로 남정네들의 마음을 사정없이 잡고 흔드는 청순가련의 여인으로, 때론 머리 끝까지 치미는 분노에 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인 "육시"라는 단어를 웃으면서 내뱉기까지 하는 팜므파탈의 모습을 보이며 두 대립된 이미지를 동시에 지닌, 그래서 더 매혹적인 여인 정빈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감초 역할인 황가 역의 오달수의 연기는 뭐 더 말할 것도 없다. 일단 목소리부터 들으면 절로 웃기는 배우인데, 그런 묘한 분위기의 목소리를 지닌 이 배우가 사극에 출연했으니 더욱 묘한 웃음을 선사한다. 그나마 자제하려고 하면서 할 짓 다 하는 양반들 사이에서 제일 본능에 충실한(?) 인물의 모습을 재미나게 보여주었다. 마지막에 가서는 의외의 변신을 보여주면서 또 제대로 웃음보를 건드린다.
이외, 왕 역의 안내상과 조 내시 역의 김뢰하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두 배우 모두 그동안 영화계에서 단단히 그 연기력의 내공을 굳혀 온 바, 이번에도 말만 조역이지 주연들에 비해 전혀 포스가 뒤떨어지지 않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왕으로서의 체통때문에 무뚝뚝하고, 그때문에 사랑 앞에선 눈물조차 아껴야 하는 어찌보면 참 불쌍한 사람인 왕의 연기를 제대로 보여준 안내상, 내시라는 성적 한계때문에 사랑이라는 근본적 감정 앞에서 냉정해져야 하는 조 내시의 연기를 잘 소화한 김뢰하 모두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 한국영화 조연배우들의 위력을 보여주었다.
영화 제목에서부터 "우리는 음란하다우"라고 대놓고 강조한 바, 이 영화 음란한 건 사실이다. 자극적인 노출이나 격렬한 정사신 같은 건 없지만 그저 말로 시범으로 표현함으로써 어딘가 비밀스럽고, 그래서 왠지 더 바람직하지 못하고 음란하게만 느껴지는 그런 면이 많은 영화다. 직접적으로 표현을 안해도 문장력,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양반들의 욕망은 건전함을 벗어난지 이미 오래다. 정말 이게 야설인지 서커스단 이야기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자세도 등장하니, 현재 우리들보다 더 욕망을 징하게 참은 만큼 영화 속 양반들은 더 신명나는 음란내공을 선보인다. 물론 재차 강조하듯, 아무래도 양반들이니만큼 자제하면서 할 거는 해 가는 관계로 무슨 제한상영가급의 음란한 상황들은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유념해두시길.
그런데 이런 양반들의 난잡한 책에 대한 욕망은 당시 상황과 꽤 잘 맞아떨어진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왕의 남자>와 비슷하게 이 영화 역시 당대에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적잖은 갈등을 벌인 인간군상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이랑은 비교도 안되게, 특히 양반들은 신분상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못하면서 매순간 자신의 욕구를 꾹꾹 누르면서 살아와야 했을 것이다. 그때문에 때론 대단히 비합리적인 상황까지 만났을 것이고.
영화 초반 윤서가 맞닥뜨리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남동생이 억울하게 나라로부터 죽기직전까지 흠씬 두들겨 맞고 와서는 가족들의 속을 뒤집어놔도, 윤서는 양반의 체통상 괜히 윗분들의 속을 건드릴 자신이 없다. 이때문에 가족들마저 그저 양반의 체면때문에 진정 맘에서 부글부글 끓는데도 상소 한번 못올리냐고. 그저 이 순간 한번 뿐이었으랴. 그놈의 신분, 그놈의 시대상황 때문에 그 당시 양반들은 마치 감정도 없는 인조인간인 양 바람직한 생각, 형식적인 행동들만 되풀이해 왔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소재가 되는 "난잡한 책"은 그들의 욕망이 집대성되는 매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디론가 제대로 탈선을 시도해보고 싶어도 그저 체통 지키랴 제대로 할 수도 없는 현실에서, 어둠 속에서 가만히 고개를 들고 나타난 이 야설 모음집은 그들에게 여기로 와서 욕망을 맘껏 발산하라고 유혹한다. 그 결과, 최고 문장가로 소문난 윤서는 그 실력을 음란물에 잔뜩 쏟아부음으로써 떠오르는 음란물계의 신성 "추월색"이 되고, 죄인들 고문하느라 근엄 떨기에 바빴던 광헌은 취미삼아 그린 그림 실력을 쏟아부어 음란물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게 된다. "우리 가문을 어떻게 보고!!", "이게 양반으로서 할 짓이오!!"하면서 노발대발하다가도 오히려 일반인들의 상상력을 훨씬 뛰어넘는 음란한 상상력을 발산하는 등, 한번 물꼬를 튼 그들의 음란물로의 욕망은 무서운 줄 모르고 물밀듯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렇게 음란물 분야에서 양반들이 맘껏 펼치는 탈선모드는 비단 이렇게 상상 속에서만 국한되지 않고 현실에서 상당부분 중첩된다. 그들을 둘러싼 애정전선이 그것을 반영한다. 윤서는 부인까지 있는 몸인데도 딴 여자, 그것도 왕의 여자인 정빈과 모종의 애정행각을 나누고, 그를 둘러싸고 왕과 조 내시 사이에서도 묘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왕은 사랑 앞에서 그저 왕으로서의 체통때문에 눈물도 최대한 아껴야 하고, 조 내시 역시 자신의 신분때문에 사랑의 감정 앞에서도 끝까지 "거기(급소)가 아니라 여기(머리)의 명대로 따라야 한다"고 남들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최면을 건다. 그만큼 비단 윤서나 광헌같은 이들 뿐 아니라, 어쩌면 조선시대 모든 계층의 사람들, 심지어 왕까지 마음 한 구석에 신분같은 거 전혀 개의치 않고 그저 마음 내키는대로 행동하고픈 욕망이 부글거리고 있었을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그 야설 속에서는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아크로바틱을 방불케 하는 지경까지 나아가는 반면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여전히 세상의 눈은 무섭고, 더구나 그러한 일탈을 향한 서로의 욕망이 정면 충돌하게 되면서 피바람을 예고하기도 한다. 신분이 제약하고, 인간관계에 있어서의 상대방들이 서로를 견제하는 현실에서 욕망에 충실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영화의 분위기는 초중반엔 양반들의 성적 상상력이 판타지스럽게 이어지다가 후반부에 가서 현실과의 충돌로 진지하게 때론 험악하게까지 분위기가 바뀌기도 한다. 갑작스런 분위기 전환에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영화가 무턱대고 음란하고 야한 게 아니라 그런 음란함에 대한 욕구가 현실과 맞부딪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영화 속 양반들은 현실과 만만하게 타협하지 않는다. "음란하면 어떻고 남들이 우리더러 음란하다고 손가락질 하면 어때? 사람들 대부분이 우리처럼 한번 음란해지길 어쩌면 꿈꾸고 있을 테고, 우리가 그 방면에서 선도 역할을 하고 있으니 뭐 이대로 나가는 것도 꽤 괜찮은 인생이지"하면서 한량들 특유의 여유로운 태도로 자신의 상황을 낙관적으로 바라본다. 어쩌면 현실을 은근히 조롱하는 걸 수도 있을 것이고. 끝까지 자신들의 붓을 꺾지 않는 걸 보면, 그래도 양반답게 지조는 꽤 굳은 양반들인 듯 싶다.
이렇게 영화는 우리가 은근히 기대하는 것처럼 엄청 야하고 음란한 장면들의 나열로 후끈후끈거리게 하는 시츄에이션은 만들지 않지만, 적어도 순간순간 음란한 양반들의 상상력을 통해 "허걱!" 소리가 나게끔 우리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비밀스럽게, 그래서 더 음란하게 성적 상상력을 자극한다. 나아가 성적 상상력을 대표로 삼아서 보다 본능에 충실하고 마음이 가는대로 맘껏 즐기는 양반들의 모습을 통해 시대의 제약에서 벗어나는 일탈의 묘미를 맛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릇사러 왔다는 말로 대신해야 할 만큼 겉으로 대놓고 드러내기에는 매우 민망한 욕구들이겠지만, 그래도 이것이 인간의 영원한 욕망인 이상, 이렇게 빛과 그림자 사이로 조심스럽게 빨간책을 돌려 읽는 사람들의 모습은 비단 조선시대 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보일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보다 확 음란한 양반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대담한 구석은 있는 양반들일세!
한마디 더 :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의 장면을 절대 놓치지 말 것. 이 양반들 알고보니 음란 센세이션만 일으킨 게 아니라 현 시대를 예측한 희대의 발명가들일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