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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대부의 조선 데카당스 선언 음란서생
jjcrowex 2006-02-21 오전 8:29:09 1138   [3]

 cgv 관교 시사회 다녀왔습니다.(2/20) 
 

- 일부 스포일러가 있을지도.


오랜만에 영화를 본 후 가상의 친구 '담비'를 만나 이런저런 담소를 나눴
다.

 


PART 1 - 역사 >인물  혹은 역사 <인물, 당신의 취향은?

신식 : 담비, 오랜만이야. 영화를 본 느낌이 어때?

담비 : '사극'을 통해 사람들은 두 가지 관점을 가질 수 있어. 역사 >인물이냐 혹은 역사 <인물이냐지. 전자의 관점을 고수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이 영화가 재현하고 있는 모습들을 '고증'하는 느낌으로 바라볼거야. 그런 점에서 이 영화가 표방하는 '현재적'인 느낌들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수 있어.

'시대'는 '그 속의'시대를 말해야 한다는 입장이 강하거든. 그러나, 후자는  달라.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유연성을 견지하지. 이 사람들에겐 본 작이 나타내는 '현재'의 느낌들이  충분히 허용될 수 있는 거야. 난 후자쪽이지.

신식 : 나도 그래. 미술사로 얘기를 풀어가자면 이 영화는 '역사'속에 인물을 녹여내는 다비드의 그림 이라긴 보단 '역사'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인물'이 죽어버렸다고 자신의 스승 다비드를 비판한 '앵그르'의 그림- 그는 인물의 역동성을 강조했다.-이 주는 느낌을 갖고 있다 할 수 있어. 만약 이 작품이 '조선'이라는 역사의 큰 틀에서 인물을 가두어 버렸다면 이 영화의 포인트인 '음란'을 확실하게 재현할 수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 어쩌면 '시대'란 부차적이지. 시대를 추동하는 '인물'에 포커스를 두고 있는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어.

 

PART 2 - 윤서 인 러브

담비 : 자네 이 영화를 보면 뭔가 떠오르는 유사한 작품이 생각나지 않나? 존 메든 감독의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난 떠올랐어. 진정한 예술혼을 불태울 자극이 필요했던 셰익스피어에게 나타난 바이올라처럼 윤서의 소심함 속에 잠재된 '표현'의 욕구를 일깨워주는 '정빈'(김민정)의 역할은 이 작품에서 중요하지.

신식 :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보여진 '당파 싸움'이 '붕당정치'란 좋은 의미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피'와 '눈물'로 점철된 엄청난 세력 다툼이 있었잖아. 그러한 치열한 분쟁 가운데 초연한 인물이 하나 둘 쯤은 있게 마련이야. 영화는 바로 소심하지만 곧은 성품을 가진 '윤서(한석규)' 를 선택하여 풍자와 해학의 마당을 열려고 해.

담비 :  윤서가 몸담고 있던 사헌부는 사간원, 홍문관과 함께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언론기관이었어. 탄핵과 정치에 관련된 논의를 통해 왕의 의견이 틀리면 반대를 표할 수 있었지. 그런 '윤서'에게 시대는 '강직함'을 요구하지만 영화 속에선 특이하게 여리고 소심한 성품으로 나와. 그런 점에서,
'음란'이란 비아그라를 접하게 된 윤서가 '창작열'에 불타올라 점점 대담해지는 과정이
인상적이야. 이것은 '정빈'의 욕구와 맞물려 윤서 자신에겐 '창작'을 향한 시너지 효과로 영화 속에서 나타나고 있어.

신식 : 금부도사 광헌의 이야기를 해보자면 사람들이 이 캐릭터를 통해  '농(弄): 희롱하다'이
심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현대적인 캐릭터로 표현되고 있어. 아마도 이범수의 마스크에서 나오는 느낌이라고 할까. 젊은 관객들은 좋아하겠지만 전술된 '고증'적 시선을 견지하는 사람들에겐 다소 지나치다라는 느낌을 줄 것 같아.

담비 : 그 점엔 동의해. 특히 고문을 당한 윤서를 도와주다 조 내관(김뢰하)이 이끌고 온 자객들과 결투를 벌이는 장면이 나오자나. 이 장면은 오히려 들어가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좀 진부한 느낌이 들었거든. '과거'를 통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모습들을 충분히 나타낼 수 있다고 주장하는 영화적 자신감은 알겠는데, 이러한 결투 장면이 가지고 온 느낌은
'클리셰'의 단순한 '첨가'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어. '농'이 지나쳤다구.


PART 3 - '과거'를 통한 현재의 모습 바라보기

신식 : 이 블랙코메디가 노리는 효과는 '과거'를 통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의 진정성을 돌아보길 원하는 거지. 그러한 점에서 영화 속 풍자의 대상과 그 행위는 그 범위가 비단 조선 시대가 아닌 우리 시대의 관심사까지 포괄하고 있어.

담비 : 특히 윤서가 자신이 상상했던 성교 자세를 황가와 필사, 모사장이들에게 설명하는 대목이 나오잖아. 그 중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얼마든지 성교를 할 수 있다고 언급하는 장면에서 난 왜 클린턴 전 대통령 이 르윈스키와 사무실에서 섹스를 하는 도중 동시에 결제 업무를 했다는 미국 특별 위윈회 보고서의 내용이 생각났는지 몰라. ^^

신식 : 하하. 생각해보니 그렇군. 비단 그 뿐만이 아니지. 윤서가 쓴 작품이 인기를 얻자 일종의 '팬덤' 현상도 나타나고, 황가와 윤서가 책에 대한 앞으로의 구상을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이 원하는 이야기'와 '내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의 간극이 있음을 깨닫고 서로 논쟁을 벌이는 과정엔 요즘 예술이 고민하는 점도 부각되고 있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세계와 대중지향성의  적합한 지점을 찾기 위해 '윤서'는 고민하지.

담비 : 영화는 그러나 다소 시대 속 '인물'에 주안점을 두다 보니 염려되는 부분이 있음을 시인하고 있기도 해. 윤서의 대사 중 '현실은 때로 비현실적인 것이다'란 대목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시대'의 전형성과는 다른 모습들을 나타내는 것의 '강도'가 너무 세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에 이 영화를 너무 시대에 국한시켜서 바라보는 행위는 삼가시오!라고 친절하게 주의를 주고 있거든.

신식 : 영화의 메시지는 쉬워. 본 작의 감독인 김대우씨가 <스캔들>의 각본을 쓸 때도 그랬지만 '왜 옛날 얘기를 통해 우리는 옛날 생각만 해야하는가?'란 의구심을 <음란서생>에서 동일하게 가져왔지. 결국 '역사를 통해 현재를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내용의 정서가 지배적이야. 영화의 외향적 정서를 감싸는 '선정성'과는 다르게 영화의 내적 메시지는 착하고 반듯하지.

담비 : 그러나, 그러한 '반듯함'을 뛰어넘는 '가식과 허위'에 대한 조롱, 신분이 압제하고 있는 인간 본연의 '욕망' 과 '자유' - 특히, 이 작품이 주시하는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가 점점 상실되어 가면서 다시 복원해야 할 '인간'  자체에 대한 가치를 강조하는 영화의 목소리도 간과할 수 없어.

신식 : 결국 이 소심한 사대부의 데카당스 선언은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소외되었던 서발턴(하위 주체) 들의 비애, 대중들의 삶의 면면을 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코드가 되는 거겠지. 영화가 택한 '언어'가 통속적이라고 해서 마냥 부정적인 시선을 보낼 수 없는 것은 '고급스러움'으로 자신을 포장하여 모두가 느끼고자 하는 '공감대'를 천박하게 여기는 현존하는 '일부 세력'들이 여전히 소시민들에겐 얄미운 공공의 적이자, 야설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야.

담비 :  결국 이 '젊은 사극'은  명나라 때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는 '금병매'의 '에로티시즘' 자체에
주목하기 보단 에로티시즘이 사람들에게 가져다 준 '영향력'에 포커스를 두고 있지.

신식 :  어쩌면 이 '펄프 픽션' 이 추구하는 가장 깊은 속내는 예전에 까뜨린느 브레이야 감독의
<섹스 이즈 코메디>에 나왔던 대사로 대변될지 모르겠어.

"음란할까봐 두려우면 그게 정말 음란한 것이다."

담비 : 결국 '타자'의 시선과 압박 가운데서 확실한 '옳고 그름'의 정신이 '나'에게 있다면
그것은 비단 같은 시대에선 비난받고 고통받을지 몰라도, 언젠가는 그 진심을 알아줄 날이
올것이란 말이겠지. 우리가 알고 있는 마네, 뭉크, 잭슨 폴락 등등 유명한 아티스트들도
처음엔 '너무 앞서간 죄'로 현재 받고 있는 찬사 이상의 '비난'을 들었듯이 말이야.


신식 : '농(弄)'으로 시작해 '농(弄)'으로 끝나는 영화지만 왠지 내가 조롱받고 있다는 느낌
보단 뭔가 '해야겠다'는 자발적 의지가 생겨.

담비 : 그렇다면 당신은 이 영화가 선사한  수많은 선물 중 당신이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선물'을 고른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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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란서생(2006, 淫亂書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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