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타협하는 삶 속에서 잊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행복일 듯.
이 때문에 영화의 라스트에선 뒷목 뻐근해지는 울림을 받았다.
주인공은 타협하지 않는 인물이다.
반상의 제도가 버젓이 존재하던 시절, 소위 시대를 잘 타고난 선비였지만,
정작 자신과는 맞지 않은 시대완 타협하지 않고 행복을 찾아 위험한 길을 걷는다.
이 영화가 사극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너무나 확실하다.
우리를, 아니 나를 보더라도.
21세기를 살아가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있어서 누군가로부터 발목을 붙잡혀가면서까지 반대받는 일은 없다.
내가 하고 싶으면 열심히만 하면 되는 것이고, 그것이 우리가 태어나면서 가진 자유다.
그러면서도 왜 나는 수없이 타협하고, 왜 쉬운 길을 향해 가려하는가.
왜 남의 손을 잡으려 하고, 그 속에서 남을 뛰어 넘으려 하는가.
그러면서 처음 가졌던 행복과는 점점 멀어지는 것을 모른 채.
이 영화는 우리가 살아 가고 있는 시대와는 대조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주인공을 통해
그의 (가슴 먹먹한) 행복에 대해 그려나감으로써 더 큰 울림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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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에게 통쾌한 웃음을 줄 수도 있겠지만, (예고편의 느낌대로)
내겐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영화였다.
행복하려면 윤서(한석규) 처럼.
혹은 조내관(김뢰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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