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유독 우리나라 공포영화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작년 여름동안 김지운 감독의 [장화,홍련]이 우리나라 공포영화를 평정해버린 탓인지 모르지만 올해 여름에는 유난히도 국내의 공포영화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더군다나 복안사, 물,인형,전쟁 등 기존의 한국 공포영화들이 매번 사용해 온 소재와는 사뭇 달리 신선한 소재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올해는 더욱 풍성한 공포를 즐기는듯 하다. 그런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한편의 영화가 바로 [분신사바]일 것이다. 한때 여자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열풍처럼 퍼졌던 주술 "분신사바"를 소재로 한 영화 [분신사바]는 [가위],[폰]등으로 공포영화에 있어 특별한 인정을 받은 안병기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더욱 많은 기대를 가지게 해줄 것이다. 특히, 공포영화에 있어 자신의 색깔을 가진 안병기 감독의 [분신사바]라는 영화는 신인감독들 위주로 만들어진 공포영화들과는 달리 안정된 연출력과 흥미로운 스토리에 신뢰를 가지게 된다는 점에서도 [분신사바]는 호기심과 기대를 동시에 가지게 해준다. 어쩌면 [분신사바]는 김규리,이세은,이유리라는 세 여배우의 이름에 앞서 안병기 감독이라는 이름 세 글자에 더욱 주목하게 만드는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영화는 호기심 많은 세 여고생이 분신사바를 통해 한많은 한 영혼을 불러내면서 시작된다. 다들 알다시피 "분신사바"란 일종의 소환술로 "분신사바 분신사바 오잇데 구다사이"라는 주술로써 영혼을 부르는 것이다.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시작된 이 분신사바로 인해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스테리한 사건들이 일어나게 된다. 그것은 학생들이 하나둘씩 얼굴에 검은봉지를 덮어 쓴 채로 불을 질러 타죽는 것이다. 영화 [분신사바]는 매번 현대적이고 색다른 소재를 선보인 안병기 감독의 전작들과는 달리 다소 진부하고 고전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다소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여학생들 사이에서 널리 퍼진 "분신사바"라는 주술이 충분히 공포의 소재가 될 수는 있지만 매번 우리나라 공포영화에서 단골 소재로 사용된 여고생과 여고에서 내려오는 괴담, 그리고 왕따까지 우리나라 공포영화의 소재들을 모두 끌어다 사용한 듯한 느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한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학생이 분신사바를 통해 영혼을 불러내고, 역시 억울한 그 영혼이 자신을 불러낸 여학생의 몸을 빌어 복수를 하게 된다는 영화 [분신사바]의 설정은 진부한 소재만큼이나 뻔하고 틀에 박힌 스토리 전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가위] 역시 왕따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었음에도 현대적이고 젊은 감각으로 꽤나 신선한 공포를 선보였고, [폰]은 핸드폰이라는 소재로써 일상적인 공포에 접근했던 안병기 감독의 전작에 비하면 [분신사바]가 보여주려는 공포는 기존의 우리날 공포영화들이 보여주던 공포스런 요소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느낌이다. 특히나 여고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박기형 감독의 [여고괴담]의 틀을 그대로 갖추고 있는 느낌을 감출 수가 없는 것이다. 여고를 배경으로 한 여느 공포영화들이 그렇듯이 [분신사바]도 이제는 식상하고 진부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안병기 감독의 [분신사바]가 가지는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바로 영화 속에서 조금씩 드러나는 과거사에 얽힌 이야기이다. 과거의 비밀이 현재로 옮아 온다는 설정 역시 영화를 더욱 난잡하고 산만하게 만들어 버린 느낌이 있지만 전통적인 공포요소를 가지고 있음에도 영화가 품고 있는 과거의 진실을 풀어가는 과정은 꽤나 흥미롭고, 공포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외딴 마을로 흘러 들어온 어딘지 모르게 비밀스러운 두 모녀와 그들을 바라보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두 모녀의 미스테리한 사건들은 영화 [분신사바]를 진부한 공포에도 불구하고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이유가 되어준다.
그리고 [분신사바]가 가지는 또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렇다할만큼 관객들의 뇌리에 박히게 할 캐릭터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시종일관 알 수 없는 행동과 겁에 질린 표정을 하고 있는 여학생, 어딘지 모르는 비밀을 간직한 듯한 여자 미술 선생님,그리고 영화의 시작과 함께 화두로 떠오르는 30년전 의문사한 김인숙이라는 여고생까지 영화에서 보여주는 캐릭터들은 딱히 강렬한 이미지를 가지거나 개성을 드러내지 못함으로써 그저 밋밋하고 뻔한 공포영화 속 주인공들로만 비쳐지고 있다. 사건을 풀어나가는 인물들과 과거에 얽힌 마을 사람들 등 지나치게 많은 인물들이 한 사건에 연관되어 있는 설정 역시 영화가 전하려던 특정 스토리나 캐릭터의 특징을 흐려버리고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산만하게 만들어 버림으로써 영화의 공포감을 더욱 반감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앞서서도 말했지만 영화 [분신사바]가 관객들의 시선을 끌게 하는 것은 공포영화라는 장르가 가지는 일반적인 호기심과 함께 안병기라는 감독의 이름이 큰 몫을 차지할 것이다.우리나라에서 주로 공포영화를 연출하는 몇 안되는 감독 중에서도 유독 내놓는 작품마다 흥행에 성공한 감독이기에 더욱 그럴것이다. [가위]나 [폰]을 통해 특유의 젊은 감각과 현대적인 공포를 보여준 안병기 감독은 가장 전형적인 공포영화의 공식을 보여주면서도 그 속에 신세대적 트렌드를 가미함으로써 젊은 관객층에게 어필하는 공포영화를 선보였기 때문에 그 재능을 인정 받는 것이다. 그렇지만 신작인 [분신사바]의 경우 다소 아쉬운 부분이 많다. 왕따, 여고생,과거와 현재의 연계,모녀,배타주의 등 그야말로 공포영화의 주요 소재들을 총집합한 스토리와 전작들에서 보여준 젊고 긴장감있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사에 연연하며 밋밋하고 맥빠진 공포를 유발하는데 급급해 하는 흔적이 역력해 보인다.
또한 제목인 "분신사바"라는 주술을 그저 영화의 시작에 잠깐 등장시켰을 뿐 주요 소재가 무엇인지 조차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영화는 지나치게 많은 이야기들을 보여주려 애쓰고 있다. 단지 분신사바는 영화의 주된 스토리를 형성하려한 오프닝 소재에 불과하게 되었으며 최면이나 무당의 신비한 능력, 빙의와 미스테리한 사건 등 그야말로 온갖 소재들이 짜집기되어 영화 자체가 난잡하게 된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야말로 안병기 감독의 [분신사바]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갖가지 공포요소들이 제각각 혼합된 두서없는 공포영화라는 느낌마저 들게 할 것이다.
진부하고 고전적인 스토리 속에서 역시나 빛을 보지 못한 것은 배우들의 캐릭터와 연기이다. 지나치게 자주 등장하는 귀신의 형체는 후반으로 갈수록 그를 통해 전해주는 시각적인 공포마저 식상하도록 해주고, 밋밋한 스토리 속에서 비명만 질러대는 캐릭터들과 조연과 주변의 여러 인물들의 어색한 연기 역시 관객들에게 소름끼치는 공포감을 조성하지 못하도록 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런 화면 속에서도 그나마 눈에 띄는 것은 TV 드라마를 통해 영화로 데뷔하는 이유리와 오랜만에 공포연기에 도전하는 이세은이다. 30년전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분신사바를 통해 다시 나타나 복수를 하는 김인숙을 연기한 이유리는 시종일관 특수분장한 얼굴과 괴기스런 표정으로 공포를 준다. 어딘지 모르게 어둡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김인숙을 연기한 이유리의 모습이 유독 강한 이미지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분신사바를 통해 김인숙을 불러내고, 그로인해 공포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이유진을 연기한 이세은 역시 커다란 눈과 날카로운 표정연기로써 공포영화 속 캐릭터를 실감나게 연기하고 있다. 시종일관 겁에 질린 표정과 비명만 지르는 이유진이란 캐릭터 자체가 다소 밋밋한 느낌이지만 이세은의 연기로써 관객들을 화면에 집중하도록 해주고 있다. 그리고 [분신사바]를 통해 오랜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김규리는 오랜 공백 탓인지 기존의 영화들에서 보여준 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무미건조한 공포연기를 보여주는 듯한 느낌이다. 이번 영화를 통해 색다른 연기변신을 시도한 흔적이 엿보이지만 기존의 연기에서 크게 변화한 것이 없다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렇게 [분신사바]는 공포영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캐릭터들을 실감나게 나타내지 못함으로써 영화의 재미를 충분히 전달하지 못한것이 가장 큰 약점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여름만 되면 경쟁이라도 하듯이 공포영화들이 하나둘씩 선보이곤 한다. 그 중에서 관객들의 만족을 얻어내는 작품은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점에서 유독 공포영화들이 많이 제작된 올해 여름은 특히나 안병기 감독의 [분신사바]라는 작품에 내심 기대를 하도록 만들어 줄 것이다. 영화 한 편 속에 너무 많은 공포를 보여주려 했고, 너무 여러가지 요소들을 집어 넣음으로써 영화를 보는내내 힘겨운 느낌마저 준다. 안병기 감독에게서 기대했던 관객들의 구미를 땡기게 하는 긴장감도, 단순한 공포영화가 주는 깔끔한 공포도 얻지 못한 채, 그저 영화에서 보여주는 괴기스런 형상과 배우들의 비명소리만 감상하고 나온 듯한 느낌만 들뿐이다. 안병기 감독의 전작들을 통해 만족을 했던 관객이던 그렇지 못한 관객이던 [분신사바]는 그리 흥미로운, 그렇다고 그리 개성있는 공포영화도 아닐 것이다. 단지 감독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려 한 갖가지 이야기들과 공포스러운 요소들의 무게에 짓눌려 버린 한 편의 무거운 공포영화라는 생각에 아쉬움의 무게만 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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