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쉽게 동화되기에는 나름의 거리가 있어 보였다. 그가 간직하고 있는 사유의 스펙트럼이 결단코 만만하거나 단순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데 있어 송일곤 감독은 상당히 겸손하고 유연했다. 섬뜩하면서도 날카로운 영화의 날을 주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세우는 <거미숲>의 당찬 스타일과 달리 말이다.
질퍽하지만 매혹적인 이미지를 기억에 관한 치명적인 여정에 실어 9월 3일 공개할 <거미숲>의 송일곤 감독을 담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살맛나는 끽연과 함께 편안한 자리에서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왠지 모르게 영화에 관한 정보나 글을 얻고자 할 때 온라인 쪽은 잘 이용하지 않을 거 같다.
아니다. 전혀 아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돌아본다. 무비스트도 잘 들어가 본다. (일단, 송일곤 감독 여기서 먹고 들어갔다)
예상했던 대로 평단과 기자단은 환호하는 분위기고, 대중은 좀 어렵지 않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나 역시 예상했던 부분이다. 상업영화를 표방했다면 감독의 주관이 많이 빠지고 친절하게 풀어갔어야 했는데, 애초 시작할 때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중심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었다. 그렇다고 <꽃섬>처럼 아트하우스를 표방한 것도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새로운 것을 개척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 반응이 나온 거 같다. 내가 들은 바로는 20~30%는 굉장히 좋다고 그러고 나머지는 어렵다고 하더라.
그리고 난해하다고 느끼는 분들에겐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
내용이 쉬운 영화는 금세 알아채고 딱 떨어지는 쾌감이 장점이다.. 하지만 생각을 좀 더 많이 이끌어내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재미는 난해한 영화만의 또 다른 맛이 아닌가 싶다. 감독이 강요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이런 세계가 있다. 이런 세계도 경험하는 거 어때?”처럼 하나의 권유처럼 받아줬으면 한다. 김치찌개를 줄곧 먹다가 오다가다 멕시칸이나 이태리식 음식을 먹고 싶을 때가 있듯, 좀 낯설어서 그럴 뿐이지 가끔은 이런 영화도 좋다고 본다.
술을 다시 먹고 있는 중이다. 한 동안 몸이 안 좋기도 했고 영화 작업 때문에 일부러 멀리하는 등 나름대로 건전한 생활을 좀 했었다. 하하하! 그러다 보니 술을 마시고 싶더라. 술 정말 좋아한다. 그래서 친구들과 오랜 만에 많이 먹고 있다. 그 외 시간에는 주로 차기작을 구성한다.
무슨 작품인지 말해 줄 수 있나?
아직 말할 단계는 아니고, 여러 아이템 중 하나를 고를 예정이다. 써놨던 시나리오를 택할 지 아니면 새로운 걸 할지 내 자신도 아직은 모른다.
기자시사 후 지인들이나 한 다리 건너 들은 얘기 중 가장 많이 들은 얘기는 무엇인가?
“영화 좋더라. 근데 그건 당최 어떻게 된 거냐?
이런 말을 많이들 하더라. 자신들이 나름대로 생각하는 거랑 감독의 생각이랑 비교해보고 싶은 모양이다. 워낙 은유나 상징이 많은 영화다 보니 그 길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한 게 맞은 건지 궁금해 하는 친구들이 적잖이 있었다. 하지만 <거미숲>의 장르 자체가 미스테리 다 보니 개봉 전엔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말을 조심하고 있는 중이다.
전작인 <꽃섬>의 경우 개봉관이 10개관에도 못 미쳤다. 그런 후 당신은 대중과 소통하고 싶다며 착착한 심정을 밝혔다. 이번 영화를 찍고 나니 그때랑 비교해 어떤 생각이 들던가?
<꽃섬> 때는 홍보상으로 한계가 있었다. 조폭영화가 각광받는 시대였으니까. 내 작품말고도 <나비>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 작은 영화은 아주 성적이 안 좋았다. 언론이 많이 도와주긴 했지만 배급에서 너무 밀렸다. 대박을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그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 작은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관객들도 있을 텐데 규모가 큰 상업 영화가 다 장악을 했으니....어쨌든 그런 분들이 그런 영화를 만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는 사실에 좀 많이 속상했다.
하지만 <거미숲>은 스타가 나오고 장르적인 선택을 한 영화다. 게다 35미리 영화다. 그러다보니 당연 <꽃섬>보다는 많은 관객을 만날 거란 기대가 분명 존재한다. 좀 더 많은 극장에서 영화가 상영됐으면 하고 나 역시 내 영화를 보는 관객과 이런 저런 소통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
<거미숲>을 시작한 동기가 있을 게다.
하나의 동기로 묶여지지 않는다. 일단 내 관심이, 그러니까 내 나이인 30대 중 초반에 표현하고 싶었던 건 한 사람의 내면에 관한 이야기였다. 상처는 어떤 식으로 치유되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것들은 과연 무엇인지......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미스터리 장르를 선택하게 됐다. 그런 와중, 나에게 여러 모로 영감을 준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미지로 연상됐다.
결국, <거미숲>은 일정한 틀에 의해 기획된 작품이 아니라, 내가 평소 관심을 가졌던 인상 깊은 주제들에서 연상된 이미지로 출발했다 볼 수 있다.
미스터리라는 장르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장르라는 건 관객들이 기대감을 갖고 온다는 말이다. 장르가 주는 즐거움을 펼치고 싶었다. 미스터리라는 건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이라 본다. 그 사건이 왜 일어났는지 그 과정을 찾아가는 이야기. <거미숲>이 바로 이런 내러티브를 지닌 영화이기에 미스터리가 가장 적합했다고 봤다.
그렇지는 않다. 그런 걸 의식하진 않았다. 모든 장면은 다 대중을 생각하는 동시에 시나리오 콘티 하에 이뤄 졌다. 이 장면은 장르적으로 가자! 이런 방식으로 촬영된 컷은 없다. 오히려 그런 걸 자꾸 의식하게 되면, 다시 말해 기획영화가 종종 실패하는 경우가 말해주듯 이 같은 관습을 좇아가면 안 좋은 결과를 낳을 때가 많다. 예측되는 것들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 영화가 아니게 때문에 특정 장면에 더 심혈을 기울여 장르적으로 가려고 하진 않았다.
러닝타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들어낸 장면이 있을 거다. 그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신이 있다면
원래는 2시간 16분인데 서 기자가 말한 대로 극장 상영 회차에 맞추느라 들어내야만 했던 신이 있다. 물론, 해외 편집본은 그대로 간다.
음, 가장 안타까웠던 신은 위험한 사랑을 나누는 아나운서와 감우성의 관계를 잘 들어내는 4분여에 달하는 초반부 신이 있는데 그게 정말 아쉽게 느껴진다.
후에 출시될 DVD로는 볼 수 있나?
물론이다. 그래서 그나마 위안이 된다.
이번 영화를 연출하면서 아쉬웠던 부분도 있었을 텐데.
저예산이라 외적 여건을 다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촬영에 들어갔다. 그러다보니 스탭들이 본의 아니게 고생을 많이 했다. 그들에게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 다음에 캐릭터를 묘사하는 신에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좀 더 치밀하게 찍었어야 하는데 말이다. 또, 조금 더 넉넉한 시간 속에서 작업이 이뤄졌다면 원 없이 수많은 장면들을 구상하며 촬영에 임했을 텐데 시간에 쫓기는 바람에 그러질 못했다, 겨울에 촬영하느라 환경적인 면에서도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남고.
그래도 <거미숲>을 통해 나름대로 얻은 것도 있을 거다.
당연한 말이다.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 스탭을 비롯한 영화에 관계된 많은 사람들과 친분을 맺었다는 게 개인적으론 너무 행복하다.
그나저나 초반 장면이 굉장히 충격적으로 와 닿았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 있어 일단 그렇게 치고 들어가는 스타일을 선호하는지.
앞으로 만들 영화가 다 그렇지는 않을 거다. <거미숲>이 미스터리물이다 보니 초반에 사건을 던져주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다. 그래서 시선을 붙잡아 두고 싶어 그러한 방법을 택했을 뿐이다. 왜 저 사람이 이런 지경에 처했는지 시각적으로 강렬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전작들은 물론 이번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클래식 선율이 등장하더라.
개인적으로 클래식을 좋아한다. 댄스음악을 빼고는 모든 음악을 많이 듣는 편이다. 특히, 글 쓸 때는 바흐, 트리 팝, 제 3세계 음악 등 극단적이면서 우울한 음악을 즐겨 듣는다. 사실, 클래식보다 더 우울한 정서를 전해줄 만한 음악을 사용하고 싶었는데 음악판권을 사지 못해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음악 감독님이 영화의 정서와 잘 부합하게 음악을 만들어져 만족한다. 무엇보다 <거미숲>의 음악은 서정성을 강조하려 했다.
필자 역시 서정의 뒷모습이 서서히 클로즈업 되며 잡히는 프롤로그 부분의 음악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아 무슨 어마어마한 일이 펼쳐지겠구나?” 그런 느낌이 고요한 가운데 숨 막히듯 다가오더라.
스탭들의 공이 컸다.
또 조명 톤이나 색감의 배치 등 여러 의견을 나누기 위해 촬영들어가기 전 다같이 <대부2>를 봤다. 음악 미술 조명 촬영 등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로 우리 <거미숲> 팀도 나름대로 하나의 목적을 정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인상적인 이미지를 뽑아내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는 거다 .
리얼리즘 계열에서는 모든 사소한 사물들도 화면 안에 다 위치되어야 하지만 우리 영화는 기억에 관한 영화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강민의 강렬한 기억의 공간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건 다 뺐다. 인상파 화가처럼 추상적인 면을 부각시켰고, 조명도 훨씬 콘트라스가 강하게 갔다. 실제로 숲이란 공간에는 그러한 느낌이 많이 나니까. 그러한 하나의 목적이 있었기에 이 정도의 비주얼이 가능했던 거 같다. 다시 말하지만 무엇보다 스텝들의 힘이다.
보충해서 말하자면, 미장센이란 게 돈을 많이 들인다고 잘 나온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까 말했듯이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의견을 나누고 예산이 작아도 집약적으로 움직이면 초반에 구상했던 그림들이 제대로 나올 수 있다 본다.
당신의 영화에는 늘 판타지가 존재한다.
굉장히 낯선 현실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현실적인 세계에 갑자기 들이닥치는 걸 난 판타지라 생각한다. 현실을 벗어나려는 인간의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고. 평범하면서도 뒤틀린 변형된 그런 느낌의 판타지를 좋아한다. 우리나라는 리얼리즘이 계열이 강하고, 전통자체가 유교적 정신에 입각하고 있기 때문에 판타지가 용인 안 되는 분위기가 좀 있다. 문학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난 그런 세계가 있다고 믿고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고 믿는다. 현실을 또 다르게 묘사하는 거울이라는 생각도 든다. 판타지가
그렇다면 현실적으로는 대접을 못 받는 편이라 볼 수 있는데 좀 속상하겠다.
속상하거나 억울한 건 전혀 없다. 그냥 내가 관심이 있으니까 표현할 뿐이다. 나 역시 리얼리즘 계열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주제나 소재를 표현하는 데 있어 어떤 선을 긋지는 않는다.
철학적인 사유에 관심이 꽤나 있는 듯하다.
맞다. 하지만 대가들이 어려운 철학적 사유를 재밌게 표현하는데 반해 난 아직 그럴 엄두도 못 낸다. 아직 어려서 그런 거 같기도 하고. 내가 좋아했던 소설이나 영화들도 경쾌한 분위기보다는 진지하게 사유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나보고 유머가 없다고 한다. 우리는 과연 누구고 무엇인지 존재에 대한 관심이 내 스스로 생각해도 많은 거 같다.
그럼 데이비드 린치나 크로넨버그 감독을 좋아하겠다.
린치 영화들을 좋아한다. 무의식이나 기억에 관한 영화들이 그리 많지 않아서 더더욱 그를 동경하는 거 같다.
같이 작업한 감우성과 서정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다.
감우성은
집중력이 굉장히 강하고 기법적으로 뛰어난 배우다. 그러기 때문에 내적으로는 고통이 많았을 거다. A라는 감정에 대해서 다양하게 표현할 줄 아는 드문 배우다.
서정은
영화경력이 일천해서 그런지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그런 만큼 집요하게 묻는다. 이해하지 못하면 연기를 못할 정도로 오래 동안 고민하는 열정이 넘치는 배우다. 또한 프롤로그 같은 경우 시나리오에 없었던 장면인데 서정이 숲을 산책하는 장면을 보고 떠올린 거다. 감독에게 늘 영감을 주는 배우라 생각한다.
퀴터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잘못된 거라 본다. 문화는 그 층이 다양할수록 좋다. 이런 예가 좀 그렇지만. 프랑스의 경우는 너무도 다양한 영화들이 관객과 만난다.
산업논리에서는 당연하다. 그렇지만 문화적으로 보면 다양성을 제공해야 하고 산업적인 논리를 뛰어넘어야 한다. 작은 영화들의 가치가 빛을 발하는 게 진정 부유한 문화라고 본다. 그게 민주주의다. 거대 자본이 모든 걸 독식하는 상황은 미국과 똑같은 경우다. 하지만 지금 한국산업의 부흥은 좋은 징후라 본다. 자국인의 영화가 이렇게 사랑받는 나라는 없지 않는가. 일단 산업이 있어야 예술 영화도 존재할 수 있으니까.................
다만, 그 이상으로 진화하길 바랄 뿐이다. 그게 행복한 시장이니까 말이다.
말한 김에 영화매체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한다.
가십도 존재하고 보호받아야 하지만 진지함에 대한 보호 역시 해줬으면 한다. 다른 이야기지만 보수 언론을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취향이 신문을 재밌게 보는 편이 아니라 그런지 그냥 보수와 진보가 같이 공존할 수 있었으면 한다. 하지만 진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굉장히 인상이 유하지만 쉽게 다가서지 못할 거 같은 양가적인 느낌이다. 당신의 외양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감독의 위치에 서 있는 신분과 모습으로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되게 친철한 편이다. 그렇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내 자신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감독으로 대중에게 인식되고 싶은가
아직은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그런 거창한 생각은 하지 않는다. 불혹의 나이가 지나서야 좀 생각이 날 거 같다. 지금이야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만들고 싶을 뿐이다. 그러다보면 어떤 식의 감독으로 관객에게 남지 않을까 싶다. 이 판에서 사라질 수도 있지만...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감독만큼은 되기 싫다.
영화를 기대하는 이들 혹은 기대하지 않는 분들마저 기대하게끔 영화에 대한 간단한 멘트 날려주시길 바란다.
<거미숲>은 죽은 영혼들이, 기억되지 못한 영혼들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그 숲에 한 번 오셔서 그 숲이 주는 무서움과 슬픔 전설의 이야기들을 한번 들어보시길 바란다.
취재: 서대원 기자
촬영: 이기성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