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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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을 타고난 ‘장태영’(변요한)과 천부적인 머리와 노력으로 스스로를 증명해 온 ‘박태영’(노재원). 학창 시절부터 절친이었던 두 사람은 온라인 카지노 사업으로 승승장구하지만, 성공과 함께 관계에도 조금씩 균열이 생긴다. 그러던 어느 날 박태의 권유로 베트남으로 향한 장태는 함정에 빠져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진다. 절친의 배신으로 모든 것을 잃은 남자, 과연 어떻게 다시 일어설까.
<타짜>(2006)로 시작해 <타짜: 신의 손>(2014), <타짜: 원 아이드 잭>(2019)으로 이어진 시리즈가 <타짜: 벨제붑의 노래>로 마지막 판을 벌인다. 전작과 연결되지 않는 독립적인 이야기인 만큼 변요한의 고민도 분명했다. “나만의 색으로 만들어보자고 했는데, 정작 내 색깔이 뭔지 모르겠더라.” 답을 찾기 위해 수개월간 카드 테이블에 앉았고, 상대 배우들과 부딪치며 자신만의 장태영을 만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변요한이 자주 꺼낸 단어는 ‘탐구’였다. “보고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니라 어떤 감정을 오래 붙들고 있어야 정확해지는 것 같다. 스쳐 지나가버리면 너무 무의미하니까.” 최근 결혼한 그는 “너무 많이 달라졌다. 되게 행복하고, 지금 마음이 편하다”며 미소 짓는다. 반면 배우로서는 여전히 “다 쏟아도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한결 편안해진 지금의 변요한에게 <타짜>의 마지막 판에서 찾아낸 자신만의 색과 배우로서 계속되는 ‘탐구’에 대해 들었다.
◆ 나만의 <타짜> 색깔이 뭔지 모르겠더라
<타짜: 벨제붑의 노래>를 처음 마주했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온 감정은 부담이었다. 2006년 첫 영화가 나온 뒤 2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시리즈. 변요한 역시 처음에는 “‘타짜’가 또 만들어지네” 싶었다. 그래도 손에 들어온 시나리오를 펼쳤고, 생각은 금세 달라졌다.
“한번 읽어보자 했는데 마성의 매력처럼 끌려 들어갔던 것 같다. 두려움도 있었다. 그런데 이걸 내가 스쳐 지나가듯 던져버리고 다른 배우가 하면 내가 되게 비겁한 배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탑승했다. ‘그래, 나만의 색깔로, 우리만의 색깔로 만들어보자’고 했는데 정작 그 색깔이 무엇인지 모르겠더라. 장태영이라는 인물은 그려볼 수 있는데, 이 인물을 통해 ‘변요한의 타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어려웠다.”
혼자 답을 만들어내려 하지는 않았다. 노재원과 교복을 입고 학창 시절을 연기하고, 조우진과 윤경호를 비롯한 배우들을 차례로 만나면서 장태의 얼굴도 조금씩 구체화됐다.
“상대 배우들을 만날 때마다 답을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이 주는 에너지와 분석이 캐릭터를 만들고 우리 영화를 만들어간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감정도 나왔다.”
특히 고민했던 것은 모든 것을 잃은 뒤의 장태였다. 배신당하고 죽을 고비를 넘긴 인물을 분노와 광기로 밀어붙이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었을 터. 변요한은 반대로 ‘침착함’을 택했다.
“사건 이후 장태를 연기하는 게 어려웠던 것 같다. 분노로 갈 것인지, 분노에 사로잡혀 광기로 갈 것인지 고민했다. 그런데 내가 분석한 장태는 내면에 분노가 있어도 침착하게 상대를 바라보는 사람이었다. 그게 홀덤과도 맞물리는 지점이었다. 아무리 화가 나고 분노가 치밀어도 테이블에 앉으면 엉덩이가 무거워야 한다. 상대를 유심히 보면서 심리를 읽어야 하니까.”
마지막까지 그 침착함을 놓지 않으려 했다. “친구에게 ‘너 왜 그랬어’라고 화를 내고 따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침착하고 싶었다.” 장태가 박태를 용서한 것인지, 누나에게 벌어진 일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명확한 답까지 제시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봤다. “부분적으로 보면 채워지지 않았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전체로 보면 관객분들이 완성된 퍼즐을 같이 공감해주실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가 발견한 장태의 가장 큰 특징은 의외로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장태는 되게 힘들게 컸는데 구김이 없어 보였다. 왜 그럴까 생각했는데 과거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았다. 자기 자존감이 굉장히 강한 사람. 그래서 마지막에도 ‘지나간 건 지나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게 앞선 시리즈의 인물들과 다른 점이지 않을까.”
그 단단함은 어디에서 왔을까. 변요한은 누나를 꼽는다. 생계를 책임지며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온 누나의 사랑이 있었기에 장태는 다소 붕 뜬 듯 살아가면서도 구김 없이 성장할 수 있었다고 봤다. “그게 자존감을 지키는 데 가장 중요한 지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그렇게 소중한 존재를 다시 잃게 만드는 게 또 허영만 선생님 이야기의 재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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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드판에 앉아 장태영을 발견하다
장태를 이해하는 결정적인 실마리는 뜻밖에도 실제 카드 테이블에서 찾아왔다. 변요한은 ‘스테끼’를 비롯한 손기술을 익히기 위해 수개월간 훈련했고, 포커 플레이어들과 직접 게임을 하며 홀덤을 익혔다. 스스로 실력을 “중상 정도”라고 표현할 만큼 깊숙이 파고들었다.
“정말 많이 연습했다. 수개월 동안 손기술을 배우고 계속 테이블에 앉아 게임을 했다. ‘내가 지금 영화를 찍으러 왔나, 카드를 치러 왔나’ 싶을 정도였다. (웃음) 그런데 그렇게 몇 달을 앉아 있으니까 어느 순간 사람의 심리가 보이더라. 작은 불안이나 미세한 움직임 같은 것들이 보였다.”
그렇게 카드판에 오래 앉아 있다 보니 장태의 삶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지나간 패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카드판의 원리가 장태와 닮아 있다고 느꼈다.
“지나간 패에 집착하면 안 되더라. ‘아까 그걸 땄어야 하는데’ 하고 생각하면 다음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그게 장태영의 삶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장태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운이 좋다는 게 뭘까를 많이 고민했다. 과거를 인정하고, 과거의 나에게 용서를 구하거나 용서해주고, 자기 자존감을 지키면서 가는 게 운이 좋은 것 아닐까. 그래야 다음 판에 좋은 패가 왔을 때 흔들리지 않고 운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
한편 수개월간 공들여 익힌 손기술이 완성본에서 상당 부분 덜어진 데 대해서는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촬영분은 한때 4시간 반에 달했고, 이를 두 시간 남짓으로 줄이는 과정에서 손놀림과 여러 서사가 압축됐다. 그럼에도 최국희 감독이 무엇을 남기려 했는지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변요한이다.
“줄어들어서 아쉬운 부분은 분명 있다. 손놀림이나 손동작처럼 노력했던 시간들도 있으니까. 그런데 감독님이 더 본질적으로 가려고 한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만족한다.”
그가 생각한 영화의 본질은 화려한 손기술보다 장태와 박태, 두 친구의 감정에 있다. “두 친구의 감정인 것 같다. 시기와 질투, 초반의 야망,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회복, 거기서 또 피어나는 야망. 손기술에 집중하면 <타짜> 시리즈로서 연결성은 생기겠지만 독자적인 이야기가 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타짜>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 영화는 우정 영화인 것 같다.”
그렇다면 장태의 반대편에 서 있는 박태는 그만큼 중요할 수밖에 없다. 노재원과의 호흡에 공을 들인 이유다. 두 사람은 현장 밖에서도 수시로 전화를 주고받으며 장태와 박태 사이의 균형을 맞춰갔다.
“재원 씨가 굉장히 학구적이고 집요할 만큼 연기를 파고드는 배우라 대화할 시간이 많았다. 카메라 밖에서도 정말 친구처럼 지냈고, 아침이든 새벽이든 생각나는 게 있으면 전화해서 이야기했다. 재원 씨가 이렇게 연기하면 나는 반대로 가보고, 내가 강하게 들어가면 재원 씨가 물러나고, 또 베트남 이후에는 그 반대가 됐다.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으면서 보이지 않는 선에서 양보하는 순간이 많았던 것 같다.”
<타짜: 벨제붑의 노래> 출연이 결정되기 한참 전부터 노재원에게 “나는 네가 주연하는 걸 보고 싶다”고 말했던 변요한이다. 단순히 상대 배우와의 좋은 호흡만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노재원의 연기를 가까이에서 오래 지켜보며 자신 역시 배우고 싶었다.
“재원이의 연기를 오래 보고 싶었다. 긴 호흡으로 연기할 때 이 친구가 어떤 방향으로 고민하고 무엇을 탐구하는지가 영화 안에 놓일 텐데, 그러면 나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관객분들도 좋아해주실 것 같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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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쏟아도 부족하다
변요한에게 연기는 적당히 힘을 배분하는 일이 아닌 듯하다. “원래 연기할 때 다 쏟는 편이냐”는 질문에 돌아온 답도 단순하다. “다 쏟으려고 한다. 안 쏟으면 연기를 왜 하나 싶다. 내가 잘한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다 쏟아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타짜: 벨제붑의 노래>에서도 몸을 아끼지 않았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시절과 베트남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뒤의 장태를 외형적으로 구분하기 위해 짧은 기간 몸을 바꾸다 저혈당 쇼크로 병원에 가기도 했다. 노재원에게 “그냥 죽자”고 메시지를 보내자 “네, 죽을게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열심히 하고 싶고 잘 만들고 싶은 사람들의 극단적이면서도 심플한 답이었던 것 같다. 재원 씨가 나보다 더 죽으려고 해서 고마웠고, 나도 많이 반성했다. 감동적인 사람이고 배우인 것 같다.”
베트남 액션 촬영도 만만치 않았다. 현지 스태프들과 합을 맞추며 거의 실제로 맞는 듯한 강도로 부딪쳤지만 “병원에 가지 않는 선에서” 즐겁게 촬영했다는 변요한. 목표가 같은 사람들이 한 장면을 위해 몸을 던지는 과정 자체가 좋았다고 돌아본다.
그가 말하는 ‘고통’은 단순히 육체적으로 힘든 촬영을 뜻하지 않는다. 마흔을 넘기면서 자신이 왜 연기하는지를 조금씩 알 것 같다는 변요한은 배우에게 필요한 고통을 ‘정확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과정’에 가깝게 설명한다.
“세상이 너무 빠르고 힘들고 어려운 것 같다. 특히 요즘처럼 데이터가 너무 빠르게 지나가는 시대에 우리 직업이 왜 존재할까를 계속 탐구한다. 나는 정확하게 감정을 짚어서 전달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다. 그냥 보고 듣는 걸 넘어 관객이 느끼게 하는 연기를 하고 싶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어려운 인물에 끌리는 것일까. 변요한 역시 가능성을 열어둔다. “고통스러운 캐릭터를 찾는 게 어떻게 보면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걸 찾는 것일 수도 있다.” 그 말을 설명하며 박근형과 신구가 출연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렸다.
“두 선생님이 등장하고 한참 뒤에 객석을 바라보는데 아무 말씀도 안 하시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정말 고도가 보이는 것 같았다. 그게 뭔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나는 아직 너무 부족해서 몸으로 때워야 할 것 같다. 몸으로 배우면서 만들어가야 할 것 같다. 아직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이번 작품에서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감량도, 액션도 아니었다. 변요한의 답은 뜻밖에도 <타짜> 그 자체를 향했다.
“<타짜>라는 존재 자체였다. 20년 만에 막을 내리는데 ‘어떻게 잘 끝낼까, 잘 가고 있는 걸까, 우리 색깔이 뭘까’ 계속 불안하고 무서웠다. ‘우리 색깔을 찾아야 해. 파이팅, 파이팅.’ 거의 그런 것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다들 정이 들고 방향이 같아지고 목표 지점도 같아졌던 것 같다.”
◆ 보고 지나가지 않고, 오래 붙들고 있어야 정확해진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탐구’라는 단어로 돌아온다. 노재원의 연기를 이야기할 때도, 자신의 연기를 설명할 때도 여러 번 이 단어를 꺼내든 변요한이다. “변요한에게 탐구란 무엇이냐”고 묻자 잠시 생각하더니 “계속 탐구해야 할 것 같다”며 웃는다.
“예전에는 연기를 처음 배울 때 ‘관찰하기’ 같은 용어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잘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보고 나서 지나가는 게 아니라 어떤 감정을 좀 오래 붙들고 있어야 정확해지는 것 같다. 요즘은 너무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가고 금방 사라지지 않나. 나까지 그렇게 스쳐 지나가면 너무 무의미하니까. 스스로 정확해지려면 탐구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그냥 연기를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은연중에 나오는 말인 것 같다.”
그의 필모그래피에 유독 쉽지 않은 인물들이 이어지는 이유도 어쩌면 거기에 있을까. 힘든 역할을 일부러 골라 자신을 소모한다기보다, 아직 모르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알아가기 위해 그 안으로 들어가는 쪽에 가깝다는 게 변요한의 설명이다.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크고 작은 역할도 크게 구분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이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거나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현장이라면 “몸이 먼저 반응하고 달려가는 것 같다”고 한다. <경주기행> 역시 네 모녀의 이야기가 좋아 먼저 조심스럽게 출연 의사를 전했고, 숏폼 드라마 <아버지의 집밥>에는 이준익 감독의 작업 현장이 좋아 기꺼이 참여했다. “내 리듬대로 작품을 하고 있었는데 본의 아니게 개봉 시기가 겹쳤다. 매 작품이 감사한 시간인 것 같다.”
글로벌 관객과 만나는 것에 대한 생각을 물었지만, 변요한에게는 여전히 한국 관객이 먼저다. “솔직하게 말하면 늘 한국 관객에게 더 인정받는 게 먼저였던 것 같다.” 좋은 작품을 오래 남기면서 관객과 가까워지는 것, 변요한이 원하는 방향이다. 무대인사를 마치고 탄 택시에서 기사가 최근 자신이 출연한 예능과 홍보 활동을 하나하나 이야기해줬던 일도 그래서 무척 기뻤다고 한다. “같이 밥을 먹을 수는 없지만 극장이라는 한 공간에 함께 있는 것, 그게 내게는 목표인 것 같다. 첫 번째는 늘 한국 관객을 만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요즘 변요한이 가장 깊이 탐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거창한 연기론이 돌아올 법한 질문이었지만 답은 의외로 심플하다.
“지금은 이 인터뷰다. 나는 순간만 산다.” (웃음)
건강도, 작품도 중요하지만 생각이 복잡해질수록 지금 눈앞에 놓인 것에 집중하려 한다는 변요한이다. “너무 복잡해질 때마다 그냥 지금 앞에 있는 게 나한테는 제일 좋은 시간인 것 같다. 작품을 할 때도 그런 생각으로 한다.” 스쳐 지나가지 않고 오래 들여다보는 것. 변요한에게 연기란 어쩌면 답을 내놓는 일이 아니라, 조금 더 정확해지기 위해 계속 탐구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사진제공. CJ ENM
2026년 9월 30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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