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지난해 <범죄도시2> 개봉과 함께 당신의 캐스팅 소식도 알려지면서 많은 기대를 모았다. 이번 작품엔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OCN <다크홀>을 마지막으로 작품 활동을 꽤 오래 쉬기도 했고 ‘난 이대로 괜찮은가?’, ‘지금 잘하고 있나?’, ‘앞으로는 어떡하지?’ 같은 고민에 휩싸여있던 시기에 운명처럼 마동석 선배에게 전화 한 통이 왔다. 당시 <범죄도시2> 개봉 전이었기 때문에 3편이 나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할리우드 배우들 인터뷰를 보면 전화 한 통에 캐스팅되는 일이 있다던데 바로 그런 일이 나한테 벌어진 거다. (웃음) 고민 없이 바로 하겠다고 했다. 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큼 임팩트 있는 사건이었다.
1편의 ‘장첸’(윤계상), 2편의 ‘강해상’(손석구) 등 빌런 캐릭터들 또한 굉장히 많은 사랑을 받았지 않았나. 더군다나 전작인 <범죄도시2>가 천만 관객을 넘기면서 여러모로 부담이 컸을 것 같다.
<범죄도시2>가 천만 흥행에 성공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사실 좀 불안했다. 너무 좋아하는 (마동석) 선배이고 시리즈이지만 ‘저기까지 넘으면 나는 어떡하지?’ 하면서 고민이 컸다. (웃음) 한편으로는 (손)석구 형이랑 굉장히 친한데, 형이 잘되니까 같이 기쁘더라. 아무튼 나도 당연히 부담이 컸지만, 나보다는 스스로를 뛰어넘어야 하는 감독님의 부담이 더 크지 않았을까. (웃음)
그런 점에서 함께 빌런으로 활약한 ‘리키’(아오키 무네타카)의 존재가 더 반가웠겠다.
대본도 보지 않은 채 출연을 수락했던 터라 빌런이 두 명인 건 나중에 알게 됐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내가 오래 나와서 영화가 재미 없어지는 것보다 내가 적게 나와서 영화가 성공하는 게 낫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다. (웃음) 내 비중보다는 영화적 재미가 우선이었다.
이번 ‘주성철’의 경우 막무가내 싸이코패스 살인마였던 1, 2편의 빌런들과는 결이 다르다. 경찰의 신분으로 마약을 유통해 큰 돈을 벌고자 하는 인물인데.
그동안 내가 연기해왔던 캐릭터들은 마냥 나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들이 왜 그렇게 됐는지 이해하고 동정할 만한 사연이 있었다. 그런데 ‘주성철’은 아픔이 전혀 없는, 진짜 나쁜 사람이라 그간 내가 해왔던 악역들과 결이 좀 달랐던 거 같다. 한 번도 누군가에게 혼나본 적 없이 성공가도만 달린 엘리트 악당이라고 할까. (웃음) 겉으로는 남들과 똑같아 보이는데 뒤에서 나쁜 짓을 하는 인물이라 더 무서웠던 것 같다.
마동석 배우를 상대하기 위해 3개월 만에 체중을 무려 20kg 증량했다고.
촬영 때 체중은 92kg 정도였는데 준비할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120kg까지 찌우고 싶었다. 물론 간 수치와 콜레스트롤 수치가 좀 염려되지만. (웃음) 마동석 선배가 실제 근육량이 어마어마해서 나도 몸을 키웠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살짝만 부딪혀도 날아갔을 거다.
그밖에 어떤 준비를 했나.
이번 작품의 액션이 대부분 롱테이크 촬영이었고 안무처럼 동선 짠 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특히 ‘주성철’의 액션은 현장의 상황이나 주변의 사물에 따라 변화하는 게 특징이라 액션 스쿨을 다니면서 기본기를 다지고, 촬영할 때는 최대한 날 것의 느낌을 내려고 했다. 액션 스쿨에서 가장 먼저 배운 게 사람 밟는 법이었는데, 차라리 내가 맞는 게 편하지 마음이 영 불편하더라. (웃음) 또 ‘성철’의 덩치와 어울리는 거칠고 공명 있는 목소리를 만들기 위해 보이스트레이닝도 받았는데 매일 3~4시간씩 연습하면서 목소리를 많이 갈았다. 수업을 서너 시간씩 하면 운동보다 힘들어서 탈진할 정도였다. (웃음) 정말 이번 작품에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았다. 이상용 감독님이 꿈에 나올 정도였으니 영혼을 바쳤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웃음)
매번 이렇게 감독이 꿈에 나올 정도로 작품에 몰입하나. (웃음)
매번 이러는 건 아니고 유난히 진통을 겪는 작품이 있다. 연기적으로 잘 안 풀려서 그럴 때도 있고, 현장이 힘들어서 그럴 때도 있는데 이번엔 감독님의 뜨거운 에너지가 나를 괴롭혀서 꿈에 나온 거 같다. (웃음) 꿈에 촬영장이 나오는 건 자주 있는 편이다. 촬영이 끝나고 나서도 긴장이 풀리지 않은 채로 잠이 들면 그런 일이 종종 생긴다. 그렇게 푹 자지도 못하고 일어나서 다시 촬영장에 가야할 때가 심적으로 너무 힘들다. (웃음)
보이스 트레이닝까지 받아가면서 ‘주성철’을 준비한 이유가 뭘까.
관객들이 ‘주성철’을 보고 배우가 누군지 몰랐으면 싶었고 신선함을 주고 싶었다. 대중에게 장기간 꾸준히 노출되다 보니 이젠 내 이미지가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 않나. 그뿐만이 아니라 내 성격 자체가 빨리 질리는 성격이라 연기를 할 때도 반복적인 패턴은 피하려고 한다. 매 작품, 매 캐릭터마다 변주를 주려고 하는 편이다.
잘 질리는 성격이라고 하면 20년 가까이 이어져온 연기 생활이 질리는 순간도 있겠다.
당연히 그럴 때도 있지만 할 줄 아는 게 연기밖에 없어서 어쩔 수 없다. (웃음) 어떤 일이든 간에 어떻게 항상 설레고 좋을 수만 있겠나. 흥행 성적이나 시청률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을 때도 있고 연기가 마음처럼 안 될 때도 있다. 일 잘 하다가도 매너리즘에 빠질 때도 있고, 하루하루가 고비 같을 때도 있다. 어떨 땐 살이 뜯겨 나가는 것처럼 힘들기도 하다. <범죄도시3> 제안이 들어올 무렵에도 고민이 많았지만 지금은 괜찮아졌다. 아마도 또 연기자로서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 올 거다. 그럴 때마다 힘들어하면서도 불나방처럼 새로운 작품에 달려드는 걸 보면 내가 연기를 그만큼 사랑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웃음)
그런 힘든 순간에는 어떻게 버티나.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고, 또 주변에서 영감을 받기도 하면서 극복해내려 한다. 걱정이 많으면서도 묘하게 낙관적인 성격이라, 예전보다 나아진 점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걸로 만족하는 편이다. (웃음)
그런데 할 줄 아는 게 연기뿐이라는 건 너무 겸손 아닌가. (웃음) 당신이 제작한 게임과 집필한 동화책이 최근 꽤 큰 인기를 얻고 있지 않나.
원래 동화책을 쓸 생각은 없었는데 게임이 잘 돼서 책 제안까지 들어오게 됐다. 동화책은 게임 내용을 글로 풀어낸 거다.
키우던 강아지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는데 일하느라 바빠서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다. <다크홀>을 찍고 있을 당시였는데 내 가족도 못 챙기면서 일에 매진했는데, 시청률마저 기대보다 낮게 나오니 허무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더라. 이럴 때 작곡가나 작사가는 노래로 자기 감정을 풀어내기도 한다는데 나는 연기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그래서 게임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 먹게 됐다. 내 강아지가, 나 없이 능동적으로 내 곁보다 더 좋은 곳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게임에 담고 싶었다. 일종의 디지털 장례식이라고 할까. (웃음)
게임은 직접 만든 건가.
스토리는 다른 작가님과 함께 짜고 개발자를 기용했다. 생각보다 예산이 많이 들었다. (웃음) 누가 이 게임을 할까 싶었는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분들이 게임을 하고 리뷰를 달아주더라. 세상을 떠난 본인 강아지를 떠올리면서 게임을 하셨다는 분들이 많았다. 일면식도 없는 분들이지만 서로 통했다는 생각이 드니 가슴이 찡하더라.
차기작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많은 분들이 당신의 ‘인생캐’라고 불리는 ‘서동재’ 주연의 <비밀의 숲> 스핀오프를 기다리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서동재’를 사랑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하지만 솔직히 말해 아직 내 인생작, 인생캐는 못 만난 거 같다. 인생작을 만나기 위해서라도 연기를 계속 하고 싶다.
<비밀의 숲> 스핀오프 제작은 확정이 됐는데 촬영 일자를 비롯해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아직 없다. <비밀의 숲> 시즌1이 2017년 처음 방영됐다. 이걸 언제까지 끌고 갈 건지 나도 궁금하다. (웃음)
사진제공_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