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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인생의 분기점이 될 영화” <유령> 배우 이하늬
2023년 1월 20일 금요일 | 이금용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금용 기자]
스타일리시한 연출로 많은 사랑을 받은 <독전>(2018)의 이해영 감독이 신작 <유령>으로 돌아왔다. <유령>은 1933년 경성, 조선총독부에 항일조직이 심어 놓은 스파이 유령으로 의심받으며 외딴 호텔에 갇힌 용의자들이 의심을 뚫고 탈출하기 위해 벌이는 사투와 진짜 유령의 작전을 그린 스릴러. 제작보고회와 시사회에서 이해영 감독은 “이하늬 배우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수 차례 강조했다. 이 감독의 말처럼 극중 가장 강렬하고 핵심적인 역할인 ‘차경’으로 분한 이하늬와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촬영을 끝내고 1년 만에 관객에게 공개하게 됐다.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본 소감은 어떤가.
마냥 즐기면서 보지는 못했다. 성적표 받는 기분으로, 마음 졸이면서 봤다. 열심히 찍었지만 관객 반응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지 않나. (웃음)
?
<유령>은 어떤 영화인가.
보통의 항일영화와는 다르다. 영화는 감독의 장르라는 말이 있지 않나. 그만큼 이해영 감독님의 색이 강한 작품이고 내 예상을 빗겨가는 것들이 많았다. 의상만 하더라도 ‘이렇게 비비드한 컬러가 정말 괜찮을까?’ 싶다가도 막상 입고 촬영해보면 괜찮고, 어떤 장면은 ‘너무 판타지 같지 않아?’ 의구심이 드는데 또 영화 전체를 보면 너무 튀지 않게 잘 녹아들고. 2023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라고 해도 될 만큼 스타일리시하다. 그리고 세트를 비롯해 볼거리가 굉장히 많다. 솔직히 촬영하면서 ‘저런 호텔이면 감금돼도 괜찮을 거 같은데?’라고 생각했다. (웃음)

보통의 항일영화는 비통한 감정을 베이스로 갖고 어두운 분위기로 가는데 이번 작품은 슬픔을 굉장히 세련되게, 또 통쾌하게 풀었다는 느낌이다. 기존의 항일영화를 떠올리며 보러 오신 관객 분들에게 반전 포인트가 많을 거다.

조선총독부 통신과 암호 전문 기록 담당이자 재력가의 딸 ‘차경’으로 분했다. 최근 영화 <극한직업>(2019), 드라마 <원 더 우먼> 등에서 선보인 캐릭터가 뜨겁고 솔직한 성격이라면, 이번엔 정반대로 차갑고 의뭉스럽다는 인상이다.
‘차경’을 연기하면서 내가 생각한 키포인트는 누르고 누르는데 그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감정이다. 색으로 치면 쿨톤, 차가운 회색 같은 인물이지만 그 안엔 마그마 같은 뜨거운 감정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 그걸 절대 열어보지 않는 인물이 ‘차경’이라고 생각했다. 기쁜 걸 기쁘게, 슬픈 걸 슬프게 표현하는 게 더 드라마틱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엔 겉으로는 모노톤을 유지하되 안으로 깊은 레이어를 쌓아가면서 잔잔한 느낌을 유지하려고 했다.

원래 연기할 때 톤이나 제스처 등 캐릭터의 디테일을 만드는 걸 좋아하는데, 이번엔 최대한 절제했다. 단순한 게 최고라는 말처럼 어떤 형태의 예술이든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극상의 경지라고 생각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 이면의, 보이지 않는 큰 슬픔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다.

기억에 남는 대사나 장면이 있다면.
재력가 집안을 부끄러워하던 ‘차경’에게 동료는 삶을 지탱해준 존재이자 가장 의미 있는 존재다. 삶을 내놓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연대가 얼마나 강하겠나. 영화 초반 동료가 죽는 장면에서 ‘차경’은 목 놓아 우는 대신 슬픔을 꾹꾹 밀어 넣는다. 비장이 끊어지는 듯한 슬픔이라고 해야 할까. 울음을 안으로 밀어 넣으니까 몸 속 어딘가가 끊기는 느낌이었다. 속이 아파 며칠간 제대로 걷지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또 ‘차경’의 대사가 생각보다 많진 않은데 “살아! 죽는 건 죽어야할 때 그 때 죽어.”라는 대사를 두 번이나 한다. 그 말을 할 때 ‘차경’의 마음이 어땠을까. 지금 나는 찬란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그 당시 ‘차경’은 죽음을 위해 사는 것이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죽음을 위해 사는 삶은 어떤 것일지 많이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삶이 특히 ‘유리코’(박소담)를 통해 잘 그려진 것 같다.

시사회 때 ‘유리코’ 역의 박소담 배우에 대해 얘기하며 눈물을 흘렸는데.
소담이가 원래 씩씩한 성격인데 촬영하면서 굉장히 힘겨워했다. 소담이도 당시엔 본인이 얼마나 아픈지, 또 왜 아픈지 몰랐다고 한다. 병세가 심해져 영화가 끝나자마자 수술을 했고 함께 일하면서 그걸 발견하지 못한 자책감이 컸다. 눈물을 보인 것엔 그런 이유도 있다. 또 다시 돌아와준 소담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는 배우가 얼마나 있겠나. 소담이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극중 액션 분량이 상당하더라. 폭발 장면도 있고 총기를 난사하기도 하는데.
일단 <극한직업> 때에 비해 액션이 확실히 늘었다. (웃음) 어릴 때 배운 태권도도 많은 도움이 됐던 거 같다. 액션을 강도 높게 연습했고 체력 증진을 위해 근력 운동도 꾸준히 했다. 성실한 에너지가 없어서 악기를 할 때도 너무 힘들었는데, 운동을 하면서 후천적으로 성실함을 얻었다. (웃음) 배우 일이 밤을 샐 때가 많지 않나. 고강도 근력 운동을 안 했다면 아무리 몇 개월간 무술 훈련을 했다 해도 액션 장면들을 소화하기 어려웠을 거다.

총 같은 경우 가벼운 게 4kg, 무거운 건 7~8kg까지 나간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소품 총을 들어보고는 놀랐다. 내가 어디 가서 약하다는 소릴 듣는 사람이 아닌데도 꽤 무겁더라. 그런데 그 무거운 걸 하루 종일 들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연발까지 한다. 여러 차례 장전하고 쏘다 보니 어떤 날에는 몸에 피멍이 맺혀 있더라. 두 번째 손가락이 잘 움직이지 않는 날도 있었다.

많은 액션 시퀀스 중에서도 설경구 배우와의 일대일 육탄전이 특히 화제다.
‘쥰지’(설경구)와의 전투 장면은 흐름상 중요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싸우는 와중에도 ‘차경’의 의지가 잘 드러나야 하는 장면이었다. 그 장면에는 계급장 떼고 붙는다는 말 그대로 체급, 성별 이런 건 다 내려놓고 그저 존재와 존재가 삶과 죽음을 놓고 펼치는 마지막 승부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멋있게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머리채를 잡아뜯거나 팔다리를 물어뜯는다든가…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장면이었다. 사생결단의 느낌이 들 정도로 ‘차경’은 이를 악물고 계속해서 덤벼들고 ‘쥰지’는 방어한다. 하루 종일 엎어치기를 계속하다 보니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였다. (웃음)

이렇게 누아르성 짙은 작품에서 ‘차경’을 비롯해 여성 캐릭터들이 활약하는 건 반가운 일이다. 짧게 등장하지만 ‘난영’(이솜)도 인상적이었다. ‘차경’과 ‘난영’은 정확히 어떤 관계인가.
감독님과 이 부분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둘의 관계를 한 단어로 규정 짓는 건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우정, 동지, 가족, 연인? 이 모든 걸 관통하는 게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일반적인 사랑이라고 표현하기에도 모자란 느낌이다. 서로의 존재를 지탱해주던 마지막이자 유일한 의미, 삶과 죽음을 공유하는 연대… 어쨌든 ‘차경’과 ‘난영’의 관계는 확장된 의미의 사랑이라고 봤다.

<유령>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타짜: 신의 손>(2014)과 <침묵>(2017)이 그랬듯 <유령> 역시 배우로서의 내 인생에 확실한 분기점이 될 영화라고 정의하고 싶다.

얼마 전 출산을 했다. 이로 인해 달라진 게 있을까.
출산하고 반년 넘게 지나 체중이나 체형은 예전 수준에 가깝게 회복한 거 같다. 주변에 임신과 출산을 하신 분들이 많지만, 다들 한다고 해서 만만하게 볼 일은 절대 아니더라. (웃음) 그래도 아이 낳길 잘한 것 같다. 엄청난 기쁨과 행복이다.

전과 다른 게 있다면 익숙하게 했던 것들이 큰 일을 겪고 나니 그렇지 않게 느껴진다. 포토월 앞에 서니 내가 배우인 척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웃음) 그럼에도 이전보다 훨씬 마음이 편안해지고 여유로워진 걸 느꼈다. 아기를 갖고 나니 시간이 열 배는 귀하게 느껴지고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하든 핏덩이를 집에 두고, 그 예쁜 시간을 포기하고 선택한 작품인 만큼 더 신중하게 고르고, 뼈를 갈아 연기할 작정이다. (웃음)

사진제공_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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