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소음에 반응하는 폭탄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어디서 착안했나.
다른 것보다 폭탄, 폭발물이라는 소재가 가장 핵심이었고 영화의 시작이었다. 어릴 적 수영장에 가면 쉬는 시간이 있었는데 어린 애들은 그 시간을 견디지 못한다. (웃음) 안전요원이 호각을 불면 수영장에 있던 애들이 와르르 수영장으로 뛰어들고는 했다. 그 기억을 떠올리며 소음에 반응하는 폭탄이 있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런 상황이라면 폭탄을 제어하기가 더 어려울 거 같더라. 이야기와 캐릭터는 폭탄을 먼저 기획한 다음 점층적으로 덧붙였다.
김래원 배우와는 당초 <데시벨>이 아닌 다른 작품을 할 예정이었다고.
<데시벨>에 앞서 <꿈의 대화>라는 멜로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원래 김래원 씨가 그 작품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멜로가 아닌 액션을 함께하게 됐다. (웃음) 그렇지만 <데시벨>은 래원 씨만 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래원 씨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극중 축구 경기장 테러 장면이 나온다. 촬영을 위해 아시아드주경기장을 대여했는데 주어진 시간이 촉박했다. 래원 씨가 아니었다면 아마 정해진 시간 내에 다 못 찍었을 거다. 배우 본인이 직접 다 하겠다는 주의라 직접 뛰고 구르면서 투혼 정신을 발휘하더라. 코로나 백신을 맞은 다음 날에도 그 아픈 몸을 이끌고 뛰었다. 래원 씨가 맡은 ‘두영’이라는 인물이 제복을 입고 등장하는데 카메라가 여러 대 돌아가기 때문에 대역도 못 쓰고 운동화도 아닌 구두를 신고 뛰었다. 다시 생각해도 참 고생 많이 했고 고맙고 미안하다. (웃음)
김래원 배우가 분한 ‘두영’은 전직 해군 함장이다. 그래서 잠수함이 또 하나의 주요 배경으로 나오는데.
아무래도 소음에 반응하는 폭탄이라는 소재에서 시작한 영화다 보니 소리에 민감한 직업이 뭘까 고민했다. 그래서 ‘두영’이 전직 해군 함장이라는 설정을 넣었고 잠수함에서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만들어내게 됐다. 영화를 보고 천안함 피격 사건을 떠올리는 관객 분들도 계시지만 해당 사건을 염두에 두고 쓴 이야기는 아니다.
잠수함 세트는 김경호 미술감독이 4,000톤 이상 잠수함을 일일이 작업했다. 우리나라 잠수함에 대해서는 대외적으로 알려진 게 없기 때문에 해외 잠수함 관련 자료를 어마어마하게 준비했다. 전직 함장님의 감수도 받았다.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잠수함 골격은 기존의 것을 활용했지만 그 안의 천장부터 바닥, 모니터 하나하나 다 뜯고 다시 만든 거다.
‘태성’ 역의 이종석 배우 캐스팅도 정말 좋았던 것 같다. 굉장히 정의로웠던 인물이 한순간 사이코패스로 변하는데, 양극단의 모습을 둘 다 잘 소화하더라.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그 남자, 좋은 간호사>란 영화를 봤다. 그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배우 에디 레드메인이 아무 말 없이 표정만으로 연기를 한다. 좋은 배우들은 표정만 봐도 캐릭터의 전사가 보인다. 종석 씨에게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태성’은 촉망 받던 해군 장교에서 테러리스트로 전락하는 인물이다. 관객이 ‘태성’의 선택을 이해하기 위해선 당위성과 개연성이 필요한데 영화는 ‘태성’이 테러리스트로 변화하는 과정을 많이 생략한다. 그래서 인물의 사연이 배우의 얼굴, 눈빛에서부터 느껴져야 했고 종석 씨가 너무나 잘 해줬다. 극중 ‘태성’이 정신 상담을 받던 중 방 안에 숨겨진 카메라를 응시하며 경고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헤어스타일을 비롯해 디테일한 요소들을 종석 씨가 생각해왔더라. 심지어 그게 첫 촬영이었는데도 그렇게까지 캐릭터를 해석하고 아이디어를 짜왔다는 게 놀라웠다.
‘태성’이 반전을 품은 인물인데 홍보 단계에서부터 전면에 드러나서 놀랐다. (웃음)
내가 숨긴다고 숨겨봐야 영화가 개봉하면 SNS에 떠돌아다니지 않겠나. (웃음) 어차피 끝까지 감출 수 없을 거라면 처음부터 오픈하기로 했다. 빌런이 누구인지가 아니라 왜 그런 일을 저지르게 됐는지가 더 중요하니까 종석 씨에 대해 알려져도 크게 문제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종석 배우의 액션 장면은 현장에서 급히 추가된 거라고.
극중 ‘태성’과 관련해 총 두 번의 액션 시퀀스가 나오는데 캐릭터에게 꼭 필요한 장면이었다. 그 장면이 없었더라면 ‘태성’을 표현하는 데 있어 구멍이 생겼을 거다. 액션을 추가함으로써 캐릭터의 ‘결’과 ‘깊이감’이 생겼다. 다만 이걸 시나리오를 쓸 당시에는 전혀 고려하지 못했는데, 후반에 아차 싶어서 빠르게 추가했다. 종석 씨가 고생 많이 했다. (웃음)
이번 작품에서 특히 눈에 띄던 배우가 차은우다. 그간 브라운관에서 봐왔던 모습과 전혀 다르다.
은우 씨를 캐스팅한 건 큰 행운이었다. 짧지만 굵게 연기해줄 배우가 필요했는데 은우 씨만한 사람이 없더라. 군 생활 경험도 없고, 군인 역할도 안 해본 배우가 현장에 오자마자 열연을 해주는 게 놀랍고 고마웠다. (웃음) 내가 특별히 연기를 가르치거나 디렉션을 주지는 않았고 종석 씨가 옆에서 많이 도와줬던 걸로 안다. 개인적으로 은우 씨는 얼굴 때문에 손해 본 배우라고 생각한다. 얼굴도 대단하지만 그 안에 든 연기적인 재능과 에너지가 어마어마하다. 아이돌이라는 선입견을 빼고 보면 정말 좋은 배우이고, 앞으로 더 훌륭한 배우가 될 거라고 확신한다.
극 후반부 사건의 전말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반전되고 분위기가 한층 무거워진다.
그 부분을 촬영하면서 스텝들도 힘들었지만 승조원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더 힘들었을 거다. 극단적인 상황인 만큼 보고 있는 나 역시도 심적으로 힘들더라. 상황을 만들고 던지는 건 작가와 연출가의 몫이지만 그걸 관객에게 와닿게 표현하는 건 배우들의 역할이지 않나. 배우가 그 지점을 잘 표현하지 못하면 결과적으로 영화 전체의 개연성이 떨어지는 건데 감사하게도 배우 분들이 잘 해주셔서 설득력 있게 나온 것 같다.
<시실리 2Km>, <오싹한 연애>, <몬스터> 등 그간 코믹, 호러, 액션, 스릴러 등 다양한 장르를 한데 섞는 시도를 해왔는데 이번 작품은 정통 액션 스릴러에 가깝더라.
사실 전작인 <몬스터>가 흥행에 실패하면서 신작이 나오기까지 8년이 걸리게 됐다. 여러 데이터를 바탕으로 <몬스터>의 실패 이유를 분석해봤는데 결론은 그 영화가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을 넘었다는 거다. 당시엔 내가 맞다고 생각했는데 (흥행) 성적이 참혹하더라. (웃음) 그래서 대중이 어느 선까지 수용할 수 있는지 고민했고 <데시벨>이 그 결과물이다. 단순한 액션 영화로 보면 이번 작품이 지나치게 무거울 수도 있다. 다른 영화는 악당이 죽으면 끝나는데 우리 영화는 묵직한 여운이 남지 않나. 어떻게 보면 감정적으로 과할 수도 있지만 관객 분들이 이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 이 작품마저 관객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받지 못한다면 ‘멘붕’에 빠질 거 같다. (웃음) 반대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다고 할지라도 앞으로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영화를 만들 생각은 없다.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될까.
지금은 OTT용 시리즈를 쓰고 있는데 생각보다 잘 안 써진다. (웃음) 초능력을 가진 히어로들의 이야기인데 한국판 마블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 작품이야말로 관객이 낯설게 느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웃음)
안 그래도 헤매고 있다. 이 두루뭉술하고 표현하기 어려운 걸 어떻게 땅에 발 붙이게 하는지가 내게 주어진 미션이다. (웃음)
사진 제공_㈜마인드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