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영화 <눈물>(2000)로 데뷔한 20년 차 배우 조은지가 첫 장편 연출 영화 <장르만 로맨스>로 관객 앞에 섰다. 배우 겸 감독이 유난히 드문 국내 영화계에서 이번 그의 데뷔는 여러모로 주목하게 된다. 어느 정도 규모 있는 스케일에 류승룡, 김희원 등 한창 주가 높은 배우들이 대거 참여했고 더불어 휴먼 코믹이라는 연출의 묘가 관건인 장르이기 때문이다. 코믹과 휴먼을 의지 삼아 균형감 있게 ‘관계와 성장’이라는 키워드를 밀고 나간 조은지 감독을 만났다. 그간 연기를 통해 부각된 강단 있고 개성 강한 얼굴 뒤로 차분하지만, 단단함이 느껴진다.
<카센터>(2019) 인터뷰 당시 <장르만 로맨스>(가제 <입술은 안돼요>) 후반 작업 중이라고 했는데 거의 2년 만에 개봉이다. 그만큼 설렘도 부담감도 클 것 같다.
오늘이 개봉인데, 관객 수보다 관객이 공감할지에 긴장이 많이 된다. 댓글, 리뷰 등의 반응을 살피고 있는데 좋게 봐주시는 분도 꽤 있고, 또 생각지도 못했던 영화라는 분도 있어서 어딘가 비현실적인 느낌이다. 긴장해서 그런가 보다. (웃음)
어떤 지점에서 공감이 갈릴 거로 예상하나.
특정 지점에서 갈리기보다 <장르만 로맨스>는 관계 안에서 인물의 성장을 보여주는 영화인데 성장하는 모습보다 캐릭터의 설정 혹은 캐릭터 자체에 집중하지 않을까 해서 긴장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조은지’ 하면 개성 강한 배우라는 인상이 강한데, 이렇게 감독 조은지로 만난다는 게 어떤 면에서 놀랍다. 연출하게 된 계기나 이유는.
20대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다. 2014년 즈음 이별에 관해 쓴 글을 지인이 보고 영화로 만들어도 좋겠다고 이야기했었다. 그때만 해도 선뜻 마음먹지 못했는데 장면 장면, 어떤 배우가 연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게 만든 게 <2박 3일>(2016)이다. 그전에 자비로 만들던 작품이 있지만, 아직 미완성이라 <2박 3일>이 공식적인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다.
<2박 3일>은 그해 서울독립영화제, 미장센 단편영화제 등에서 수상하며 좋은 평을 받았다.
미장센단편영화제 때 허진호 감독님이 시상하셨었다. 그때 개막식에 참석했는데 몇몇 분은 배우로 참석했는지 아시더라. 혹은 감독란에 올린 이름을 보고 동명이인인 줄 알았다는 분도 있었고. 지원받아 만들어 출품까지 다 (알아서) 혼자 했다. (웃음)
<장르만 로맨스>의 각색을 손수 했는데 각색을 통해 달라진 점이 있나.
시나리오의 관계와 성장이라는 면에 끌렸고, 원래는 이런 틀 안에서 드라마적인 성격이 강했다. 그래서 주변의 인물을 보다 확장했고 평범하지 않은 관계와 캐릭터가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가도록 코미디를 접목했다. 해당 나이대가 갖는 고민을 현실 코미디로 풀어내어 감정을 쌓아 나가려 했다.
작가 ‘김현’(류승룡)을 중심으로 꼬이고 얽힌 관계에 있는 인물들은 과장된 면이 없지는 않지만, 모두 주변에서 볼 법한 사람들이다. 단타 치는 대사와 꼬인 관계에서 오는 코믹 모드로 초반의 관심을 이끈다면, 자연스럽게 인생의 희로애락으로 무게 중심을 옮겨간 인상이다.
앞서 말했듯 인물마다 그들의 관계 형성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끌어갈지, 캐릭터가 관객에게 더 친근하게 가 닿을지 고민했었다. 그래서 초반부는 좀 희화되는 면이 있어도 선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재미있고 유쾌하게 다가가 캐릭터에 대한 친밀함을 높이려 했다. 이때 캐릭터의 뉘앙스가 굉장히 중요했다. 너무 세지 않으면서 현실적이고, 그러면서도 진심이 느껴져야 해서 어미처리 하나까지도 굉장히 고민하며 결정했었다. 현장에서 배우들과 많이 얘기를 나눈 후 진행했는데 다행히 잘 표현된 것 같다.
김현의 캐스팅이 극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류승룡 배우를 처음부터 염두에 둔 건가. 또 선뜻 수락했는지도 궁금하다.
고민없이 바로 떠올렸고, 선배 사진을 붙여 놓고 각색 작업을 했다. 김현은 여러 관계 속에서 상대에 따라 표현하는 감정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스펙트럼 넓은 감정을 표현할 배우는 승룡 선배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제작사 대표님께도 선배가 참여하지 못하면 자신 없다고 말하기도. 시나리오를 드린 후 만나서 선배가 궁금해한 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잘해 보자고’ 전화를 주셨다. 그땐 정말 ‘이제 됐다’ 싶었다. 그 후 캐릭터에 맞춤 한 배우가 한 명씩 떠오를 때마다 사진을 옆에 붙여 놓고 각색 작업을 이어갔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연기를 꼽는다면 김희원 배우의 ‘순모’다. 그런 사랑스러운(?)면이 있는지 미처 몰랐다. (웃음) 오정세 배우는 강력한 신스틸러로 극에 웃음을 더했다고 본다.
왜 ‘순모’가 울먹이는 장면이 있지 않나. 그걸 보며 너무 좋아서 웃었다. 어쩜 그렇게 연기할 수 있는지! 정세 오빠와는 평소 서로 모니터링을 주고받는 사이다. 이번에 정세 오빠와 (류)현경 언니에게 분량이 많지 않아도 힘이 있어야 하는 역이라 부탁하니, 마치 당연한 듯이 해 주셨다. 요즘, 정말 따뜻한 기운을 너무 많이 받고 있다. 함께한 배우분들이 아주 사소한 것 하나라도 나에 대해 정말 좋게 말씀해 주신다.
김현에게 사랑 고백하는 ‘유진’역의 무진성 배우는 이번이 첫 영화다. 캐릭터와 잘 어울리더라.
200여 명 정도가 참가한 오디션을 통해 발탁했다. 사실 염두에 둔 배우가 있었는데 진성씨만이 ‘유진’을 다르게 해석해서 연기하는 거다. 아주 색달라서 ‘뭐지?’ 하고 잠깐 고민했었다. 해석이 뜻밖이라 혼란스러운 건지, 내가 제대로 본 건지 확신이 없어서 그에게 다른 장면 연기를 요청드렸고, 그때 유진이구나 싶었다.
성소수자인 ‘유진’의 사랑 고백에 당황한 김현은 처음에는 경계하지만, 공동 집필 작업을 하면서 점차 마음의 벽을 허물고 나중에는 인간 대 인간으로 깊은 우정을 나눈다.
유진을 통해 김현의 성장에 또 인간관계에 있어 시선의 확장을 그리고 싶었다. 사람의 마음에 옳고 그름이라는 게 있을까. 누군가를 좋아하는 건 매우 보편적인 마음인데 때때로 어떤 선입견을 품고 이런 감정을 바라보거나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다만 성소수자라는 설정이 불편한 분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말했듯 그 선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초반의 관심과 흥미를 휘발하지 않고 끝까지 잘 붙잡아 둔다는 인상이었다. 연출 시 주안점은.
‘관계와 성장’이다. <장르만 로맨스>는 말 그대로 ‘장르만’ 로맨스라는 설정 아래 로맨스로 한정하기보다 인물 간의 여러 관계에 집중했다. 각자가 관계 속에서 충돌하는 감정을 거치며 성장하는 이야기다. 본의 아니게 서로 상처를 주고받지만, 이를 통해서 어떤 치유와 성장을 이루길 바랐고 이를 잘 전달하고 싶었다.
스스로는 어떤가. 관계 속에 상처받을 때 어떻게 회복하는 편인가.
관계 맺음에 계산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어떤 관계든 그 안에서 좋은 에너지를 받을 수도,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확인하려면 일단 관계를 맺어야 하니 말이다. 상처를 받을 경우, 상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야 내가 편하기 때문이다. 그 감정을 어떻게든 해소하지 못하면 그 감정에 과몰입하거나 매몰되어 버린다. 충분한 생각과 감정을 추스를 시간을 가졌는데도 해결되지 않을 때는 직접 말해서 풀려고 노력한다. 내가 부러지든, 상대가 부러지든 얘기해서 푸는 게 시원하다.
연출과 연기 양쪽을 해보니 어떤가. 연기에 영향을 줬을 것도 같다.
너무 다르지만, 공통점도 많다. 연기는 내게 주어진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집중한다면, 연출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캐릭터와 상황을 통해 어떻게 전달할지에 집중하게 된다. 연출한 후 연기해 보니 확실히 이전과 다른 느낌이 있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인간실격>(‘순규’역으로 출연)을 거의 본방 사수하면서 봤는데 나보다 이야기를 따라가며 보게 되더라.
원래 배우를 희망했었나. 어떤 과정을 거쳐 연기에 입문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운명처럼 찾아온 것 같다. 처음부터 배우의 꿈이 있던 건 아니고, 모델로 활동하다가 오디션 제안을 받았다. 오디션 보고 캐스팅됐다는 말을 듣고 크게 고민없이, 부모님을 살짝 반대하셨지만 연기를 시작했다. 당시 모델은 연기(배우) 등용문 같은 흐름이라 상대적으로 나는 좀 늦은 편이었다. 그렇게 <눈물>(2000)로 데뷔했고, 두 세 작품을 찍고 나니 본격적으로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더불어 연기에 대한 매력도 강하게 느끼기 시작했고 영화를 보는 시야가 더 넓어지면서 연기와 영화에 대해 많이 고민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느덧 벌써 20년 차가 됐다. 좋은 연기와 영화를 이어가고 싶은 바람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소소한 취미나 최근 즐거운 일이 있다면.
음… 당근? 당근마켓을 하는 게 취미이자 소소한 즐거움이다. 당근에 올릴 물건을 찾았을 때, 이걸 올리고 팔렸을 때 정말 행복하다. 환경을 보호하고 자원을 활용하는 의미 있는 거래라고 주변에 권하기도. (웃음) 이외에 집에서 하는 일은 거의 없고 주로 명상 같은 멍때리기를 하는 편이다.
사진제공. NEW
2021년 11월 25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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