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원작이 워낙 유명한 만화인 데다 시리즈의 전작인 최동훈 감독의 <타짜>(2006), 강형철 감독의 <타짜: 신의 손>(2014) 모두 추석 극장가에서 큰 성공을 거뒀었다. 부담감이 컸을 거다.
당연하다.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지. 나를 포함한 내 또래들은 <타짜>를 보면서 꿈을 키웠던 세대다. 벌써 13년 전 작품이니 말이다. 세대가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관객 선호와 성향에 맞춰 우리 세대 나름의 타짜를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본 개인적 소감은.
우리 영화가 반전이 꽤 있는데 나야 다 알고 보지만, 일반 관객은 어떻게 볼지 가장 궁금했다. 전작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으려고 허투루하지 않고 열심히 촬영했고 무엇보다 권오광 감독님이 영혼을 갈아 넣어 만드셨다.(웃음) 그 노력을 곁에서 지켜봤기에, 의도대로 잘 나온 것 같아 좋더라. 또 무엇보다 ‘애꾸’(류승범) 역의 승범 형이 만족해해서 뿌듯했다.
그간 청년 이미지가 강했는데 이번 <타짜: 원 와이드 잭>(이하 <타짜 3>) ‘도일출’(박정민)은 성인 남자의 모습이더라. 멋있었다! (웃음) 의도적으로 이미지 변화를 꾀한 건가.
좋게 봐줘서 고맙다. 이미지 변신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고 다만 ‘타짜’에 어울리는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이전과 다른 분위기와 느낌이 나온 게 아닌가 한다.
‘타짜’에 어울리는 연기란.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힘든데, 이전 <파수꾼>(2010)이나 <동주>(2015)와는 다른 연기라고 할까. 기존엔 박정민과 극 중 캐릭터를 섞어 현실성을 추구했다면 이번엔 장르성 높은 영화에 만화적인 면이 큰 캐릭터다. 한마디로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없는 인물 아닌가. 박정민이라는 사람을 멀리 떨어뜨려 놓고 연기했다. 또 극 중 워낙 매력적이고 튀는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니 ‘도일출’ 역시 그런 모습을 갖추려 했다. 어딘가 남자답고 멋있어야 할 것 같았고 초반부와 후반부의 모습이 좀 달라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풍파를 겪은 후 성숙하고 깊어진 남자의 면모를 보이려 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야윈 모습인데 일부러 감량한 건가.
일부러 증량과 감량을 시도한 것은 아니다. 어쩌다 보니 살이 상당히 붙은 상태에서 촬영을 시작했고, 영화 보니 정말 빵빵하더라, 이후 자연스럽게 많이 빠졌다. 다만 후반부 다방 시퀀스는 초췌한 모습을 보여야 해서 의도적으로 뺀 부분도 있다.
준비가 많이 필요한 역을 하는 거로 유명(?)하다. <그것만이 내 세상>(2017)에서는 피아노 연주와 서번트 연기, <변산>(2017)에서는 랩을 꼽을 수 있는데 이번도 만만치 않다. 어떻게 준비했는지. 또 평소 포커를 자주 하는 편인가.
룰은 아는데 즐기지는 않는다. 인터넷 게임을 많이 했는데 요즘 유저가 별로 없더라. 유투버 포커 방송을 찾아보기도 했다. 또 마술사 선생님께 밑장빼기, 셔플 등 기본 스킬과 카드 기술을 배웠고 손에 익히기 위해 일상적으로 카드를 쥐고 다녔었다. 물리적 시간으로 따지자면 캐스팅부터 촬영까지 한 7개월 정도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극 중 ‘까치’(이광수)가 사실 가장 고난이도 기술을 선보인다. 광수 형이 그 어려운 걸 직접 소화했다.
CG 혹은 대역의 도움을 받은 줄 알았는데.
사실 감독님이 CG의 도움을 받아야 할지 고민했는데 모두 광수 형이 직접 한 거다. 연습 끝에 결국 해내더라.
권 감독님이 캐스팅 제안하며 편지를, 또 류승범 배우에게는 당신이 편지를 보냈다던데 그 동네가 편지 쓰는 걸 즐기나 보다. (웃음) 편지 내용 좀 살짝 알려 달라.
감독님이 승범 형에게 시나리오를 보낸다기에 겸사겸사 팬레터를 보냈었다. 선배님을 보면서 꿈을 키웠고 언제 한 번 꼭 뵙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감독님이 내게 보낸 편지에는 캐스팅을 고사한 나를 설득하는 내용일 줄 알았는데 초반만 그랬고, 읽으면서 점점 마음이 움직였었다.
이유는.
감독님과 동문이고 워낙 유명했던 선배님이라 개인적으로 감독님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감독님이 나를 알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 했는데 아무도 모르는, 예전에 출연했던 단편부터 나를 지켜봤다고 하시더라. 그렇게 내 지나온 길을 이야기하는데 솔직히 감동했다. 또 감독님이 생각한 ‘도일출’과 내가 어느 정도 맞닿아 있는 게 보여 결과물이 어떻게 됐든 한번 가보자 했다.
최근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신비스러운 느낌조차 드는 류승범 배우와 함께 작업했다. 옆에서 본 그는 어떤 선배든가.
진짜 신비롭고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재미있다. 굉장히 차분하고 평화로운 에너지를 지니셨다고 할까. 극 중 ‘애꾸’(류승범)처럼 모든 사태를 관망하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곁에 계속 있고 싶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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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을 과감하게 덜어내 ‘타짜’ 특유의 색이 약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으론 케이퍼 무비 같은 인상도 강하다.
원작 팬이 기대하는 킬링 포인트가 있는데 우리 영화에는 그런 장면이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예전에 원작을 읽은 후 이번에 다시 보니 지금 시대 영화로 옮겨오기 어려운 설정이 많이 보이더라. 아마 그대로 가져왔다면 꽤 비난이 따랐을 거다. 감독님이 고민하다가 아예 새 판을 짜는 게 낫겠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하셨다. 나 역시 옳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새로 짠 판이 신선하게 느껴지고 관객으로서는 모르겠지만, 만든 입장에서는 만족한다. 개인적으로 케이퍼 무비를 좋아해서 더 그런 것도 있다.
후반부 노타이에 셔츠와 재킷 입은 모습에서 <타짜>의 ‘고니’(조승우)가 떠오르던데 혹시 의도한 것인가.
글쎄 나는 아닌데 의상팀에서는 염두에 뒀을지도 모르겠다. 졸부를 상대로 하는 판이라 믿음직한 모습을 보이려 포멀한 의상을 선택했었다. 나름 전통 있는 유명 라사에 가서 일부러 맞춘 의상이었다. (웃음)
극 중 ‘마돈나’(최유화)와의 베드신 이야기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첫 베드신인데 소감은.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은 아니다. 예전 단편 영화에서, 거의 본 사람이 없겠지만, 찍은 경험이 있다. 퀴어 영화로 상대가 할아버지였었다! (웃음) 나도 부담됐지만, 상대를 어떻게 배려해야 할지 몰라 많이 고민했다. 촬영 전날 (최) 유화 누나와 통화하면서 최대한 맞출 테니 너무 예민하게 가지 말자고 이야기했는데, 누나가 매우 성격이 좋아서 오히려 감독님 이하 스태프가 더 조심할 정도였다.
극 중 ‘마돈나’를 향한 ‘도일출’의 뜨거운 눈빛이 아주 강렬하더라. 문득 실제 사랑 경험이 궁금해지던데..
당연히 사랑에 빠진 적이 있다. 마음 아프고 상처받기도 했었다. 주변에서 걱정할 정도로 열렬히 빠졌던 적도 있다. 지금은 아쉽게도 옆에 아무도 없다. 꽤 오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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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짜: 신의 손>(2014) 오디션을 봤다 탈락했다고 들었다. 그때와 같은 제작사와 배급(싸이더스 제작, 롯데엔터테인먼트 배급)인데 이번 편을 위한 큰 그림이었을까? (웃음)
그럴리가! 처음 캐스팅 제안받았을 때 오디션 봤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중간에 떠오르더라. 당시 (이) 동휘 형이 맡은 역에 지원한 거였는데 형이 원체 연기를 잘하는 데다 난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로 갔기에 붙으면 오히려 이상한 오디션이었다. 어쨌든 3편에 주연으로 참여했으니 나름 성장한 것 맞지?(웃음)
독립 영화 중심 작업에서 <동주>(2015)로 상업 영화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 후 <그것만이 내 세상>(2017), <변산>(2018), <사바하>(2019)를 거쳐 이번 <타짜 3>로 상업 장르 영화의 정점을 찍은 게 아닌가 한다. 그간의 시간을 돌아본다면.
상업 영화에서 중요 배역을 맡았던 초기에는 자책을 자주 했었다. 원래 자책이 좀 많은 편이다. (웃음) 독립영화를 할 때는 나름 잘 해내고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상업 영화로 넘어오니 내 그릇 크기의 한계를 체감했다고 할까. 속상했고 그 마음이 자책으로 이어지더라. 혼자 해결해 보려고 술도 마시고 그러다 이준익 감독님이 보고 싶어져 술 먹고 전화하곤 했었다. 그런데 현장에서 내 생각과 의견을 전달하기 시작하면서 점차 편해졌다. <사바하> 하면서 장재현 감독님, (이) 정재 형 등 좋은 사람을 만난 것도 많이 도움 됐다. 내 그릇의 크기가 얼마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나를 좋아하고 인정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마음이 편해지고 현장에 나가고 싶어지더라. 초반에는 현장에 나가는 게 무섭고 괜히 눈치 보이고 했었거든.
어떤 감정인지 알겠다.
독립영화 혹은 상업영화 구분 없이 영화 한 편 한 편 자체를 아주 조심스럽고 소중하게 찍어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든다. 난 언제 저런 역을 할 수 있을까, 선배처럼 훌륭한 연기를 하고 싶다 등등 예전에는 개인적 욕심 채우기에 급급했던 것 같은데 점차 어떻게 하면 좋은 영화를,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의 방향이 나에게서 영화 자체로 바뀌었다. 한마디로 나 자신보다 영화를 더 생각하게 되더라. 예전엔 조급한 마음에 스트레스 받았다면 지금은 고민의 양과 질이 더 커진 느낌이다. 그런 면에서 영화판에서 수십 년 연기를 하고 계신 선배님들이 정말 대단해 보이고 아주 존경스럽다. 더 큰 고민을 안고 있을 것 아닌가.
일전에도 느낀 점인데 스스로에 상당히 엄격해 보인다.
좀 그렇지? 주변에서 걱정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자책 혹은 채찍질이 나를 좀먹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건강하게 하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동력삼아 뭐라도 움직이고 새로운 것을 준비하게 되거든. 모순되지만 즐거운 고통이라고 할까.
그렇다면 이번 작업 과정에서 가장 자책?했던 부분이 있다면.
영화 촬영하면서는 힘들지 않았고 즐겁게 현장에 나갔었다. 이번에 생긴 버릇인데 지친다 싶으면 쉬는 날 그 고장의 명소나 절 혹은 맛집 등을 돌아다니며 나름 힐링 여행했다. 보통 때는 쉬는 날 집에 갔었거든. 그렇게 다녔던 게 지나고 나니 좋은 추억이 되더라. 아, 중간에 살 빼려고 식단 조절했는데 그땐 좀 힘들었다.
글 작업을 꾸준히 하는 거로 알고 있고 최근엔 동네 책방 ‘책과 밤, 낮’을 오픈했다. 향후 출간 계획이 있는지. 또 연기 외에 각본과 연출 등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할 의향이 있나.
연출은 전혀 생각 없다. 시나 산문, 시나리오 등은 꾸준히 쓰고 있지만,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목적이 아니다. 내가 별 생각 없이 쓴 글이 누군가에서 상처로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이 어느 순간 두려워졌다. 그런데 비공개를 전제로 쓰다 보니 욕도 많아지고 상당히 네거티브해지는 면이 있더라. (웃음)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기면 언젠가 잘 써서 내보내고 싶다.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파수꾼>(2010) 윤성현 감독과 다시 만났다. (웃음) <사냥의 시간>으로 현재 후반 작업 중이다.
마지막 질문! 요즘 최대 관심사는.
다음 작품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다. 나중에 보면 놀랄만한 이야기인데 황정민, 이정재 선배와 함께한다. 또 무언가를 익혀야 하는 역을 맡아서 요즘 배우는 중이다.
2019년 9월 23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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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