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스포츠라는 말만 들어봤지, 해본 적은 없다. 춤 종류도 잘 모른다. 춤에 관심이 있어서 출연제의가 들어왔을 때 한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너무 어렵더라. 지금 춤을 배운지 한 달 정도 넘었는데, 정말 미친 듯이 하고 있다. 춤만 잘 출 수 있다면 다리에 든 멍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까지 든다.(웃음)
이번에 배우는 춤이 앞으로의 연기에 도움이 되겠는걸.
물론이다. 잘 배우면 많은 도움이 될 거다. 사실 연습하면서 춤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제작되면, 내 이름이 거론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한다.(웃음) 일단 김칫국부터 마시고 보는 거지.
예전 인터뷰에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왔던 이유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대중들에게 더 많이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했는데, <댄싱 위드 더 스타>도 그런 이유로 출연한 건가?
그건 아니다.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의 본 모습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버라이어티에 출연했던 거다. 하지만 <댄싱 위드 더 스타>는 다르다. 진정 나를 위해서 출연했다. 다치는 건 두렵지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매주 커지고 있다.(웃음) 춤이라는 게 역동적이라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활력을 준다. 이번 방송을 계기로 매사에 도전하는 걸 꺼려하는 분들이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김규리도 하는데 나도 못하겠어”라고 말이다.
<미인도>때, 그림과 승마 등 많은 걸 배운 걸로 아는데, 원래 배우는 걸 좋아하나보다.
배우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배우라서 좋은 점은 단기간에 뭔가를 빨리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는 거다. 배우는 과정은 힘들지만 그 보람은 크다. 평소에 지구력이 없어서 포기하는 편인데, 작품 때문에 배우는 건 내 스스로가 놀랄 만큼 열심히 한다.(웃음)
영화로 돌아가 보자. 기자간담회 때 발톱이 빠질 정도로 힘든 촬영 현장이었다며 푸념 했다.
50회차 같은 25회차 였다. 그것도 11월부터 12월까지. 생각만 해도 춥네.(웃음)
이번 영화를 통해 뭔가 배운 게 있다면 무엇인가?
음(한참을 생각하더니) 추위를 이기는 방법을 배웠다.(좌중 폭소)
그렇다고 그것만 배운 건 아니다.(웃음)
뭘 또 배웠나?
평양사투리.(웃음) 이상하게 예전부터 사투리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사투리로 연기해야 하는 드라마와 영화를 놓친 적도 있다.
그럼 <풍산개>가 사투리로 연기한 첫 작품인가?
맞다. 이번 영화는 크랭크인하기 3일 전에 시나리오를 받았다. 그 때 영화 <사랑이 무서워>하고 드라마 단막극을 같이 병행하고 있었던 터라 정신이 없었다. 근데 시나리오가 좋았다. 노개런티였지만 모두들 돈을 안 받고 일한다고 해서 같이 ‘으쌰 으쌰’ 하는 기분으로 출연 결정을 했다. 또 <사랑이 무서워> 이후 스케줄이 없는 상황이었다. 노느니 연기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참여한 거다. 막상 한다고 했는데, 그 때서야 평양말을 공부할 시간이 딱 이틀 남았다는 걸 알았다.
그 짧은 시간에 어떻게 공부했나?
제작비가 없어서 누구에게 지도받지 못했다. 그 대신 <나의 결혼원정기> <북경의 남쪽> 등 북한말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속성으로 공부했다.(웃음) 그리고 감독님이 평양 아나운서 출신의 탈북자와 인터뷰를 한 녹음 파일을 줬다. 억양이 참 특이했다. 우리나라 60~70년대 말하고 너무 비슷하더라.(웃음)
영화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
<미인도>는 깊은 생각 끝에 작품을 선택한 경우였고, 이와 반대로 <풍산개>는 단순하게 출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정했다. 그냥 시나리오 읽고서 뭔가 철심이 박힌 것 같은 강렬한 느낌이 왔다. 여배우를 찾지 못한 시나리오가 돌고 돌다 크랭크인 3일전에 나에게 왔다. 여기서 거절하면 또다시 여배우를 구해야 하는데, 노개런티로 연기할 배우가 몇 명이나 되겠냐. 감독님이 그러더라. “노개런티지만 영화 지분은 조금 줄께”라고. 배우뿐만 아니라 스텝들도 돈을 안 받는 영화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출연을 결정했다.
미팅자리에서 계상 오빠를 처음 봤는데, 극중 캐릭터처럼 말이 없는 거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에는 편하게 지내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근데 촬영장에서 오빠가 먼저 다가와 주고, 말도 많이 걸어 줬다. 카메라가 돌아가면 내가 말을 많이 하고 ‘컷’ 소리가 나면 오빠가 말을 많이 했다. 특히 영화에 대한 이야기나 연기에 대한 질문을 계속하더라. 이후 선입견이 많이 깨졌고, 서로 편안하게 해주려고 많이 노력했다. 안 그랬으면 더 많이 힘들었을 거다.
50회차 같은 25회차의 빡빡한 촬영 스케줄이 서로를 의지하게 만든 것 같다.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와 스텝들이 통으로 굶고, 잠도 못자니까 서로에게 에너지를 준거지.(웃음)
인옥(김규리)에 대한 이야기가 불충분 한 건, 아쉽더라.
과거에 인옥이 부모는 북한 정치 간부였는데, 권력의 힘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래서 인옥이 혼자 살아남았지. 인옥을 남한으로 오게 한 망명남은 인옥의 아버지 친구다. 그래서 혼자 남은 인옥이를 보호해 준거다. 인옥은 자신을 지켜준 그 남자에게 정을 붙이고, 그 감정을 사랑이라고 느낀 거다. 이런 내막을 보여줬으면 인옥의 행동이 잘 이해됐을 텐데.
휴전선을 넘는 3시간 동안 풍산이와 인옥은 사랑의 감정을 나눈다. 그게 가능하다고 보나?
그게 가능하지 않으면 연기를 할 수 없었다고 본다. 인옥이는 활동적인 인물이다. 반대로 풍산이는 과묵하고 거칠다. 사람이 소통할 때 보통은 말로 하잖나. 하지만 이들은 그런 소통이 안 된다. 대신 눈빛으로 통한다. 인옥은 겉모습과는 달리 순수한 풍산의 눈을 보게 됐고, 어려움 속에서 자신을 남한까지 데려온 그에게 정을 느낀다. 그 정이 사랑으로 발전한 거다.
풍산이와 인옥이 휴전선을 넘는 동안 예상치 못한 코미디가 나온다.
시나리오와 촬영할 때는 그 장면들이 그렇게 재미있을 줄은 몰랐다. 그냥 영화가 액션, 멜로, 느와르라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영화를 보니 너무 웃기더라. <풍산개>가 분단 이데올로기를 다루고 있지 않나. 그 소재를 유쾌하게 풀어내니까 계속 웃게 되더라. 이정도로 웃길 줄은 몰랐다.
사투리 연습할 때도 웃겨서 혼났다. 감독님이 준 녹음 파일을 심각하게 듣고 있었다. 녹음한 것 가운데 북한에도 ‘돌대가리’가 있냐는 질문이 있었는데, 그 북한 아나운서 출신 탈북자분이 특유의 억양으로 ‘닭대가리’, ‘개다가리’도 있다고 하더라. 집중해서 듣고 있는데, 갑자기 그 대답이 나오니까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아마 이런 느낌이 <풍산개>에서도 느껴지는 것 같다.
초반부에는 멜로와 코믹한 분분이 있었다면, 중반부부터는 망명자와 함께 사는 인옥의 수난이 시작된다. 인옥을 남한으로 데려온 대가로 돈이 아닌 고문을 당한 풍산이가 급기야는 이 둘(망명자와 인옥)을 납치한다.
두 남자의 사랑을 받는 상황이지만, 어디에도 안주할 수 없는 그녀의 처지가 박복하지.
그런 인옥이의 박복함이 잘 표현된 장면이라면 차안에서 눈물 흘리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그렇지. 가장 예쁘게 나온 장면이기도 하다.(웃음)
또 하나의 감정씬이라고 하면…….
키스씬?
맞다. 윤계상씨의 수염 때문에 고생 많이 한 그 키스씬.
계상이 오빠도 냄새 때문에 고생 많이 했다.(웃음) 그 장면을 밤새면서 촬영했는데, 실내에서 찍었다. 하지만 바람이 다 들어오는 실내여서 춥기는 마찬가지였다. 폐광굴이라서 먼지도 많았다. 게다가 오빠는 두 발이 의자에 묶인 채로 연기했다. 나 또한 손이 묶인 채로 키스씬을 찍었다. 밧줄이 아닌 철사로 묶여서 손목이 더 아팠고, 바닥이 너무 차가워서 기다리는 시간이 힘들었다. 그걸 이 악물고 버틴 이유가 바로 오빠 때문이었다. 극중 민소매를 입고 촬영해서 맨 살이 차가운 바닥에 닿은 채 연기했다. 너무 추워보였다. 그래도 이 악물고 버티더라. 그래서 나도 이 악물고 참고 또 참아서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웃음)
예전에는 더운 여름에도 에어컨을 안틀 정도로 추위를 잘 탔다. 하지만 이번 영화를 찍고 추위에 면역력이 생겼다.(웃음) 하긴 이렇게 말해도 또 다시 촬영하라고 하면 엄두가 안 난다. 인옥이가 산에서 북한 공작원에게 쫓기는 장면이 있는데, 파주에서 촬영했다. 임진강 강바람이 왜 이렇게 차가운지 눈물이 핑 돌더라. 옷도 얇게 입어서 너무 추웠다. 나중에는 땀 분장한 게 얼 정도였다.
추운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전재홍 감독은 계속 촬영을 했을 텐데.
(웃음)지금 감독님이 뒤에서 웃고 계신다.(이날 전재홍 감독이 인터뷰 장소를 방문했었다.) 근데 고생한 보람은 있어야지. 추워도 촬영을 계속했던 건 좋은 장면을 얻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추위와 배고픔을 이겨냈다. 아마 대부분이 “왜 이 영화를 한다고 했지”하면서 후회했을 거다.(웃음) 개인적으로는 물에 들어갈 때 그 생각을 많이 했다. 극중 인옥이 물속에서 기절하고, 풍산이가 인공호흡을 해서 다시 살리는 장면이다. 온 몸을 다 적셔놓고 촬영에 들어가니 춥고, 새벽 1시쯤 물에 들어가니 더 춥고, 이어서 진흙을 온몸에 바르는 장면까지 찍으니까 지옥이 따로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촬영하다가 쓰러진 적은 없나?
촬영할 때는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쓰러지더라도 ‘컷’ 소리가 나야 쓰러지지.(웃음) 촬영하다 쓰러지거나 아프면 나만 손해지. 이 악물고 버텨야 한다. 발톱이 나가도 말이다.(웃음)
최대 촬영을 몇 시간까지 해봤나?
잘 기억도 안 나고, 기억하기도 싫은데.(웃음) 3일 동안 계속 촬영한 적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을 안 보게 되더라. 시계도 안차고 핸드폰도 안보고 연기만 생각했다.
얘기를 듣자하니 간식 담당을 자처했다고.
스태프들이 바쁘니까, 내가 했다. 내가 굶으면 짜증내는 스타일이다. 배고프면 일을 못할 정도니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밥 못 먹으면 서럽지 않나. 그래서 열심히 사다 날랐다.(웃음)
그럼. 예쁜 여배우가 사다주는 간식이 스태프들에게는 힘이 됐을 거다.(웃음)
<하하하>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경험하고, 이번 영화를 통해 김기덕 감독 사단의 전재홍 감독과 같이 작업을 했는데, 두 작업 스타일을 비교하자면 어떤가?
일단 <하하하>는 배우려고 들어갔다. 홍상수 감독님과 같이 작업했던 사람들은 그가 천재라고 하더라. 모두가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직접 경험해 보고 싶어서 참여했다. 이번 작품은 단순히 해야 되는 작품이었다. 배우는 것을 떠나서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들었기에 시작한 작품이다.
<풍산개>가 전재홍 감독의 영화지만, 김기덕 감독의 느낌도 다분한 작품이다.
김기덕 감독님과 작업한 적은 없지만, 시나리오로 접한 김기덕 감독님은 자기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인 것 같다. 그런 상업논리에 따라서 때때로 자기 목소리를 바꾸는 감독들보다는 훨씬 멋있다.
우연히 케이블TV를 보다가 2004년도에 방영한 <한강수타령>을 봤는데, 정말 반갑더라. 최근 단막극에도 출연했는데, 언제쯤 드라마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영화나 드라마를 딱 정해놓고 움직이지는 않는다. 어느 곳이던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언제든 갈 수 있다. 일단 기회가 잘 닿아야 한다. 물론 운도 따라야지. 하고 싶다고 다 하는 건 아니지 않나. <풍산개>도 마찬가지다. 저예산으로 배우와 스태프들이 악을 쓰고 영화를 만든 이유 중 하나는 돈은 없지만 올곧게 한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최근 투자사로 인해서 영화의 색이 변하고, 작품에 잘 맞는 배우가 아닌 제작사에서 선택한 배우가 들어가 퇴색해버리는 작품이 많다. 김기덕 감독님은 이번 영화를 통해 이런 폐해가 없어지기를 바라는 바람을 드러낸 것 같다.
앞으로 할 작품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댄싱 위드 더 스타>가 더 중요할 것 같다.
오! 그렇지. 춤도 힘들지만 생방송의 압박도 만만치 않다.(웃음)
그래도 서바이벌이니까 어떻게든 살아남아야지.(웃음) 하지만 1등 욕심은 없다. 이건 나와의 싸움이다. 춤을 배우기 위해 들어왔고, 뭔가에 익숙해진 나에게 주는 채찍질이라고 생각한다. 등수보다는 내 자신이 활력을 얻고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지난주에는 활력도 활력이지만 춤을 즐기더라. 플로어를 휘젓고 다니던데.
속은 거다. 중간부터 정신을 잃었다.(웃음) 즐기고 뭐고 없었다. 중간부터 정신 줄 놓고 했다. 고마운 게 연기는 혼자 준비하는데, 춤은 파트너가 있다는 거다. 정신을 놓고 있어도 파트너가 잘 이끌어줘서 좋은 춤이 나왔다. 이런 게 연기와는 다른 춤의 매력이다.
개명을 한지 3년 정도 됐다. 보통 개명하는 건 새로운 걸 시작할 때 하는데, 이름을 바꾼 후에 뭐가 달라졌나?
삶의 대한 생각 자체가 달라졌다. 인생을 연극으로 표현하자면 김민선은 1막이고 김규리는 2막이다. 1막에서는 주구장창 설명만 했다. 감정 없이 말이다. 하지만 2막은 다르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 나를 위해 말이다. 내가 행복하면 다른 사람들도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 연기도 마찬가지다. 내 자신도 사랑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사랑에 대해 연기를 하겠나.
이름을 바꾼 후에 힘든 점도 있었을 것 같은데.
아직도 김민선이란 이름을 불러주시는 분들이 많다. 사실 상관은 없다. 다만 바뀌었으니까 김규리로 불러달라고 한다. 그럴 때마다 ‘아직 갈 길이 멀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더 분발하고 노력해야지. 자신 있게 말이다.
지금 인생 2막의 초반부가 지나가고 있다. 앞으로 어떤 2막을 열고 싶은가?
이름을 바꾸면서 다시 신인으로 돌아간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2막의 시작은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당당히 맞서면서 여기까지 왔다. 빛을 못 볼 줄 알았던 <풍산개>가 개봉하고, <댄싱 위드 더 스타>에도 출연하고 있어서 요즘 행복하다. 연기도, 춤도 모두 나를 즐겁게 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거다.
2011년 6월 24일 금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2011년 6월 24일 금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