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껴안고 눈물 핑>은 봄에 어울리는 달달한 영화더라. 2009년 여름에 찍은 걸로 알고 있는데, 거의 2년 만에 개봉이다. 감회가 새롭겠다.
영화가 개봉하게 됐다고 했을 때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촬영하고 오랜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기억이 가물가물하다.(웃음) 인터뷰가 잡혔다고 했을 때도, 기억이 잘 안 나 앞이 캄캄했다. 어제 일도 기억을 잘 못하는데.(웃음)
아직 20대인데.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27살이다.(웃음) 지난 주 일도 기억이 안 나는데, 뭘. 언론시사 때 영화상영 시간에 방송 매체 인터뷰를 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촬영 중 에피소드를 잘못 말했다. 극중 비가 내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 비가 실제로 왔다고 기억하고 있던 거다.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켠이 오빠랑 (신)동미 언니랑 그 때 살수차 뿌린 거였다고 말하더라.(웃음)
영화를 보니, 대학로에서 찍은 장면이 많더라.
평상시 대학로에 잘 가진 않았다. 일부러 연극을 찾아다니면서 보는 편은 아니라 대학로라는 공간 자체가 생소했다. 근데 거의 한 달 정도 이곳에서 촬영하다보니 대학로 곳곳을 알게 됐다.(웃음) 단비가 찬영의 얼굴을 두 손으로 딱 잡는 스틸도 마로니에 공원에서 찍었다.
단비라는 캐릭터를 연기했는데, 이름만 놓고 봤을 때 찬영(이켠)에게 말 그대로 ‘단비’ 같은 여자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똑같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단비처럼 소중한 사람이 감독님한테 있었지 않았을까하는 의문도 들었다. 시나리오도 감독님이 직접 쓴 거라 어느 정도 경험담이 들어갔을 것이다.
(맞장구를 치며)들어맞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원래 찬영은 뿔테 안경을 쓰는 설정이었다. 시사 때 봐서 알겠지만 감독님도 뿔테 안경을 쓴다. 그 사실을 첫 미팅 때 알게 됐다. 감독님이 찬영이하고 정말 닮았다. 그런데 아직까지 물어보지 못했다. 그동안 혼자만 생각하고 있다 보니 궁금증만 커져가더라.
<꼭 껴안고 눈물 핑>이란 제목이 약간 낯간지럽다. 시나리오 받았을 때도 이 제목이었나?
감독님이 영화제목을 <꼭 껴안고 눈물 핑>이라고 처음 소개했을 때 “그거 가제죠?”라고 말할 정도로 낯간지러웠다. 감독님은 고개를 절래 흔들면서 아니라고 말하더라.(웃음) 원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제목이 확정된 건 아니었다. 그 중 <참 좋은 당신>이라는 제목도 있었다.
메일함을 열어보는데, 제목이 <꼭 껴안고 눈물 핑>이라서 놀랬다.(웃음)
메이크업 해주는 분들이 매번 물어본다. 제목을 얘기하면 그들도 안 믿더라. 장난하지 말고 진짜 제목을 얘기해달라고 할 정도였다.(웃음)
첫 주연이다. 소감이 남다르겠다.
다른 인터뷰에서도 모두 주연이란 점을 강조하더라. 그 때 마다 언제나 주연이라 생각하면서 연기했다고 답했다.(웃음) 농담이고, 그냥 주연이던 조연이던 열심히 하는 건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조연이라고 해서 주연보다 덜 노력하는 건 아니지 않나. 다른 작품과 달랐던 건 가장 적은 나이차이의 배우와 공연했다는 것이다. 드라마 <종합병원 2>의 차태현, 김정은 선배부터 고현정, 이미연 선배도 14살, 윤계상 오빠도 7살, 이종혁 선배는 유부남, 손현주 선배는 20살 차이였다. <걸스카우트>는 나문희 선생님부터 (이)경실 언니, (김)선아 언니였고. 계속 선배님들과 연기하다 비슷한 또래랑 연기하니 좋더라. 켠이 오빠랑 4살 차이밖에 안 나서 그런지 조금 더 편했다. 근데 상대배우가 켠이 오빠라고 해서 약간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
무슨 걱정?
나보다 키가 작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웃음) 근데 예상외로 키가 크더라. 또 얼굴이 너무 작아 보여 그것도 걱정이었다. 클로즈업 장면에서 내 얼굴이 크게 나올까봐. 그리고 매사 너무 진지하더라. 가볍게 생겨가지고.(웃음)
이켠씨를 제작보고회 때도 봤는데, 진지하게 대답도 잘하고 영화 홍보도 알아서 잘 하더라.
진지하다. 말도 정말 잘한다. 제작보고회 때도 생각보다 말을 너무 잘해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언론시사회 전날 켠이 오빠한테 전화해서 영화에 대해 질문하면 어떻게 말할지 걱정이라고 푸념했더니 자기도 마찬가지라고 하더라. 근데 당일 날 보니 나름대로 멘트를 다 준비해가지고 온 거다. 배신자.(웃음)
그 땐 같이 붙는 장면이 없었고, 스쳐지나가는 장면이 한두 개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번 영화로 다시 만났는데, 알고 보니 아는 언니의 친구였다. 그리고 <종합병원 2>의 노도철 PD님이 공교롭게도 켠이 오빠가 나온 <안녕! 프란체스카>도 연출을 맡았었다. 그래서 가끔씩 감독님 흉도 보고 그랬다.(웃음) 그런 공통된 부분이 있어서 그런지 더 빨리 알게 됐고, 호흡 맞추기도 어렵지 않았다.
가장 늦게 캐스팅돼서 걱정이 많았을 것 같은데, 그런 공통점들로 인해 연기하기는 편했을 것 같다.
한편으론 참 신기했다. 고등학교 때 켠이 오빠가 장나라 선배하고 같이 나온 정보통신 광고보고 깔깔깔 웃었는데, 그 사람과 같이 연기를 하게 되니 놀랍더라고. 가장 늦게 캐스팅되기도 했고, 저예산 영화라 빠른 시간 안에 끝내야 해서 직접 만나 리딩 연습도 많이 했다. 근데 가장 큰 문제는 극중 연극하는 장면이었다. 둘 다 연극을 해본 경험이 없어서 발성 자체가 연극 연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연극 동영상을 보면서 연습하기는 했지만, 둘 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마음으로 서로 의지하며 연습했던 것 같다.
극중 연극 제목이 <그 자식 사랑했네>다.
연극 자체는 좋은 작품이다. 근데 막상 연기하려니 어려웠지. 그리고 영화의 흐름상 극중 연극 장면이 개연성 없어 보이지는 않을까,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원래 연극 장면이 더 많았는데, 감독님이 많이 덜어낸 편이다. 첫 장면부터 맥주잔을 부딪치며 이야기를 나누는 연극 장면으로부터 시작되는 건데, 둘이 걸어가다 단비가 갑자기 찬영을 안고, “어 가만히 있네”라고 말하는 걸로 바뀌었다.
김동원 감독과 이켠씨가 영화 스틸에 각자 코멘터리를 단 기사를 보니 물안경을 쓰고 삼겹살을 먹는 장면도 편집되었다고 하던데.
개인적으론 편집이 돼서 다행이다. 연기할 때 잘 이해가 안 갔던 장면이었는데, 감독님이 즉흥적으로 해보라고 했거든. 옥상에서 고기를 구워 먹으며 수영하는 것처럼 하라는 디렉션에 “네?”하며 놀랐던 기억이 난다. 감독님은 단비라면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 그때 정말 단비를 향한 감독님의 사랑이 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뭔가 애증의 관계였던 게 분명하다.(웃음)
단비는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연기를 하면서 과연 이런 여자가 있을까 의문을 가졌던 적도 많다. 근데 만약 찬영이 유부남이 아니었다면 오히려 단비의 이런 행동들이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어찌됐건 극중에서는 ‘도둑연애’니까, 찬영은 단비의 행동 하나하나에 놀랍게 반응하고, 그런 반응들이 단비를 더 이상하게 보게끔 만드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단비가 4차원처럼 보인다고 하지만, 이들이 일반적인 연애를 하는 커플이었다면 단비는 정상적인 아이였을 거다. 그렇지 않나?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찬영은 단비의 마음을 받아주는 것 보다 밀쳐내기 바쁘니까.
찬영은 단비를 좋아하지만, 자신을 묵묵히 지켜봐주고 사랑하는 미선(신동미)을 놓치지 않는다. 또한 불륜이라는 점 때문에 자꾸 선을 긋는다. 이런 면 때문에 단비가 힘들어하고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영화의 외피는 찬영과 단비의 달콤한 사랑이야기이지만, 그 안에는 불륜이라는 소재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일단 불륜이라는 걸 배제하려고 했다. 불륜하면 머리끄덩이 잡고, “이년아 저년아” 하면서 싸우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달콤한 사랑 영화와는 맞지 않았다. 2009년 부산국제영화제 때 상영을 했는데, 관객과의 대화 때 어떤 남성분이 감독님에게 불륜을 너무 아름답게 그린 게 아니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잊고 있던 불륜이란 소재를 다시 떠올렸다. 그 말을 들은 후에 내 연기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매 작품마다 인물의 직업이나 행동들을 실제 해보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불륜을 실제로 할 수는 없지 않은가.(웃음) 그래서 감독님께 많이 물어봤다. 근데 감독님도 그런 경험은 없다고 말하더라.
감독의 디렉션에 많이 따라가는 편이라고 들었다.
아직 잘 모르겠다. 드라마 찍을 때는 워낙 스케줄이 바쁘니 감독님이 일일이 디렉션을 주지 못한다. 그 때 마다 선배들이 틈틈이 알려주면서 같이 호흡을 맞춘다. 근데 <걸스카우트>를 찍을 때 딴 세상에 온 줄 알았다. 의외로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많더라. 그래서 이번에도 감독님과 대화를 많이 하려고 했다.
진짜?(웃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생뚱맞을 수 있는데, 단비의 독특한 성향을 잘 보여주면서 유쾌하게 볼 수 있었다. 특히 “침대 밑나무 젓가락에 마늘을 꽂아 보자!”라는 대사가 웃기더라.
솔직히 영화와는 잘 맞지 않는 장면이라 생각한다. 중학교 때부터 다이어리를 쓰는 걸 좋아해서 사랑에 관한 시를 옮겨 적기도 했는데, 극중에 나오는 시는 정말 얼토당토하지 않나. 그럼에도 진지하게 시를 낭독하는 단비는 정말 당찬 아이 같다. 실제 학교 다닐 때는 단비처럼 살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난 그냥 묻어가는 아이였다. 정답을 알고 있어도 먼저 나서지 않고, 다른 아이들이 안다 대답하면 그제야 동조하는 그런 아이였다.
의외다. 꽤나 자기주장이 확실했을 것 같은데.
아니다. 그 때 왜 그랬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키가 커서 그랬던 것 같다. 안 그래도 다른 아이들보다 키가 크니 같이 떠들어도 혼자만 걸리는 거다. 그게 정말 싫었다. 근데 성격은 또 낙천적이라서 금방 잊고.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스타일이었다.
영화에서 키스신을 빼놓을 수 없을 텐데, 기자간담회 때 이켠씨가 첫 키스신이라 털어놓자 많이 놀란 표정을 짓더라.
정말 첫 키스신인지 몰랐다. 그냥 잘하던데.(웃음) 하긴, 영화 촬영 스케줄이 거의 드라마 찍는 것처럼 바빠 그런 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찬영이 단비를 벽에 몰아넣고 키스하려는 장면은 켠이씨가 진짜 해보고 싶어 그런 자세를 취했다고 하던데.
에이, 아니다. 원래 있었다.(웃음) 말을 잘한다니까. 감독님이 꼼꼼해서 그 장면도 미리 합을 맞췄던 장면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감독님의 아이디어지 켠이 오빠의 아이디어는 아니다.
더운 건 둘째 치고, 감정 잡기가 수월하지 않았다. 저예산 영화를 처음 찍어보는데, 예산문제 때문에 주변 통제가 잘 안 됐다. 어느 날 마로니에 공원에서 감정을 다잡고 연기를 하는데, 하필이면 오토바이가 ‘슝’하고 지나가는 거다. 다시 감정을 잡으려니 쉽지 않았고, 빨리 찍어야 하니까 이리저리 고충이 많았다. 여건상, 문제는 좀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던 건, 빨리 찍어서 그런지 호흡을 놓치지 않고 연기했단 점이다. <걸스카우트> 때는 하루에 한 장면씩 찍으니 여유는 있어 좋았는데, 그만큼 감정과 호흡을 자꾸 놓치게 되더라.
자전거 타는 장면에서 동요 ‘아기 염소’가 삽입됐는데, 음악이 장면과 잘 맞아 떨어진다.
깜짝 놀랐다. 감독님이 노래에 맞게 그 장면을 편집했는데, 화면하고 음악하고 정말 잘 맞아 떨어지는 거다. 영화를 보고, 감독님이 이런 순수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느꼈다.
후반부로 갈수록 사랑보단 이별에 주안점을 둔다.
사랑은 결코 아름다운 게 아니다. 사랑 뒤엔 반드시 이별이란 아픔이 있으니까. 그러므로 이별 할 걸 알면서도 찬영을 사랑한 단비가 아름다워 보였다. 물론 영화는 사랑할 때의 달콤한 순간을 집중적으로 보여주지만, 진정 말하고자 하는 건 그들이 이별을 하고 마음을 정리하는 순간이라 생각한다. 제목만 보면 핑크색처럼 보이지만 끝날 때까지 그 색을 유지하는 건 아니다. 찬영과 단비의 이별, 그리고 미선과의 이해관계를 통해 어두운 현실도 보여준다. 결국 찬영은 단비와 이별을 하고 미선에게 갔지만, 이후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부분들로 볼 때, 감독님은 영화의 마무리를 관객들에게 맡겼다는 생각도 든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배우 고준희에게 이번 영화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이 작품을 통해 배운 건 무엇이 있을까?
극을 이끌어간다는 게 참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 그동안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서 묻어가는 식이었다면, 이번 영화는 직접 나서야 했기 때문에 부담감이 있었다. 하지만 어렵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려고 했다. 매번 묻어갈 수는 없으니까. 이번 영화를 통해 드라마와 달리 2시간동안 내가 이끌어가는 걸 해봤고,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도 경험했다. 선배들의 도움을 받지 못하니까 스스로 깨우치는 방법을 조금 안 것도 같다. 그리고 막내라는 수식어를 이제는 벗어던져야 할 시기가 왔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번에도 막내긴 했지만.(웃음)
그건 지금으로부터 무려 3년 전 일이다.(웃음) 요즘은 어떻게 하면 어려보이지가 가장 큰 고민이다. 얼마 전 <슈퍼스타K 2>에 나왔던 존 박씨랑 광고촬영을 했는데, 남동생하고 동갑인 88년생이더라. 매니저 오빠한테 내가 누나처럼 보이냐고 계속 물어봤다.
그리 의식하진 마라 아직 20대잖나. 그런 고민은 30대가 돼서 해도 늦지 않는다.
(웃음)그래도 의식되는 걸 어떡해.
개봉 이후 새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는 걸로 알고 있다.
<욕망의 불꽃> 후속으로 4월 달에 방영 예정인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에 캐스팅 됐고, 김지훈 감독님의 <타워>에 출연한다. 아직 언론에 알리지 않아서 그렇지, 드라마보다 영화에 먼저 캐스팅 됐다.
<종합병원 2> 이후 드라마는 오랜만이다.
그 드라마 종영 후 <꼭 껴안고 눈물 핑>을 찍었는데, 개봉이 늦어져서 본의 아니게 활동이 뜸했다. 이제는 누구의 도움을 받기보다 혼자 일어설 때가 온 것 같다. 쉬지 않고 열심히 뛰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라도 노력 많이 할 거다.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