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에게 ‘여자 같이 생겼다’라는 표현은 결코 칭찬으로 불릴 수 없겠지만 사실 요즘 영화계의 대세는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이 대세다. 그 족보를 따라 올라가보면 가장 윗선에 ‘장동건’이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 아름다움은 중국의 명감독 첸 카이거의 마음을 사로 잡았고 직접 <무극>대본을 들고 한국으로 찾아오게 만드는 마력을 발휘했다. 언론에 알려진 대로 애초 장군역에 내정되어 있었다는 소문은 영화사측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시나리오를 보고 무조건 하고 싶은 역할을 우선적으로 맡기려고 했다.”는 감독의 욕심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노장감독의 그 노력에 기꺼이 동참한 장동건은 설국의 노예로 빛보다 빠른 발을 가진 ‘쿤룬’으로 나온다.
그런 ‘쿤룬’에게 의리를 앞세워 ‘황제’를 지키라고 명령하는 ‘쿠앙민’역의 사나다 히로유키는 자신의 노예로 인해 ‘거짓된 사랑’을 얻지만 끝까지 장군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뒤늦게 깨달은 진정한 사랑으로 괴로워하는 복잡한 심리 상태를 연기 해야 했다. 1960년 생인 사나다는 일본에서 ‘남자의 향기가 나는 배우’로 불리는 국민 배우다. 일본 배우로는 이례적으로 런던극단에서 연기를 한 경험으로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는데, 그가 대답할 때 보여준 따뜻한 눈빛은 배우로서의 ‘진지함’과 인간 대 인간으로 느끼는 ‘친밀함’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신라호텔 22층의 스위트 룸에서 진행된 인터뷰는 기자들이 다들 기피하는 라운드 진행이었지만 이번 경우에는 그런 상황이 오히려 편하게 다가왔다. 그건 아름다운걸 보면 금상 사라질까 두려워 불안해 하는 평소 본인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두 배우의 눈을 바라보고 있자니 연륜으로 빛나는 사나다 히로유키와 배우로서의 열정을 간직한 장동건의 결심이 느껴져 은은한 향기가 더해진 화려한 서양란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언제나 꽃보다 아름다운 두 배우와 나눈 이야기.
사나다 히로유키:애초 감독은 전형적인 장군역할을 원하지 않았다. 인간적인 냄새가 풍기는 그런 캐릭터를 원했다. 강하지만, 나약하기도하고, 때로는 어린애 같아 보이는 그런 모습을 등등. 그래서인지 좀 어려웠다.(웃음) 그러나 그 부분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판타지, 액션 영화이지만, 나의 책임은 어떻게 이 캐릭터가 얼마나 인간적인 모습을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관건이었다. 최고에서 지옥까지 모든 걸 잃어버리지만, 사랑의 힘으로 극복하는 점. 그것이 슬픔뿐만 아니라, 모든 걸 잃어버렸지만, 사랑을 느끼는 그런 변화를 인간적인 모습으로 구현해야 하는 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장동건:영화를 선택할 때는 여러 이유가 있다. 캐릭터가 맘에 들어서, 작품전체가 좋아서, 때론 거기서 역할을 하고 싶어서 참여하는 것처럼. 이번 선택의 이유는 90% 이상이 첸카이거 감독과의 작업이라는 데 있다. 첸 감독과의 작업을 통해서 배우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분명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많은 결정을 하고 나니까, 역할은 두 번째 문제가 된거다. 노예 역할을 하게 된 이유는 전에 한 역과 다른 역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들었기 때문이다. 순수한 모습이나, 부드러운 모습의 캐릭터를 한지가 꽤 오래됐다.(웃음)
사나다씨는 정말 복잡한 인물을 연기하셨다. 특별히 염두 해둔 롤 모델이 있었는지? 특히, 젊은 시절 핸섬 가이로 이름을 떨치다가 중년이 멋있는 배우로 거듭나고 있는듯 하다. <무극>도 그 중의 한편이겠지만 배우로서 연기관을 알고 싶다.
사나다: 이번 영화의 '쿠앙민'은 굉장히 즐겁게 한 역할이다. 대본에 나와있는 것을 그대로 하기보다. 상황에 따라 어떤 때는 매력적으로, 다른 장면에서는 섬세하게 표현했다. 이건 감독과의 공동작업이라고 보면 된다. 굳이 롤모델을 따지자면 그건 감독님이다.
제가 보기에는 노예와 장군이 사실 한 사람이다. 감독이야말로 두 가지 면을 갖고 있다. 워낙 연기를 잘 하시기도 하고 직접 보여주시기도 했었는데, 가끔은 시처럼 사자성어를 던지며 이런 분위기를 만들어달라고 해서 내가 그렇게 연기를 하면 그 모습들을 다 찍었다가 나중에 감독이 이거다라고 하는걸 채택한 거다.
어렸을 때 액션영화의 주인공이 끌렸었는데 지금은 인간적인 캐릭터가 맘에 든다. <무극>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노예’역을 누가하는지가 중요했는데 장동건이 그 역할을 맡아서 좋았다. 나에게 영감을 주는 배우였다. 연기관에 대한 질문은 꽤 긴 얘기가 된다.(웃음) 나는 5살때부터 영화를 시작했고 첫번째 영화가 흑백영화였다. 올더빙이고, 계산하는 방법보다 더빙을 먼저 배운 셈이다. 그러다 한번 연기를 그만 두고 극장에서만 관람을 했던 적이 있었다.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가고 싶더라. 그래서 다시 훈련을 하게 됐고 원래 액션스타가 나의 목표는 아니었는데, 그런 배역만 주어졌다. 연기자란 직업은 마라톤과 같은 거라서 30, 40대는 아직 젊고 50대 60대가 돼서야 좋은 배우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아직 학생 같은 느낌이다.(웃음) 액션을 하는걸 좋아하기 때문에 직접 연기를 하는 게 관객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액션 배우로만 굳어지는 건 싫어서 20대 이후에는 다른 캐릭터를 찾았고 지금도 신선한 캐릭터들을 찾고 있다. 나에게 새로운 것이 관객들에게도 신선한 것이다. 그래서 아직 학생 같은 느낌이고 새로운 영화를 찍을 때마다 흥분되고 긴장된다. 그래서 나는 계속 드라마와 영화, 외국어 배우기를 계속 기회를 찾고 있다. 한국말은 옆에(장동건을 가리키며) 훌륭한 선생님이 있어서 쉽게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제가 알기론 사나다 씨는 톰 크루즈(라스트 사무라이)와도 작업을 해봤고 랄프 파인즈(화이트 카운티스)와도 연기를 해봤었는데 할리우드 배우와 작업할 때 느끼는 감정과 세계적인 배우로서의 장동건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사나다: 장동건씨를 할리우드 배우들과 굳이 비교를 하자면 가장 근접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톰도 굉장히 겸손하고, 가식이 없고, 또 열심히 한다. 일대일 결투 장면이 많아서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 우정을 키울 수 있었는데, 그때 느낀 것이 영화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벽이 없다는 것이다. 그 때 얻은 것을 중국에서 적용을 해서, 새로운 문화에 뛰어드는 두려움은 전혀 없었다.
<무극>은 일본, 한국배우가 중국어로 연기한다는 게 재미있었다. 그때 찍으면서 느낀 게 언어가 중요치 않다는 것. 연기는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 생각을 장과 하면서 다시 느꼈다. <무극> 찍은 후에, 랄프 파인즈와 영화를 찍으면서 완전히 영어로 대사를 했는데, 언어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매번, 이런 경험을 하면서 경험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힘이자 도전정신을 키우게 되는 것 같다. 톰 크루즈와 랄프 파인즈와 공연 했을떄의 같은 느낌을 장동건과도 느꼈다. 설명하긴 어렵지만, 그 비슷한 목적의식이라든가 의도라든가 스타로서의 자질을 공통점을 갖추고 있다.
장동건: 먼저 <태풍> 같은 경우는 저도 아쉬운 점 많다. 사실 그 영화가 배우가 갖지 않아도 될 부담을 태생적으로 갖고 시작한 영화니까. 좀더 많은 관객들이 공감하길 바랬는데, 표현방식에서 관객과 소통하지 못했다는 것은 표현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순 있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그리고 좋게 보시는 분들도 있으니까.
대작 같은 경우에는 의도적으로 큰 영화만 해야지 그런 것은 아닌데, 배우라는 직업이 1차적으로 선택을 받아야 되는 것인데, 작품의 제의를 받았을 때, 크다는 이유만으로 안 할 이유는 없다. 작품적으로 캐릭터를 매력을 느꼈고, 이번 작품의 경우에도 첸카이거 감독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리우드 같은 경우에는 아직 구체적으로 섭외나 계획이 있는 것은 아닌데, 5년 전만 해도 먼 미래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들어서 저뿐만 아니라, 가까운 미래로 앞당겨진 것 같다.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되겠다는 생각은 있다.
장동건씨는 첸카이거 감독이 500년 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배우라고 극찬했는데, 실제 어떤가? 한국에서도 곽경택감독이나 강재규 감독님처럼 대 감독님과 비교해서 스타일의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장동건: 국적이 다른 감독이기 때문에는 아니고, 감독마다 스타일이 다른 것 같다. 첸 감독은 배우마다 다루는 법이 틀렸다. 저한테는 칭찬이라는 방법을 썼다. 한 장면 찍고 나면, 칭찬해준다. 칭찬하면 더 잘하는 것을 간파한 것 같다.(웃음)
일단 너무 좋았던 것은 한 장면 한 장면을 찍으면서 배우의 감정에 대해 굉장히 얘길 하길 좋아하신다. 쉽게 하면 될걸, 여러 가지로 이야기를 하면서 촬영을 한다. 작품 한편 끝내면 결과와 상관없이 소모됐다는 작품이 있고, 충전되는 작품이 있다. 이 작품은 후자다.
한국버전으로 바뀌었다고 들었다. 실제로 보고나니 마음에 드시는지? 영화 초반에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고 나오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동감하는지?
장동건: 죄송한 말이지만, 아직 한국판 <무극>을 아직 보지 못했다. 기자시사후 계속 VIP시사가 있고, 인터뷰가 계속됐다. 운명을 거스를수 없다는거에 대해선 그렇게 생각안한다. 운명이라는 것은 믿은 부분도 있고, 바꿀 수 있다고 본다. 바꿀 수 있으면 운명은 아니지만.(웃음) 모든 사람들이 운명을 믿고 산다면 누가 열심히 하고 노력하겠나. 모든 사람이 운명을 진심으로 믿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운명을 정말로 신봉한다면 어떻게 살겠나.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어떤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 같긴 하다. 배우라는 것을 우연하게 시작하게 됐는데, 그래서 더 운명적인 것 같기도 하고. 이번 역할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한가지는 유일하게 운명의 여신에 구애 받지 않은 다는 것이다. 모든 인물 가운데 ‘쿤룬’만이 여신을 안 만나게 된다.
사나다: 저는 예전부터 연기하는 것을 내 운명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매번 결정할 때 마다 상황이 바뀌는 거라고 본다. 매일 다른 선택을 하기 때문에. 배우가 어느 시나리오를 선택할까 생각하듯이 그때그때 결정에 따라 인생이 변한다고 생각한다. 거기서 나는 연기를 택한 셈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는 것도 선택해야 하는데 조심스럽게 하고 싶다. 이 자리에 있는 것 또한 운명이라고 본다.
앞에서 첸 카이거 감독님 영화라서 출연하셨다고 했는데,그 전에 어떤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무극>이 자신의 필모그라피에서 어떤 의미의 작품인지?
장동건: <패왕별희>라는 영화를 배우가 되기 전에 본 걸로 기억한다. 너무 좋게 봤다. 그 이후 작품들은 캐스팅 제의를 받고 나서 봤다. 개인적으로 좋은 작품이기도 했지만, 세계 영화사에 발자취를 남긴 감독과의 작업이 배우 인생에 있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무극>이라는 작품은 순서 면에 있어서는 <태풍>보다 먼저 연기한 작품이다. 한국영화가 세계적으로 위상이 높아져있지만 <무극>이라는 영화를 딱히 중국영화라고 할 수도 없고, 한국영화라 할 수 없다. 아시아 영화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 같은 경우는 감독님을 보고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작품 선택 할 때만 하더라도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도전이었다 일수도 있었다. 그만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떤 영화들보다도 많은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영화기 때문에, 처음으로 장동건이라는 배우를 보는 외국 분들이 많아지는 영화라고 본다. 할리우드 진출의 시금석이라는 말도 나오는데 그런걸 생각하고 결정한 영화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평이 굉장히 좋게 나오고는 있다.(웃음) 그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봐야죠.
사나다 히로유키 상이 장동건씨에 대해 극찬을 많이 해줬는데, 화답을 해주신다면?
장동건: 다른 배우들 같은 경우는 영화 시작하면서 보게됐는데 작업하기 전부터 미국에서 시간을 같이 보냈다. 그래서 현장에서 만났을 때 너무 반가웠다. 그 현장에서 유일하게 중국어를 모르는 배우 둘이니까.(웃음) 동병상련도 있고.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운동도 같이하고, 밥도 같이 먹고, 촬영이 없을 때는 술도 먹고, 굉장히 경력 면에서 선배고, 나이도 많지만, 마인드가 친구 같다는 느낌이 들게 열려있다. 포용력이 많다.
외국 배우와의 작업과 시스템에 잘 적응한 배우라는 생각이 든다. 제가 이번에 영화를 찍으면서 느낀 것이 이런 시스템에서 적응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고, 다른 점을 인정하고, 그러면서 가는 적응력 같은 게 제일 중요하다고 본다. 옆에서 보면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사나다: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취재: 이희승 기자
사진제공: 쇼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