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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탄] 세계속의 거장을 만나다. '차이밍량'편
영화의 꿈을 되찾아 주는 대만 뉴웨이브의 거장, ‘차이밍량’ | 2005년 9월 5일 월요일 | 최경희 기자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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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섬나라, 대만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은 ‘허우 샤오시엔’과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의 ‘에드워드 양’만 있는 줄 알았던 참으로 무식한 시절이 있었다. 오래 된 일도 아니다. 2년 전 얘기니 사실을 밝히는 본 기자의 얼굴은 지금 쪽팔림으로 울그락불그락 한 상태다.(“그러고도 네가 영화기자냐?” 하는 야유와 비난의 돌멩이가 날라 오는 게 머릿속에 그려진다) 영화에 한창 미쳐 있던 어느 날, 게이코드가 강한 영화라는 친구의 말에 혹해, 어둠의 세계가 뻗친 치명적인 유혹에 어쩔 수 없이 넘어가고 말았다. 그 때 어두운 방에서 은밀하게 훔쳐본 게이코드가 강한 바로, 그 영화가 <안녕, 용문객잔>이었다.

지금에 와서 추억해보면 그 만남은 처음으로 영화에게 “안녕”이라는 인사를 건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처녀성 경험이자, 무성영화 시대로 현대영화는 회귀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지금까지 주장하게 된 동기기도 하다.

‘차이밍량’ 감독을 그렇게 알게 됐다. <애정만세>라는 영화가 국내에 소개되기는 했지만 그의 존재는 한국에서 소수의 영화 매니아에게만 알려진 미지의 숨은 거장으로 인식돼는 정도였다.(물론 그는 오래전부터 세계적인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다!) 서울 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대만 뉴웨이브 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짧은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차이밍량’은 그의 영화와는 달리 활기차고 거침없는 성격으로 비쳐졌다.

<비정성시>의 감독 ‘허우 샤오시엔’과 함께 내한한 이번 방문에서 그는 대만영화를 논하는 ‘심포지엄’과 관객들에게 자신의 영화인생에 대해 강연을 펼치는 ‘마스터클래스’라는 빡빡한 일정을 거의 살인적인 박력으로 일사천리로 해치워나갔다. 대사가 거의 없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답지 않게 빠른 말투로 열정적으로 자신의 영화를 선전하고, 설명하는 그의 모습에서 잊었던 영화에 대한 꿈을 찾은 기분이 든 건, 본 기자만의 센티멘털한 감상만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영화를 선전하기 위해 직접 표를 팔았다는 혈기방장한 ‘차이밍량’ 감독에게 마치 영화와 연애하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짧지만 긴 인터뷰를 요청했다.

인터뷰에 앞서 허우 샤오시엔과 차이밍량은 대만의 영화에 대해 각기 다른 입장을 취했다. 허우 감독은 자국시장이 무너진 대만영화의 부흥을 위해 한국과의 합작을 모색하기보다 ‘교육’이 우선 필요하다고 피력한 반면, ‘차이밍량’ 감독은 관객이 찾지 않는다면 대만영화 스스로가 관객을 찾아 나서면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언뜻 보면 이 둘은 서로 다른 노선을 추구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영화의 본질에 접근하는 방법이 틀릴 뿐이지 이들이 추구하고 생각하는 영화의 본질은 ‘현실’이라는 점에서, 다른 표현을 빌려 의견이 일치했다.

그 ‘현실성’이 대만을 뛰어넘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또 다른 영화언어로 인식된 지금, 한국영화의 현실을 잠시나마 이 두 감독과의 만남을 계기로 뒤돌아 봤으면 좋겠다. 정성일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지금의 한국영화는 할리우드식 블록버스터를 향해 모두가 미친 듯이 뛰어가고 있는 중이다. 한국영화의 세계화 방법이 할리우드 모방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걸까? 영화의 본질을 잊은 ‘그들’에게 묻고 싶어진다.

먼저 유치한 질문부터 하겠다. 차이밍량 감독의 영화를 보면 영화의 실험성과 예술성을 떠나서 보는 이로 하여금 슬픈 기분에 젖어 들게 만든다. 현대인의 고독을 ‘관찰’하는 시선으로 인물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어도 감상적인 기분의, 일종의 뼈저리는 슬픔이 내포되어 있다. 왜 이렇게 슬픈 영화만 찍는가?
나의 모든 영화는 나 개인적으로 일종의 어떤 것들을 찾는 과정이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도 뭔가 각자 찾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왜냐하면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고 거기에 맞춰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개인들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어떤 일들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해서이다. 다시 말하면 그 어떤 일이 어떤 감정인지, 아니면 어떤 생명의 삶에 대한 의의를 추구하는 것인지에 관한 개인의 정서를 찾아가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현대인들에게는 삶을 살아가면서 개인이 추구하는 굉장히 중요하다. 경제적인 여건이나 사회 변화에 맞추면서 살다 보니깐 개인의 이상을 잃고 상실하면서 살게 된다. 반면에 감정적인 풍요는 점점 빈곤해지고 있다. 내 영화로 예를 들자면 <안녕, 용문객잔>에서 사람들은 예전 것들을 잊어버리고 산다. 결국 그 잊은 것들이 현재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예전 것들을 그리워하고 정서를 느끼고 싶은데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의 삶, 정서가 내 영화에서 ‘슬픔’으로 나타난다.

그렇다면 개인이 살면서 잊은 것들을 표현하고 싶어서 연극을 하다가 영화를 하게 된 것인가? 연극 또한 감독님이 말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데는 무리가 없는 영역이다.
같은 창작이고 둘 다 매력적인 매체다. 연극 같은 경우에는 한 번 무대에 올리면-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주는 ‘현장성’- 그 순간의 모든 것은 없어진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연극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하지만, 나는 되돌아보지 않는다. 왜냐면 나에게 있어 연극이란 현장, 그 당시에 발생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 점이 나를 굉장히 허무하게 만들고 좌절감이 들게 해, 힘들 때가 많았다.

반대로 영화는 과거적인 것을 영상으로 드러내는 예술이기에 과거의 시간을 보존한다는 자체가, 일종의 또 하나의 아름다운 미학이라고 여겼다. <안녕, 용문객잔>을 촬영하면서 슬프고 기묘한 감정이 드는 상황을 연출하면서 개인적으로 창작 과정의 특별한 경험을 겪었다. 그 경험 자체가 의미 있는 창작으로 연극과는 달리 자꾸 되새겨 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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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관객으로서도 마찬가지다. 감독님의 작품 안에는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시간의 정서가 분명 존재한다. 그것은 공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관객에게 전달된다. <애정만세>, <구멍>, <안녕, 용문객잔> 등등, 감독님의 영화에서 공간은 그런 이유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어쩔 때는 공간이 인물을 압도한다.
공간은 인물들이 얘기하는 것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내 영화에서 인물들은 거의 말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애초에 장소를 헌팅하는 과정에서부터 그런 느낌의 장소를 찾아 원래의 모습/느낌을 보존하면서 찍는다. 그 과정은 인물과 공간이 대화를 하는 거고,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는 뜻이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 (공간의) 느낌이 파생시키는 생활의 흔적, 지나간 느낌이 영화에 묻어 나온다.

그렇다면 그 공간이 주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서 배우 ‘리캉셩’만 고집스럽게 자신의 영화에 출연시키는 것인가? 둘의 관계는 마치 ‘트뤼포’와 ‘장 삐에르 레오’를 연상시킨다.
나의 영화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다른 점이 있다면 ‘리캉셩’이라는 배우가 계속 출연한다는 점이다. 물론 다른 감독들도 다른 배우랑 여려 번 작업을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나처럼 끊임없이 한 배우하고 작업하는 감독은 드물다. 솔직히 말하면 리캉셩(이강생)이라는 배우가 없다면 감독으로서의 현재의 나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스스로도 이 배우가 없는 나의 영화가 상상이 안 갈 정도이니 말다한 게 아닌가?

그에 앞서, 나와 계속 작업하면 그의 존재감이 어떤 식의 결과로 드러날지 궁금한 마음 또한 강하다. 트뤼포와 레오의 관계처럼 비쳐질지 모르겠는데 리캉셩은 매번 다른 모습으로 작품에 등장한다. 그 점이 내가 말하는 어떤 생명의 굴곡을 상징한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한 사람의 모습을 여러 모습으로 관찰해야만 나온다.

리캉셩에 대한 애정이 너무 강해 질문자의 질문이 참 무안할 정도다.
그런 질문 참 많이 받아서 이젠 괜찮다(엄청 크게 웃으면서). 그리고 이 질문에 답변하는 것을 이제는 즐길 정도다. <지금 거기는 몇시니?>라는 영화가 부산영화제 때 상영을 했는데 그 때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가졌다. 어떤 한국 관객이 나에게 도발적인 질문을 건넸다. “왜 리캉셩하고만 작업을 하시나요? 우리는 감독님 영화에서 리캉셩을 보는 거에 질렸다. 유덕화나 다른 스타배우와 작업 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나는 그 질문에 너무 화가 나서 이렇게 대답했다.

“당신들한테 유덕화가 우상일지 모르겠지만 나의 우상은 리캉셩이다!”

놀랍다(차이밍량 감독의 큰 소리에 실제로 엄청 놀랬다). 감독으로서의 대답이 아닌 듯하다(웃음)
대중이 좋아하는 아이돌 스타는 오늘이 지나면 잊혀 질지 모른다. 난 그게 매우 잔인한 처사라고 생각해 왔다. 나는 감독으로서 그렇게 잔인할 수가 없다. 사실 내가 상업영화 감독도 아니기 때문에 적어도 내 영화는 나의 필요성에 의해 리캉셩하고 영화를 찍는 것이다. 그 결과로 인해 내 영화 안에 삶의 굴곡과 생명의 변화가 담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차이밍량과 리캉셩(이강생)의 오랜 인연을 부연 설명하자면 그들은 1992년부터 지금까지 함께 작업해 왔다. 차이밍량 감독과 이번에 한국을 같이 방문한 리캉셩이 이날 인터뷰 장소에 놀러왔는데, 그는 영화 속 모습 그대로 조용하고 말이 없으며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다.

차이밍량 감독은 본 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도 멀리 떨어져 인터뷰를 구경하는 이강생에게 말을 건네며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았고 그들은 감독과 배우를 떠나 마치 부자지간 혹은 연인으로 비쳐질 정도였다.
올 부산영화제 때 이강생이 포르노 배우로 나오는 차이밍량 감독의 파격적인 신작 <흔들리는 구름>이 상영한다는 정보다.

삶의 굴곡, 변화가 감독님 영화 안에 담겨 있기에 감독님의 영화는 ‘대만’이라는 지역성을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개인적으로 당신의 영화를 대만 뉴 웨이브 관점에서 보기를 포기했다. 작품 안에서 인간의 내면과 고독 그리고 소외감을 지독하게 탐구하는데 내 생각과는 달리, 대만의 어떤 것을 드러내고 싶었고, 또한 고독과 소외를 다루면서도 정작 본인은 이것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고 싶었기 때문 아닌가? (대만의 지역성을 벗어나 생각해야 한다는 기자의 질문에 차이밍량 감독은 동의의 제스처를 취했다.)
나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정서가 강한 사람이다. 삶, 생명에 관한 그리움이 굉장히 많다. 각자의 사람들마다 이것에 관한 정서는 다르겠지만 회피할 수 계제의 문제도 아니다. 또한 사람들마다 삶과 생명에 대해서 생각하는 방법이 있는데 나에게는 그 방법이 영화라는 도구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면서 되새긴다. 영화의 힘(생명력)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 예술창작(생명의 탄생)이 생명과 어떤 연관으로 맺어져 있는가? 에 대해서 말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질문만 하기에 답안은 내 스스로도 얻지 못한다.

아마 답안은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질문은 있는데 답이 없는 이 상황이 어쩌면 인생의 한 단면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지금까지 내가 계속해서 영화를 찍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영화를 찍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도 영화에 접근하는 생명에 다가가는 철칙은 정해져 있다. 횡적으로 생명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하나를 위해서 줄기를 타듯이 깊숙이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찍는다.

정해진 만남의 시간이 다 끝나버렸다. 너무 섭섭하다. 올 10회 부산국제영화제 때, 다시 한 번 만남의 기회를 주실 수 있는가? 그때는 리캉셩과 함께 인터뷰를 진행하고 싶다. 약속해주길 바란다!
물론이다. 절대로 잊지 않겠다. 부산에서 꼭 만나자..
정말?
진짜다^^

p.s) “대만 뉴 웨이브 영화제”를 빌미로 <비정성시>의 감독 ‘허우 샤오시엔’도 인터뷰를 가졌다. 꿈결 같은 그와의 만남은 “세계 속의 거장을 만나다” 제2탄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들이 영화인생을 허심탄회하게 공개한 ‘마스터클래스’ 지상중계도 곧 정리해서 올릴 예정이니, “세계 속의 거장을 만나다” 속편으로 기대를 모아주시라!

취재: 최경희 기자
사진: 이한욱 PD
영상: 권영탕 PD

4 )
pretto
좋은 작품 기대할게요~^^   
2010-01-30 15:44
qsay11tem
대표 작품이 뭔가요   
2007-08-10 11:08
kpop20
인터뷰 좋아요 ^^   
2007-05-26 17:48
dirthr
타사이트에서는 볼 수 없는 이런 기사가 있어 무비스트를 안찾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비스트는 인터뷰가 좋은 거 같습니다. 차이밍량을 워낙좋아하기는 하지만...   
2005-09-06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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