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그랬다. 촬영 끝나고 처음 며칠 동안은 아침만 되면 저절로 눈이 떠졌다. 왠지 군복 입고 촬영장 나가야 할 것 같고.(웃음) 원래 내 생활 패턴이 그렇지 않았거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야행성이었는데, <고지전>을 찍으면서 사이클이 바뀌어 버렸다.
막 제대한 군인 같았겠다. 낮 씬이 많아서 해 떨어지기 전에 촬영이 끝났다고 들었다. 저녁에 여유가 조금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시간 활용을 잘 했나?
그러지도 못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나가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거든. 또 몸을 쓰는 씬이 많으니까, 피곤해서 10시만 되면 곯아떨어졌다. 촬영은 보통 새벽 5시에 시작해서, 해 떨어지는 4시에 끝났다. 끝내고 숙소 들어와서 씻다 보면, 어느덧 저녁 시간이 된다. 그럼 밥 먹고. 밥 먹고 나서 맥주 한 잔 하다보면 슬슬 졸음이 온다. 그러면 들어가서 자고.(웃음) 그런 생활이었다.
정말 군대 생활 같네. 규칙적으로 생활해서 건강은 좋아졌겠다.
아주 건강해졌다. 영화를 끝나고 종합 검진을 받았는데, 체지방이 0%가 나오더라. 그 때는 먹기도 참 잘 먹었는데, 왜 군복만 입으면 그리 배가 고픈지.(웃음) 그리고 왜 그리 춥고, 졸린지. 틈만 나면 아무데서나 누워 자려고 했다.
그건 예비역 모드인데?
하하. 맞다. 그런 생활이었지.
해발 650미터 야산에 세트장이 있었다. 고도가 높으면 기압이 낮아서 평상시보다 움직이는데 지치지 않은가. 체력적으로 힘든 건 없었나?
경사가 가파르다 보니, 처음에는 서 있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런 산을 매일 새벽 암벽 타듯 올랐다. 불편한 군화는 또 어떻고. 옛날 군화다 보니 무게가 더 나갔다. 거기에다 철모 쓰지, 군장 차지, 총 들어야 하지. 휴~ 가만히 있어도 체력 소모가 상당했다.
처음, 출연을 갈등했던 가장 큰 이유가 그거다. 시나리오 읽으면서 “고생하겠구나”라는 감이 왔거든. 지문으로는 한두 줄이지만, ‘아, 이건 3일 찍겠구나’하는 계산이 바로 나온다. 그리고 촬영은 여름에 시작되지만, 6-7개월 촬영 일정이라 겨울을 나야 했다. 엄동설한에 산을 뛰어 다녀야 한다고 생각 하니, 앞이 까마득하더라. 또, 비 씬 있지, 밤 씬 있지! ‘아, 이거 쉽지 않겠네’ 싶었다. 하지만 한국 전쟁의 새로운 면을 보여 주고 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장훈 감독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도 있었고. 이런 것도 있었다. ‘내가 전투에 참여하는 영화는, 이 작품이 마지막이 될 거다’라는 생각. 사실 내 나이 정도면, 그 시대에 거의 연대장 급이다.(웃음) 전투는 20대 초반들이 하지 않나. 액면가 나이로 봤을 때, ‘더 이상 전쟁에 참여하는 병사로는 캐스팅 제의가 없을 테니까, 좋아, 마지막이다! 마지막으로 하자’ 했다.(웃음)
그렇게 고생해서 찍은 영화를 처음 본 소감은?
내 연기는 아쉽지만, 영화 전체적으로는 만족했다. ‘오랜만에 또 다른 시각을 지닌, 새로운 전쟁영화가 나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무엇보다 이야기를 끝까지 보게 하는 힘이 있는 영화 같아서 좋았다.
당신 같은 베테랑도 자신이 출연하는 영화를 처음 볼 때는 전체 보다 본인 연기가 먼저 보일 것 같은데, 어떤가.
그렇지. 아무래도 처음에는 내가 한 연기가 먼저 들어오지. 그래서 아쉬운 부분이 더 많이 보이는 거고. 연극의 경우 관객의 반응을 알 수 있으니까, 반응이 안 좋으면 다음 공연에서 바꾸면 된다. 그렇게 하면서 완성도를 높여가면 되는데, 영화는 한 번 찍으면 끝이다. 찍을 때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다. 또 영화는 순서대로 찍는 것도 아니잖나. 여러 가지 변수들이 있다 보니, 놓치고 가는 것들이 생긴다. ‘그 때,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더 표현해야 하지 않았을까?’, ‘저건 좀 과하지 않았나?’ 하는 지점들이 보여서 아쉬웠다.
박상연 작가 얘기를 들어보니까, 촬영 끝나자마자 “형, 캐릭터가 어려워서 죽을 뻔했어. 중간에 도망갈 뻔했다니까!”라고 말했다고. 어떤 점이 도망가고 싶게 하던가.
연기! 강은표는 관찰자적 입장에서 관객의 눈이 돼야하는 인물이다. 윤곽이 확실히 잡혀 있는 인물이 아닌 거지. 반면 악어부대 대원들은 김수혁(고수)부터 막내 다윗까지 캐릭터들이 확실하다. 그랬기 때문에 나로서는 ‘어떻게 내 존재감을 가지고, 끌어나갈 수 있을까’가 숙제였다. 이전까지 내가 했던 역할들은 감정을 밖으로 분출하는 게 많았다. 개성도 강하고, 뭔가를 만들어가는 역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건 나를 버려야 하니까 오히려 힘들더라. 표현도 눈빛과 표정만으로 해야 하다 보니, ‘오늘 내가 뭘 한 건가’라는 의문도 들고. ‘내가 맞게 하고 있나?’, ‘이렇게 하면 표현이 될까?’ ‘관객들이 잘 따라 올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래서 끝나고 박상연 작가한테 “너무 어려운 캐릭터였다”고 말씀 드렸다.
아까 얘기했듯, 은표는 전쟁을 바라보는 일종의 관찰자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어쩌면, 그 시대 인물이 아닐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질적일 수 있지만, 그런 느낌으로 접근하려고 했다. 감독님은 어떤 생각으로 나를 캐스팅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감정을 담아낸 클로즈업 샷이 유독 많더라. 아무리 연기파 배우라도, 자신의 얼굴을 집요하게 잡아내려는 카메라는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은데, 어떤 숏들이 개인적으로 어려웠나?
클로즈업은 최종 편집에서 선택 된 거고, 찍을 때는 클로즈업부터 바스트, 웨스트, 투 샷, 원 샷 등 굉장히 다양하게 찍었다. 은표는 감독님도 어려워했던 캐릭터다. 그래서 여러 가지를 주문하셨고, 여러 가지 각도에서 다양하게 찍으려 했다. 그것들을 편집에서 붙이고 붙이면서 은표의 캐릭터를 잡아간 거지. 그 과정에서 감독님이 “은표는 눈빛과 표정을 살리는데 중점을 두는 게 좋겠어요”하시는데, 그게 말이 쉽지 눈빛을 바꾸는 것에도 한계가 있잖나. 그래도 어떻게든 방법은 찾아야겠고. 연기를 했다기보다, 버텼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성공한 것 같다. 대장 신일영을 연기한 이제훈씨 인터뷰를 보니까 “신하균 선배가 배역을 어떻게 해석할지 늘 궁금했다”고 하더라. “리액션 하는 부분이 많은 인물인데, 매번 다른 리액션을 보여줘서 항상 다르게 느껴졌다”고 하면서.
(칭찬에 잠시 민망해 한다.) 같은 걸 계속 하다 보면 다르게 표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배우들은. 시나리오를 보면, 거의 대부분의 씬들이 은표의 반응으로 끝이 난다. 그런 게 워낙 많다 보니까, 다양하게 하려고 했다. 그냥 바라보기도 하고, 뒤돌면서 쳐다보기도 하고, 한숨을 쉬기도 하고, 이상하게 해 보기도 하고. 그랬더니 주변 배우들이 “캬~ 리액션 연기 하나는 정말 죽인다~” 이런 농담을 하더라.(웃음) 재미있게 해석하려고 했다.
사실 예전에는 신하균이라는 배우가 굉장히 본능적으로 연기한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는 다르게 느껴졌다. 컷을 계산하고 정확하게 들어가려는 게 보였다고 할까?
혈기왕성한 어릴 때는 무조건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열정에 휩싸여서 캐릭터에 빠져들고.(웃음) 그런데 영화라는 매체는 열정 못지않게, 캐릭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더라. 나 혼자 감정을 가지고 한다고 해서 100% 전달되는 건 아니더라고. 영화는 표현 방법도 굉장히 다양한 장르다. 감정이라는 게, 손가락 하나로 보여 질수도 있고, 휴지 한 장으로 보여 질수도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물론 그런 걸 어느날 갑자기 터득한 건, 아니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 조금씩 보이더라.
터득은 아니고, 아직 배우는 과정이다.(웃음) 그게 아마, <지구를 지켜라!>때 해 주신 말일 거다. 당시엔 내가 피 끓는 20대였고, 또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나에게 <지구를 지켜라!>의 병구는 너무나 먼 캐릭터였다. 상상력이라는 도구가 있기는 했지만, 그 세계를 조금 더 확실히 알아야 겠다는 생각에 지나치게 몰입했다. 그러다 보니, 내 몸의 제어가 안 됐다. 컷을 하면 동작은 멈추는데, 눈빛은 안 돌아오는 거지. 컷을 했는데도 계속 째려보고 있으니까, 백 선생님이 “(백윤식 특유의 목소리 흉내 내며)하균아~ 살살해~ 됐잖아~” 그러시고.(웃음) 지금 생각해 보면, 무슨 정신으로 그걸 찍었는지 모르겠다. 당시 스트레스도 많았다. 그래서 폭식도 많이 하고, 술 담배도 많이 해서 살도 많이 쪘었고. 영화를 자세히 보면 몸이 불었다 줄었다, 불었다 줄었다 하는 걸 확인 할 수 있을 거다.
흔히들 ‘신하균은 정상이 아닌 인물을 연기할 때 더 빛난다’고들 한다. 솔직히 궁금하다. 그런 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런 면이라도,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인간 신하균이 아니라 캐릭터로 부각돼서 보여 지는 거니까, 좋다.
그러한 평은 당신을 주목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평범한 역이나 주류영화를 하는데 있어서는 반작용이 될 수도 있는데.
사실 내가 이상한 역할로 나온 작품들이, 대중적으로 많이 사랑받았던 영화들은 아니다. 그 시기에 외면 받았던 영화들이 더 많다. 그런데 10년이 흘렸는데도, 기억해 주시지 않나. 그러니까 오래 가는 영화들이었던 거고, 여운이 남는 영화들이었던 거다. 이제 내 과제는 더 오래 남는, 더 여운이 있는 캐릭터를 만나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거다. 그런 영화를 앞으로도 만나고 싶다.
캐릭터에 따라 작업 스타일이 많이 달라지나?
작업 스타일은 비슷하다. 하나만 추구하면서, 내 플랜대로 가지는 않는다. 내가 고민했던 것 보다, 더 좋은 의견이 나오면 따른다. 그게 감독 디렉션이든, 상대 배우의 연기든, 내가 그걸 보고 좋은 자극을 받아서 새로운 게 나올 것 같으면 고민했던 걸 과감하게 버린다. 현장에 많이 열려 있는 편이다. 많이 듣고, 많이 보고, 새로운 걸 찾으려 하고.
아니~! 아유, 여배우가 더 좋다.(웃음) 여배우가 더 좋지! 이번에 얼마나 힘들었는데, 남자만 있어서.(웃음) 이상하게 연극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다 이런다. 이게 무슨 팔잔지 모르겠는데, 일부러 남자 배우를 찾는 건 결코 아니다. 하하하하하.
(웃음) 남자들끼리 모여 있는 자리에서 당신은 주로 어떤 역할을 담당하나?
이번 영화의 경우, 군대 말로 하면, ‘중간 짬밥’이었다.(웃음) 나이로 보면 고창석 선배가 가장 위셨고, 그 다음에 류승수 선배. 내 밑으로 고수씨가 있고, 그 밑으로 제훈이가 있었다. 다섯 중에 내가 딱 중간. 아, 다윗은 애기고~ 애기한테 뭘 시키나. 군대 가도 이등병한테는 아무것도 안 시킨다. 이등병은 애기거든. 신생아 같은 느낌이랄까?
(인터뷰를 듣고 있던 배급사 홍보팀 요원이, 불쑥 외친다) 열외! (그 말에 좌중 폭소)
그렇지, 열외지~열외. 하하하. 나는 중간 짬밥이라 살살 눈치 보면서 선배들 비위 맞추고, 밑에 애들 일 시키고 그랬지~ 하하하. 아, 이건 우스갯소리로 한 거다! <고지전>은 굉장히 편하게 작업한 영화다. 성격들이 다들 너무 좋았다. 뭘 분담해서 해야 한다는 것도 없었고.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우리가 촬영했던 고지가 산불이 났던 지역이다 보니, 주위에 타다 남은 나무들이 많았다. 굉장히 추운 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고수씨가 갑자기 마른 장작을 주워 와서 막 패는 거다. 쪼개는 걸 어찌나 잘 하는지. 그걸 본 나도 자연스럽게 돌을 하나 둘 가져다가 쌓았다. 바람막이를 만든 거지. 그랬더니, 우리 악어중대원들도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하나 둘 움직이는 거다. 그렇게 하다보면 어느새 모닥불이 여러 개 생긴다. 모닥불에 모여 불도 함께 쬐고. 그런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오~ 아름답다.(웃음)
정말 그랬다. 악어중대원들도 많이 기억난다. 주목은 못 받지만, 우리 영화의 결을 만들어준 분들이다. 훈련도 5주 동안 받으면서 고생했는데, 그 친구들이 있어서 영화가 풍성해 질 수 있었다.
이제 연차가 꽤 쌓였다. 선배가 되면서 현장에서 느끼는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후배일 때가 더 마음 편한데, 당신은 어떠한가.
주연을 일찍부터 해서 그런지, 책임감이라는 건 어릴 때부터 달고 살았던 것 같다. 배우로서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대신 외적인 부분들. 현장 분위기 같은 부분에 있어서는 선배로서 신경을 써야 한다고 느낀다. 예전에는 혼자 몰입하고, 혼자 일을 처리 하는 스타일이었는데, 지금은 실없는 농담도 잘 던진다. 스태프 막내하고도 장난치면서 놀고.
반반인 것 같다. 나이를 먹으니까 편해진 게 분명 있고. 그런데 아직도 어린 친구들에게 말은 잘 못 놓는다. 누가 먼저 “선배님 말 놓으세요”라는 말을 꺼내기 전에는 절대 먼저 편하게 못 한다. 그랬더니, 어린 친구들이 나보고 “선배님, 저희에게 거리를 두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더라. 아니... 나는 그 친구들을 존중해 주려고 한 건데..(웃음) 나이 많다고 반말하면 그러잖나. 그런데 뭐, 그러다가도 회식하면서, 술 마시다 보면 어느새 편해져 있고 그런다.
술, 좋아한다고 들었다.
술, 좋아하지.
그럼, 담배는?
담배는 끊었다.
안 그래도 물어보고 싶었는데, 류덕환씨와 담배에 얽힌 일화가 있잖나. 키 때문에 고민하는 류덕환을 혼내면서 “내가 담배를 끊을 테니, 대신 그런 생각 하지 말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들을 때, 짠 하던데.(웃음)
아~ 왜 그랬냐면.(웃음) 그때가 <웰컴 투 동막골> 찍을 때인데, 덕환이는 어릴 때부터 봐 온 친구라, 내겐 조금 남다르다. 오래 전, 연극할 때 그 친구가 아기 역할로 나온 적이 있었거든. 아무튼 <웰컴 투 동막골> 할 때, 하루 일정이 끝나면 항상 정재영 선배랑 여러 사람이 모여서 술을 마셨는데, 그때마다 내가 덕환이를 불렀다. “와라!” 그러면 덕환이가 딸기 우유를 하나 가지고 온다. 미성년자라 술을 먹일 수 없으니까, 우리는 술 마시고, 그 친구는 딸기 우유 마시고 그랬다.
에이~ 설마. 정말로 술을 안 먹였을까?(웃음)
(흠칫) 하하하하. 그런 식으로 항상 챙겨주곤 했는데, 내가 당시에 몸이 굉장히 안 좋았다. 워낙 술 담배를 많이 했고, 밤을 많이 새다보니 몸이 안 좋아져서 병원에서 검사도 받았다. 담배를 하루에 기본 3갑 피웠었나? 웃긴 게, 당시 내가 ‘도라지’라는 담배를 피웠는데, 그게 협찬이 됐었다. ‘도라지’를 피니까 기자들이 깜짝 놀라더라고. 어린 친구가 ‘도라지’를 핀다고. ‘도.라.지.피.는.남.자.신하균!’ 이런 식의 기사는 막 나가고. 그런데 그걸 담배인삼공사에서 보고 전화를 해 온 거다. “안 팔리는 담배인데 홍보 해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언제든지 가져가세요” 이러고.(웃음) 정말, 매니저가 한번 가면 박스로 담배를 가지고 왔다. 보루가 아니라니까. 보루가 가득 들어 있는 박스로! 그러다 보니 담배를 더 많이 피우게 됐었는데, 지금 ‘도라지’가 단종이 됐다.(모두 폭소) 다행인거지. 단종이 안 됐으면 아마 찾아서 피웠을 거다. 일반 담배 냄새를 맡으면 아무 자극이 없는데, ‘도라지’ 냄새를 맡으면 다시 필 것 같아, 왠지.(웃음)
향이 있다. 독특한 향이 있는데. 역하다고 사람들은 싫어했었다.(웃음) 여튼, 안 좋은 걸 계속 피우다 보니, 몸이 결국 안 좋아졌고, 금연 생각을 했던 거다. 그런데 마침 술자리에서 덕환이가 한숨 푹 쉬면서 “고 3인데, 더 이상 키가 안 큰다”고 고민 하는 게 아닌가. “아역 배우 출신이고, 키도 작으니까, 성인인 된다 해도 배우 생활이 힘들겠지”이러면서. 그래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 야단치고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외국을 봐. 키 작은 배우가 얼마나 많나. 160cm 안 된 배우들도 훌륭한 연기로 큰 사랑 받는다. 그리고 형 얼굴로도 연기를 하잖아! 이렇게 평범하게 생겼는데도 하잖아. 또 재영이형 봐! 재영이 형도 연기하잖아.(좌중 박장대소)
아니, 정재영씨는 무슨 죄라고~
하하하. 그러면서 또 이랬지. “우리 같은 사람도 하는데, 임마! 너 잘생겼어! 키는 아무것도 아니야! 형이 담배 끊을게. 대신 내가 담배 다시 피기 전까지, 너도 그런 생각 집어 치워”라고. 얘기 하다보니까, 길어졌는데 그렇게 해서 나온 말이다. 그러니까, 덕환이가 착각을… 사실은 내 건강 때문에 담배 끊은 건데~(웃음)
정재영씨 얘기가 나와서 묻는 말이다. 당신은 (서울예전)방송연예과 출신인데, 정재영 황정민 장진 등 연극과 사람들과 친하다.
동아리! ‘만남의 시도’라는 동아리를 통해 만났다. 방송연예과다 보니,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무대에 너무 서보고 싶었던 거지. 그런데 학교에 있는 대극장은 연극과만 설 수 있었다. 결국 연극 동아리를 생각했다. 예대 동아리가 단순 취미로 하는 게 아니라, 굉장히 전문화 돼 있었거든. 그래서 ‘만남의 시도’를 들어갔는데, 사람이 별로 없었다. 사람이 없다 보니 무대에도 결국 서지 못했고.(웃음) 그렇게 시간이 가고 1학년 말인가? 89학번 동아리 선배 장진 선배가 제대를 하고 복학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당시에도 엄청 유명했다. 소문 날 정도로.(웃음) 그렇게 장진 감독님을 만났는데, 가방에서 희곡을 하나 딱 꺼내더니, “자, 이걸로 겨울 공연을 하자. 이번에 후배 (황)정민이도 제대하고 하니까, 연극과 친구들하고 같이 하면 되겠다” 이러시는 게 아닌가. 좋았지. 재영이 형은 그 때, 말년 병장이셨는데, 휴가를 워낙 많이 나와서 알게 됐다. 그 때 올린 공연이 <폭탄투하 중>이라는 마당극이었는데, 정말 대박이 났다. 3일 정도 했는데, 너무 재밌었다. 그렇게, 대극장 무대에 서는 꿈도 이루고, 이후에 나는 군대를 갔다. 그 때의 인연들이다.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렇게 연기가 좋은데, 왜 방송연예과를 갔나?
거기가 실기가 가장 낮았거든.(웃음) 연기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 뭘 알아야지. 그래서 방송연예과를 갔다. 하하하.
아우~ 감독님 많이 탄다. 시나리오는 설계도 같은 거다. 같은 시나리오라도 만드는 사람에 따라서 영화가 달라지기 때문에 감독님은 중요하다. 말했듯 이번 영화 선택 이유 중 하나는, 장훈 감독이다. 그리고 사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감독님이 “우리가 가는 곳은 해가 빨리 져요. 빠르면 3시에 촬영을 끝낼 수도 있을 거예요.”이러더라. 그래서 한 두 테이크 안에 오케이를 하실 줄 알았다. 그리고 감독님 전작 <영화는 영화다>가 굉장히 짧은 기간에 찍었는데도 불구하고, 영화가 참 좋았잖나. 연출이 보이고, 배우가 보이는 영화라 인상 깊게 봤다. 그래서 이번에도 빨리 찍겠지, 내심 기대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한 장면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10번이건 20번이건 본인이 원하는 씬이 나올 때까지 계속 찍더라. 굉장히 집요하고, 굉장히 치열하달까. 그리고 쉬는 걸 못 봤다. 시나리오 계속 수정하고, 편집하고. 그렇다고 또 배우에게 뭔가를 막 요구하는 스타일도 아니다. 조용히 다가오셔서, 속삭이듯 “선배님, 괜찮으세요?” 그러는데, 어떻게 힘들다고 하나. “괜찮아요!” 그러면, “그럼 한 번 더 갈까요?”이런다.(웃음) 그런 식으로 배우가 계속 긴장하게끔, 뭔가를 계속 할 수 있게끔 만들어준다. 묵직하게 쭉 밀고 나가는 그런 모습에, 믿음도 가고. 결과는 걱정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또, 덕분에 몸도 튼튼, 다리도 튼튼해졌다. 특히 하체가 아주~!(웃음)
어떻게. 인생의 목표가 있다면, 목표했던 고지를 향해 잘 달리고 있는 것 같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지금 내게 주어진 과제 같기는 하다. 하지만 특별히 뭔가를 계획하지는 않는다. ‘저번에 저런 연기를 했으니, 이번에는 이걸 보여줘야지’ 한 적은 없다. 그냥 내가 관심이 가는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이상한 역을 많이 하긴 했는데, 인간 차제로 보면 그들에게도 공통점이 다 있다. 배우로서 그런 걸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고,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고, 이 길을 꾸준히 달릴 수 있으면 좋겠다. 정말 그러고 싶다.
2011년 7월 20일 수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2011년 7월 20일 수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