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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주가 너무 귀엽고 순수해 보이더라! <박쥐>를 통해 날다. 김옥빈
2009년 5월 7일 목요일 | 하정민 기자 이메일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

“태주라는 인물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마지막 태주의 대사도 상현이 하면 안되냐고 졸랐다니까. 하하” 10년 숙원 영화의 시나리오를 처음 본 후 가진 송강호의 첫 감상 중 하나다. <박쥐>의 태주는 뱀파이어가 되는 신부 상현(송강호) 못지 않게 오랜 시간 회자될 문제적 캐릭터다. 신과 본능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상현의 욕망을 쥐고 흔드는 태주는 러닝타임 내내 마녀적인 매력으로 번뜩인다. 보호를 명목으로 학대하는 라여사(김해숙) 밑에서 자라고 그녀의 병약한 아들 강우(신하균)와 결혼한 태주는 모자의 냉대와 무관심 속에서 욕망은 물론 의지와 감정까지 탈색된 여자. 식물처럼 살아가던 그녀는 상현을 만나면서 비로소 동물적 욕망에 눈을 뜬다. 억눌렸던 욕망의 폭발은 순식간에 무시무시한 악마성으로 휘발되며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이런 태주에게는 팜므파탈, 요부 같은 수식어도 구태의연하다.
정작 두 눈과 몸짓에 맹렬히 불타오르는 욕망의 스펙터클을 재현한 김옥빈은 태주에 대한 첫 인상이 “귀엽고 순수해 보였다”고 털어놓는다.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귀여운 여자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너무 순수하고 무지하기 때문에 자신이 저지르는 것에 대한 자각과 한계가 없는 것이다. 자신이 상현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고 힘을 과시하는 모습도 도발적이지만 귀엽더라.” 김옥빈은 태주의 이런 도발과 악행이 상현이라는 울타리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해석을 덧붙인다. “태주는 상현이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떠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기 때문에 태주는 상현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었을 거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너 나 사랑하잖아? 그런데 네가 날 떠날 수 있어?’하는 여자의 자신감. 그렇게 믿는 구석이 있어서 마음대로 악행을 벌이고 다니는 모습이 어린 아이 같지 않나.”

거침없이 발산하다

그런 호감 가는 첫 인상 때문이었을까. 김옥빈은 처음부터 육체적 쾌락을 갈구하고 악마적인 기행을 일삼는 태주 안으로 들어가기를 서슴지 않았다.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몰고 온 노출 신으로 주저하진 않았을까 하는 우려는 외부의 시선일 뿐이다. 김옥빈을 촬영현장으로 이끈 것은 이성적 판단이 아니라 배우로서의 본능이었기 때문이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말 그대로 놀랐다. 그래서 하겠다고 했다.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라. (웃음) 이야기와 테마 그리고 살아서 움직이는 캐릭터들 모든 것에 끌렸다. 영화의 부분에 불과한 노출 신 때문에 이 영화를 놓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20대 초반의 나이를 관통하고 있는 배우로서 극적인 감정 변화를 겪는 인물을 온전히 이해하고 표출하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었을까. 이 당찬 배우는 “복잡한 게 많은 인물이어서 오히려 할 것이 많아서 신났다”고 명쾌하게 대답한다. 그리고 자신의 말대로 김옥빈은 영화에서 울고 웃고 뛰고 뒹굴며 스크린을 종횡무진 한다. “다른 인물을 연기할 때는 할 수 없었던 모든 것을 다했다. 내 안의 모든 것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송)강호 선배님의 목도 졸라보고. 하하”
그녀가 뽑은 자신의 명장면은 라여사가 “강우 춥단다!”라고 매섭게 외치자 태주가 무기력하게 일어나 핫팩에 물을 붓는 뒷모습이란다. “라여사의 고함에 김밥을 썰던 태주가 힘없이 손 닦고 터벅터벅 걸어서 싱크대로 가지 않나. 잘 보면 걸음도 팔자다. 두 모자와 살면서 1,000번도 넘게 반복해왔을 행동이 자연스럽게 표현된 것 같아서 혼자 웃었다. 이제는 뒷모습도 태주 같구나 하면서. (웃음) 포커스가 나였던 것도 아니고 특별히 강렬한 장면도 아니었기 때문에 아마 다른 사람들은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배우고 또 배우다

박찬욱 감독은 김옥빈에게 이런 열정의 발산을 위한 멍석을 깔아주었다. “감독님하고 사전에 가능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감독님은 평소에는 가만히 계시다가 촬영에 들어가기 전 ‘이따가 어떻게 연기할거야?’라고 상냥하게 물어보신다. 내 의견을 말하면 그 장면에 대한 최소한의 디렉션을 전달하시고 많은 부분을 내가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두셨다.” 덧붙여 그녀는 박찬욱 감독의 여성성(?)으로 교감이 더 쉬웠다며 장난스러운 소감을 전한다. “감독님은 말하는 것부터 행동까지 완전 여자다. (웃음) 옆집 언니 같다고 할까. 여자 스태프들하고 섞여 있으면 얼굴을 보지 않는 한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다. 그래서 여자 배우로서는 더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현장의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는 김옥빈에게 송강호를 비롯해 김해숙 같은 대선배들과 연기를 함께한 것은 그야말로 매혹적인 경험이었다. “선배님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태주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촬영장에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송강호 선배님이나 눈동자를 움직이는 행위에도 다양한 표현법을 시도하는 김해숙 선생님의 연기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칠 정도다. 함께 연기하면서 촬영장에서 배우가 어떤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있어야하는지를 온몸으로 체득할 수 있었다."
특별출연한 <아랑>(2006)을 제외한다면, 김옥빈에게 <박쥐>는 필모그래피에 올린 네 번째 영화다. 2005년 <여고괴담4: 목소리>을 통해 데뷔했으니 그리 다작을 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유심히 들여다본 그녀의 짧은 필모그래피는 쉬이 잊을 수 없는 인상을 남긴다. 그것은 <여고괴담>시리즈에서 <다세포 소녀>(2006) <1724 기방난동사건>(2008) 등에서 선보인, 또래 여배우들에게서는 찾아 보기 힘든 기이하고 불완전한 에너지의 잔상이다. <박쥐>는 그녀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쥐>가 공개되고 송강호의 명품연기와 더불어 김옥빈의 '발견'이 이슈로 떠오른 것은 그때문이다. 하지만 '발견된 배우'보다는 '진행형 배우'에 방점을 두었으면 좋겠다는 그녀는 인터뷰 말미에 그간 못다한 연기의 갈증을 해소하려는 듯 "모든 영화 속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다"며 야무진 포부를 밝힌다. "그냥 이것저것 다 해보고 싶다. 지금까지는 몇 편 밖에 못했지만 앞으로는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얼굴을 많이 내비치는 다작 배우가 되고 싶다." <박쥐>에서 김옥빈의 폭발하는 에너지를 경험한 관객이라면 그녀의 다짐이 빈말이 아님을 느낄 것이다.

2009년 5월 7일 목요일 | 글_하정민 기자(무비스트)
2009년 5월 7일 목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31 )
kisemo
잘 읽었습니다 ^^   
2010-04-04 13:38
pretto
좋은 작품 기대할게요~^^   
2010-01-27 11:35
ninetwob
기대가 되는 여배우   
2010-01-22 01:29
shfever
잘 읽었습니다~   
2009-08-06 09:58
jun150
박쥐에서, 어색함이 보였던 한 두장면 빼고는 연기력 생각보다 괜찮았음   
2009-07-02 19:48
loop1434
이제 슬슬 배우로 탄생해나가는 배우   
2009-06-04 01:21
gurdl3
매력적인 배우네요..   
2009-05-24 21:08
elshadei
신부를 만나고 난 후부터 시시각각 변해가는 색깔은 정말 신선한 경험이었다고 봅니다. 퀄리티있는 배우의 재발견이 아닌가 싶네요.   
2009-05-20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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