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오웬스를 향한 “당신 도대체 누구야?”라는 물음은 다분히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향한 물음이기도 하다. 과거의 명성을 뒤로 하고 시골마을로 낙향한 실력파 경찰 레이 오웬스는 왕년의 액션스타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묘하게 겹친다. “아임 올드(I’m old)”를 노곤하게 읊조리다가도 ‘젖 먹던 힘’을 다해 악당에게 주먹을 날리는 레이 오웬스의 몸짓은, 이제 환갑이 훌쩍 넘긴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움푹 파인 주름 속에서 짠한 울림과 웃음을 동시에 주조해 낸다. 다만, 이것이 미국 현지 흥행에서 독으로 작용했다는 게 아이러니다. 불륜스캔들로 비호감이 된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이미지가 ‘정의는 승리한다’는 논리를 내세운 영화와 불협화음을 일으키며 흥행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최근 연달아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 역시, <라스트 스탠드>에겐 악재로 작용했다.(미국에서 영화는 제작비의 절반도 건지지 못한 채, 흥행쓴맛을 봤다.) 그렇다고 해서 흥행실패의 원인을 배우와 외부 환경에서만 찾는 건, 여러모로 얕은 분석이다. 이건 엄연히 김지운의 영화이기도 하니 말이다.
아놀드 슈왈제네거의 10년만의 복귀작으로 미국에서 주목받은 <라스트 스탠드>는, 국내 관객들에겐 김지운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더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김지운의 영화로 바라 본 <라스트 스탠드>는 시나리오가 탄탄하고, 액션 시퀀스가 독창적이고, 이음새가 매끈한 영화는 결코 아니다.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 한 놈> 영화 속 캐릭터를 빌어 표현하자면 ‘이상한 놈’에 살짝 가까운, 그러니까 위험천만한 상황 속에서도 엉뚱한 유머를 구사하는 B급 매력의 오락액션영화다. 다만 컬트적인 묘미가 <조용한 가족>보다 약하고, 액션의 쾌감이<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보다 인상적이지 못하며, 페이소스 머금은 진득한 유머도 <반칙왕>에는 미치지 못한다. 인상적인 액션 시퀀스들을 보여준 <달콤한 인생>과 비교해도 뭔가 평이한 인상이다. “할리우드 시스템에 익숙해지는데 시간이 걸렸다”는 감독의 말에서 이 영화는 ‘김지운스러움’이 없지만 않지만, 그렇다고 확고한 ‘김지운 스타일’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라는 걸 읽을 수 있다.
한마디로 <라스트 스탠드>는 김지운이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한국에서만 작품 활동을 해 온 감독이 ‘총기’라는 굉장히 미국적인 소재를 생경한 느낌 전혀 없이 미국식으로 절묘하게 찍어냈다는데 놀라움이 있을지 모르겠다. 통쾌한 오락영화를 원하는 관객들에게 <라스트 스탠드>는 팝콘을 던지며 유쾌하게 볼 수 있는 할리우드식 액션영화로 무리가 없다. 하지만 대중적이라는 이름 아래 다소 평범해져버린 김지운의 인장들은 호불호를 불러일으킬 공산이 크다.
2013년 2월 25일 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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