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19세기부터 문명이 파괴된 미래 세계까지, 총 여섯 개의 에피소드로 등장한다. 1848년 태평양을 횡단하는 변호사의 생존기, 1936년 옥스퍼드의 젊은 작곡가(벤 위쇼)의 좌절, 1973년 핵발전소의 비밀을 캐는 루이지애나 여기자(할리 베리)의 취재기, 2012년 친형의 음모로 사설 요양원에 갇힌 출판업자(짐 브로드벤트)의 탈출기, 2144년 인간에게 착취당하는 네오서울의 클론 손미(배두나)의 투쟁기, 그리고 인류 문명 멸망 후의 2321년 원시 세계가 모두 한 영화 안에서 공존한다. 전혀 다른 이야기와 주인공들이 윤회라는 궤도 안에서 각자의 삶을 편지와 영화, 책으로 습득하면서 데자뷰를 느낀다. 어윙, 프로비셔, 루이자 레이, 티모시 캐번디시, 손미, 혜주, 자크리 등 각각의 완결된 이야기 속 주인공들은 윤회를 거듭하는 한 두 인물로 통합된다.
영화는 윤회와 환생이라는 동양적 사상을 뼈대삼아 시대별로 대두되는 담론으로 살을 붙인다. 인종차별과 노예 제도, 동성애, 생명을 담보로 장사하는 핵발전소의 음모, 속물주의, 환경파괴, 생명 존엄 등 방대하고 거시적인 주제들이 각 에피소드별로 펼쳐진다. 시대극과 미래 도시를 넘나드는 각 이야기들은 장르적으로도 액션, 로맨스, 코미디, SF, 판타지로 확연한 세계를 구축한다. 여기까지 말하면 한 영화 속에 여섯 가지 이상의 장르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식이지만 신기하게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온갖 장르의 짬뽕 버전이 되는 이 하이브리드 장르 혼합의 영화판이 가진 장점은 놀랍게도 지루하지 않다는 것과 교차 편집의 공력이다. 각 에피소드들은 전체 이야기의 반을 차례로 뱉어낸 후 장르의 리듬, 이야기의 흐름, 등장인물 등을 연결고리삼아 널뛰며 오간다. 이상하게도 전혀 다른 시간대에 존재하는 여섯 가지 이야기들이 점프와 병렬을 거듭해도 어색하거나 흐름이 끊기지 않는다.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 소화불량이 걱정되는 장르와 이야기의 혼합, 네임 밸류 강한 배우들의 협업까지, 무려 1억 2천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판에서 벌어진 500년 역사를 놓고 혹평과 호평이 오가는 줄다리기는 어쩌면 당연하다. 제작비와 배우, 감독으로 이어지는 인적 자원, 원작의 명성, 기나긴 러닝타임을 두고 무려 윤회라는 철학을 논한다고 할 때 기대하게 되는 무언가를 이 영화는 충족시켜주지 못 하기 때문이다. 그 무언가란 대서사시에 가까운 장엄함이나 혁명적 위대함 같은 거창한 수식들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영화는 거대한 분장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하지만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철학하기보다는 재기 넘치는 상상력과 오밀조밀한 구성력으로 만화를 완성한다. 이렇게 영화는 보는 이가 어떤 기대치를 두냐에 따라 야유와 갈채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게 될 것이다. 분명한 점은 <매트릭스> 이후로 거론될 워쇼스키의 대표작은 아직이라는 것이다.
2013년 1월 11일 금요일 | 글_프리랜서 양현주(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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