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주인은 분명 잭 스패로우다. 하지만 여기엔 윌 터너(올랜도 블룸)-엘리자베스 스완(키이라 나이틀리)이라는 쟁쟁한 동업자들이 있었다. 동업자들의 지분은 종종 주인을 능가할 만큼 컸다.(“잭 스패로우가 얼굴마담이냐”는 팬들의 불만이 나왔던 이유이기도 하다.) 두 사람의 높은 비중은 아이러니하게도 잭 스패로우의 존재감을 높였다. 동업자들 덕분에 잭 스패로우는 속세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게 바다를 항해할 수 있었다. 4편에 이르러 믿었던 동업자들이 하산했다. 잭 스패로우만이 남았다. 덕분에 관객은 ‘사랑해 마다 않는’ 잭 스패로우를 더 오랜 시간 스크린에서 만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동시에 홀로 고군분투하느라 피로해진 잭의 얼굴도 더 자주 마주해야 한다.
시나리오 작가 테드 엘리엇, 테드 로시오 콤비는 잭 스패로우를 혈혈단신으로 둘 생각은 없었던 것 같다. 잭의 팔자엔 없었을 줄 알았던, 전 애인 안젤리카(페넬로페 크루즈)를 등장시킨 걸 보면 말이다. 인어와 선교사에게 윌과 엘리자베스의 러브스토리를 이양시킨 것도 다분히 전략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새로운 캐릭터의 이식이 아니라, 그 캐릭터들이 잭 스패로우와 어떠한 화학작용을 일으키느냐다. 아쉽게도 페넬로페 크루즈와 조니 뎁의 관계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친구도 연인도 아닌 미지근한 상태로 심심하게 흐른다. 인어와 선교사의 러브스토리는 ‘별책부록’이라 해도 무방할만큼, 이야기에서 동떨어지고 만다. 악당들의 개성 역시 조금씩 아쉽다. 문어발로 눈물 훔치던 낭만파 악당 데비 존스를 떠올리면, 새로 등장한 검은 수염(이안 맥셰인)의 매력은 미비하기 그지없다.
시리즈 사상 최초로 시도된 3D 입체 영상은 안정적이다. 하지만 3D 입체 영상이 항해의 핵심이 될 수는 없을 터. 결국 <캐리비안의 해적 : 낯선 조류>는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잭 스패로우가 스필버그의 <인디아나 존스> 식으로 풀어낸 느낌을 준다.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가 지니고 있던 확고한 아이덴티티가 옅어졌다는 의미다. 캡틴 잭 스패로우의 귀환이 반갑긴 하지만, 전만큼 흥겹지 않은 건 이 때문이다.
2011년 5월 19일 목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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