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한국독립영화 사상 가장 풍요로운 한 해가 될 것’이라고 했고 또 다른 이는 ‘독립영화가 새로운 시험대에 서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개봉한 독립영화의 면면을 살펴보면 완성도와 비평에서 상업영화보다 상당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조짐은 연 초부터 보였더랬다. 정호현 감독의 <쿠바의 연인>이 적은 상영관에도 높은 점유율을 보이면서 오래도록 생명력을 유지하는 가운데 관객에게 깊은 이미지를 남기더니, <혜화,동>과 <파수꾼>을 필두로 시네아스트 장률의 <두만강>이 뒤를 이었고, 호불호가 갈리기는 해도 <짐승의 끝> 역시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다음 주에는 괴물신인 박정범 감독의 <무산일기>가 관객과 만나고 5월 12일에는 서울독립영화제2010 대상 수상작 <오월애>가 개봉하며 6월에는 상영 때마다 매진기록을 이어 온 이혁상 감독의 <종로의 기적>도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주목할 것은 <혜화,동>이 관객과 만나온 방식으로, 단순 흥행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감독 자신을 관객과 영화 사이의 매개자로 상정하여 자기 영화의 가치를 알리고자하는 필사의 시도였다는 점에서, 개봉을 앞둔 감독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개봉하진 않았어도 영화제와 공동체상영 등을 통해 관객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다큐멘터리까지 묶으면, 2011년 독립영화의 상차림은 더욱 풍성해진다. 예컨대 문정현 감독의 <용산> 이강현 감독의 <보라> 태준식 감독의 <당신과 나의 전쟁> 오두희 감독의 <용산, 남일당 이야기> 류미례 감독의 <아이들> 박배일 감독의 <잔인한 계절> 등의 다큐멘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이름이다. 용산에서 쌍용자동차사태까지 더러는 사건을 복기하고 더러는 시스템을 다루는 가운데 하나같이 소재와 형식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들이다.
올해 들어 갑자기 좋은 독립영화가 양산된 건 아니다. 오래전부터 좋은 독립영화는 꾸준하게 만들어져 관객과 만나왔다. 당신이 몰라 본 것뿐이고 애써 관심을 두지 않았을 따름이다. 한편 상대적으로는 상업영화의 약세가 두드러진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물량공세를 통해 일정 관객을 확보했을지는 몰라도 비평적으로 상찬을 받은 한국영화가 드물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만추>를 비롯해 <조선 명탐정> <그대를 사랑합니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정도가 흥행과 비평의 자장 안에서 움직였을 뿐, 대형흥행작도 이렇다 할 화제작도 눈에 띄지 않았다. 고만고만한 상업영화가 한정된 파이를 나눠가지는 동안, 정작 관객의 시선은 현실과 맞닿은 세계를 잘 그려낸 독립영화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4대강과 구제역파동을 비롯한 각종 정치사회적 현안들로 꽉 막힌 현실도 한 몫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오락적 대상으로서의 영화 대신 세상을 비추는 창에 가까운 독립영화를 택했다는 점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그렇다고 관객을 과신하면 금물이다. 관객은 언제나 변덕스런 존재라는 것,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상업영화가 봉착한 소재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어 형식적 발전을 이룰 때 한국독립영화에 쏠린 관객의 관심을 온전히 제 것으로 만들게 될 것이다.
모처럼 쏟아지는 좋은 독립영화 사이에서 관객이 길을 잃지 않도록 로드맵을 만들어주는 일은 독립영화계의 몫이고 숙제이다. 현실의 고발자이자 기록자로서의 신념을 유지하되 제 3의 관객과의 소통가능성 또한 염두에 두는 명민한 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극장과의 적극적·공격적 협상을 통해 보다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다. 비록 너무 오래 동안 자주 거론되어온 해묵은 담화일지라도 이보다 중요한 일이 있을까. 요컨대 관객의 관심을 상업적으로 연결시키려는 시도에서 진일보하여 고정 관객층으로의 편입을 유도하는 전략적 접근과 고민이 필요한 때다. 제목 다시 한 번 확인하자. 지금은 라디오시대가 아니라, 독립영화 전성시대다. 이 화창한 봄날, 독립영화가 꽃망울을 펑펑 터뜨리고 있다.
글_백건영 영화평론가(무비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