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생에서 몇 번의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를 맞는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준비하고 대처해 나가느냐에 따라 누군가의 삶은 전보다 더 풍성해지고, 누군가의 삶은 오히려 더 어그러진다. <줄리&줄리아>는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긍정의 ‘터닝 포인트’로 만드는데 성공한 두 여자의 이야기다. 노라 애프론 감독은 새로운 출발점에 선 이들의 이야기를 오감 가득한 요리의 세계에 대입해 빚어냈다.
1940년대에 외교관 남편을 따라 파리로 온 줄리아(메릴 스트립)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요리학원을 다니기 시작한다. 처음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던 줄리아는 그러나 음식에 대한 특유의 재능을 발휘하며 남성 동료들을 추월하고, 친구와 함께 요리책 쓰기에 들어간다. 한편, 2002년 뉴욕 퀸즈에 사는 말단 공무원 줄리(에이미 아담스)는 삶에 지루함을 느끼던 중 줄리아가 남긴 요리책을 보며 365일 동안 524개의 레시피에 도전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을 블로그에 올리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줄리&줄리아>는 프랑스 요리에 반해 요리사에 도전한 줄리아 차일드의 자서전 <프랑스에서의 나의 삶>과, 줄리아의 요리책 <프랑스 요리 예술을 마스터하기>에 도전한 줄리 파웰의 <줄리 앤 줄리아: 365일, 524개 레시피, 하나의 조그만 아파트 부엌> 두 편의 소설을 각색한 영화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에서 ‘라디오’를, <유브 갓 메일>(1998)에서 ‘메일’을 통해 얼굴도 보지 못한 사람간의 끌림을 얘기했던 노라 애프론이 이번에는 ‘요리’라는 매개체를 통해 각기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 사는 두 여인의 소통을 이끌어낸다.
<줄리&줄리아>는 동세대 여성들의 경험과 욕망에 귀를 기울여 온 노라 에프런의 작품답게, 요리보다 두 여인의 자아실현 과정에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평범한 사람도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적인 메시지가 ‘뻔’하기는 하지만, 다른 시대 이야기의 병렬적 배치가 신선하고, 결말이 해피엔딩에 목매지 않고, 담백해 구태의연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영화는 요리 영화로서의 성취도 일부분 이뤄낸다. 시각과 청각이 우세한 영화의 영역에서 <줄리&줄리아>는 관객의 미각까지 사로잡으려 드는 발칙한 매력을 선보인다. 음식의 풍미를 사실적으로 시각화한 솜씨가 맛깔나고, 음식 만드는 과정에 대한 철저한 고증이 미각을 자극한다. 하지만, <줄리&줄리아>는 먹자마자 그 맛이 입을 타고 올라오는 자극적인 음식보다, 천천히 음미해야 제대로 된 맛을 느낄 수 있는 영화다. 임팩트 있는 입맛에 길들여진 관객들에게는 두 여인의 성공을 향한 무난한 성장기가 다소 싱거울 수 있다는 얘기다.
단조로울 수 있는 영화에 향신료 역할을 하는 건, 메릴 스트립이다. 장신의 거구로 분한 그녀는 실존 인물 줄리아의 호탕한 웃음과 하이톤의 목소리, 귀여운 몸짓을 그대로 재현하며 시종일관 웃음을 안긴다. 특히 TV 요리쇼에 출연, 바닥에 떨어뜨린 요리를 다시 주워 담으며 “누가 안 보는데 어떻냐”고 호들갑 떠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녀가 과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신경질적인 편집장과 동일인물이 맞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 <줄리&줄리아> 속 메릴 스트립의 연기는 그녀 연기 인생에 있어 최고라 할 수는 없어만, 훗날 빼 놓지 않고 거론하고 싶은 매력을 안긴다.
반면 에이미 아담스의 경우,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 속 그녀의 연기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매력적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매 작품마다 다른 배우들이 대체할 수 없는 개성을 선보여 온 그녀는 이번에는 본인이 지닌 여러 가지 면 중, 일상적인 모습만 꺼내 보여 준 느낌이다. 특히 <다우트>에서 메릴 스트립에 밀리지 않는 연기력을 선보였던 에이미 아담스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시종일관 메릴 스트립의 기에 눌리는 <줄리&줄리아>의 줄리가 아쉬울 수 있겠다.
2009년 12월 11일 금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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