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 감독의 신작 <다찌마와 리 : 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는 영화 홍보의 초기 단계부터 적극적인 친블로그 정책(?)을 펼쳐왔습니다.
요즘 개별 영화를 위한 카페나 홍보 블로그 하나쯤 만들지 않는 작품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이 사실이지만 <다찌마와 리>는 그 보다 좀 더 적극적으로 '블로거들을 통한 영화 알리기와 입소문 내기'에 주력해왔습니다. 작품의 성격 자체가 워낙 매니아 취향이기도 한 데다가 블로그라는 새로운 홍보 채널에 감독과 주연 배우(임원희)의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했던 여건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다른 글에서도 밝혔듯이 블로그를 활용한 영화 홍보가 흥행의 대세를 결정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영화 관객들 모두가 적극적인 블로거인 것도 아니고, 어떤 이유에서건 영화 자체의 흥행성이 낮은 데도 불구하고 몇몇 블로거들의 좋은 입소문만으로 대세가 뒤바뀌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1)
수입 영화들은 배급사와 홍보 대행사가 아무리 훌륭한 블로그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더라도 감독이나 배우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은 여건 때문에 그 활용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기껏해야 감독이나 배우의 내한 GV 행사를 갖는 것이 전부이니 항상 거기서 거기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정은 작품의 성격 자체가 블로거들의 팬심을 얻어내기가 어렵거나 감독, 배우들의 참여를 기대하기 어려운 일부 한국영화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에 반해 <다찌마와 리>는 류승완 감독이 직접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고 블로거들이 주연 배우를 만나 인터뷰 내용을 알리는 등의 과정을 통해 한국영화와 블로그가 어떻게 어우러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한 단계 진일보한 사례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는 메타 블로그의 밀어주기도 한 몫을 했습니다. 이 때문에 공정성의 시비 여부가 있을 수 있겠지만 100% 검색만으로 돌아가주지 않는 국내 실정을 감안한다면 이는 영화와 블로그가 제대로 만나는 사례를 남기기 위한 하나의 시도였다고 생각됩니다. 적어도 <다찌마와 리>는 보도 자료 퍼가기나 찌질한 경품 행사 수준이 아닌, 영화와 블로그가 직접 만나는 좀 더 나은 모델을 제시했다고 평가할만 합니다.2)
디지털 단편이었던 <다찌마와 리>가 극장용 장편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데에는 원작의 높은 완성도와 유명세가 이미 있었던 데다가 퀀틴 타란티노와 로베르토 로드리게즈 감독의 <그라인드 하우스> 프로젝트라는 좋은 레퍼런스가 있었던 덕분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임원희씨의 인터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단 장편 상업영화로 기획되고 만들어진 <다찌마와 리>는 그저 놀고 끝낼 수만은 없는, 상업적 성공에 대한 부담감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는 없는 것 같아 보입니다. <다찌마와 리>는 70년대 한국 액션영화들에게서 발견되는 촌스러움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면서 기본적인 골격은 <총알탄 사나이> 류의 내러티브 아이디어와 개그 코드를 깔고 있는 작품입니다. 장규성 감독의 데뷔작 <재밌는 영화>(2002)가 이미 선례를 남겼듯이 일부 관객들에게는 극강의 재미를 안겨주지만 다수 관객들의 극장 나들이용으로는 크게 환영받지 못하는 카테고리의 영화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류의 영화들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아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기 힘든 국내 실정을 감안하면 <다찌마와 리>는 정말 간만에 나온 용감한 영화이고 일부 관객들에게 만큼은 확실한 재미를 보장해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고의적인 촌스러움과 어색함을 말 그대로 어색함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순수한 오락적 재미만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해줄 수 있는 관객들의 존재가 충분한 숫자로까지 입증될 수 있을런지는 솔직히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찌마와 리>는 유사한 영화로는 <재밌는 영화>를 들 수 있지만 상대적인 비교 대상으로는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도 좋은 댓구를 이룬다는 생각입니다. 170억짜리 2008년도 국가대표급 영화였던 <놈놈놈>이 만주 웨스턴을 찍기 위해 직접 해외 로케이션을 다녀왔던 것과 달리 <다찌마와 리>는 오직 국내 촬영으로만 만주 웨스턴과 무협 영화의 분위기를 살릴 뿐만 아니라 중국, 스위스, 미국으로 마구 뛰어다니는 글로벌한 스케일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눈속임에 불과한 것이고 때로는 똑같은 한강 다리 밑에서의 장면들이 압록강도 되고 두만강도 되는 뻔뻔한 우격다짐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 만듬새가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다찌마와 리>를 보는 즐거움입니다. 오히려 설원에서의 추격 장면에 등장하는 거대한 눈덩이는 CG이긴 하지만 그 사실감이 꽤 높은 수준이어서 한국영화로서는 보기 드문 멋진 장면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놈놈놈>이 작품 전체적으로는 그리 높은 평가를 해줄 수 없는 작품이면서도 정우성이 연기한 간지 액션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볼 가치를 제공해주었다면3) <다찌마와 리>는 진상 8호(정석용)가 죽는 장면에서 관객들 모두를 정말 눈물나게 웃게 만들다가 급기야 배 아프고 허리까지 아프게 만드는 명장면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볼 가치를 제공해주는 영화라고 생각됩니다. 작품 전반에 깔려있는 개그 코드들이 극장 관객들과 100% 소통하지 못하는 점은 아쉽지만 몇 개의 장면에서 확실한 재미를 선사해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오락 영화의 소임은 충분히 다 해낸 것 아닐까요. <놈놈놈>이 순수한 오락 영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스케일의 영화이면서도 그렇게만 봐달라고 강변해야 했던 것에 비하면 <다찌마와 리>는 처음부터 순수한 오락적 재미를 추구한 작품이고 또한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주력했던 작품입니다. 물론 <다찌마와 리>에서 시종일관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느냐 일부 장면에서만 크게 웃을 수 있느냐는 관객에 따라, 때로는 상영관 내의 분위기에 따라 다소 달라질 수는 있을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다찌마와 리>가 류승완 감독 고유의 스타일인지, 그리고 앞으로도 이와 같은 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기 힘든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장편으로 만들어진 <다찌마와 리>조차도 그저 순수한 재미만을 위해 만들어졌다고만은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호러나 다른 장르도 그렇지만 그 장르를 정말 잘 이해하고 있는 이들에 의해 만들어지지 못하고 또한 그 장르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한 우리나라 영화 시장의 현실은 모두가 함께 짊어질 수 밖에 없는 큰 짐처럼 느껴집니다. 류승완 감독이 이제껏 추구해왔던 작품 경향을 생각하면 <다찌마와 리>도 코미디 장르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우러나온 진국의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이제 중견 감독으로 대접을 받을 만한 위치에서 남들이 감히 해볼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시도, 작품에서 뿐만 아니라 새로운 채널을 통한 직접적인 소통 방식에서의 시도를 해준 부분에 있어서는 작품에 대한 평가와는 별도로 크게 인정을 해줄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관객 입장에서만 생각하더라도 <다찌마와 리>와 같은 개성적인 취향의 코미디 영화는 그저 반갑기만 합니다. 이틀 전에 보다가 너무 웃었던 탓에 아직도 갈비뼈가 결리는군요.
1) 마케팅이 있기 이전에 작품이 우선이라는 점은 기존의 온라인 홍보 방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색어 순위, 예매 순위, 네티즌 평점을 인위적으로 올려놔봐야 결국 단발마에 불과할 뿐 장기적인 흥행으로 연결되는 건 아닙니다. <다찌마와 리>의 친블로거 홍보 방식은 홍보 대행사를 통해 인터넷 여론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관행을 따르지 않으면서 대안으로 선택한 방식으로 알려져 있어 더 빛이 난다고 생각합니다.
2) 개인적으로 영화와 블로그가 만나는 궁극적인 모델은 블로거가 영화를 만들고 블로그를 통해 공개되고 또한 알려지는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사진과 달리 영화는 제작 과정이 복잡하고 비용도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 사정이 다르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극장용 영화들과는 별도의 UCM(User Created Movie)들이 등장하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만일 <다찌마와 리>의 디지털 원작과 같은 작품이 블로거들의 손에 만들어져(이미 장편 데뷔를 했던 류승완 감독이 본인 이름을 밝히지 않고 공개했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지금과 같은 시기에 나왔더라면 과연 어땠을까요. 그중에 성공적인 작품은 극장용 장편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고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그저 블로고스피어 내의 걸작으로만 남게 되더라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3) 물론 제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볼 가치'입니다. 정우성의 간지 액션 외에 볼 가치가 높은 다른 장면들이 많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실테고 그런 단편적인 '볼' 가치들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2008년 8월 19일 화요일 | 글_신어지(영화진흥공화국 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