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담>은 사실 세 개의 단락으로 엮어진 옴니버스 이야기라고 봐도 상관없다. 하지만 각각의 옴니버스의 경계를 나누는 인터미션은 활용되지 않는다. 그건 <기담>이 안생병원을 중심으로 한 인물들의 중첩된 동선을 통해 문체의 통일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동시간대에 존재하나 독립적인 동선을 취하는 인물들은 독자적인 사연을 형성하며 단락의 개별적 형식을 고수한다.
환상과 현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기담>은 그 접점에서 항상 꽃잎을 날리거나 눈송이가 떨어뜨려지며 정서적 경계를 소환한다. 그리고 그 경계를 오가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누군가에게 홀린다. 그 설명할 수 없는 매혹은 <기담>의 치밀한 미장센과 더불어 정서의 두터운 층을 쌓아나간다. 사실 개별적 에피소드가 <기담>이란 제목 아래 모이는 건 기묘한 심리를 자극하는 이야기의 균질함 덕분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사랑이라는 감성적 명제 하에 유기적으로 연동되는 이야기인 덕분이다. 분명 전형적이지 않은 이야기는 낯설게 다가오지만 결국 매혹적인 보편성으로 착지한다. 깊게 찌르고 들어오는 공포가 빠져나간 공백에 스며드는 슬픔은 흩날리는 꽃잎처럼 섬세한 여운을 남기며 처연한 잔상을 새긴다.
장르적인 관점에서 <기담>은 근래의 공포 영화들과 양과 질의 차별화를 보여준다. 인내심 없는 짧은 호흡으로 단기적이고 표면적인 효과를 남발하는 최근 공포의 경향과 달리 <기담>은 우직할 정도로 긴 호흡을 유지하는 분위기의 중압감을 통해 무시무시한 응집력을 보여준다. 인물의 목소리와 그림자, 실루엣을 통해 형체를 드러내지 않는 대신 실체를 상상하게 하며 맹점의 두려움을 확보한다. 또한 건조한 색채를 바탕으로 한 명암의 대비는 마치 보는 이의 정서를 홀리게끔 하는 입체적인 주문처럼 느껴진다.
은유적이며 동시에 상징적인 복선들로 채워진 <기담>은 사실 낯설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시작과 함께 끝을 알 수 없는 이야기에 거부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마지막까지 태도를 유지한 이는 가슴 깊숙이 박힌 중의적인 감수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잔혹한 공포와 처연한 슬픔. 흰 눈에 배어든 선홍색의 피가 아름다워 보이는 건, 현상 너머의 사연이 처연한 애정을 머금었기 때문이다. <기담>은 직접적인 묘사를 절제한 굴절된 이미지를 통해 감성을 자극하고 동시에 입체적인 감상력을 숙성시킨다. 단지 장르적 측면을 떠나서 <기담>은 영화 자체가 보유한 시선만으로도 흥미로운 작품이다.
만약 <기담>을 재미있게 보았다면 시라노 게이치로의 소설 '달'을 읽는 것을 개인적으로 추천한다.
2007년 7월 27일 금요일 | 글: 민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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