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각박해질수록 사람들의 ‘한탕주의’의 욕구는 점점 커져만 간다. 매주 사는 로또의 확률은 너무 낮고, 우스개 소리로 ‘은행이나 털까 보다’라는 말은 입버릇처럼 반복된다. 영화는 인간의 로망을 스크린에서 보여주는 엔터테인먼트로서 제 기능을 다하기 때문에 '강도 영화(Heist Movies)’라는 장르를 탄생시켰다.
미국의 한 주간지는 '강도들의 지침서'가 될 만한 영화 11편을 선정하기도 했는데, 그 중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 몇 편을 살펴보면 폴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열연한 <스팅>이 1위,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뷔작 <저수지의 개들>이 2위, 마지막 반전이 아직까지 회자되는 <유주얼 서스펙트>가 8위에 올라가 있는걸 볼수 있다.
공짜를 바라는 마음과 한탕주의에 점철된 이런 ‘훔치는’ 영화 중 가장 재미있는 소재는 아무래도 돈다발이 쌓여있는 ‘은행 강도’일 것이다. 여기 최근 개봉한 스파이크 리 감독의 <인사이드 맨>에서 지적인 은행강도의 절정을 보여준 클라이브 오웬보다도, 혼성 은행강도의 표본으로 불리는 명화 <보니와 클라이드>를 뛰어넘는 매력적인 여성강도를 다룬 영화 세편이 있다.
한가지 재미있는건 개봉연도도 장르도 다른 이 3편의 영화에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 눈치 빠른 분들은 리플 달아주시라. 그 중 세분을 뽑아서 앞으로 개봉할 서부액션 극 <밴디다스>의 시사회 표를 증정하겠다. 물론, 인당 2명씩! 이왕이면 간만에 여자친구끼리 가시길 권한다. 이 영화엔 여성들이 알아야 할 키스테크닉이 나오기 때문에 남친 옆에서 버젓이 보긴 그러니까. (나만 그런가?)
● 셋 잇 오프(Set it off.1996)
오랫동안 일해온 은행에 강도가 들자 흑인 용의자에 같은 동네라는 이유로 부당 해고당한 플랭키, UCLA에 입학한 남동생의 학비를 벌기 위해 원하지도 않는 몸을 팔게 된 스토니는 불심검문을 받은 남동생이 경찰의 오발로 숨지자 좌절한다.
동성애인의 선물을 사고, 고물차도 고치고 싶은 클레오와 미혼모인데다 적은 월급으로 생활이 되지 않는 다고 판단한 당국에 의해 아이를 뺏긴 티션은 모두 돈이 필요한 상태다.
LA빈민가에서 20년 넘게 자라온 친구 사이인 이들은 결국 열심히 일해도 돌아오는 건 가난과 멸시라는걸 깨닫고 의기투합한다. 은행을 털기로. 특히 클레오가 마지막으로 차에서 담배를 무는 장면은 비 흡연자도 혹할 만큼 흡연의 욕구를 자극시키는 명 장면으로 꼽힌다. 그녀들의 우정은 미국을 포함한 전세계 빈민들의 탈출구는 결국 ‘범죄’밖에 없는가?란 의문을 제기한 채 처절하게 끝을 맺는다. <이탈리안 잡>, <네고시에이터>의 F. 게리 그레이가 연출을 맡았다.
● 택시: 더 맥시멈 (Taxi, 2004)
스피드 광이자 택시 운전사인 주인공과 운전에 어설픈 형사의 설정은 그대로 가고, 검은 복면의 무장 강도단 대신 모델들 뺨치는 네명의 절세미인들이 은행을 터는 설정은 충분히 할리우드 리메이크작 다운 발상이다.
특히, 다른 멤버들이 은행을 터는 동안 차 안에서 기다리기만 하는 바네사(지젤번천)은 만약 실패 할 경우 혼자 유유히 도망칠 수 있는 냉정한 여자로 주인공 벨(퀸 라티파)과 함께 손에 땀나는 자동차 경주를 벌이며 강도 짓보다 자신의 명예를 건 대결을 벌인다. 영어라곤 단 한마디도 안 하는 지젤 번천의 자연스런(?)연기와 <시카고>에서 보여준 든든한 카리스마의 소유자 퀸 라티파의 입담은 은행강도단 이란 소재를 코미디에 적합하게 변화시켰다.
● 밴디다스 (Bandidas, 2006)
키스 한번 못해본 선머슴으로 자란 마리아(페넬로페 크루즈)는 단순 무식하고, 멕시코 유지의 딸로 부족한 것 없이 자란 사라(셀마 헤이엑)는 자기애가 강한 인물. 물과 기름처럼 절대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두 앙숙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뭉치게 되고, 은행강도 훈련을 함께 받는다.
땅을 찾기 위한 그녀들의 노력은 멕시코 전역을 두려움에 떨게 하며 소신 있는 강도 짓 (사람은 죽이지 않는다, 도주가 최우선이다)으로 명성을 쌓아간다. 그 와중에서 법의학자인 쿠엔틴(스티브 잔)을 사이에 둔 사랑 쟁탈전은 이 영화의 백미. 한 남자를 사이에 둔 두 여자의 귀여운 에피소드는 실제 10년 가까이 우정을 쌓아온 여배우들의 관계와 맞물려 묘한 웃음을 불러일으킨다.
남성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서부극에 출연한 2인조 미녀강도란 소재도 신선하지만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사라가 마리아한테 자신의 반평생을 누르고 있던 코르셋을 끊어달라고 부탁하는 장면은 서구문명의 우월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표현됐다.친구 이상의 친분관계를 쌓아온 두 여배우는 한번도 같이 찍은 영화가 없다는데 착안, 뤽 베송 감독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해 이 영화의 제작자로까지 참여시켰다.
2006년 6월 12일 월요일 | 글_ 이희승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