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 박꽃 기자]
[목요수다회]는 무비스트 기자들이 같은 영화를 보고 한 자리에 모여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코너입니다. 관람 후 나눈 대화인 만큼 스포일러가 잔뜩 포함돼 있으니 관람 전 독자는 열람에 주의해주세요!
절제로 완성된 웰메이드
박은영 : <모가디슈>는 이게 류승완 감독의 영화가 맞을까? 싶은 작품이었어요.
이금용 : 저도요. 전작 <군함도>(2017)의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 그런지 류승완 감독 연출작이라는 정보 없이 봤다면 딱히 그가 떠오르지는 않았을 것 같더라고요.
박은영 : 류승완 감독은 영화를 배워서 찍은 스타일이라기보다는 현장 경험으로 지금 자리에 올라온 감독이죠. 그런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의 작품에는 특유의 정서가 있었거든요. B급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고, (재미있다는 의미의) ‘쌈마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지점이라고 할까요. 어쩌면 약간의 투박함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이번 영화에서는 그런 지점이 대부분 사라진 거죠. <모가디슈>는 오히려 군더더기 없고 세련됐다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박꽃 : <아라한 장풍대작전>(2004)이나 <짝패>(2006) 시절을 생각하면 특히 그런 지점이 있었죠. 캐릭터들이 과잉돼 있다고 할까요. <베테랑>(2015) 까지도 그런 영향이 있었고요. 유아인이 맡았던 ‘조태오’ 역할은 류승완 감독의 그런 색깔이 대중에게 잘 먹혔던 경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 역시 <모가디슈>는 그런 분위기와는 거리가 먼 작품이라는 느낌이에요. 류승완 감독 영화를 보고 재미는 있어도 ‘세련됐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 관객으로서(웃음) 변화의 계기가 뭔지 궁금할 정도였어요.
박은영 : <모가디슈> 인터뷰 때 들어보니, 정작 본인이 좋아하는 영화도 ‘마구 끌어 넘치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하네요. (이야기나 캐릭터 면에서) 절제하는 영화도 괜찮은 것 같다고요.
박꽃 : ‘림용수 대사’역으로 출연한 허준호 배우도 감독이 영화 편집 과정에서 확실히 절제를 택한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원래는 소년병들이 총을 드는 장면에 이어서 아이를 잃은 엄마가 비명을 지르는 신도 촬영했는데 후자는 영화에 쓰지 않았다고 하네요. 감정을 조절하겠다는 분명한 방향성이 있었던 것 같아요. <군함도>(2017) 때를 생각하면 역시 의외인 지점이죠.
박은영 : 당시에는 대형 욱일기를 찢는 장면 등이 언급되면서 ‘국뽕’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죠. 그런데 반대쪽에서는 ‘일뽕’이라는 말도 나오면서 양쪽에서 동시에 비난을 받았어요. 아마 당시에 감독은 상당히 억울했을 텐데 그런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서 이번에는 굉장히 담백한 톤을 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조인성의 ‘강 참사관’,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박꽃: 캐릭터의 매력이 또렷하게 살아있는 것도 장점이었어요. 가장 매력적이었던 건 ‘강 참사관’을 연기한 조인성이에요. <발리에서 생긴 일>(2004) 이후 대체로 ‘사랑을 아는 잘생긴 남자’(웃음)의 이미지가 계속된 감이 있어요. <비열한 거리>(2006) <쌍화점>(2008) <더 킹>(2016) 까지 영화에서는 특색 있는 여러 역할을 맡았지만 드라마 계보는 <봄날>(2005)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 <괜찮아, 사랑이야>(2014)로 이어지면서 멜로물에 특화된 인상이 계속 강화됐고요. 영화 <안시성>(2018) 때까지도 사극 복장에 긴 머리를 하면서 비주얼 측면에서 굉장히 멋있는 인상을 심어줬죠. 그런데 <모가디슈>는 좀 달랐달까요. 잘생김, 멋있음보다는 ‘세상을 약간 알아버린 아저씨’에 가까운 느낌.(웃음) 그 모습이 굉장히 잘 어울려 놀랐어요.
박은영: 캐릭터 자체도 가장 입체적인 것 같아요. (북한에 적대적이었던 안기부 출신 외교관에서) 점차 변모하는 과정도 보여주고요. 좀 꼰대 같은 인상인데 옷이나 머리 모양도 그렇고 약간 번들거리는 얼굴까지…(웃음) 물론 더위 속에서 촬영해서 그랬겠지만! 기존의 청춘스타 이미지를 생각해보면 많이 달라진 모습이죠. 조인성의 이미지를 새롭게 만든 역할 아닌가 싶어요.
박꽃: 특히 주변에 계속해서 허세를 부리는 장면이요. 자기는 훈련받은 사람이라면서.(웃음) 물론 나중에 액션신을 통해 그 실력이 사실로 밝혀지기는 했지만 확실히 2~30대 남자가 부리기는 좀 어려운, 40대쯤은 돼야 소화할 수 있는 배짱(웃음)같은 연기가 의외로 잘 어울리더라고요. 그동안은 보지 못했던 얼굴이라 앞으로의 배우 활동이 더 기대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박은영: 그동안은 원톱 작품을 많이 맡았다면 이번에는 김윤석, 허준호처럼 연기 잘하는 배우들과 함께하는 멀티캐스팅이었으니 어떻게 보면 한 발자국 물러서서 ‘묻히듯’ 연기해도 되는 상황처럼 보였거든요. 그런데 (비중은 상대적으로 줄었어도) 존재감은 확실하더라고요. 배우로서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작품이겠다는 생각입니다.
이금용: 전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로 조인성을 꼽지는 않았지만 김윤석, 허준호라는 정평이 난 배우 사이에서도 존재감이 빠지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분명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준 것 같아요. 역할상 약간 ‘꼽사리’ 느낌이 날 수도 있었던 건데(웃음) 그렇지 않았거든요. 개인적으로는 한국 대사관 직원 역을 맡은 여자 배우들이 인상에 많이 남았어요. 특히 ‘조수진 사무원’ 역의 김재화 배우는 90년대 특유의 서울 사투리를 잘 구사했어요. 아마 서울에서 쭉 산 사람들은 잘 인식 못 할 수도 있을 텐데 (서울 아닌 곳에서 자란 사람들은) 그 시절 특유의 서울 어투를 금방 알거든요. 왜 뉴스 화면에 나왔던 시민 인터뷰를 보면 “저희가 거기를 갈그그든요~” 하는 식의...(웃음)
박꽃: 아! 뭔지 알 것 같아요.
박은영: 약간 꾸민 듯하고 자연스럽지 않은, 인위적인 느낌의 그!(웃음)
이금용: 네.(웃음) 전 그런 연기가 딱 들어오더라고요. 김소진, 박경혜 등 전반적으로 한국 대사관 가족이나 직원 역을 맡은 여자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은근한 재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모가디슈>의 특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박꽃: <모가디슈>에서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게 모로코 올로케이션이죠.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직접 촬영을 할 수는 없으니, 그곳과 가장 비슷한 여건을 조성할 수 있는 모로코를 찾아 제작진이 직접 세트를 짓고 4개월 동안 현지 촬영을 진행했다고 해요. 정지영 감독 <하얀 전쟁>(1992) 당시 대규모 베트남 로케이션은 물론 크고 작은 해외 촬영을 경험해본 허준호 배우도 <모가디슈> 프로덕션은 최고 수준으로 철저하게 준비돼 있었다고 감탄을 여러 번 하더라고요. 류승완 감독이 초 단위까지 계산해서 필요한 시간만 쓰고 끝낼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다 해놨다는 거죠. 해외 촬영이라는 게 국내 촬영보다 더 변수가 많아서, 자칫하면 시간만 흐른 채로 촬영분을 미처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잖아요.
박은영 : 조인성 배우도 인정하더라고요. <모가디슈> 해외 로케이션은 류승완 감독 영화 인생의 집약체라고요. 영화 초반에 ‘강 참사관’이 외신 기자로부터 얻은 정보를 기사화해서 지면을 공중에 뿌리는 장면이 있는데 그 공간을 비롯해 모든 장소를 세트로 만들었다고 해요. 모가디슈 빈민이 사는 판자촌도 사실은 전부 공터였다는 거죠. 그래서 촬영 현장이 마치 하나의 큰 타운 같았다고 합니다. 제작비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세트 제작에는 한계가 있을 텐데요. 결국 어느 공간을 얼마만큼 구현할 건지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을 텐데, 영화적 볼거리를 위해 필요한 최대한의 공간을 잘 뽑아낸 거죠. 모가디슈 풍경을 구현한 모로코 로케이션 자체가 <모가디슈>의 특장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금용: 전 담백한 결말이 특장점인 것 같아요. 사실 <의형제>(2010) 이후로 나온 대부분의 남북 이야기는 전반적으로 식상하다는 감이 컸거든요. 남북 사람들이 만나서 처음에는 경계하다가 점차 가까워지고 나중에는 화해한다는 흐름이잖아요. <모가디슈>도 감독과 배우 이름을 떼고 ‘남과 북 대사관 사람들이 내전 상황에서 탈출한다’는 설정만 듣고서는 크게 흥미롭지 않았어요. 그런데 결말부에서 양쪽 사람들이 비행기에서 내린 뒤 담담하게 돌아서서 자신들을 마중 나온 차량에 각자 탑승할 때, 서로 보고 싶어하면서도 끝까지 보지 않는 느낌이 참 좋더라고요.
박은영: 그런 담백함 덕분에 오히려 당대의 엄혹한 시대적 분위기가 더 깨알같이 표현됐다고 생각했어요. 국정원의 눈치를 보느라 남한 대사관 사람들 역시 생사를 함께하고 무사히 탈출한 북한 사람들과 눈을 마주할 수 없는 거잖아요. 시대적 감정이 느껴지죠.
박꽃: 허준호 배우가 그 장면을 찍을 당시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해줬는데, 에어컨 없는 비행기 내부 촬영이 굉장히 덥기도 했고 성인 연기자들도 자기 연기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아역 배우들에게 상황 설명을 자세히 못 해줬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도 당시 상황의 맥락이 세세하게 잘 느껴졌는지 이별 장면에서 아역 배우들이 눈물을 터뜨렸다고 해요. 현장에서도 어떤 감정이 확실하게 공유됐나보다 싶었어요. 한마디로 서로 연기가 잘 됐다는 거죠. 한편으로는 전 이 시국에 개봉했다는 사실 그 자체도 특장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박은영: 극장이 여름 성수기 개봉 일정을 지키는 대가로 <모가디슈> 제작비의 절반 회수를 보장했으니, 개봉일을 미룰 수는 없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설령 약속을 어기고 개봉을 미뤘다고 하더라도 지금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어내리라는 보장은 없었을 거예요. 어쩌니저쩌니 하더라도 더운 여름이 되니 극장에 사람이 늘더라고요. 딱 적기에 개봉했다는 생각입니다.
박꽃: 동의해요. 한편으로는 관객들에게 한국 상업 영화에 대한 실망은 조금씩 깔려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별다른 매력 없는 캐릭터임에도 스타급 배우를 기용해 홍보하기 바쁘고, 서로 다른 작품인데도 마치 같은 공식을 공유하는 것처럼 이야기가 비슷하게 흐르고, 마지막은 꼭 신파로 끝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고질적으로 언급되는 문제들이 있어왔죠. 영화 기자로서도 ‘가서 봐라, 돈과 시간이 안 아깝다’고 추천할 만한 작품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모가디슈>는 이 팬데믹 시국에 극장에 가서 봐도 만족할 만한 웰메이드예요. 이 시점에 이런 영화가 개봉했다는 것 자체가 희망적이라고 할까요. 오랜만에 망설임 없이 추천할 수 있는 영화가 나왔다는 게 굉장히 반가워요.
300만 넘어 장기 흥행할까?
박꽃: 이 기회에 개봉 첫 주 안에 ‘흥행몰이를 끝장내겠다’던 격화된 기존의 극장가 분위기가 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달 뒤에도, 두 달 뒤에도 <모가디슈>를 보고 싶은 관객이 극장을 찾아가면서 ‘느린 흥행’을 이어나갈 수 있다면 어떨지 생각해봅니다. 오래 공들여 만든 작품이 1~2주 안에 대중적 생명력을 잃게 되는 그동안의 관행이 코로나19 덕분에(?) 좀 사라지면 좋겠다는 바람인데… 그런 시나리오가 실현될 수만 있다면 후세대에게 <모가디슈>의 영화사적 의미가 새롭게 정의되겠죠.(웃음)
박은영: 아마 변수는 이후 개봉하는 <싱크홀>과 <인질>이 스크린을 얼마나 가져가냐일 거예요.
박꽃: <싱크홀>이 개봉한 11일(수) 1,100개 관으로 상영 규모가 좀 줄어들었어요. 처음에는 1,600개 관에서 상영을 시작했거든요. <싱크홀>은 1,400개 관 정도를 확보했고요. 광복절 연휴 동안 <모가디슈>가 1,200개 관까지 상영관을 소폭 늘렸다가 <인질>이 개봉한 18일(수)에 900개 관으로 대폭 축소됐고요. 이런 흐름을 거치면서 현재 250만 관객을 동원한 상황입니다.
박은영: 사실 팬데믹 상황에 개봉 첫 주 1,600개 관을 확보한 거면 <모가디슈>가 다른 영화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몰빵’ 받은 건 맞거든요.(웃음) 그런 면에서 <군함도> 시절 이야기됐던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본질적으로 개선됐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다만 그건 마블 ‘어벤져스’ 시리즈도 마찬가지였거나 더 심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거고요. 아무튼 <모가디슈>가 이대로 7~800개 상영관을 쭉 유지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결과가 도출되지 않을까요. <크루엘라>(2021)도 5월 말 개봉해서 두 달 이상 상영하면서 198만 관객을 모았거든요. 스크린 수가 꾸준히 줄어들 수밖에 없었지만 그 와중에도 좌석 판매율은 높은 편이었고요. 그런 걸 보면 입소문 난 영화라면 볼 사람은 본다는 거죠. <모가디슈>도 그럴 수만 있다면 300만 관객을 동원할 때까지 좀 길게 상영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금용: 아무래도 사람들이 멀리 여행을 떠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휴가지로 극장을 찾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한동안 기피했던 쇼핑몰 자체를 많이 찾으면서 멀티플렉스 극장 관객도 늘어난 것 같아요. 350만 관객 까지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2021년 8월 20일 금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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