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의 휴가를 맞아 고향에 온 군인 존(채닝 테이텀)은 대학생 사바나(아만다 사이프리드)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존의 군 복귀로 멀리 떨어지게 된 두 사람은 서로에게 편지를 쓰며 사랑을 이어나간다. 그러던 중 9.11테러가 발생하고 존은 동료들을 따라 군 복무를 연장한다. 함께 할 날을 미루게 된 두 사람은 편지를 통해 계속 사랑을 나누지만, 시간은 사바나를 지치게 만든다. 줄어가는 사바나의 편지에 마음을 조이던 존은 결국 그녀로부터 다른 남자와 약혼했다는 편지를 받게 된다.
군대에 간 남자와 그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 징병제가 아닌,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할리우드에서는 꽤나 신선한 소재일 수 있다. 하지만 군복무로 어쩔 수 없이 떨어져 지내야 하는 ‘현대판 견우직녀’ 들이 매일같이 생겨나고, 곰신(군대 간 애인을 기다리는 여성)들이 거꾸로 신은 고무신들이 하루에도 한 박스 이상 쏟아져 나오는 우리나라에서 이는 결코 새로운 소재가 아니다. 물론, 이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친숙한 이야기이니만큼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의 폭이 더 넓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디어존>은 이것이 신선한 소재인가, 아닌가를 따지기조차 무색하게, 소재를 풀어내는 방법에서 어설픔을 보인다.
특히 영화는 “디어 존~”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그러니까 전쟁터에 나간 존과 그를 기다리는 사바나가 본격적으로 편지를 주고받는 순간부터 초반 존재했던 로맨틱한 분위기마저 지워버린다. 억지스러운 전개와 공감도 감동도 안 느껴지는 반전 때문이다. 영화는 보통의 멜로 영화가 그렇듯, 조금 더 극적인 상황을 노리기 위해 위기와 반전을 심는다. 문제는 그 위기와 반전이라는 게 사랑과 동정을 구별하지 못하는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여자와, 헤어지자는 편지 한 통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수긍하는 (미련해 보이는)남자의 선택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7년 만에 재회한 두 남녀가 “그때, 어쩔 수 없었노라”고 울고불고 하는 걸 보고 있자면, ‘제 꾀에 넘어간 것’이라는 생각에 함께 슬퍼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싹 가신다.
영화는 나름 9.11이라는 슬픈 역사적 사건을 엮어 남자를 전쟁의 한 가운데로 밀어 넣지만, 이 역시 너무 소홀하게 다루고 만다. 전쟁이라는 배경이 멜로와 효과적으로 결합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극의 몰입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전쟁터에 대한 묘사 또한 너무나 평이한 탓에 특별한 긴장감을 안기지 못한다. 원작 소설을 안 읽어봐서 모르겠지만 그것이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영화로도 제작된 걸로 봐서는 본래 단점이 많은 작품은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영화 <디어존>의 실패는 뭘 고치고, 뭘 놔둘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각색의 실패와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영상화하지 못한 연출에게 돌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이 영화의 미덕이라면, 아들 존과 아버지의 관계가 동전이라는 소품을 통해 꽤나 감동적이게 담겼다는 점이다. 아들과 자신을 이어줬던 유일한 공통 관심사인 동전에 집착하는 자폐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아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은, 존과 사바나의 공감 안 가는 이야기로 싸늘하게 식은 심장을 그나마 녹게 한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는 남자친구를 군대에 보낸 여자들보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님들에게 더 알맞은 영화라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2PM이 불렀다던 ‘기다리다 지친다’를 존의 아버지가 아주 애절한 연기로 보여주니 말이다.
2010년 3월 2일 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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