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좀 의아할 정도다. 온갖 장르를 변칙적으로 혼용하며 과잉이라 할 만큼 스타일리쉬한 테크닉을 과시했던 류승완 감독이, 단조롭기 짝이 없는 신파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한 편의 영화를 만들었으니 보는 이로서는 참으로 난감하다. 그런데, 더 난감한 것은 감독의 그러한 노선 변화에 저항할 틈조차 없이 <주먹이 운다>가 날리는 알싸한 감동의 카운터 펀치에, 본 필자 황톳길에 뻗은 개구락지마냥, 넉다운 됐다는 사실이다.
에둘러 지극히 자신을 낮춘 말이긴 하지만 “쓸데없는 멋을 부리지 않으려 했다”는 류승완 감독의 연출 의도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중국 대륙의 수많은 활극과 할리우드의 장르 영화를 섭렵하며 액션영화광임을 자처한 그는, 줄곧 보여지는 이미지에 운동감과 리듬감을 부여하며 최전선에 위치한 화려한 스타일에 집착했다. 그런데 이번엔 힘은 뺀 채, 드러나지 않는 이미지의 내면과 정서에 천착, 또 다른 지형도를 그리며 자신의 영화적 너비를 한 뼘 이상 넓힌다. 결국, ‘사건’으로 조합된 비주얼의 서사가 아니라 ‘인물’에 기댄 드라마틱한 휴머니즘 서사로 엮어 낸 작품이 <주먹이 운다>다.
● 테크닉과 사건 대신 인물에 몰입!
거리로 내몰린 인생막장의 퇴물 복서 태식(최민식)과 거리에서 쫓겨난 무대폿적 깡으로 세상과 맞서는 쌩양아치 상환(류승범),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담아낸 <주먹이 운다>에서 볼 수 있는 테크닉은 사실 이렇다. 핸드 헬드와 잦은 클로즈업과 부감 그리고 막판에 숙명적 대결을 펼치는 클라이맥스 신을 제외하고 두 사내가 마주하는 신이 없기에 번갈아 그네들의 기구한 역정을 보여주는 교차편집 정도. 물론, 이 역시 내러티브의 중심에 놓인 인물의 절박한 처지와 심리를 드러내며 밀도를 높이기 위해 기능한다.
특히, 영화만이 줄 수 있는 클로즈업의 힘은 <주먹이 운다>에서 빛을 발한다. 이강재(파이란)와 오대수(올드보이)를 포개놓은 듯한 강택식 최민식의 주름진 얼굴은 그 자체가 캐릭터이고 삶의 굴곡이 고스란히 새겨진 스펙터클이다.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상환이 수년이 흐른 후 다시금 스크린으로 걸어들어 온 듯한 동명의 류승범 역시 화면 가득 채우는 자신의 얼굴을 통해 극단으로 뻗어나가는 찰나의 감정을 악에 받친 듯 원 없이 쏟아낸다. 적막함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강고히 하는 최민식과 달리 적막함을 부서뜨리는 몸부림의 아우성으로 캐릭터를 구축하는 류승범의 뛰어난 연기는 이번엔 거의 끝장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종의 긴장감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도 체화된 ‘머리 쓸어 올리기’는 상당한 충격으로 눈에 맺힐 그 어떤 액션이 일어날 것을 미리 감지하게 함으로써 살 떨리는 긴장감을 던져주고 뒤틀린 인물의 심리적 변화의 파고를 지속시키며 관객에게 동일시시키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들과 더불어 호연을 펼치는 변희봉 나문희 천호진 오달수 임원희는 영화에 웃음과 깊이, 원숙함을 더한다.
● 제대로 다스린 신파의 가공할 만한 힘!
전언했듯, <주먹이 운다>는 신파로 가득하다. 벼랑 끝에 내몰린 자신의 처지를 반영하듯 끽연을 하며 허공을 응시하거나 땅으로 시선이 향하는 그들의 삶은 사적 공동체인 가족과 절대적으로 맞물린다. 평온한 안식처이자 굴레이기도 한 가족에게 상처 받고 그들 때문에 생의 의지를 불사른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생활밀찰적 경구를 공고히 하며 태식 상환은 성장한다. 그 외에도 영화는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설정들로 빼곡하다.
보는 이의 누선을 사정없이 자극하고 감정의 결을 요동치게 하는 그 힘의 요체는 자칫 지루해터진 영화로 추락하게 만드는 원죄로 악명 높은 신파의 명예를 오늘날 되살려 제대로 다스리며 보여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그랬듯 관객의 마음을 적재적소에서 흔들 수 있는 타이밍을 제대로 포착해 공략했다는 것이다. 두 남자의 지난한 인생역정을 하나 둘 풀어헤치며 감정을 고이게 한 후 파편난 삶의 조각을 쓸어 담는 갱생의 여정을 서글프지만 박력 있게 펼쳐 보이며 그것을 고양시킨다. 그리고 모든 것을 격정적으로 토해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의 라스트 신 대결은 정점에 다다른 응축된 감정을 폭발시키며 걷잡을 수는 정서적 힘으로 관객을 옭아매며 휘몰아친다.
이쯤에서 분위기 파악 못하시고 누가 이겼냐?고 깜찍한 질문을 모니터를 향해 던지시는 분들 있을 거라 헤아려진다. 농담이고, <주먹이 운다>는 스포츠영화가 아니기에 승부의 결과는 그닥 중요하지 않음이다. 그렇지만 어떤 식으로든 결판나는 것을 보려고 하는 집요함이 우리에게 내재된 이상, 영화는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건 무승부로 끝낸 건 끝장을 본다.
자갈밭 같은 두 남자의 행보를 이분법화 시켜 보여주는 방식이나 흔들리는 카메라로 인해 영화는 다소 투박하고 초반까지 밋밋하게 보일 수 있다. 엇나간 시선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측면이 미덕으로도 복무될 수 있다는 사실을 영화는 막을 내린 후 실감케 한다. 허나, 실제 인물을 바탕으로 길어 올린 영화인만큼 사실적 묘사에 상당한 심혈을 기울였음에도 오바스런 작위적 대사와 설정이 오다가다 눈에 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앞썰했듯, <주먹이 운다>는 류승완 감독의 기왕의 작품과는 선뜻 포개지지 않는 구석이 적잖이 있는 작품이다. 테크닉과 사건 대신 인물에 몰입하며 대중적으로 익숙한 장치들을 과하다 싶을 만큼 적극 수용했다는 점이 그렇고 그 결과는 꽤나 만족스럽다. 그 대가로 그는 접점하기 힘든 비평과 흥행을 다 잡으며 안정된 궤도에 오른 한국에 몇 안 되는 감독의 반열에 오르게 될 공산이 크다.
물론, 삑사리적 마인드와 패기로 똘똘 뭉친 초심이 날이 갈수록 엷어지는 게 아니냐는, 주먹이 울만큼 심기가 불편한, 비판의 소리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가슴이 울만큼 감동의 카운터펀치에 넉다운 된 필자와 같은 이들의 압도적 호평을 기꺼이 받을 만한 자격... 류승완 감독에게 있음은 분명 사실이다.